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01 19:42
수도원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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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41  

1. 수도원 개요


1.1. 수도원 정의

수도원(修道院/monasterium/monastery)이란-- 수도자(修道者)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수행하는 곳으로서, 그리스도교의 수도사(monk)나 수도녀(sister)가 일정한 계율에 의해서, 정결, 청빈, 순명, 노동, 성독의 서약을 맺고, 복음에 따라 공동 생활을 하는 곳 또는 수도자(修道者)의 단체(團體)이다.  수도자의 성별에 따라 수사원(修士院)과 수녀원(修女院)으로 구분된다.


1.2. 수도서원(5大 修道誓願)

-- 정결[貞潔, castitas, chastity]

-- 청빈[淸貧, paupertas, poverty]

-- 순명[順命, oboedientia, obedience]

ㅡ노동[勞動, labor manum, labor]

ㅡ성독[聖讀, lectio divina, reading]


1.3. 수도원 표기

수도원은 한자로 (修道院), 라틴어로 모나스테리움(monasterium), 영어로 모나스트리(monastery)로 표기하며, 대수도원을 아베이(abbey), 소수도원을 프라이어리(priory)라 부른다. ** 이와 조금 다르게, 수도원 밖에서 일상을 보내는 탁발수도사로서의 수도자(brother)나 수녀(sister) 또는 근대 이후의 수도녀회의 수도녀의 거소를 콘벤투스(conventus/prioratus/영convent)라 부르며, 근대의 해외선교회 또는 활동적 수도회 회원의 거소는 도무스 렐리기오사(domus religiosa)라 불리어진다.


1.4. 수도원 기원

기독교 역사의 초기부터, 남자나 여자가 개인적으로 은자의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예수가 광야에서 보낸 40일의 모범을 따라 사막에서 단식하며 기도하는 일이 있어 왔다. 이따금 그들은 함께 모여 작은 수도사(monk)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고, 수도원장(abbot)을 따르는 일도 있었다.  


1.5. 수도사

수도사(修道士)란 모든 것에 떠난 자이며 동시에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수도승(修道僧)으로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이미타치오 크리스티”(Imitatio Christi), ‘제자들을 따라 가는 삶’=“비타 아포스톨리”(Vita Apostoli)을 산다. 수도사는 수사(monk)와 수녀(nun) 또는 수도자(brother)나 수녀(sister)로 구분된다.  탁발수도회 소속 수도자는 탁발 수사(friar)로 부른다. **(수도사monk라는 단어는 '혼자의'라는 그리스어 단어 monakhas에서 왔고, 수도원장abbot은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람어 abba에서 왔다)


2. 수도원 상세자료


2.1. 수도원의 기원

그리스도교의 수도원의 기원은,  『사도행전』이 전하는 예루살렘의 사도 소집단의 공동생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의 수도원적 활동의 흔적은, 1947년 발견된 <사해사본>을 따라 추적해본다면,  쿰란이나 테라페우타이의 유대교 수도원의 존재를 미루어보아 그리스도교의 수도원도 그와 비슷한 형태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스도교 초기의 수도원의 활동으로 가장 뚜렷하게 기록으로 남아있는 겻은, 3세기 후반기에 이집트의 테베에서 은자 바오로나 안토니오에 의해서 창설된 수도원이다.  안토니오는 monk의 원래 뜻대로 <혼자서 사는 자(은수사)>로서 황야에서 오랜 고행의 생활을 계속하였는데, 그 금욕적 모습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의 필적에 의한 『성 안토니우스전』(356)에 의해서 서방의 갈리아의 구석까지 전해졌다. 그의 제자 힐라리오(Hilarion, 291~371)는 그것을 팔레스타인에, 다른 제자 마카리오스(Makarios, 300년경~371)는 나일강의 델타지대로까지 확대시켰는데 동방교회에 지금도 뿌리 깊은 은수사적 경향은 이때 시작된다. 안토니오와 동일한 무렵 같은 테베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파코미오는 홀로 사는 일상적 불편과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공동생활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것은 각각 20~40명의 수도사가 1명의 감독 하에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5~6개의 건물로 이루어지고, 부지내에는 별도로 성당(교회당), 식당, 외빈용 숙사, 정원이 설치되었다. 수도사는 청빈, 정결, 순명의 덕목 외에 노동을 의무시하고, 농경이나 이그사, 슈로의 세공물에 의해서 자활의 길을 열었다. 그가 콥트어로 쓴 계율은 일찍부터 그리스어나 라틴어역으로 번역되어서 동ㆍ서유럽에 널리 유포되었으며, 그의 제자 에우게니우스(Eugenius)와 70명의 수도사는 이 방식을 멀리 메소포타미아의 니시비스에까지 전했다.


2.2. 동방의 수도원

오리엔트 지방의 수도형태는 다양해서, 팔레스타인의 가자나 유다에서는 라우라(Laura)라고 하는 산거 수도원 형식이 많았으며, 시리아에서는 높은 기둥 위에서 고행하는 주두행자(柱頭行者)가 많았고, <시메온의 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수도원 유적은 그 일단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시리아 북방의 황량한 카파도치아 지방에 수도원제를 펼친 것은 아르메니아의 주교 에우스타티오스(Eustathios, 300년경~377년경)인데, 여기에서는 그의 권유로 수도사가 된 바실리우스가 역사상 유명하다. 바실리우스는 파코미오와 마찬가지로 집단적인 공동생활(共同生活)과 재산공유주의를 수도생활의 기반으로 하고, 수도사의 복종과 순종 및 노동을 중시하고, 그것을 계율로서 남겼는데, 이 <바실리우스 회칙>만이 동방정교회 소속의 수도원에서 기본준칙이 된 것이다.

물론,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의 <신칙령>의 관계 조문도 비잔틴 제국의 수도원을 성격짓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동방에서 수도원이 가장 정체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코노클라즘시대였다고 하는데, 8세기 후반기의 수도원에 대한 박해와 그에 대한 수도사의 저항, 특히 이 저항운동에서 주역을 담당한 콘스탄티노플의 스투디오스 수도원의 원장 테오도로(Theodōros, 759~826)의 활동과, 그가 행한 수도원 개혁은 동방수도제의 재생의 원천이 되었다. 원래 동방 수도사의 일이 대부분 수도원 내에서 일어난 일에 한정된 점은 서구의 수도원과의 큰 차이점인데, 그중에서는 회화, 장식 삽화, 사자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대개의 수도원은 숙방, 구빈원, 병원을 구비하고 있으며, 콘스탄티노플의 판토크라토르 수도원의 부속병원은 50개의 병상이 있고, 거기에 60명의 수도사가 배치되었는데, 간질과 노인병 병동은 각각 별도로 설치되었으며 의료부문은 동시대의 서구보다 훨씬 발달하였다.

한편 테오도로스의 개혁과 함께 비잔틴 수도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것은 처음에는 황제 니케포로스 2세의 지원으로 건설된 아토스산의 수도원군으로 이는 11세기에 최성기를 맞이해서 <성산(聖山)>이라고 불려서 동방 정교도의 숭경을 받고, 이후 오늘날까지 오랜 세월에 걸친 역사의 격렬한 부침에도 견디면서 기적처럼 살아남아 있다.


2.3. 동서교류와 서구형 수도원의 발전

서유럽에 수도생활의 모범을 제공한 것도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와 밀라노, 남프랑스에서는 투론 남동의 이엘섬이나 그 동방의 레란스섬, 로알강 중류의 툴 부근, 그보다 훨씬 멀리 아일랜드 등이 가장 빨리 수도집락이 생긴 곳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와 밀라노에서 견문한 수도생활을 아프리카의 히포에 가져가, 여기에 세운 수도원을 위해서 <아우구스티누스 회칙>을 작성했다고 한다. 레란스섬은 로누강 유역의 수도원의 원천이 되며, 투르에 수도원을 연 마르티노는 프랑크왕국의 수호성인이라고 하였고, 이탈리아나 갈리아에 신설된 다수의 수도원도 그의 이름을 땄다. 아일랜드의 수도원은 동방에서 전해진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학자의 섬>이라고 상찬되는 동시에 그 수도사들은 6세기 말부터 갈리아에 다수의 수도원을 건설하였다.

스위스의 유명한 장크트가렌 수도원도 그 하나인데, 알프스 이북에서는 한때 이 켈트계 수도원이 일세를 풍미했다. 그러나 학문을 사랑한 수도사는 그들만이 아니다. 고트전역(535~553) 중인 540년경 동고트왕국의 고관의 지위를 버린 로마인 카시오도르스가 남이탈리아에 세운 비바리움(Vivarium) 수도원은 그 풍부한 도서와 정비된 도서관리에 의해서 이후 서구의 수도원 도서관의 모범이 되며, 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그 이상으로 후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수도원이 429년경에 세워졌는데 바로 몬테 카지노 수도원이다. 그것을 개설한 누르시아의 베네딕도가 여기에서 집필한 <베네딕도 회칙>은 후의 서구의 대부분의 관상수도원에서 존봉되어, 별칭될 정도였다. 물론 이 회칙은 고래의 대부분의 수도규정을 참조하고는 있지만, 중용의 정신으로 일관하며, 노동을 중시해서 경제적 자립을 확보시키고, 수도원의 운영을 기능화하고, 당시의 농업사회에 그것을 적응시키는 등 서구 독자적인 수도정신이 모든 곳에 발휘되고 있으며, 동방에 기원을 둔 수도원은 이 회칙에 의해서 비로소 서구적 형태를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2.4. 수도원의 생활

이 회칙에 의해서 당시의 수도원 생활을 재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년은 하기와 동기로 구분되며, 하기는 부활제부터 로마력 10월 1일 전일, 즉 9월 14일까지, 동기는 그 이후 사순절까지로 하기와 동기 사이에는 사순절이라는 그리스도의 황야의 40일간의 고행을 기념하는 특별기간이 설정되었다. 하루의 생활은 낮과 밤을 각각 12구분한 시간에 의거해서 1일 8회의 성무일과(시과), 즉 효과, 조과, 1시과, 3시과, 6시과, 9시과, 만과, 종과가 정해져 있는데 1시과라는 것은 낮의 제1시에 시작하는 일과를 말한다. 성무일과는 1년을 통해서 변함없지만, 수도사의 하루는 겨울과 여름에 따라서 기상에서 취침까지의 실제 시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낮이 긴 6월 중반에는 오전 1시경, 기타 시기라도 오전 2시 반경에는 기상하여 최초의 성무일과인 효과(曉課)를 하였는데 『시편』이나 성서 및 교부가 저작한 성구를 읽었다. 한편 효과와 조과 사이에는 독서에 임하는데, 하기에는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조과는 6월이면 2시 15분경, 12월에는 5시 45분경부터 시작되었고 조과(朝課) 후에는 집회가 행하여졌으며, 순교자전이나 <베네딕도회칙>의 일부가 읽혀졌다. 또한 이 집회에서는 그날의 행사가 수도원으로부터 전달되거나, 규칙을 위반한 수도사가 처벌되었는데 1시과에는 세 개의 『시편』, 찬미가, 창화용 성구를 노래하는데, 이는 3, 6, 9시과에도 공통된다. 1시과부터 제4시까지 노동, 이후 제6시까지 독서를 하였으며 제6시(하기는 정오)에 그날 최초의 식사를 하였다.

식사는 2접시로, 과일이나 야채가 있으면 그것을 더해서 3접시가 되는데 그에 빵 1폰드, 포도주 4분의 1리터라는 매우 소박한 것이었다. 식후 하기에는 오수 시간이 있어서 각자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였으며 제9시부터 만과(晩課)까지 다시 노동을 하였다. 하기에는 만과 직전에 제2회째의 식사가 나오는데, 동기의 식사는 제6시(동기는 14시 40분경)의 1회 뿐이다. 만과에는 4개의 『시편』, 종과에는 세 개의 『시편』이 노래되며, 그후 수도사들은 수도원장의 축복을 받으면서 공동의 침실로 향하며, 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옷을 입은 채이다. 노동시간은 1일 6~8시간으로 농경, 식물재배 같은 호외작업만이 아니라 제분, 빵굽기, 부엌작업, 필경, 청소, 환자간호 등도 있었다.


2.5. 시토회와 프란치스코회에 의한 혁신

<베네딕도 회칙>은 가롤링거 시대에 널리 보급되었는데, 당시의 수도원은 서구 최초의 문화창조운동인 카롤링거ㆍ르네상스에도 촉진적 역할을 수행했다. 9세기부터 10세기에 노르만인(바이킹), 마자르인, 이슬람 교도의 공격으로 황폐화된 수도원은 클뤼니 수도원이나 로트린겐 지방의 수도원개혁에 의해서 다시 활성화되고, 11세기 후반의 그레고리오 개혁에도 공헌하였는데, 12세기 이후에는 수도형태 그 자체를 혁신했는데 그것이 소위 <신수도회>의 탄생이다. 각 수도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수도회를 유기적으로 조직화해서 경제활동에도 발군의 능력과 성과를 발휘한 시토회 수도원, 이단의 격발하는 중에 민중설교 중에 새로운 활동영역을 구한 프레몬트레회,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그것이다. 시토회 수도원은 건축양식에서도 엄격한 금욕적 수도정신을 그대로 형상화해서 건축사에 한 시대를 구획했는데, 프란치스코회의 청빈상은 더욱 철저하였다.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는 탁발 수도회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오로지 신자의 희사에 의한 사도적 생활을 취지로 하였다. 프란치스코회의 창설자 아시지의 프란치스코가 그 <유언서> 중에서 <수도사의 집은 모두 나무와 진흙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듯이, 당시 수도원은 이 표현 그대로의 소옥이었다.


2.6. 근대의 수도이념

중세 말부터 근대에 걸쳐서 수도정신은 격변하는 중에 전생(轉生)하였다. 토마스 아켐피스가 말한 아그네텐베르크 수도원처럼 프로테의가 창설한 <공동생활형제회>에 속한 약 50개의 수도원은 네덜란드와 독일에 <새로운 신앙(Devotio moderna)>이라는 경건주의적 운동을 민중 사이에도 확신시키고, 이탈리아에서는 종래의 관상수도원이 탁발수도회의 조직을 채용한<수족(修族, congregatio mon-astica)>이라는 새로운 수도조직에 의해서 신생하였다.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서 이탈리아에는 많은 형제회가 결성되고, 그 중에서 1524년에는 테아티노 수도회가 탄생하고, 그 4년 후에는 프란치스코회의 개혁을 지향한 카프친회도 창설되었다. <신앙만으로서 의롭게 된다>라는 루터의 종교개혁은 청빈이나 정절로서 의롭게 되는 수도원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하였기 때문에, 독일에서도 잉글랜드에서도 프로테스탄트 제국의 수도원은 거의 해산되었는데, 이들 제국에서도 수도사의 윤리는 <세속내 금욕> 정신으로서 계속 존재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16세기에는 예수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도 수도회를 낳아, 다른 탁발수도회와 함께 세계 각지에 수도이념을 재생시켰다. 벨기에의 예수회 수도사 볼란두스(Bollandus, 1596~1665)가 17세기 중기에 시작한 고문서 편찬사업은 동일한 무렵 파리의 생 제르망 데 프레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산 모르 수도회와 그 대표자 마봉의 고문서 수집과 비판과 함께 사료비판의 방법을 확립해서 근대 역사학의 기초를 구축했다는 위대한 역할도 수행했는데 이도 여러 수족(修族)의 학문 연구열의 전통을 계승한 결과일 것이다. 19세기의 가톨릭시즘의 부흥 중에서, 프로테스탄트 국가인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옥스퍼드 운동은 결과적으로는 국교도에게 수도생활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이 세기의 중반부터 특히 여자수도회를 계속 탄생시켰으며, 남자의 관상수도원도 수는 적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국교회 내에서 공인되었다.

또한 프랑스의 테제 수도원은 프로테스탄트의 수도집락으로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가톨릭측에서도 비오 12세 이후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수도생활의 현대화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C.E. de 푸코(1858~1916)의 옷과 그릇을 계승한 <예수회의 작은 형제ㆍ자매회> 회원들은 관상과 복음전도와 노동을 혼연 일체화하여 활동하면서 세계에서 공명자를 얻고, 현대의 수도생활 재생을 위한 최상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수도에 의한 영성(靈性)의 부활은 사막과 같은 현대에서 사람들의 큰 구원과 희망이 되고 있다.


2.7. 수도원 건축

수도원 건축(monastic architecture)이라는 것은 수도원장하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수도사를 위한 건축을 말하며, 성당(교회당), 집회실, 대식당, 회랑, 침실 등으로 이루어진 수도생활의 기본구역과 원장실, 응접실, 객실 등 거의 개방된 준기본구역으로 구성되었는데 18세기까지는 가끔 수도사의 물적생활을 지지하기 위한 업무를 하는 큰 세속구역(채소밭 등)을 수반하였다.


2.8. 동방

수도원은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시작되어 4세기 말에 로마제국 동부 전역에 세워졌다. 초기 형식은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데, 각 지역 내에는 공통된 형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성당에 접해서 식당, 주방, 거실 등을 연속적으로 배치하고, 전체를 튼튼한 주벽으로 둘러쌌다. 시리아 북부에서는 수도원 입구부근에 성당과 2층의 대거실, 구석에 수도사의 거실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거의 회랑을 둘러싼 형태를 취한다. 또한 북아프리카에는 부지 중앙에 성당, 그 외벽을 따라서 수도사의 거실, 별동으로 대식당을 만들고 정원, 묘지를 포함한 부지 전체를 주벽으로 둘러싼 폐허가 남아 있다. 동방 정교회의 수도원은 주벽을 둘러싼 부지 중앙에 성당을 두고, 그 정면측의 주벽을 따라서 대식당과 주방, 그외의 주벽을 따라서 집회실, 거실, 작업실 등을 짓는다. 이 형식은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19세기의 수도원에서도 채용되고 있다.


2.9. 서방

동방과 북아프리카에서 도입되어서 4세기 말에 이미 수도원이 만들어진 것 같은데, 활발하게 건설된 것은 7세기부터로 카롤링거 왕조에는 상당한 규모의 것이 1200기 이상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수도원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전하는 유적은 없지만, 820년경의 수도원 계획도가 장크트 가렌 수도원 도서관에 남아 있다. 수십 명에서 수백 병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자급생활을 영위하는 수도원은 어려운 설계과제인데, 당시에 이미 합리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이 계획도로 알려졌다. 회랑을 핵으로 하는 기본구역을 중앙에 두고, 그 외측에 성당에 근접해서 원장 거관, 객사, 학교, 시료원, 수련사 거실 등의 준기본구역, 성당에서 멀리 떨어진 외주에 계사, 제분소, 제빵실, 채소밭 등의 세속구역을 배치하는 이 계획방법은 그후의 수도원의 기본이 되었다. 그러나 도시에 살고 주로 민중교회의 설교와 학술연구를 행하는 탁발수도회는 시민의 협력으로 수도원을 만들었기 때문에 세속구역을 거의 설치하지 않고, 또한 종래의 대침실 대신에 개인실을 이용했다.

탁발수도회는 신도에 의한 일부 기본구역이나 도서실, 병원의 이용, 수도원에서의 단기간의 생활을 인정했기 때문에 새로운 용도의 방이 필요하였으며, 복수의 회랑을 설치하여 이를 배치하였다. 예수회를 중심으로서 근세 수도원은 성당을 새로운 양식으로 개장하고, 회랑의 삼면을 둘러싼 건물을 저택풍으로 정비하였는데, 정치적 개입이 강하였기 때문에 17~18세기의 수도원 건축은 유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세 이후의 체제를 유지하였던 오스트리아, 스위스, 남독일 등의 수도원에서는 기본구역, 준기본구역을 중심으로 전체를 구성하고, 원장을 군주로 하는 수도원 도시의 통치의 상징으로서 장려한 바로크 수도원을 완성했다. 또한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에 의해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대부분의 수도원이 한때 폐쇄되었는데, 현재에는 다수가 재개되어 있다. 그러나 신축은 적어졌고, 또한 수도회별 건축형식의 차이도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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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금욕주의는 세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이것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수도생활의 정체성은 뭔가를 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있다. 수도생활의 사명은 직업적 활동이 아니라 카리스마적 체험을 살고, 그 복음적인 삶으로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수도생활의 최고 회칙은 바로 복음이다."


수도원은 수도원의 영성이 있다. 수도원 영성이란 어떤 것일까? 수도원(Monastery)은 ‘홀로’라는 의미의 헬라어인 ‘모노스’에서 유래되었다. ‘세상과 떨어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사는 행위를 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영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 극치가 수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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