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2-21 09:45
(2)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요약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94  

4. 듣는 기도가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마음을 토하고 기도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들으십시오. 듣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갈 길을 가르치고 인도하시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받을 줄 모르고 들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우리는 듣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지 열한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꿈과 환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둘째,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잘 배우고, 공부하십시오. 성경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알면 못할 소리가 없습니다. 사탄도 예수님께 부분적으로 성 경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부분적으로만 아는 성도들이 쉽게 이단에 빠집니다. 성경 말씀을 모르면 잘못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는 법이 없다면 우리는 매우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뭔가 들었다면 다시 한번 주님께 나아가서 기도해보십시오. "주님께서 그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신 겁니까? 주님! 이것을 확증해주옵소서."

넷째,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다섯째, 생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는데 어떤 생각이 막 떠오르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여섯째, 책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책뿐만 아니라 다른 좋은 책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많은 주의 종들을 통해 영적으로 좋은 책들을 쓰게 하시고 그 책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일곱째, 영화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십계〉, 〈벤허〉와 같은 영화는 좋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좋은 영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잘 분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여덟째, 만물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하나님은 이렇게 너무나 섬세하신 분입니다. 저는 그 신비를 생각할 때마다 “오! 주여. 주님은 너무너무 기가 막힙니다. 주께서 저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십니다.”라고 감탄합니다. 만물을 보십시오.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솜씨를 보시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아홉째, 예배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열째, 기적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작은 틀에 집어넣은 채 우리의 인간적이고 타산적인 수준에서만 믿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말씀 안에 기록된 수많은 이적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통해 능력을 나타내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열한째, 찬양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찬양 중에 임하십니다. 찬양은 주님을 선포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주님께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창의력이 풍부하시기 때문에 더욱 다양하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우리 생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

첫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자 한다면 교만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깨끗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넷째, 전심으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하나님은 분명히 “마음을 다하여.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째, 인내해야 합니다. 기도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말씀하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닐 때도 있습니다. 여섯째, 주님의 말씀 앞에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순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듣기만 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곱째, 주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6. 영적 전쟁에서 사탄의 전술 전략

무지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호세아서 4장 6절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초신자로서 마귀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습니다. 마귀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에 경건의 모양은 있었지만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마귀에 관하여 배우고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악한 생각을 주입하는 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 사탄이 넣어주는 생각의 죄의 생각입니다. 음란한 생각, 훔치는 생각, 속이는 생각, 거짓된 생각, 추한 생각, 더러운 생각을 넣어줍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추하고 더러운 생각, 남자 분들의 경우에는 음란하고 야한 생각들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럴 때에 대체로 누구를 미워하게 됩니까? 바로 자기 지신을 미워합니다. 이러한 자기 증오는 또 하나의 함정이 되고 맙니다. 사탄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탄은 교묘합니다. 그런 생각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생각을 조작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당신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교통 정리하는 경찰을 보십시오. 그 경찰이 아무리 체구가 작더라도 호루라기를 불면서 손을 내밀면 모든 차들이 멈춥니다. 왜냐하면 모든 차들이 그 신호에 따르도록 그 경찰에게 법적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귀를 제압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권세는 예수님의 이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오는지 다섯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탄은 우리에게 나쁜 생각을 주입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운 생각을 넣어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지 않으시며 오직 사랑과 능력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십니다.(담후 1:7) 그런데 사탄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며 두려움의 생각과 죄의 생각을 넣어줍니다. 하나님에 대해 거짓된 생각을 넣어줍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실까?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하나님이 널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너에게 이런 일이 있느냐?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사람은 듣는 것이나 보는 것에 큰 한계가 있는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로 아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욥은 욥기 42장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겁니다. 모른다는 대답을 할 줄 아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둘째, 사탄은 사람을 통해 우리를 훼방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와 가까이 지내는지 심각하게 평가해봐야 합니다. 혹시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 가운데 죄 짓자고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죄 짓기를 즐겨 하는 친구가 있습니까? 관계를 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건함을 사모하는 자들과 어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통해 잘못된 유혹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잘못된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분들은 흔히 이런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도 초신자 때 잘못하면 여호와의 증인이 될 뻔했습니다.

셋째, 사탄은 우리를 직접 공격하며 훼방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직접 공격하여 질병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사탄이 모든 질병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탄이 주는 질병도 있습니다. 욥이 바로 그랬습니다. 욥은 온몸에 악창이 나고 고름이 흘러서 기왓장으로 온몸을 긁었습니다. 사탄이 준 것이었습니다.

넷째, 사탄은 매스컴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사탄은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매스컴을 통해 공격합니다. 어떤 영화를 보십니까?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십니까? 사탄은 영화 장면을 통해 공격합니다. 눈과 귀는 우리 영혼의 문(門) 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보는 것에 대단히 치중합니다. 2002년도 겨울, 미국에서 십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팔렸던 컴퓨터 게임은 여자를 때리면 접수가 올라가고 성폭행하면 더 많은 접수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게임 내용도 모른 채 인기 있는 게임이라고 해서 십대 자녀들에게 사준 것입니다. 포르노 때문에 너무나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인 노리개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죄는 자꾸만 좀더 큰 자극을 요구합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테드 번디라는 남자가 20여명이 넘는 여자들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젊은 여성을 강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테드 번디는 사형당하기 직전, 정부에 기막힌 호소를 하고 죽었습니다. 어떤 호소인지 아시겠습니까? "포르노가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는 나 같은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을 것이다. 나는 포르노를 통해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성적인 노리개로 보였을 뿐이다. 제발 정부는 포르노를 없애는 데 진력해 달라. 나만 사형시키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남성들이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제발 이 사회에서 포르노를 없애 달라."

· 포르노가 나쁜 이유 ① 사랑과 결혼의 헌신 없이 하는 성행위로 추락할 수 있다. ② 하나님이 만드신 선물을 추하게 만든다. ③ 이기적인 행동을 조장한다. ④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여성을 성적인 노리개로 비하한다. ⑤ 부부만의 은밀함을 구경거리로 만든다. ⑥ 부부관계가 멀어진다. ⑦ 범죄를 유발한다(포르노가 증가하면 성범죄도 증가한다). ⑧ 음란한 영에 묶이게 된다. ⑨ 영혼이 더렵혀진다. ⑩ 기도가 잘 안 된다.

다섯째, 사탄은 우상과 미신을 통해 우리를 공격합니다. 집사님이나 권사님들 중에도 손금을 보고 생명줄이 길다느니 짧다느니 결혼을 몇 번 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분이 있는데 그런 것은 우리의 삶과 전혀 무관합니다. 우리의 삶은 손금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부적 같은 신적인 물건 외에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정산하고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물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사탄에게 훼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입니다. 마치 사단의 해코지를 자초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마술을 행하던 자들이 예수를 믿은 다음 마술책을 다 태워버리는 기록이 나오는데, 초대 교인들은 이렇게 과감히 순종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이 대가를 지불하는 과감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7. 영적 전쟁에서 필승의 무기

· 첫째 무기 - 예수님의 이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세는 사역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어느 여성이 인신매매를 당했습니다. 도망치고 싶어도 감시가 너무 심해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강제로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져야 했기 때문에 날마다 강간당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곳에서 탈출하게 되었고 나중에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끔찍하게 이 자매를 아껴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아이도 낳고 겉보기에는 평온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듯했지만 이 자매의 마음속에는 증오와 분노가 뜨겁게 끓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납치했던 남자들에게 바보같이 끌려가서 온갖 수모를 겪은 자기 자신에게, 억지로 성관계를 가졌던 수많은 남자들에게 그녀는 분노했습니다. 심지어 남편과 이혼하고 싶은 충동이 자꾸만 일어나서 작은 말다툼을 벌이다가도 당장 이혼하자고 고함을 질러대기 일쑤였습니다. 아이 때문에 이혼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자 아이 역시 너무나 미워졌습니다. 급기야 아이를 모질게 대하고 감정에 치우쳐 손을 대는 일까지 잦아졌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러는 자신이 미워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도무지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먼저 자매를 납치했던 남자들과 성관계를 요구한 뭇 남성들을 용서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녀와 남편에게 아픔을 주었던 일에 관해 용서를 구하자고 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자기 바지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하더니 곧 일어나서 펄쩍펄쩍 뛰며 고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를 노려보고 두 손을 들어 할퀴려는 자세로 다가왔습니다. 그 때 단둘이 상담하고 있었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저도 몹시 놀라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싸움이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즉시 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너 거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용서 기도를 마치세요! 주님께 용서기 도 드리세요.“ 그러자 자매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며 방바닥에 엎드리더니 뒹굴었습니다. 아픔을 고백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다시금 저는 용서 기도를 하자고 청했습니다. 결국 용서 기도를 하면서 입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다 나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자매는 소리내어 토했고 저는 자매의 배에다 손을 대고 계속 명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다 나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나가!"

울고, 소리 지르고. 뒹굴고, 토하고…. 그 자매는 한참 후에야 드러누운 자세로 긴 한숨을 쉬더니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자매는 지쳐 보였지만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제게 돌리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귀신이 내 안에 있어서 그동안 그렇게 남편과 아이에게 못되게 굴었군요. 내가 왜 그렇게 좋은 남편을 자꾸만 미워하고 이혼하자고 다그쳤는지 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제 마음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샘솟고 있습니다. 오늘 집에 가서 사랑한다고 말하겠어요." 그 자매의 마음 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였지 단순히 인간적인 다짐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 둘째 무기 - 하나님의 말씀 ‘너는 못 생겼다. 그 꼴로 생겨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그때 우리는 말씀으로 싸울 수 있습니다. "기록하였으되, 주께서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시도다."(시편 139:14참조). 예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선포하시면서 사탄과 싸우셨습니다(마태복음 4장 참조).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으로 싸우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그래야 합니까?

· 셋째 무기 - 주님의 보혈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2:11). 한번은 강의를 마치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간사님 중에 한 분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어떤 사람이 귀신이 들렸으니 와서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짐을 싸다가 멈추고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는 방에 가기 전에 먼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를 주님의 보혈로 덮어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주님의 보혈로 보호하여주옵소서. 이제 싸우러 갑니다. 승리를 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대적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혈의 능력을 덧입는 것이 중요합니다.

· 넷째 무기 - 하나님의 전신갑주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0~17)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어떻게 입습니까? 첫째, 믿음으로 입습니다. 둘째, 행함으로 입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투구란 영적으로 우리의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며, 우리의 생각을 지키는 삶을 말합니다. 의의 흉배란 예수님 때문에 의인이 된 우리는 의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의인다운 행함이란 거짓과 부정부패를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속임수를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는 그 성령의 검을 손에 들고 읽고. 듣고. 암송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신을 신고 전도자적 삶을 살기 바랍니다.

· 다섯째 무기 - 찬양과 기도 찬양과 기도 역시 우리의 무기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찬양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8장 변화를 갈망하는 인생

나는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저는 한 번밖에 못 사는 이 세상, 재미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할 것이고, 기분 좋은 것이라면 뭐든지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이 세상이 전부라면 마음껏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죄다 느껴보고, 보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보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다 하면서 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어 새롭게 되고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필요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자꾸만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자꾸만 알아가면 그분의 사랑을 더욱 체험하게 되며. 우리의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심령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9. 변화되지 못한 자의 내면 세계

저는 열방대학의 훈련을 통해 내면이 새로워지는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이 훈련을 받고 변화되기 전에도 저는 신학원에 다니며 제자를 양육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진정한 변화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정보와 내용을 전할 수는 있었지만 삶에서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진정한 변화를 받지 못한. 내면세계가 변화되지 못한 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소위 ‘잘 믿는’ 크리스천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형식’입니다. 저 역시 바로 이 형식에 매여 있었던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큐티(QT)를 합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도 의무적으로 억지로 숙제하듯이 읽었습니다. 졸릴 때는 짜증을 내면서 읽습니다. 도표를 따라 찾아 읽고 또 씁니다. 적용할 것을 쓰고, 기도 내용을 쓰고, 다 마치면 어떻게 합니까? 성경책을 덮으면서 “아! 다했다”고 합니다. 하루의 숙제를 마친 것입니다. 가슴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 한다면 그것은 껍데기입니다. 갖은 폼을 다 잡아도 그것은 껍데기이고 형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습을 너무나 슬퍼하십니다.

둘째, 다분히 감정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집회나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으면 순간 뜨겁고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그 뜨거움이 약 2주면 푹 가라앉아 버립니다.

셋째, 애정 결핍의 모습이 있습니다. 애정 결핍 상태의 사람은 누군가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역자들은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역자란 하나님께 사랑을 공급받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넘쳐흘러서 성도들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메마른 가슴으로 설교해놓고 성도들한테서 사랑을 구하느라 헐떡이는 격입니다.

넷째,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비성경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부정적인 생각을 말씀을 통해 치유해주셨습니다. 하루는 시편 139편 말씀을 읽다가 제 자신을 향한 자기 증오와 외모에 대한 증오가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시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시각이 바뀝니다.

다섯째, 불건전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인간관계에 죄가 스며듭니다. 교인들을 상담하다보면 불건전한 관계에 대한 경위가 밝혀질 때가 있습니다. 그 마음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이러한 죄악된 관계를 은밀히 즐길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심령이 채워지면 죄악된 관계를 끊을 수 있게 됩니다. 쓸데없는 집착을 버릴 수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나쁜 습관에는 교회 중직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흥청망청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별난 노래 다 부르며 스트레스 푸는 나쁜 습관들이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기 전에 폭식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습니다. 울적하면 먹고, 외로우면 먹었습니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만 그것은 공허함을, 외로움을 먹는 것으로 채우려 했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또 저는 영화를 무분별하게 봤습니다. 개중에 도박이나 포르노 같은 나쁜 습관에 얽매인 분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우리 마음에 주님을 닮아가지 않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런 죄를 즐기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며, 닮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나쁜 습관이 자리 잡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일곱째, 신체적 질환이 발생합니다. 우리의 내면이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속에 담고 살아갑니다. 또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미워할 때, 그 마음 자체가 다루어지지 않을 경우 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계십니까? 당신의 마음에 원망이 가득 차 있습니까? 그분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래야 몸이 건강해집니다.

여덟째, 불건전한 생각이 망상으로 발전하고 자꾸만 상상의 날개를 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음란한 생각까지 품게 되면서 밤낮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후회와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은 현실을 놓칩니다. 과거에만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지금입니다. 지금이 소중합니다.

아홉째, 마귀에게 틈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귀신들렸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틈을 탈 수 있는 요소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았거나 분노를 품은 일도 이에 해당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6~27).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선 자신의 분노를 하나님 앞에 아뢰십시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은 요소를 용서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런 다음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하십시오. 그러면 귀신이 쉽게 떠나갑니다. 우리가 할 일은 회개와 용서입니다. 또,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부분은 무엇인지 기도하면서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0. 하나님을 알아야 변화된다

우리 역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변화 받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안다고 할 때는 그에 대한 정보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그와의 만남이 있고 교제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안다’는 말은 '야다'(yada)입니다. 그 단어의 의미는 정보를 가지고 얘기하는 정도의 '안다'가 아닙니다. 히브리어에서 '안다'의 의미는 만나고 경험하는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확신이 있는 신앙을 갖게 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저 역시 한동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율법주의 아래서 하나님에 대해 알았습니다. 정보를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슴이 공허했습니다. 머리는 꽉 찼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허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지겨워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알 때는 지겹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 만남을 갖게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될 때 신앙생활은 지겨운 것이 아니라 즐거워집니다. 우리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나의 친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정보성 신앙이 아니라 심령 깊은 데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귀한 신앙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친구끼리 더욱 친해지고 서로 잘 알아가려면 시간을 같이 보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도 그래야 합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면하기 쉽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친구로 대한다는 것은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늘 주님과 같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주님과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십시오. 주님과 같이 있어보십시오.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십시오.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꼭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나 중심의 태도를 내려놓은 그날부터는 말씀을 읽을 때 마음에 깨달음이 있든 없든 주님 한 분만을 사모하며 그분 발 앞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가 마냥 좋아서 그저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서 다가오듯, 연인들이 꼭 무언가를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함께 있는 것 자체를 행복해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영혼의 연인이신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꼭 무엇인가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함께하고 싶은 만남입니다.

둘째,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해요. 제 마음 깊은 데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기 원해요." 이렇게 고백해보십시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면서 진정한 마음을 드릴 때 저는 마음이 진짜 흥분됩니다.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드리고, 성경을 암송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열매일 뿐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몸만 와서 앉아 있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뿌듯해지고 기쁩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기 때문입니다.

셋째,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당신의 영혼에 변화가 일어나서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으면 당신은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드린 여인처럼 주님께 기쁨으로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릴 수 있습니다.(눅 6:38)

넷째, 봉사하고 구제하며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봉사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공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공부를 잘 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삽시다. 우리 자신만 위해서 살지 맙시다. 축복하며 살아갑시다. 우리나라의 많은 엄마들이 내 자식. 내 새끼만 잘되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이 내 자식, 내 새끼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다른 집 아이들도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잘되고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제자됨의 표시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려라."(요 13:34~35)

여섯째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면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뭔가 잘못됐습니다. 병들어 있는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같이 말했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날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23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34 ‘불안에서 평안으로’ 한 걸음 전진하는 법 웹섬김이 03-18 60
233 네 가지 종류의 화 웹섬김이 03-01 78
232 ‘두려움’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 웹섬김이 02-28 97
231 신자 부모가 자식에게 끼칠 영향력은? 웹섬김이 02-28 87
230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Life of the Beloved)(요약) 웹섬김이 02-21 96
229 (2)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요약 웹섬김이 02-21 95
228 (1)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요약 웹섬김이 02-21 103
227 귀신들림과 정신병의 분별은? 웹섬김이 02-04 131
226 내 남편의 49가지 속마음 읽기 웹섬김이 01-24 148
225 내 아내의 49가지 속마음 읽기 웹섬김이 01-24 153
224 두 번째 연애 기간을 위한 준비 웹섬김이 01-02 144
223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할 줄 모… 웹섬김이 12-30 152
222 소아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웹섬김이 12-11 209
221 ADHD(성인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웹섬김이 12-11 219
220 정신적 장애의 3가지 분류 웹섬김이 10-25 296
219 저장강박증이란 무엇인가요? 웹섬김이 10-25 265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