주님과 하나가 되는 멍에를 배우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네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가 마음의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세상의 물결의 파고는 더 높아 갈 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합니다(요 16:33)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거기에 우리의 안전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주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시므로 세상을 이기시고 언제나 평안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 평안의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게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멍에를 지므로 그 멍에는 쉽고 가볍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안식을 얻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상태입니다. 사실 세상의 불신자들보다 예수 믿는 불신자들이 더 걱정입니다. 세례요한도 주님을 보고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 하고 묻습니다(마 11:3)
구약은 말씀이 육신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멀리서 보고 믿으므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때는 이분이 바로 그 말씀이시다 하고 믿고 대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하고 질문합니다(요 12:34) 하나님을 믿는 불신자들이죠. 그만큼 계시가 중요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세례요한까지이고 그 다음부터는 천국을 침노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세례요한 그는 오리라 한 선지자 엘리야였습니다(마 11:12-14) 그럼에도 그는 갈대와 같이 흔들렸습니다(마 11:7) 세례요한도 유대인도 십자가를 지신 다음 다시 사시고 하늘에 오르신 후에 보내실 진리의 성령에 대해 캄캄했던 거죠.
말씀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게 하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로 묶는 분이 바로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온전한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계시를 받아 진리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님의 멍에를 배우는 길입니다. 주님이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멍에를 메시듯 우리도 진리의 성령 안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는 멍에를 배우는 겁니다. 그 때에 안식을 얻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품안에 안기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때에 주님이 말씀의 역사로 온갖 이적과 기사를 일으켜도 천국을 침노하지 못하는 불신자들 세계였던 것처럼 지금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진리의 성령이 그 들 안에 계시지 않으므로 임마누엘의 주님을 마음 밖에 둡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습니다(마 11:17) 계시를 받은 자들만 주님은 성령으로 아버지와 하나가 되셔서 능력을 나타내셨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주님이 예수로 오셨다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다음 진리의 성령을 보내셔서 그리스도로 우리 안에 임마누엘하심을 알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십자가와 진리의 성령을 좇아 육체를 부인하는 고난을 통해 성령의 기름부음이 그리스도를 모신 심령에 임하신 다는 걸 배웁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생명의 떡을 베푸시고 그 심령의 잔이 넘치고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따르는 주의 집이 됩니다(시 23:4-6) 주님과 하나가 되는 멍에를 배우면 말씀과 하나가 되고 아버지와 하나가 됩니다. 그 결과는 마음의 쉼 곧 안식입니다.
-김요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