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과 예언 (고전 14:13-25)
방언과 예언은 언어를 매체로 나타나는 은사들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방언의 은사는 눈에 잘 띄는 은사중 하나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방언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보다는 예언을 하는 것이 좋다고 권면했다.
통역의 은사가 필요한 이유(13~15절)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가능하면 통역의 은사도 받기를 기도해야 한다(13절). 방언의 은사를 받은 성도는 자신이 방언을 한다는 것으로 만족할 때가 많다. 그러나자신이 말하는 방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른다면 많은 유익을 놓치게 된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되어 부족한 기도를 채운다는 유익이 있다. 그러나 자신이 드린 기도의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유익한 열매를 맺기는 힘들다(14~15절). 우리가 영으로 기도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기도와 더불어 자신의 의지가 작용하여 영적으로 유익할 것이다. 그렇기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은 더 풍성한 영적 유익을 얻기 위해 통역의 은사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영과 마음이 균형을 이루는 기도(16~18절)
바울도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였다(18절). 그렇기에 더 당당하게 방언에 대해 말할수 있었다.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축복이나 감사의 기도를 방언으로 드린다면, 방언을 듣는 이들은 그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멘'으로 화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16절). 통역 없이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아무리 통찰력 있는 내용이나, 아무리 놀라운 축복의 내용을 담고 있어도, 함께 기도하는 이들은 그 기도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기에 아멘으로 응답할 수도 없고, 그 기도로 인한 감동과 은혜도 함께 나눌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영으로 하는 기도와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야한다(15절).
공동체에 유익한 예언의 은사(19~25절)
바울이 은사에 관해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한 기준은 '교회 공동체에 덕을 세우는가' 여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내용을 평소에 사용하는 언어로 전하는 것이 훨씬 교회에 유익하다(19절), 은사는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의 임재로 나타난 방언은 사람들이 자기의 언어로 복음을 듣게 되는 놀라운 복음전파의 도구가 되었다(행 2:1~13). 그러나 만약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예배드린다면 오히려 복음전파에 방해가 될 수 있다(23절). 본문에서 말하는 '예언'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해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는 은사를 말한다. 그렇기에 예언은 사람들의 죄를 드러나게 하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능력이 된다(24~25절). 바울은 교회를 든든히 세워 가면서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하기 위해서는 방언보다는 예언이 훨씬 더 유익함을 강조하고 있다. 은사는 개인의 영성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각자 받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어떤 은사가 주어졌을 때 그 은사로 말미암아 자신이 신령한 존재가 된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그리고 은사는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데, 교회 공동체를 든든히 세우는 데 쓰여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은사를 왜 사모하고 있는지 잘 살펴서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