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2-21 09:44
(1)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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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02  

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크리스티 김.

▣ 저자 크리스티 김 세계적 선교단체 YWAM(Youth With A Mission : 예수전도단)이 운영하는 열방대학(University of the Nations)에서 기독교 상담과 내적 치유를 가르치는 교수이다. 7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열방대학은 YWAM이 하와이 코나(Kona)와 우리나라 제주도 등지에 세운 국제적 기독교 교육기관으로서, 110개국 280개 지역에서 DTS(예수제자훈련학교)와 같은 선교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크리스티 김 선교사는 전 세계에 위치한 열방대학 중에서 일부를 순회 강의하며, 하나님이 그녀에게 베풀어주신 영적 치유의 놀라운 은혜와 비밀을 나누고 있다. 영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이중언어자이기에 해외 교포와 서구의 크리스천 사이에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해외 한인 유학생들의 수련회인 코스타(KOSTA : 유학생선교운동)의 인기 강사로서, '승리하는 영적 전쟁'과 '용서해야 산다'는 주제로 명강의를 펼치기도 한다. 14세에 유학길에 올라 미국 남가주대학을 졸업(심리학 전공)하고, 국제신학대학교와 탈봇신학대학교에서 상담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그녀 자신도 하와이 코나에 있는 열방대학을 수료했으며 1996년부터 동 대학에서 내적 치유 교수로 섬기고 있다.

▣ Short Summary 국제예수전도단(YWAM) 열방대학 내적 치유 교수인 크리스티 김이 전하는 내면세계 치유와 영적 성숙의 삶.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원통함을 토하라’는 것. 즉 기도를 통해 속마음을 다 털어놓으라는 것인데, 무슨 말이든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에 대해 하고픈 말을 기도로 몽땅 토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62편, 142편)을 근거 삼아, 다윗이 원수 같은 대적을 향해 속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그 다음절에서 오히려 용서와 이해와 축복의 기도로 바뀌었음을 설명하며 토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우리의 원통함을 아시고 들으시는 하나님께 ‘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시원케 하신다는 것. 그리고 깨끗해지고 새로워진 마음속에 다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와 기쁨과 용서를 담아주심으로써, 결국 우리를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도록 이끄신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마음속에 그런 치유의 과정이 없이 그냥 상처를 담고 지낸다면 사탄이 틈을 타서 우리를 다시 붙잡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토하는 기도와 용서의 선언은 사탄을 대적하는 영적 전쟁에서 필수불가결의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내적 치유의 과정과 원리를 명확하고 쉽게 설명할 뿐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례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 차 례 1장 영적 성숙의 출발점인 용서 2장 은혜 받은 자는 용서할 수 있다. 3장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하라 4장 듣는 기도가 중요하다 5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 6장 영적 전쟁에서 사탄의 전술전략 7장 영적 전쟁에서 필승의 무기 8장 변화를 갈망하는 인생 9장 변화되지 못한 자의 내면세계 10장 하나님을 알아야 변화된다

1. 영적 성숙의 출발점인 용서

결혼생활을 충실히 하는 듯 보이는 남편의 마음 속에 전 애인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있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게 되었을 때의 절망과 상실감을 생각해보십시오. 그와 같은 패턴이 우리 신자들에게도 공공연히 나타납니다. 교회에 정기적으로 잘 출석하고 봉사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을 마태복음 15장 8절에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성숙과 변화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에 오래 출석했어도 속 사람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 중 한 가지가 상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찢어진 마음을 다시 빚으사 생기를 불어넣어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의 변화가 더딘 이유 중 하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갖가지 풍상이 그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면서 받은 대우들, 들어왔던 말들 중 특별히 상처가 되는 것은 성인이 되도록 가슴 속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하하거나 비교하는 말은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쓴 뿌리로 작용하여 우리의 삶을 왜곡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며, 나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숙을 위해서는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사람을 반드시 용서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당했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용서하고 회복되면 그 아픔이 예수님의 보혈로 씻겨집니다. 동시에 우리의 속사람 안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분노가 없어지고, 슬픔이 사라집니다. 칭찬과 격려를 들으면서 자라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우리를 비난과 무관심 속에 양육했던 부모님을 마음 깊이 용서한 후에라야 칭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분노, 실망, 외로움, 슬픔, 답답함이 꽉 차 있을 경우, 문제는 그 상한 감정을 느끼기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아픔을 다루려는 생각조차도 싫어합니다. 상한 마음을 다루지 않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회복되지 않으면, 교회 안에 있어도 온갖 죄를 즐기게 마련입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척하면서 은밀히 짓는 죄는 결국 죄책감을 불러오며 이런 패턴은 악순환이 됩니다.

무조건 몸에 느낌이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탐하는 ‘육신의 정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을 눈으로 보고 즐기면서 짓는 죄인 ‘안목의 정욕’, 하나님을 자랑하고 높이기보다 자기 성취, 자기 자신을 나타내며 그것에 자기 정체성을 두는 ‘안목의 자랑’은 세상의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죄책감과 수치심, 허무함을 주고 그로 인해 자기 증오와 원망에 빠지게 함으로써 외로움과 아픔과 분노를 느끼게 하며, 다시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 세상의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므로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회개를 했더라도 여전히 죄책감을 마음에 품고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확신이 없으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8:12)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회개 한 후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빠져 있다면 이는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입니다. 불신은 죄이며, 이런 믿음 없는 모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의 죄를 기억지 아니 하겠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다 아시지만 그 죄를 가지고 더 이상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의 삯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서 모두 지불되었으며, 모든 죄는 예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큰 복은 죄사함을 받는 복입니다. 이 죄사함의 확신이 있으면 눈빛부터 달라지고 변화가 시작됩니다. 용서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며 성숙에 이르게 됩니다. 사단은 자꾸 의심을 불어넣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는 용서받았다! 잠잠할지어다!"라고 선포함으로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이렇게 용서받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 비로소 타인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2. 은혜 받은 자는 용서할 수 있다

용서하지 않은 자가 당하는 영적 피해 첫째,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영적으로 깨끗한 마음이란 용서하는 마음, 허물을 덮어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마음이 영적으로 깨끗한 마음이며 성숙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죄를 품게 되어 영적으로 더러워지며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 용서하지 않으면 사탄이 틈을 탑니다. 사탄이 무서워하는 기도 중에 하나가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용서를 하면 틈이 없어지고 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사탄은 용서 기도를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그러나 용서의 기도를 하고 그간의 죄를 회개할 때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던 사탄은 꼼짝없이 나가게 됩니다.

셋째, 용서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우리는 두 유형의 사람을 닮는데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 나머지는 용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유는 용서하지 않고 거부하면서도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용서하지 않으면 그런 이성과 결혼하게 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나는 저런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저런 사람은 용서 못해’라고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런 사람에게 익숙해지게 됩니다.익숙함은 친근함으로 이어져서 편안한 느낌 때문에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과 멀어집니다. “Christianity is not just a religion, Christianity is a relationship" 즉, 기독교는 단순히 종교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과 친밀한 관계, 교제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가슴으로 만나지 못하며, 영혼 깊은데서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지 못합니다.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헌금하고.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 하는 행동을 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혼 깊은 데서 주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자꾸만 주님이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속이 허탈하고, 어딘지 모르게 냉랭합니다. 뜨겁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하나의 종교적인 관습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 안에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우리 안에서 충만히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여섯째,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을 닮아갈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뿐 아니라 닮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성숙이란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온유하심과 자비로우심 그분의 용서와 그분의 희생적인 사량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일곱째, 용서하지 않으면 관계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회복되어야 할 부모 자식 관계, 회복되어야 할 고부 간의 관계, 형제들 사이의 관계, 성도들 관계. 친척과 친구들의 관계가 안타깝게도 회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절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이해와 용서는 별개입니다. 어떤 분들은 상처 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용서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은 우리의 육적인 연약함을 알고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유혹에 이끌려 죄 짓는 우리에게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엄연히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의 믿음과 고백을 통해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여덟째, 용서하지 않으면 몸이 쇠약해집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몸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면 건강해집니다.

아홉째, 용서하지 않으면 외롭게 삽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외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자꾸만 외롭습니다. 아무도 안 만나고. 누구와도 절교하고. 누구도 꼴 보기 싫습니다. 자꾸만 혼자가 됩니다. 외톨이가 됩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에 빠집니다. 대인 기피증에 걸리고 혼자만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롭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용서하고 더불어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외로움은 영적인 암과 같습니다. 그 사람을 어둡게 만듭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만 외롭게 됩니다.

열째,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에 묶입니다. 그때, 그때 그러면서 자꾸 과거에 머물게 됩니다. 과거에 머물면 현실을 놓칩니다. 과거에 머물면 미래를 놓칩니다. 그렇게 현실과 미래를 놓치면서 자꾸만 퇴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면 과거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과거를 되새김질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열한째,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쉽게 상처를 입습니다. 또 쉽게 상처를 입힙니다. 아주 사소한 것을 문제 삼아 가며 상처를 받습니다. 공격적인 성격의 사람은 눈만 조금 마주쳐도 왜 째려보느냐며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또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죄를 쉽게 짓습니다. 왜냐하면 상처가 아프기 때문에 무언가 기분 좋아지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하는 말이 다릅니다. 마음 속에 원망이 가득하다면 우리 속에서는 계속 원망의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열두째,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신 그 사랑을 더욱 절실히 체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야 합니까? 원수 갚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롬 12:19, 20). 당신이 용서해야 할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입니다. 선으로 악을 갚을 때 우리는 승리합니다.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복수하겠다고 그러면 우리는 묶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나 잘못되었습니다. 복수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용서란 무엇인가?

첫째, 용서는 결단입니다. 어떤 분들은 용서라는 감정에 중점을 두고 용서하기를 거부합니다만 용서는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다루면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감정에 치우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결단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는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기로 결단합니다." 이 고백은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용서는 누구보다 용서하는 이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냥 용서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억울함과 원통함 속에 지내게 됩니다. 반대로 용서하면 자유하게 됩니다.

둘째, 용서는 과정입니다. 용서는 한 번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과정입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용서하는 과정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뿐이겠습니까?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죽을 때까지 계속 용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용서하기로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용서할 때 상처의 껍질은 마치 양파 껍질처럼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갈 것입니다. 결국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를 하는 날이 찾아오고 설령 생각은 날지언정 아픔이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용서하여 상한 마음이 치유되면 더 이상 그 상처의 기억에 지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화해하기 원하시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주셨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 화목케 되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화목케 되길 거부한다면 그의 그러한 선택 또한 용납해야 합니다. 또한 용서했다고 그 사람을 즉시 신뢰하거나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했을지라도 그런 사람을 다시 대할 경우에는 지혜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 잘못된 기준을 주장하거나 불필요한 의무감을 떠안아 본인도 상처받고 상대로 하여금 또 다시 죄의 길에 빠지도록 길을 열어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용서는 은혜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누구에게 어떠한 상처를 받았더라도 주님의 선하심과 주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시고 사하셨다는 것을 진정 깨닫고, 믿고. 감사한다면 당신의 삶 가운데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죄사함에 관한 깨달음과 감사가 없거나 있더라도 곧 잊어버리기 때문에 용서하지 못합니다. 요셉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 그의 삶을 본받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할 때 복을 받습니다. 마귀는 패배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더욱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응어리와 상처가 하나씩 치유되면 우리의 모든 면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첫째, 지적인 측면에서 머리도 맑아지고 더욱 총명해집니다. 둘째. 정서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 의지력도 건전하게 강화되어 사양해야 할 상황(예를 들면 죄의 유혹, 부적절한 부탁이나 강요)에서 적절하게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예’나 '아니요’라고 분명히 답변하여 얼버무리거나 불의한 타협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넷째.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 질병이 없어지고 건강해집니다. 다섯째. 영적으로 맑고 깨끗하며 성숙해집니다.

3.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하라

마음에 있는 것을 꺼내어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남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십니까?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그 마음을 토로하십시오. "하나님 제 남편을 죽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고상하고 유창한 기도, 반질반질하게 기름을 칠한 것 같은 종교적 언어로 포장된 기도를 듣고 감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하나님은 분명히 마음을 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소리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시 142:1~2)

누군가를 정말 미워해서, 정말 원수 같은 어떤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그의 마누라가 과부가 되게 해주고, 그 아이들은 고아가 되게 해주시고, 빌어먹게 해주시옵소서. 그 집안의 씨를 말려주십시오." 성경에 바로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시편 109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가 이런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에게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두 번이나 찾아왔지만 다윗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미 마음에 있던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토해냈습니다. 이미 퍼부었고 쏟아냈기 때문에 원통함을 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마음을 토하고 주님을 피난처로 삼은 다윗을 향해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포장하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폼 잡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솔직히 토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간혹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선교사님.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죽이고 싶다는 기도를 했다가 그 기도가 응답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뱉는 기도를 들으시고 무식하게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합당하게 선하고 지혜롭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토하는 내용을 품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하십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의 유익 첫째,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둘째, 하나님과 친해집니다.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토할 때. 하나님께 친밀함을 느끼게 됩니다. 셋째,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갈 때는 형식이 필요 없습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나아갑니다. 예수께서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넷째, 용서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껏 토하면 응어리가 풀리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다섯째, 기도가 바뀝니다. 시편을 읽다 보면 같은 시편인데도 앞뒤가 너무나 달라집니다. 앞 절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재앙을 한탄하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 마음껏 마음을 토하니까 기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토하면 마음이 깨끗해지면서 영적인 주파수가 주님 앞에 더욱 명확히 맞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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