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10 18:35
사도들의 사후 교회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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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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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사후 교회의 가르침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거함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거함은 언약에 신실한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여호와의 통치질서가 언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이란 언약에 신실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거함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구원은 여호와의 율법 통치에 거함이다. 612개 율법 조항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행하시는 통치질서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일하신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여호와의 율법 통치에 거함이 이스라엘의 구원이며 생명이다. 이는 612개 율법을 통해서만 여호와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612개 율법 항목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생명의 법이다. 이는 구약에서 비친 유일한 여호와 계시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유대 땅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 통치를 종결하고 새로운 통치를 시행하기 위함이다. 율법 통치를 종결함은 율법이 주지 못하는 것들을 주기 위함이다. 율법은 죄를 없이하지 못하고(히10:4, 11),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히7:16-19, 10:1).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고 함은 하나님 아들로 세워지지 못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성경은 언약 갱신에 따라 이루어진 하나님 사역을 말한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이다.
사도들의 사후 교회의 가르침
예수의 가르침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구원 역사적이다. 특히 바울 사도의 주요 사역지는 소아시아 지방이다. 소아시아 지방은 헬레니즘 문화권에 속한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복음의 가장 큰 위협으로 모세율법과 헬라철학을 꼽는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복음은 이단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단을 용인함은 율법에서 무당을 용인하는 죄를 범함과 같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자들은 가족이나 형제들로부터 쫓겨나서 유리하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견디지 못한 성도들은 율법으로 복귀하려고 하였다. 이는 612개 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기는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한 것이다. 당시에 소아시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따라서 소아시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 역사관과 세계관은 헬라철학의 토대에 서 있었다. 그래서 교회는 헬레니즘 문화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헬라철학의 뼈대를 따라 복음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헬라철학의 이원론을 따라 복음을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교회의 가르침은 성경 초점에서 벗어나서 이방 철학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복음의 변질은 그 이후에 전개된 이단과의 논쟁에서 더욱 심화가 되었다. 그것은 교회는 헬라철학의 뼈대를 따라 본체론적으로 복음을 변증하였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존재의 등급구조를 따라 하나님과 인간, 세상과 교회를 설명하였다. 그래서 천주교가 존재의 등급구조를 따라 교회에 절대적인 권위를 두자, 이에 대항한 개혁자들은 오직 성경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중보적인 의식주의에 치중하자 개혁자들은 만인 사제주의를 표방하였다. 천주교가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주의를 강조하자 개혁자들은 오직 믿음을 내세웠다. 그러나 개혁자들의 주장도 성경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것은 플라톤이 주장한 존재의 간격 구조에 따른 이원론, 곧 영원과 형상을 이분화하는 플라톤의 이원론을 따라 복음을 개진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플라톤 철학의 토대를 따라 개진하였기 때문에 개혁교회의 오직 성경은 문자주의로 기울게 되었다. 개혁자들이 주창한 오직 믿음은 개인의 믿음과 구원으로 치우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만인 사제주의는 개인 구원론으로 나아가는 부작용을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왜곡과 변질은 성경 토대인 구원역사를 배제한 결과이다.
복음의 최대의 적 : 율법과 이방철학
개혁주의의 율법에 대한 이해는 플라톤의 존재 간격을 따라 개진되었다. 플라톤의 이원론에는 초월세계와 현상세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존재의 간격이 있다. 따라서 유한은 무한을 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유한한 인간은 영원세계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그 뜻을 행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에도 이원론적인 요소가 등장한다. 이는 모세가 말한 하나님 중심적인 이원론이다. 모세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상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관계를 따라 인간과 세상의 본질과 질서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천주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출론, 곧 존재의 등급구조를 따라 교회에 등급 질서를 부여한다. 그 결과 도출된 열매가 교황 무오설이다. 이러한 사제주의에 반발한 개혁자들은 플라톤의 존재 간격 구조를 따라 오직 성경만을 주창하였다. 그런데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초월(이데아)만 있고 발전하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상세계인 역사는 이데아의 그림자이며 분신일 뿐이다. 이러한 이원론 구조를 따라 개혁자들은 유한한 인간은 초월하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플라톤 철학에 의하면 성경의 역사적이고 문법적인 의미는 무의미하거나 열등한 내용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에 대한 최고의 적이 율법으로의 회귀와 이방 철학의 영향임을 말한다.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에서는 유대교로의 회귀를, 그는 골로새서에서는 이방 철학의 영향을 경계하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천주교와 개신교로 나누어지기 전 공교회에서 교부들은 헬라철학의 구조를 따라 복음을 설명하였다. 이는 헬레니즘 문화권에 있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천주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등급(위계)구조를 따라 하나님과 인간, 교회를 설명하였다. 그 결과 교황 무오설과 인간의 선행과 교회를 통한 구원을 강조하게 되어서 결국에는 면죄부를 팔기에 이른다. 이는 교회에 절대적인 권위를 둔 결과이다. 이러한 천주교에 반대한 개혁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 내용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도 플라톤의 존재 간격에 의한 이원론을 따라 하나님과 인간, 세상에 대하여 개진하게 된다. 그 결과 개혁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은 성경의 내용과 초점에서 이탈하게 된다
개혁주의(신학)의 구원론
개혁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의 대표주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구원론은 “율법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덕적 의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모든 세대를 위한 구원의 길로 제시하셨다. 또 율법은 하나님의 심판 기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도덕적 의지인 율법에 일치하지 못한다. 이는 죄로 인한 오염과 부패로 인하여 전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지켜서 아버지의 도덕적인 의지에 일치한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어서 믿는 자들의 죄를 다 갚으셨다. 이후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셔서 의롭다 함을 얻으셨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효력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그리스도의 공로가 전가되어서 의롭다 함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구약시대에서는 오실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고 신약시대에서는 오신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 모든 시대에 구원을 얻는 길과 구원의 질은 같다”라고 요약할 수가 있다.
그래서 개혁신학은 율법의 기능에 대해서 세 가지로 규정한다. 첫째는, 세상의 선한 법질서 유지를 위한 통치기능이다. 둘째는 구원론적인 기능이다. 이는 율법이 예수를 바라보게 하는 몽학선생의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율법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며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가 없어서 좌절하고 절망케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인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케 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율법은 성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율법은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은 이후에는 더욱 성령만을 의지케 하여 성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언제 성화가 완성되는가? 인간이 죽을 때이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구원과 성화의 출발점이다. 이는 선취적인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선취적으로 역사하셔서 구약백성들도 인간 행위의 무능과 죄책,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루터와 칼빈, 그들의 후계자인 개혁교회의 율법에 관한 입장이다. 이처럼 개혁주의는 성령께서 신구약을 넘나들며 역사하신다고 주장한다. 왜 이러한 주장을 하는가? 개혁주의 구원론에는 구원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증거는 구원 역사적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증거는 구원 역사적이다. 예수와 사도들은 구원역사를 따라 하나님의 두 경륜을 설명한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과(마5:-7:) 세례요한에 대한 평가에서 드러난다(마11:11-13).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할 때에 하나님의 두 경륜, 곧 율법 아래에 거할 때와 복음 아래에 거할 때를 대비한다(갈3:23-29). 이러한 대비는 구원 역사적인 대비이다. 갈라디아서에서 어렸을 때는 바울과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에 거하였을 때를 의미한다(갈4:1-3). 장성한 아들이 되었을 때는 복음 아래에 거할 때를 가리킨다(갈4:4-7). 이러한 대비는 율법과 복음과의 불연속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는 그리스도 안의 구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는 율법에로의 회귀를 경고하는 성격도 갖는다. 이처럼 바울이 언급하는 종이나 어린아이, 장성한 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과의 관계를 따라 대하시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언약적 관계를 따라 집행하시는 하나님 경륜을 말한다. 율법 아래에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휘장의 장벽을 두시고 이스라엘과 세상을 경영하셨던 때이다. 그때는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가 휘장의 장벽이 있던 때이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종이나 어린아이처럼 대하셨던 때이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몽학 선생 곧 율법으로 이스라엘을 지도하고 감독하셨던 때이다(갈4:1-3). 그때는 율법을 범한 자를 저주로 위협하며 개혁할 때까지 이스라엘과 동행하던 때이다. 이처럼 예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증거는 구원 역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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