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
‘정치 신학’이라는 용어는 어느 종교를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그 사회의 정치적 차원과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원래 종교사에서는 그 의미의 영역이 광범위한 용어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들어와서 정치 신학의 대표적인 현상은 1960년대에 서독의 로마 가톨릭 신학자 Johann Baptist Metz가 이 용어를 부활시켜 쓰다가 후에 ‘신정치신학’(the new political theology)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자신의 신학 사상을 주장했던 일이다. 많은 사람이 그가 사용한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용어를 이와 관련된 일군의 신학 사상들(예컨대, ‘혁명 신학’, ‘해방신학’ 등: 역자 주)을 지칭하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했다.
정치 신학의 옛 형태들 : 어거스틴은 로마의 정치체제를 합법화하고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초기 로마제국의 공적인 종교적 제의행사를 비판하기 위하여 스토익의 용법을 따라 ‘정치 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하나님의 도성> 6:5-12 참조). 그러나 그가 비판한 그런 어용 종교의 현상은 이미 기독교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콘스탄틴 황제에게 아첨하는 유세비우스의 ‘궁정 신학’(the court theology)에서 그러했고, 그다음에는 테오도시우스의 ‘기독교 제국’(the Christian Empire)에서 그러했다. 심지어는 어거스틴의 작품 <하나님의 도성>의 앞부분에서도 그런 어용 신학적 흔적을 볼 수 있으나, 이 작품의 뒷부분에 가서는 오히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그는 비정치적 경향으로 옮겨갔다. 이것이 정치로부터 분립하여 영적이고 내적인 나라를 추구하는 어거스틴적 전통의 기원이 됐다. 이 전통은 Luther의 ‘두 왕국론’(the doctrine of the two kingdoms)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현세적 ‘시민 생활을 위한 종교’(civil religion)의 ‘정치 신학’도 마찬가지로 지속하였고 Mchiavelli와 Hobbes는 이런 정치 신학에 찬성했다. 이런 정치 신학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독일의 민족주의를 찬양하는 Carl Schmitt의 ‘정치 신학’에서 꽃을 피웠다. 그의 정치 신학은 ‘독일 그리스도인들’(German Christians)이 Hitler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도록 고무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의 정치 신학은 Eric Peterson에 의하여 ‘정치적 단일신론’(political monotheism)이라고 정죄를 받았다. 즉, 정치적 불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신학을 오용했다는 비판이다. (이 비판의 발전된 형태를 보려면, Juergen Moltmann, The Trinity and the Kingdom of God, London 1981, pp.192-200을 참조.)
J.B. Metz의 신정치신학: 멧츠(Metz)에 의하면, 위에 언급한 소위 ‘정치적 단일신론’ 뿐만 아니라, 최근의 거의 모든 신학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시민 생활을 위한 종교’의 정치 신학(civil theology)의 경우, 하나님의 나라와 현 정치체제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교회를 계몽주의의 전통에, 특히 교회를 단지 특정 사회유형과 권력 구조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라고 비판한 Hegel과 Marx를 통해 형성된 계열의 계몽주의 전통에 그대로 비판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다른 한편, 많은 현대 신학은 종교를 극단적으로 사생활의 문제로 보는 경향을 보인다. 즉, 개인을 강조하고, 초월적인 것과 실존주의적인 것을 강조하고, 삶의 사회적 차원은 무시하며, 자선은 사생활적 차원의 덕목으로 보며, 종교를 ‘나와 너’의 관계(Buber 참조)에 집중시키며, 신앙은 ‘개인의 무시간적 결단’(the timeless decision of the person)으로 축소한다. 물론 이러한 기본 입장은 당연히 정치적 함의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즉, 현재의 상태(status quo)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대하는, 그러나 사실은 무언의 동의를 표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멧츠는 ‘신학을 탈사생활화하는 것(the deprivatizing of theology)이 정치 신학의 첫 번째 비판적 과제’라고 본다(Theology of the World, London, 1969, p.110). 이렇게 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메시지가 개인을 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교회가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수행해야 할 최우선적 기능인 해방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바로 개인을 오로지 완전히 합리적이고 기술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 필요한 재료요 도구로만 보는 세계관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다(위의 책, p. 118). 그러나 정치 신학이 강조하는 것은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모든 약속, 예컨대 자유, 평화, 정의, 화해 같은 것들은 근본적으로 사생활적일 수가 없다는 것, 즉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개인의 열망에 상응하여 완전히 내면화하고 영적인 것으로만 만들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약속들은 개인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사회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 안에서 그 사회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그 정치적 사회에 대하여 자유롭게 해방하는 것이다(art. on 'Political Theology' in SM<=Sacramentum Mundi, ed. K. Rahner et al., 5 vols. New York, 1968-70>, 1970, vol.5, p.36). 멧츠는 그의 작품 여러 곳에서 중요한 명제를 제시했다: “신학의 소위 해석학적 문제는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상호연결이라든지 또는 교리와 역사의 상호연결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론과 실천의 연결 또는 신앙의 이해와 사회적 실천 사이의 연결의 문제였다”(위에 언급된 1969년의 책, p. 112; 1970, pp.35-36; Faith in History and Society, London, 1980, p.52). 멧츠는 또한 다음의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한다: 성경이 바로 이러한 관심을 갖도록 요구한다는 사실, 즉 예수는 그가 살았던 그 사회의 종교적 지도자들 및 정치적 지도자들과 도덕적 갈등 관계에 있었다는 것과 그의 십자가는 공공의 장소에 여론 앞에 세워졌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한다. 또한, 그의 교회는 이 정치적 세상에 조우하는, 말하자면 예수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종말론적 메시지의 담지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는 사회 안에서 비판적 임무와 해방의 임무를 가진 기구라는 것이다. 첫째로, 교회는 개인에 대하여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특히 가진 자들의 미래를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개발하는 비인간적인 기술 문명의 희생물이 되는 개인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미래는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고 하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셋째로, 현 체제의 희생물이 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혁명을 통한 변화가 필요한 극단적 상황이라면 심지어 혁명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정의와 평화를 모든 사람에게 증거해야 한다. 넷째로,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내부의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회 자신을 보는 눈을 바꿔야(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문제) 외부로부터 오는 진리를 환영하며, 권력을 가진 당국에 대항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된다.
‘정치 신학’ 유형에 속하는 신학들 : 멧츠는 현대 신학에 있어서 하나의 광범위한 유행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신학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1) 교파들이 각각 신앙고백 하는 신조에 따라 정통을 형성하고 거기에 집중했던 과거의 방식을 거부한다. (2) 실존주의 신학에서 개인의 결단에만 집중하는 그런 방식에 반대한다. (3) 현재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고,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하는 이런 것에 신앙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또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다. 즉, 그들이 의미하는 바의 실천(praxis)이라고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 실천 개념은 이론과 실천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이런 목적으로 상호의존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Marx의 개념 내지 비판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멧츠는 (올바른 가르침=orthodox에 대항하여) ‘올바른 실천’(orthopraxis)이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는데, 좋은 신학은 모두 행동 지향적이라는 뜻이다. (4) 복음의 본질은 공공성(the essentially public nature of the gospel)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개인의 私的인 차원의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모든 사회성을 갖는 구조들에 대하여 도전하는 소위 새 공동체를 그 핵심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5) 현재 사회의 대부분의 유형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of the church)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대항한다. 이는 사회 철학자 Juergen Habermas의 이론을 따른 것으로서, 즉 이 대항은 중립적이거나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에 대하여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향하여 나가도록 고무하는 일에 헌신한다는 의미에서의 대항이라고 주장한다. (6) 좋은 신학에서는 정치가 중재적 역할을 한다는 신념을 공유한다. 즉, 기독교 신앙을 적합하게 표현하도록 돕는 연결고리는 신학이 정치에 관여함으로써 얻어진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하나의 광범위한 신학자 집단이 위에 말한 이런 의미의 정치 신학 집단에 속한다. 즉, 흑인 신학,해방신학, 혁명의 신학, 다수의 아프리카 신학, 아시아 신학, 많은 인도 신학, 여성 신학뿐만 아니라, 근본주의 신학자들과 영성 신학자들 가운데도 있고, 세속화 신학, 빈곤과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를 테마로 하는 신학 등이 이런 정치 신학류에 속한다 (Alfredo Fierro, The Militant Gospel, London, 1977; Alistair Kee, Reader in Political Theology, London, 1974; Scope of Political Theology, London, 1978 참조). ...... 이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진정한 ‘예언자적 신학’(prophetic theology)이라고 부르면서 ‘국가 신학’(state theology: 위에 말한 어용 신학=civic theology를 부르는 이들의 용어)과 구별하며, 또한, 멧츠가 ‘부르주아 신학’(bourgeois theology)이라고 비판한 그런 신학과 유사하다 하는 소위 ‘교회 신학’(church theology)과 구별한다.
이에 대한 반응들 : 이들이 소위 ‘부르주아 신학’이라고 비판한 진영으로부터의 반응들은 조심스러운 타협적 비판에서부터 극단적인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조심스러운 타협적 비판에 속하는 반응들은 다음과 같다 : Peter Hinchliff, Holiness and Politics (London, 1982)는 어떠한 형태든지 신학의 ‘정치화’(politicization=어용 신학화=현 체제를 위하여 신학을 정치적으로 오용하는 것)는 치명적인 오류라고 비판하며 명백하게 거부한다. Edward Norman, Christianity and the World Order (Oxford, 1979)는 남아프리카의 소위 흑인 인종차별주의(apartheid)를 옹호하기 위한 신학은 과거의 ‘정치적 단일신론주의’가 되살아난 것이라고 비판한다. 다른 한편, 극단적 비판에 속하는 반응들은 ‘신 종교적 우파’의 신학(the theology of the 'new religious right')에서 나왔다. Rousas Rushdoony, Politics of Guilt and Pity (Nutley, NJ, 1970); Digby Anderson, ed., The Kindness that kills (London, 1984)가 여기에 속한다. 정치 신학에 대한 점증하는 토론에 기여하기 시작한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도 마찬가지로 정치 신학에 대한 견해들은 다양하다. Richard Mouw, Politics and the Biblical Drama (Grand Rapids MI, 1976)과 When the Kings Come Marching In (Grand Rapids MI, 1983)은 전반적으로 정치 신학에 대하여 공감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C. Elliott et al., Christian Faith and Political Hopes (London, 1979)에서 Haddon Willmer는 용서의 본질에 응분의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치 신학에 대한 Norman의 비판에 반응은 찬성한다. 일종의 복음주의적 정치 신학의 더욱 본격적인 발전은Orlando Costas, Christ Outside the Gate (New York, 1982)와 Nicholas Wolterstorff, 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 (Grand Rapids MI, 1983)에서 볼 수 있다.
결론 :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간격이 갈수록 커지고 그리스도인의 다수와 아직 복음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다수가 가난한 자들에 속해 있는 시대에 교회와 신학은 전 세계에 대하여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미래를 지향하는 신학이 멧츠가 의도하는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이 되도록 한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헌신과 복종을 하도록 고무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해서는 안 된다.
‘정치 신학’이라는 용어는 어느 종교를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그 사회의 정치적 차원과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원래 종교사에서는 그 의미의 영역이 광범위한 용어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들어와서 정치 신학의 대표적인 현상은 1960년대에 서독의 로마 가톨릭 신학자 Johann Baptist Metz가 이 용어를 부활시켜 쓰다가 후에 ‘신정치신학’(the new political theology)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자신의 신학 사상을 주장했던 일이다. 많은 사람이 그가 사용한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용어를 이와 관련된 일군의 신학 사상들(예컨대, ‘혁명 신학’, ‘해방신학’ 등: 역자 주)을 지칭하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했다.
정치 신학의 옛 형태들 : 어거스틴은 로마의 정치체제를 합법화하고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초기 로마제국의 공적인 종교적 제의행사를 비판하기 위하여 스토익의 용법을 따라 ‘정치 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하나님의 도성> 6:5-12 참조). 그러나 그가 비판한 그런 어용 종교의 현상은 이미 기독교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콘스탄틴 황제에게 아첨하는 유세비우스의 ‘궁정 신학’(the court theology)에서 그러했고, 그다음에는 테오도시우스의 ‘기독교 제국’(the Christian Empire)에서 그러했다. 심지어는 어거스틴의 작품 <하나님의 도성>의 앞부분에서도 그런 어용 신학적 흔적을 볼 수 있으나, 이 작품의 뒷부분에 가서는 오히려 이에 대한 반동으로 그는 비정치적 경향으로 옮겨갔다. 이것이 정치로부터 분립하여 영적이고 내적인 나라를 추구하는 어거스틴적 전통의 기원이 됐다. 이 전통은 Luther의 ‘두 왕국론’(the doctrine of the two kingdoms)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 현세적 ‘시민 생활을 위한 종교’(civil religion)의 ‘정치 신학’도 마찬가지로 지속하였고 Mchiavelli와 Hobbes는 이런 정치 신학에 찬성했다. 이런 정치 신학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독일의 민족주의를 찬양하는 Carl Schmitt의 ‘정치 신학’에서 꽃을 피웠다. 그의 정치 신학은 ‘독일 그리스도인들’(German Christians)이 Hitler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도록 고무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의 정치 신학은 Eric Peterson에 의하여 ‘정치적 단일신론’(political monotheism)이라고 정죄를 받았다. 즉, 정치적 불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신학을 오용했다는 비판이다. (이 비판의 발전된 형태를 보려면, Juergen Moltmann, The Trinity and the Kingdom of God, London 1981, pp.192-200을 참조.)
J.B. Metz의 신정치신학: 멧츠(Metz)에 의하면, 위에 언급한 소위 ‘정치적 단일신론’ 뿐만 아니라, 최근의 거의 모든 신학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시민 생활을 위한 종교’의 정치 신학(civil theology)의 경우, 하나님의 나라와 현 정치체제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교회를 계몽주의의 전통에, 특히 교회를 단지 특정 사회유형과 권력 구조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라고 비판한 Hegel과 Marx를 통해 형성된 계열의 계몽주의 전통에 그대로 비판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다른 한편, 많은 현대 신학은 종교를 극단적으로 사생활의 문제로 보는 경향을 보인다. 즉, 개인을 강조하고, 초월적인 것과 실존주의적인 것을 강조하고, 삶의 사회적 차원은 무시하며, 자선은 사생활적 차원의 덕목으로 보며, 종교를 ‘나와 너’의 관계(Buber 참조)에 집중시키며, 신앙은 ‘개인의 무시간적 결단’(the timeless decision of the person)으로 축소한다. 물론 이러한 기본 입장은 당연히 정치적 함의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즉, 현재의 상태(status quo)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대하는, 그러나 사실은 무언의 동의를 표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멧츠는 ‘신학을 탈사생활화하는 것(the deprivatizing of theology)이 정치 신학의 첫 번째 비판적 과제’라고 본다(Theology of the World, London, 1969, p.110). 이렇게 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메시지가 개인을 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교회가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수행해야 할 최우선적 기능인 해방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바로 개인을 오로지 완전히 합리적이고 기술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 필요한 재료요 도구로만 보는 세계관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다(위의 책, p. 118). 그러나 정치 신학이 강조하는 것은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모든 약속, 예컨대 자유, 평화, 정의, 화해 같은 것들은 근본적으로 사생활적일 수가 없다는 것, 즉 자유와 평화에 대한 개인의 열망에 상응하여 완전히 내면화하고 영적인 것으로만 만들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약속들은 개인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사회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 안에서 그 사회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그 정치적 사회에 대하여 자유롭게 해방하는 것이다(art. on 'Political Theology' in SM<=Sacramentum Mundi, ed. K. Rahner et al., 5 vols. New York, 1968-70>, 1970, vol.5, p.36). 멧츠는 그의 작품 여러 곳에서 중요한 명제를 제시했다: “신학의 소위 해석학적 문제는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상호연결이라든지 또는 교리와 역사의 상호연결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론과 실천의 연결 또는 신앙의 이해와 사회적 실천 사이의 연결의 문제였다”(위에 언급된 1969년의 책, p. 112; 1970, pp.35-36; Faith in History and Society, London, 1980, p.52). 멧츠는 또한 다음의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한다: 성경이 바로 이러한 관심을 갖도록 요구한다는 사실, 즉 예수는 그가 살았던 그 사회의 종교적 지도자들 및 정치적 지도자들과 도덕적 갈등 관계에 있었다는 것과 그의 십자가는 공공의 장소에 여론 앞에 세워졌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한다. 또한, 그의 교회는 이 정치적 세상에 조우하는, 말하자면 예수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종말론적 메시지의 담지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성경은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는 사회 안에서 비판적 임무와 해방의 임무를 가진 기구라는 것이다. 첫째로, 교회는 개인에 대하여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특히 가진 자들의 미래를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개발하는 비인간적인 기술 문명의 희생물이 되는 개인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미래는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고 하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셋째로, 현 체제의 희생물이 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혁명을 통한 변화가 필요한 극단적 상황이라면 심지어 혁명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정의와 평화를 모든 사람에게 증거해야 한다. 넷째로,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내부의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회 자신을 보는 눈을 바꿔야(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의 문제) 외부로부터 오는 진리를 환영하며, 권력을 가진 당국에 대항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된다.
‘정치 신학’ 유형에 속하는 신학들 : 멧츠는 현대 신학에 있어서 하나의 광범위한 유행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신학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1) 교파들이 각각 신앙고백 하는 신조에 따라 정통을 형성하고 거기에 집중했던 과거의 방식을 거부한다. (2) 실존주의 신학에서 개인의 결단에만 집중하는 그런 방식에 반대한다. (3) 현재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고,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하는 이런 것에 신앙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또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다. 즉, 그들이 의미하는 바의 실천(praxis)이라고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 실천 개념은 이론과 실천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이런 목적으로 상호의존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Marx의 개념 내지 비판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멧츠는 (올바른 가르침=orthodox에 대항하여) ‘올바른 실천’(orthopraxis)이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는데, 좋은 신학은 모두 행동 지향적이라는 뜻이다. (4) 복음의 본질은 공공성(the essentially public nature of the gospel)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개인의 私的인 차원의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모든 사회성을 갖는 구조들에 대하여 도전하는 소위 새 공동체를 그 핵심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5) 현재 사회의 대부분의 유형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의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of the church)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대항한다. 이는 사회 철학자 Juergen Habermas의 이론을 따른 것으로서, 즉 이 대항은 중립적이거나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미래의 변화에 대하여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향하여 나가도록 고무하는 일에 헌신한다는 의미에서의 대항이라고 주장한다. (6) 좋은 신학에서는 정치가 중재적 역할을 한다는 신념을 공유한다. 즉, 기독교 신앙을 적합하게 표현하도록 돕는 연결고리는 신학이 정치에 관여함으로써 얻어진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하나의 광범위한 신학자 집단이 위에 말한 이런 의미의 정치 신학 집단에 속한다. 즉, 흑인 신학,해방신학, 혁명의 신학, 다수의 아프리카 신학, 아시아 신학, 많은 인도 신학, 여성 신학뿐만 아니라, 근본주의 신학자들과 영성 신학자들 가운데도 있고, 세속화 신학, 빈곤과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를 테마로 하는 신학 등이 이런 정치 신학류에 속한다 (Alfredo Fierro, The Militant Gospel, London, 1977; Alistair Kee, Reader in Political Theology, London, 1974; Scope of Political Theology, London, 1978 참조). ...... 이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진정한 ‘예언자적 신학’(prophetic theology)이라고 부르면서 ‘국가 신학’(state theology: 위에 말한 어용 신학=civic theology를 부르는 이들의 용어)과 구별하며, 또한, 멧츠가 ‘부르주아 신학’(bourgeois theology)이라고 비판한 그런 신학과 유사하다 하는 소위 ‘교회 신학’(church theology)과 구별한다.
이에 대한 반응들 : 이들이 소위 ‘부르주아 신학’이라고 비판한 진영으로부터의 반응들은 조심스러운 타협적 비판에서부터 극단적인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조심스러운 타협적 비판에 속하는 반응들은 다음과 같다 : Peter Hinchliff, Holiness and Politics (London, 1982)는 어떠한 형태든지 신학의 ‘정치화’(politicization=어용 신학화=현 체제를 위하여 신학을 정치적으로 오용하는 것)는 치명적인 오류라고 비판하며 명백하게 거부한다. Edward Norman, Christianity and the World Order (Oxford, 1979)는 남아프리카의 소위 흑인 인종차별주의(apartheid)를 옹호하기 위한 신학은 과거의 ‘정치적 단일신론주의’가 되살아난 것이라고 비판한다. 다른 한편, 극단적 비판에 속하는 반응들은 ‘신 종교적 우파’의 신학(the theology of the 'new religious right')에서 나왔다. Rousas Rushdoony, Politics of Guilt and Pity (Nutley, NJ, 1970); Digby Anderson, ed., The Kindness that kills (London, 1984)가 여기에 속한다. 정치 신학에 대한 점증하는 토론에 기여하기 시작한 복음주의자들 가운데도 마찬가지로 정치 신학에 대한 견해들은 다양하다. Richard Mouw, Politics and the Biblical Drama (Grand Rapids MI, 1976)과 When the Kings Come Marching In (Grand Rapids MI, 1983)은 전반적으로 정치 신학에 대하여 공감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C. Elliott et al., Christian Faith and Political Hopes (London, 1979)에서 Haddon Willmer는 용서의 본질에 응분의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치 신학에 대한 Norman의 비판에 반응은 찬성한다. 일종의 복음주의적 정치 신학의 더욱 본격적인 발전은Orlando Costas, Christ Outside the Gate (New York, 1982)와 Nicholas Wolterstorff, 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 (Grand Rapids MI, 1983)에서 볼 수 있다.
결론 :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간격이 갈수록 커지고 그리스도인의 다수와 아직 복음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다수가 가난한 자들에 속해 있는 시대에 교회와 신학은 전 세계에 대하여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미래를 지향하는 신학이 멧츠가 의도하는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이 되도록 한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헌신과 복종을 하도록 고무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