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내용 목사의 자기성찰
마르다:안녕하세요,앨리슨.저는 마르다입니다.
오늘은 어떠세요.
앨리슨:그렇고 그렇지요.
마르다:별로 나아진 게 없는 모양이지요? 앨리슨은 자기의 상태에 대해서 사실대 로 전혀 이야기해 주지 않을 것이다.과 거에 그녀는 예전의 고통이 재발했다고 넌지시 이야기했지. 그것이 그녀가 이 야기한 모든 것이다. 나는 자세히 이야 기한 것을 후회한다.
앨리슨:말하기가 어렵군요. 이건 오래 되었지요.
그러나 나는 목사님이 알다시피 투사입니
다. 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구요.
마르다:지난 번 회의에서 당신은 "그저 그렇지요" 우리는 인생을 위협하는 어떤것,불편을 라고 이야기했어요.더 나아지지 않았다니 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지 않
실망스럽군요. 는가? 그러나 그녀는 나를 신뢰하고 있
지 않아.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어.
앨리슨:물론 실망스럽지요, 그러나 나는 밝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것이 내 성격
아니겠어요?
오늘 어떠세요. 목사님은 요새 아주 좋아
보입니다만.
마르다:글쎄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네요!나는 아마도 내가 약간의 약점을 내보이고,
기분이 좋군요. 사실은 좀더 나아졌어요. 몇 그녀로 하여금 나의 인생속에 약간 끼
가지 이유로 9월에는 우울했었거든요. 어 들어오게 한다면 그녀도 나를 자기
그러나 이제 나의 에너지가 돌아오는 것 같 의 인생속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군요.그리고 내정신도 더 낙관적이 되었어요. 나는 먼저 그녀로 하여금 나를 위한
나는 얼마동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버 교역자가 되게 하여야겠다.
지 기일에 너무 마음을 빼앗겼나봐요.
앨리슨:그런 상실에서 회복되는데는 오래 걸리지요.
나는 알아요. 나는 목사님이 너무 빨리 돌아
왔다고 생각해요. 목사님은 자신을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내지 않는 것 같아요.
마르다:그게 사실일거예요. 나는 나에게 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더 부드러운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하는 것이 나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요.어떤 의미에서 나의 일은 그점에서 나의 여기에서 나는 변명하고 있다고 느
슬픔이에요.나는 그것을 통합하면서 살지 않으 낀다. 사실 앨리슨은 내가 일주일간
면 안 되었어요. 나는 지금도 그렇게 하고 떠나 있었던 것을 불평하는 한 사람
있어요. 나는 그것을 위해서 더 나은 목사가 이었다. 나는 마치 나의 신뢰성을
되고 싶어요. 회복해야 할 것처럼 느낀다. 나는
나는 인간의 과정이나 느낌들을 존중하지 그녀에게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
아니하는 은행이나 어떤 장소에서 일하는 것 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
같지 않아요. 그리고 교회는 멋진 곳이에요. 려주고 싶어요.
우리 사회는 너무 빨리 움직여서 가끔 우리는
사람들이 무거운 짐과 마음의 아픔을 지고 있
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요. 그러나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기로 아마도 나는 여기에서 약간의 교육
언약을 맺은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우리자신을 을 할 수 있을 것이다."언약"은 앨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약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리슨에게 의미있는 단어이다.그녀는
우리마음의 무거운 짐을 나누는 곳이 교회에요. 조합교회주의에 헌신하고 있지.나는
이런 방식으로 그녀가 마음을 열기 만하면, 교회는 그녀에게 무엇이 잘 (침 묵) 못되었든 그녀를 도울 수 있다고 암 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마르다:앨리슨, 이런 때에 나나 교회가 당신을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고
싶습니다. 교통이 필요하십니까?
마케팅에 도움을 원하십니까?
앨리슨:감사해요.그것은 내가 해결 해야하는 문제에요.
그것은 쉽지 않아요.나는 감사해야 할 일들을
가지고 있어요.
마르다:나는 당신의 사생활을 존중해요,앨리슨. 나는 나는 나를 원하지 않는 곳에는 가고
다만 내가 당신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으며,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당신을 돕고 싶다는 것을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포기한 것은 아니에요.
해요. 차 한잔을 나누면서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것이라도 말이에요.
(침 묵)
마르다:앨리슨, 나는 재정위원회에 대해서 당신과 이 그녀는 미쳐 날뛸거야!그러나 내가
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나에게 이미 약속된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면 그녀도 이해
스케쥴이 있어서 당신이 도와주었으면 하네요. 하고 존중해줄거야. 내가 당회의 의
교회 인근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약 거래 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문제로 지역사회 특별위원회가 있어요. 그녀도 분명한 증거도 있고 하니 호
나는 그 회의에 참석하고 싶어요. 특히 당회가 의적으로 응답할 거야.
교회 밖에서의 활동을 강력히 권하고 있어요.
앨리슨:이번 재정위원회는 아주 중요한 회의인데요! 회의가 무슨 소용이 있어.아젠다를
마르다:중요하지요. 재정위원회 자체가 얼마나 복사해서 회원들에게 나누어주지 않
중요해요.그러기 때문에 제가 전화드리는 는 것은 혼자서 독제하려는 뜻이지.
겁니다.오늘 저녁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그러니 무슨 대단한 것이 결정되겠
대충 결정할수 있게 오늘 재정위원회아젠다를 어.투자상담자들은 화가 날 것이고,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앨리슨이 세세한 것을 소화 못하고
더 큰 재정원칙들을 이해하지 못하 고 있으니 모든 회원들이 실망할거 야.
앨리슨;목사님이 꼭 알았으면 하는 것은 JR과 PL이 JR과 PL과 같이 투자상담회사의 고
이 회의에 참석하려고 하며, 우리가 그들과 위층이 이런 지저분한 교인과의 갈
함께 모이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그들이 회의 등문제와 관리은행선정과 같은 교회
에 참석하겠지만 우리는 투자목표들을 토의할 내부문제를 토의하는 회의에 참여한
것이고,그들도 가장 최근에 있는 (은행이름) 다면 걱정되는데….
의 큰 실수에 대하여 몇 가지 정보를 줄 예정 사실 투자문제와 자기들이 거기에
이에요.나는 관리은행문제를 매듭짓고 싶어요. 관련되지 않았다면 메어리도 앨리슨
목사님도 아시지요 않아요. 메어리가 이 모든 도 교회일에 이처럼 깊이 끼어들지
일을 시작해 놓고서는 그것을 해결하는데 않았을거라는 것이 나의 느낌이야.
협조하지 않고 있어요.
마르다:내가 알기로는 관리은행을 바꾸는 일의 손익
계산을 다해 본 후에 메어리는 자기의 본래의
입장을 재고했고, 이 지점에서 바꾸는 것은
교회에 꼭 이익이 된다는 확신이 없다는 거예요.
나는 이 모든 것 때문에 당신이 실망하는 것과
같이 메어리도 실망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목표에 대한 토의를 이야기해 봐요. 거기에는 앨리슨은 재정위원회가 회의때마다
사회책임과 예산필요에 대한 토의가 있어야해 아젠다로 우리의 투자에 대한 사회
요. 또 다른게 있어요? 적책임에 관해서 보고해야한다는 교 회의 요구를 수행해야 해. 그러나 그녀는 다음회의 일정조정과 같은 일에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우 리는 아마 그 보고서를 결코 받을 수 없을 거야!
앨리슨:없어요. 회의의 내용에 관한 것인데. 그러나
나는 바꾸는 데 있어서 투자의 적극적인 면을
약간 이야기했으면 해요.
마르다:무슨 말씀인데요?
앨리슨:나는 남아프리카에 대한 이 모든 비난들에 앨리슨과 이 위원회의 딱 한사람이
대해서 속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요! 이 모든 남아프리카에 대한 투자철회문제를
것은 부정적인 이야기라구요! 우리가 하고있는 거부하고 있어. 그리고 그 두사람의
것 가운데 좋은 일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주장과 태도는 다른 회원들의 혐오
해야 한다구요. 를 사고있어. 그러나 여기에 앨리슨 이 그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볼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구멍이 있는 것 같애.
마르다:위원회가 투자정책에서 인준한 것들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지역사회개발 프로젝트들이나 의료연구
프로젝트들, 예를 들면 아직도 재정적인
지원을 못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심사숙고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거예요.
앨리슨,당신은 이 지역의 예언자적지도력에
지원할 수도 있겠어요. 이 자원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교회는 모든 활동가운데
서 생명을 존중하도록 부름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앨리슨:그렇지요. 그러나 그것은 유치한 짓이예요.재정 나는 이길 수 없겠네!사례를 가지고
책임에는 엄격해야 한다구요. 다투는 것은 과거에도 제대로 안됐
우리는 선한 양심으로 IBM에서 돈을 빼내어서 어.하나 하나 잇슈를 토의하는 것은
파산할 조그만 일에 투자할 수 없어요! 불가능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당신 같은 사람들은 여기에 숨어 있는 모든 일은 어떤 긍정적인 진전이 있으면
잇슈들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것을 격려하고 그녀를 오래 참는 것 뿐이야.
마르다:앨리슨,나는 다만 당신이 하고 있는 적극적인
투자 잇슈에 대해서 당신의 지도력을 격려해
주려고 한 것뿐이에요. 재정위원회의 사업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지요.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앨리슨의 입장
이 나를 깨우치거나 또는 이것이 자
당신이 알고 있듯이, 내 생각에는 최고의 유교회정책의 긍정적인 사례라고 믿
이익을 남기는 것이나 안전한 투자보다 더 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중요한 다른 잇슈들이 있어요. 그러나 나는 때문에 앨리슨과 싸우고 싶지도
위원회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게다가 언권회원 않다. 나는 얼마전에 그녀의 목회자
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교회가 나아갈 가 되고 이와같은 일에 그녀를 괴롭
아주 특별한 차원이에요. 당신은 당신의 통찰을 히는 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더하고 나는 나의 것을 더하고,성령께서 원하는 만약 내가 이 위원회에서 그와 하
대로, 그 과정에서 아마도 약간의 진리의 빛이 나가 된다면,그것이 교회의 아젠다
우리모두에게 비추이겠지요.나는 당신이 몇가지 가 아닐지라도 나의 아젠다를 사용
투자의 대안들을 심사숙고하려고 열려져있다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을 알고 기뻐요.나는 오늘 재정위원회모임에
참석지 못해서 미안해요.그러나 나는 오늘저녁의
대화가 다음달에도 계속될 것을 믿어요.
앨리슨:목사님은 오늘 저녁에 참석지 않기로 작정하셨어
요?
마르다:당신은 아젠다를 당신의 손에 꽉잡고 있는 것같 나는 이 말을 하면서 이처럼 중요
이 들리네요.나는 오늘저녁 지역사회 마약모임에 한 교회일에서 앨리슨의 지도력과
참석하려고 해요. 아마도 나는 거기에서 약간의 나와 그의 이런 관계 때문에 무척
기여를 하고 뭔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낙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아요. 내가 내자신의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도 사회적 갈등위기에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고 생각하는 것은 저주받을 소리 다.
이 사례의 형태는 성찰적인 과정으로 들어가는 창문의 역할(또는 적어도 성찰적 과정의 재구성)을 할 것이다. 이 사례는 콜체스터 교회의 사례에 비해서 초점, 시간구성, 그리고 결과 등에서 현저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슷한 실천-성찰모델의 요소들을 볼 수 있다.
마르다는 잇슈의 틀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이 만남에 가지고 들어왔다. 앨리슨과의 과거경험들의 역사가 있었고 이것은 마르다의 양극감정을 조장했다. 그녀는 이번 전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다는 또한 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목사로서 자기의 역할에 관해서 두 가지 가정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그녀가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데에 양극감정을 조장시켰다. 한편으로 그녀는 앨리슨에게,"교회는 모든 활동을 통해서 생명을 지지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고 이야기한다. 이 견해는 그녀의 교역의 비전을 표현하고 있으며, 정의와 화해의 잇슈에 참여해온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 특정한 교회의 정체성과도 일치한다. 그것은 또한 지역사회의 활동들에 참여해야한다는 그녀의 역할구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참으로 그 교회당회는 이런 역할을 권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교회가 교인들에게 "위로와 용기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관점에서 마르다의 역할은 그녀의 고집스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앨리슨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목사의 일이다. 이 두 가지 이미지들은 원리적으로는 모순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교회 의 공적 교역을 더 강조하고, 다른 이는 소속과 지원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 특정한 사례에서, 이 양자는 갈등하고 있으며, 마르다에게 역할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앨리슨도 역시 그 잇슈의 틀을 만들고 있다(우리는 그녀의 실천-성찰을 은밀히 관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교회에 대하여 무엇을 믿든지, 그녀도 역시 책임적으로 기능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비록 신중하고 실용주의적 재정책임을 강조하며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투자의 촉구와 상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행동과 지배욕구는 재정책임의 정의와 모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러한 의미에서 자기의 틀을 구성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목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미에서 틀을 만들고 있다. 목사는 교회의 재정문제에 대해서 실증주의적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래서 앨리슨은 사회적으로 책임성 있는 투자를 촉구하고 있는 목사와 다른 사람들을 "유치하다"고 본다, "당신과 같은 사람들은 여기에 숨겨진 모든 잇슈들을 이해하지 못해요!"
전화의 목적은 앨리슨에게 자기가 그 위원회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지만, 마르다는 먼저 그 상황과 자기역할에 대해서 목회적인 용어로 틀을 구성한다. 이것은 예상되는 갈등을 "부드럽게 하는"방식이지만, 그것은 또한 앨리슨을 목회하려는 그녀의 관심을 반영한다. 그녀의 목회적 틀에서, 그녀는 자기의 틀을 시험한다: 그녀는 자기의 약함을 내보임으로 이것이 상호 돌봄을 일으킬 것을 희망한다. 그것이 자기의 생각대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 때, 그녀는 다른 방식을 시험한다. 그녀는 그 교회전통을 인용하여 언약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상호작용을 조장하려고 노력한다. 이것도 역시 일종의 실험추진(move-taking)시험이다.
다시 한번 목회적 틀로 아무런 진척이 없을 때에 마르다는 재정위원회 회의로 대화를 바꾸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의 사회정의책임과 지역사회참여자로서 그녀의 역할이 전면에 등장하였고 그녀에게 잇슈의 틀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자기의 스케쥴상의 중복을 이야기하고 그녀가 지역사회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는 당회의 요구를 앨리슨에게 회상시켰다. 앨리슨이 반대하면서 그 위원회회의의 중요성을 주장했을 때, 마르다의 성찰은 자기의 좌절을 암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또 다른 틀을 시험하였다 - 이번에는 사회정의 틀이었다. 그녀는 재정위원회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사회책임에 관한 교회의 요구를 앨리슨에게 기억나게 했다. 그녀는 또한 앨리슨에게 위원회의 의장으로서 그녀의 역할가운데 예언적 지도력의 가능성을 보도록 격려했다. 그러나 앨리슨은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계속되는 좌절가운데서 마르다는 자기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모두가 이기는 방식으로 그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앨리슨에게 있어서 한쪽 편은 반드시 져야만 하는 이기느냐 지느냐의 게임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천사의 축복을 받은 야곱과 달리 마르다는 결정에 있어서도 사회책임 제안에서도 앨리슨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 만남의 틀을 다시 한번 재구성하여 목회적 틀로 돌아왔다. 다시 한번 그녀는 목회적으로 앨리슨을 존중하려는 노력으로 그 교회의 전통을 끌어들였다:"당신은 당신의 통찰을 더하고, 나는 나의 것을 더하여, 성령께서 원하시면, 아마도 약간 더 진리의 빛이 비취게 될 것입니다…"
마르다(그리고 우리)는 이 만남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다음은 그녀가 배운점을 그녀 스스로 설명한 것이다:
우리는 가장 파괴적이요 신랄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마저 신뢰를 개발할 수 있다. 즉 싸우면서라도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반드시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건 전한 가정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부터 이런 관계를 성취하려고 했다. 앨리 슨은 나에게 올가미를 씌우려했다. 그녀는 나를 위협했다. 나는 그녀의 인정과 감사 를 원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것을 보류하는 것 때문에 나는 괴로웠다.)
우리는 교역을 시작할 때에 하나의 역사를 물려받으며, 그 역사는 인간의 약점들로 가득하다. 앨리슨은 내가 밀어내고 있으며 위협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조직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감정적 거리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방법은 그녀를 고립 시키지 않고 오히려 교역파트너로 참여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하나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결정을 내린다. 나는 인간생명이 다른 어떤 잇슈보다도 더 소중하며 그녀의 지배욕은 아주 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사랑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나는 이것을 얻으려 고 교회의 아주 불건전한 패턴들과 결탁했으며, 제도와 타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그녀를 오래 참기로 결정했으며 얼마동안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교회목회는 세상에서 가장 좌절을 주고 굴욕적이요 화나게 하는 사역이다. 관계의 복잡한 모자이크들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도 느리게 일어난다.
돈은 힘이다. 정보는 힘이다. 누구든 이런 것들을 지배하는 자는 교회에서까지 많은 것을 지배한다.
이상은 사건 이후에 행한 솔직하고 유익한 실천성찰이다. 대체로 이것은 성서적이거나 특히 신학적 범주로 진술하지 않았다. 더 명백하게 그렇게 시도하였다면 마르다는 자기 내면깊이에 간직하고 있는 교역의 비전과 앨리슨과 자기의 역할의 틀에서 생겨나는 긴장들을 더 완전히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어도 그녀 자신의 실천성찰과 클래스에서 그 실례를 제출했을 때 그녀의 동료들로부터 받은 통찰들은 미래 실천의 이론과 실제에서 그녀의 레파토리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녀는 이 사례에서 자기와 교회의 교역목표들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지도력을 행사하려는 그녀의 노력은 성찰적 과정에 유익한 창문을 제공했다. 우리는 기술적 합리성의 모델에서 보는 대로 직선적으로 이론에서 실천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행동하면서 성찰하고 엄격함과 자기 훈련이 있는 예술적 기교들과 함께 비전과 식별을 동시에 행하면서 지도하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러한 훈련은 일련의 과정이나 적용할 수 있는 공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적 합리성을 뒤집는 것이다. 목사가 성찰적인 지도력의 능력을 개발하고 싶거나 신학교가 성찰적인 지도자가 되도록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좀더 조직적으로 설명하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