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2-05 18:21
평신도 신학강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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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33  

기독교는 ‘삼위 하나님’ 체험 살아있는 역사

 

기독교의 신조(creed)나 교리(doctrine)는 한 개인의 확신과 결단에 달려있지 않다. 기독교 역사에서 신조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가 위기에 처해 전 교회적 차원에서 결정한 공의회의 신조들은 무척 중요하다. 신조나 교리는 성경의 내용을 핵심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제정된다. 오늘은 삼위일체론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지켜지며 우리에게 넘어왔는지를 보려 한다. 먼저 삼위일체에 대한 교회의 결정과 신조를 보겠고, 다음으로 기독교 공동체가 2000년간 고백한 증언을 보겠다.

 

신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기독교가 처음 형성되던 시기에 가장 심각한 위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론의 문제였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는 삼위일체론과 직결된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논쟁은 주후 3∼4세기에 이르러서도 명확하게 해결되지 못했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보다 낮은 위치인지, 같은 신성이지만 종속되는지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쟁이 생겨났다.

이에 공의회를 통해 ‘니케아 신조’(325)와 ‘콘스탄티노플 신조’(381)가 만들어졌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핵심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동일한 본질이라는 것이다. 또 충분한 설명은 없었지만, 성령님을 동일한 신성으로 고백했다. 그 후 기독교 역사에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삼위일체론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이후, 긴 중세를 거치는 동안 교회나 공의회가 삼위일체론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경우는 없었다. 삼위일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은 제시되었지만, 삼위일체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지 않았다. 중요한 회의였던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 제2차 리옹회의(1274), 플로렌스 공의회(1438∼1445)가 성령의 출원과 연관된 ‘필리오케’(Filioque) 문제를 포함해 삼위에 대한 논의를 정리했다. 플로렌스 회의는 삼위일체 교리와 연관된 서방교회의 마지막 전체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삼위는 존재 방식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과 논의는 종교개혁을 거쳐 근대에 이른다. 그 후 현대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여러 번 신조와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에서 삼위일체에 대해 논의했지만, 근본적으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의 방향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현대에도 세계적으로 개혁교회, 루터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개신교 교회, 그리고 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성공회교회가 삼위일체론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최근에는 삼위일체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신학적으로 삼위일체에 관심이 높다.

필자가 이렇게 삼위일체에 대한 신조를 거명하는 이유가 있다. 신조는 교회가 온 힘을 기울여 제정한다. 신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근거는 ‘성경’이다. 그리고 제정된 신조는 언제나 새로운 시대 정황 속에서 다시 시험받는다. 신조의 내용과 표현이 옳은지 검증을 받고, 잘못된 신조는 배척되고 옳은 신조는 살아남는다. 

즉 기독교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유지된 신조는 성경적 근거와 교리사적 타당성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 삼위일체론은 고대교회에서 처음 제정된 이후 현대까지 지켜졌으며, 한 번도 기독교 신조의 핵심 위치를 상실한 적이 없다. 삼위일체론은 다양한 교파의 성경해석과 시대적 정황 속에서도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삼위일체론은 개신교, 가톨릭, 동방정교회, 성공회를 망라한 모든 교회에서 ‘성경적 교리’라는 판단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해석의 역사’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 갑자기 우리가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증언 

기독교는 살아있는 신앙으로 유지된다. 신앙이 생명력이 있기 위해서는 성경의 말씀이 오늘 ‘현재적’으로 체험돼야 한다. 강요나 당위성으로 신앙이 유지될 수는 없다. 교회와 신조가 아무리 삼위일체를 강조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삼위일체에 대한 체험이 현재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그 신조는 공허해진다. 기독교 공동체는 2000년의 역사 동안 끊임없이 삼위 하나님에 대한 살아있는 체험을 해왔다. 이 체험은 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까지 이어진다. 

오순절에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으로 나타났다. 오순절 성령체험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고, 동시에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성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다(행 2장). 삼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성경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초기에 죽음으로 삼위 하나님을 고백하고, 순교의 현장에서 성부, 성자, 성령에게 영광을 돌린 숱한 증언이 있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시대를 넘어 기독교 역사 내내 이어졌다.  

일반신자들이 삼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세련되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 내용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기록과 동일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체험하면 예수님을 증거하였고,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또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날 때 성령님의 강한 임재를 체험했다. 예배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마주할 때 예수님을 찬양했다. 삼위에 대한 믿음, 체험, 고백, 찬양은 서로 교차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증언되고 있다. 

기독교 공동체에는 삼위 하나님을 체험하고 고백한 2000년의 역사가 있다. 이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이 역사는 지금도 살아있다. 누구도 기독교 공동체의 살아있는 증언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기독교 공동체 밖에 있는 자들이 가볍게 삼위일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만약 삼위일체에 대한 활기찬 증언이 없었다면, 삼위일체론은 건조하고 오래된 구시대의 ‘교리’의 영역에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아직도 삼위일체가 단지 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먼저 그 가슴 벅찬 삼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해봐야 할 것이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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