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인역의 배경
우리는 70인역을 "Septuagint"(혹은 LXX)로 부른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유대고대사, 제 12권 2장은 바로 이 칠십인역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 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때는 BC323년 천하를 통일 시켰던 알렉산더 대제(Alexander the great)가 3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자 마땅히 후계자가 없는터라, 그가 정복했었던 영토들은 그의 네 명의 부하 장군들에 의해 나뉘어 다스려지게 된다. 애굽은 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 367?283 BC), 수리아(혹은 시리아)는 셀류쿠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 358?281 BC)가, 알렉산더의 고향 마케도니아는 카산더(Cas-sander, 350 - 297 BC), 그리고 비두니아(Bithynia, 흑해 남단에 위치함)는 리시마쿠스(Lysima-chus, 360-281 BC)가 다스리게 되었다.
알렉산더 이후, 4왕조로 나뉘어질 때에 유대는 셀류쿠스 왕조(Seleucid Kingdom)에 지배를 받았었으나 BC 306년 경(?, 확실치 않음) 교활한 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가 속임수를 동원해 가면서 예루살렘에 제사를 드리겠다며 안식일의 약점을 이용해서 유대인들이 모두 안식을 하고 있을 때에 무력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말았다. 예루살렘은 이렇게 안식일에 적들의 침공을 받으며 여러번 침략과 지배를 받아 왔었다. 결국 톨레미의 지배를 받게 된 예루살렘은 애굽의 지배를 다시 한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약 22년(혹은 23년)간 톨레미 소테르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필라델푸스가 뒤를 이어 다스리게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오늘 우리가 생각해보고자 하는 70인역의 역사가 시작된다. 톨레미 필라델푸스(Ptolemy II Philadelphus, 309?246 BC)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283-245 BC)하게 되자 그동안 포로로 잡아 와서 노예로 쓰고 있는 유대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었던 그의 왕실 도서관 담당관(?, 요세푸스는 그가 데메트리우스 Demetrius라고 함)이 유대인들의 율법도 왕립 도서관에 소장하기 위해 직접 수집(번역)하자고 왕에게 제안을 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왕의 절친이었던 아리스타이우스(Aristaeus)가 유대 율법서를 번역하기를 동조하면서, 그와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로로 잡아온 유대인들과 노예로 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하면서 톨레미 필라델푸스의 율법 번역의 대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톨레미 왕은 애굽에 잡혀와 있던 전 유대인들(약110,000명)을 돌려 보내고, 그들이 속해 있었던 애굽가정에는 그들의 몸값이 지불되게 하였다. 그리고 당시 유대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대제사장 엘르아살(Eleazar)에게도 엄청난 양의 돈(100 달란트)과 제물들(금은 보석)을 친서와 함께 보내며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정확한 번역을 위해 (각 지파들 마다) 장로 6명씩을 선발하여 보낼 것을 요구하였다.
이와같은 기쁜 소식들(유대인들의 귀환과 뜻밖의 선물들)을 받게 된 대제사장 엘르아살은 톨레미 왕의 친서를 받고 (제사장들을 포함한 장로/원로 회의를 거쳐) 흔쾌히 그리하겠노라고 애굽왕 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에게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각 지파들에거 선출되어 온 72명의 장로들과 율법서를 애굽으로 보낸다. 그들은 거기서 왕의 환대를 받게 되고 일주일 동안 계속되어지는 환영잔치에 참석하게 되고 또거기서 만난 여려 애굽의 학자들(혹은 철학자들)과 여러가지 주제로 대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톨레미 왕은 당시 율법서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드디어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애굽에서 왠 헬라어 번역 작업이냐고 궁금해 할 수도 있는데, 기억하시나요? 톨레미의 선조왕은 본래 헬라출신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애굽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왕 알렉산더 대왕이 이미 천하를 통일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유대 장로들(72명)의 작업은 72일만에 끝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Alan F Segal은 그의 책 [Life after death: a history of the afterlife in the religions of the West] p.363 에서 70인역(Sep-tuagint, 혹은 LXX)은 BC132 년에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필라델푸스가 죽고 난 후 약 100여년 후에 완성이 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손에 Septuagint(70인역)이 들려질 수 있게 된 것이고, 복음의 예언된 말씀은 전세계에 전파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