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세운동 106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에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책임을 묻는다(1) 오늘 한국교회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가 비폭력운동이며, 예수님의 평화(샬롬)운동인 3,1만세운동이 일어난지 106주년이 되었다. 하지만 일부 한국교회 목회자와 정치인,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은 친일반민족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여기에 편승돼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36년 동안 고난을 당한 한민족의 아픔과 핍박을 몰각하고, 민족대표 33인만을 내세우는 등 교회의 역사적,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일이 그 어느 정권 때보다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가장 큰 우군은 역시 보수보수를 외치다가 보수주의에 떨어진 한국교회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제하에서 범한 신사참배 결의, 해방 후 피 묻은 손에 기도해 준 교회지도자들의 범죄를 정당화 해 주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국민과 등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교회의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친일반민족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했고, 역사조작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반공이데올로기와, 자유와 민주만을 내세운 우경화된 보수주의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사가들의 평가이다. 심지어 공산주의에 뿌리를 두고,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싸운 독립운동가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독립무장투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고, 일부 정부 인사들이 독립운동가들을 모독하는 것은 한마디로 남북한의 분단과 이념전쟁을 벌인 결과이다. 한국교화가 이런 이념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상태로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 2023년 충청북도지사 김영환은 스스로 “친일파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안보실장 신원식은 극우세력의 대중집회에서 “이완용이 비록 매국노였지만,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고 말해 국민적 공분 일으켰다. 이완용이 대한민국을 일본제국에 팔아 넘겼다는 것에 대해 국민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이는 분명 일본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행위로 국민적 저항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3.1만세운동의 주체는 기층민중이었다. 만세 현장에는 자칭 민족대표 33인은 없었다. 한국교회는 3.1운동 106주년을 맞아, 3.1절 기념예배가 갖는 의의와, 한계를 고찰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이념갈등의 중심에 있는 교회 화해자가 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매국노 김문수 노동부 장관은 국회 청문회의 자리에서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대한민국 국민의 국적은 일본이다”고 말해,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김구 선생의 국적은 중국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렇게 윤석열 정부 아래서 친일 매국노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급기야는 교육관련 기관장들까지 민족의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인사들이 독점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가교육위원장 이배용, 전 진실화해위원장 김광웅, 동북아시아재단 이사장 박지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김낙년. 국사편찬위원장 허동현, 독립기념관장 김형석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친일매국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그리고 친일매국노의 면죄부를 부여하는 나팔수 역할을 했다. 또한 이들의 친일적인 행위는 헌법의 독립, 민주, 평화통일의 정신에 전면 배치되는 행위이다. 이에 대해 전 독립기념관 이준식 관장은 “반헌법적 역사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이 전 관장은 “이런 역사쿠데타는 헌법자체를 부정하는 12.3비상계엄, 내란으로 이어졌다”면서, “이들도 내란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기독교사상>(2025년2월호)에 기고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2년6개월 동안 일제 36년의 굴절된 역사 현안들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왔다. 헌법과 사법부의 판결을 정면 부정하는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홍범도 장군 등 독립영웅 흉상 철거 시도, 이승만을 미화한 KBS 다큐멘터리 상영. 서울 주요 지하철역에 설치된 독도조형물 철거,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 검정통과, 일본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묵인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불거져 나왔다. 이를 믿고 따르는 종교단체가 바로 극우의 모습을 보여주는 보수적인 한국교회라는데 안타깝다. 예수님의 평화운동이며, 비폭력독립운동이고, 민족해방운동으로 평가를 받는 3.1만세운동 106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지도자와 교인들은 오늘 상황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3.1만세운동의 현장에 33인, 특히 기독교 대표 16인은 없었다. 3.1만세운동의 중심에는 기독학생과 전국교회 교역자, 기독농민, 기독여성 등 기층민중이 있었다. 이들은 독립을 갈망하는 지역토착민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켰고,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도했다. 3.1만세운동 1년 동안 전국방방곡곡에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서울로 유학 온 기독학생들이, 전국교회로 흩어져 교회의 지도층인사들에게 나라의 독립을 설파하고, 이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인 결과이다. 이들은 피압박민족의 아픔을 하나님께 호소했고, 나라의 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서 기도하며 행동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어머니들은 무명 흰 저고리 옷고름을 입에 물고, 검은 무명치마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민족은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는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 피압박민족의 아우성을 듣는 하나님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한민족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한민족을 일제치하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을 다시 찾게 해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을 듣고 파라오의 압제와 수탈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를 세우라고 명하셨다. 새로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 전체를 압도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파라오의 압제와 착취에서 해방시켜주셨다는 신앙고백은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이스라엘민족의 이 같은 전통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대한민국도 하나님께서 고난당하는 한민족의 신음소리를 듣고, 일제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우상 천황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을 한민족은 분명하게 보았다. 3.1민족해방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저항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약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훈령을 선교본부에 내려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민족의 독립과 하나님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강했다. 총독부에 협조적이었던 선교사들 역시 구약성경을 본문으로 한 설교 및 성경공부를 철저하게 금지시켰다. 이를 어기는 교인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는 일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보니 선교사들은 구령사업과 교육사업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선교사는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싸구려 복음, 성령을 방매하기에 바빴다. 오늘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의 한민족과 유리된 선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의 교육사업과 사회사업, 싸구려 복음 등의 공만을 높이 평가하며, 예언자적 사명을 망각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역사적,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오죽했으면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였던 아서 브라운 목사가 한국교회를 순회하면서, “한국에 나와 있는 선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걱정 된다”고 자신의 저서 『극동의 지배』에서 밝혔겠는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교사들의 선교는 피선교국 백성들의 고통과 고난을 몰각하고, 제국 서양문화를 그대로 이식시키는 데만 몰두했다. 한국교회 역시 서양의 선교정책을 한민족의 실정에 맞게 뿌리내리지를 못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한민족 속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선교의 현장이 피압민족의 삶의 현장이 아니었다. 이는 한국교회의 선교가 원리주의와 정통주의, 근본주의 신학, 신민지 신학에 갇히게 했다. 한국교회가 잘못된 권력을 비호하며, 극우화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불러 왔다. 역사적 책임 저버린 교회 미래도 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3.1절 행사는 민족해방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기독농민, 기독여성, 기독학생 등을 기념하는 행사라기보다는, 민족대표 33인에게 맞추어진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날 한국교회 일부 목사와 교인들은 거리로 나와 정치집회를 강행하며,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특히 2025년 3.1만세운동은 계엄과 내란의 잘못보다도, 탄핵의 부당성을 성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이런 집회를 보면서, 국민들은 극우화되어가는 한국교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한국교회는 이념갈등 등 사회분열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우경화 되어가는 기독교단체들의 모습을 보면 극명해진다. 이것마저도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우경화된 단체끼리 서로 비방하기에 바쁘다. 여기에다 우경화된 한국교회는 영화 같은 법원습격 등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집회에서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로 쳐들어가자고 헌법질서를 무너트리는 언행도 서슴지 않는다. 한국사 일타강사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헌재로 가자고 선동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12.3계엄 이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듣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 이념적 갈등 등을 부추기며,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데 중심에 서 있다. 한마디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희망을 걸지 않는다. 더 이상 하늘을 향해 호소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교회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일제의 압제와 수탈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봉사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남북한 민족의 하나님이고, 세계민족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념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들, 특히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 강대국을 섬기며, 힘에 의한 평화, 로마팍스를 외치기에 바쁘다. 비폭력 운동이며, 예수님의 평화운동(샬롬)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늘 탐욕에 길들여진 인간들은 하나님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로운 나라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없다. 현재에 안주하며, 하나님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적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독차지 한다. 그렇다보니 우리사회는 이기주의만 팽배하고,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다.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가지 못하는 교회 3.1만세운동 106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이 땅은 분열과 갈등이 만연되어 있다.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적대적 관계가 조성되었고, 분단의 벽은 높아만 가고, 단절의 깊이는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은 남북한 간, 지역 간, 세대 간, 노사 간, 남녀 간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다. 이념갈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다. 자유와 민주, 헌법수호라는 명분으로 열리는 3.1절 106주년 기념행사마저도 하나 되지 못하고 있다. 광화문파와 여의도파로 갈라져 열린다는데 참담하다. 국민적 비판을 의식해 전광훈 목사는 “3.1절 국민대회만큼은 우파가 하나 되어 열자”고 제안했다. 무엇보다도 3.1절 106주년행사는 윤석열 대통령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열린다는데, 3.1절 행사가 탄핵반대집회로 치러질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3.1절 행사가 정치집회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3.1절 기념행사는 국민들을 갈라치기 하는 행사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관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모두가 탐욕에 길들여져 민족의 아픔과 상처뿐인 역사를 몰각하고, 자신의 이익과 관념에 의해서 행동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거대한 제국의 압제와 수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한 기득권자들의 욕심 때문에, 앗시리아 제국과 바벨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로마제국, 시리아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나라 잃은 백성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들 나라에 짓눌리어 1천년 동안 나라를 잃고 신음하면서 유리방황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며, 행동했다. 3.1만세운동 106주년을 맞았지만, 분단된 한반도는 여전히 3.1만세운동이 미완으로 남아 있다. 분명 3.1만세운동은 한민족의 독립운동이며, 민족운동이고, 해방운동이다. 또한 지지리도 못난 봉건통치를 마감하고, 한국의 민주국가 개시를 알리는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이런 점에서 3.1만세운동은 민족사적, 교회사적으로 갖는 의미가 크다. 이웃국가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고, 식민지 노예생활에서 벗어나지를 못한 이스라엘 민족은 인간을 믿지 못했다. 인간이 통치하는 나라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나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갈망했다.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3.1만세운동의 중심에 민족대표 33인은 없었다. 3,1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사람은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항거에 참여한 사람도 기층민중이었다. 로마치하에서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 외침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이 외침을 외면한 이스라엘 민족은 1천년동안 이웃나라, 제국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 갈망 세례요한은 민중을 선동했다는 정치적 죄목으로 십자가의 형틀에서 처형을 당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던 한민족 역시 일제에 의해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특히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천황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정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3.1만세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에게는 순교의 신앙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부활했다는 믿음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파라오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주셨다는 것과, 한민족을 일제의 침략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한민족의 마음속에 강하게 배어 있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담대하게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행동했다. 분명 3.1만세운동의 주체는 민족대표 33인이 아니다. 3.1만세운동의 주체는 기독청년, 기독여성, 기독농민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일제의 총과 칼에 맞서 맨몸으로 저항하며, 비폭력평화운동을 벌였다. 오늘 한국교회가 매년 3.1절 행사에서 민족대표 33인만 드러낸 데는, 그만큼 한국교회가 내놓을 역사적 사건이 빈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3.1만세운동이 전국의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민족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한 민족운동, 비폭력평화운동, 독립운동, 예수님의 평화(샬롬)운동이라는 것을 몰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3.1운동은 민족사적, 교회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3.1운동 당시 장로교 보고에 따르면, 1919년 3월부터 10월까지 장로교 교역자만 336명이 연행되었다. 남신도 2,125명, 여신도 531명이 체포되어 투옥됐다. 1918년 장로교 목사가 169명, 목사후보생 102명인 점을 감안하면, 장로교 지도층 인사 대부분이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때가 다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세례요한의 외침을 들었다. 그리고 행동했다. 유달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