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4-27 15:11
칼빈의 5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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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49  

칼빈의 5대교리

종교개혁자로 너무도 유명한 존 칼빈의 5대교리는 신본주의를 신봉하는 장로교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서, 이제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인본주의와 교리를 상대 비교하여 자세히 정리하여 보는 계기를 마련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전적타락(Total deprivity) (엡2:1)

본래적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죄가 없었지만 아담과 하와의 원죄에 의해 우리가 오염돼서 우리는 죄 아래 인간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양심대로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므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롬2:14-15,20) 또한 하나님께서는 창 2:17절에서 `정녕 죽으리라'라는 말씀을 하셨고, 로마서 3:10절에서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는 말씀과 같이, 인간은 하나님 앞에 모두 죄인인 것입니다.

1517년 루터(1483-1546)가 비텐베르그에 95개 조항을 걸고 종교개혁을 한지 벌써 488주년이 되었습니다. 이 종교개혁 주간을 맞아 우리는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해서 공부하며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합니다. 칼빈(1507-1564)은 루터와 함께 16세기에 활동한 위대한 종교개혁자입니다. 역사 속에 많은 신학자들과 성도들이 칼빈의 교리를 연구해왔고, 그가 세운 교리를 신봉해왔습니다. 그의 신학은 성서적으로 정통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개신교의 교리는 대부분 그의 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는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바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신교 신자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저도 옛날에 읽어봤는데 새롭게 자세히 읽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시간을 내서 반드시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견고한 진리 위에 세워져서 흔들림이 없기를 바랍니다.

칼빈의 5대 교리는 기독교의 ‘위대한 기독교 진리’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17세기 화란 도르트에서 복음에서 빗나간 신앙의 흐름, 곧 알미니안 주의자들의 주장에 대처하기 위해 종교회의가 있었는데, 이를 가리켜 도르트 총회라고 합니다. 여기 모인 종교개혁 계승자들이 알미니안 주의자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칼빈의 주장을 재확인하면서 이 기독교 5대 교리를 체계화했습니다.1)

이 5개 교리는 반세기 전에 작고한 칼빈의 이름과 연계해서 「칼빈의 5대 교리」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그의 교리는 영어로 'Total Depravity'(전적부패), Uncontional Election(무조건적 선택), Limited Atonement(제한된 속죄), Irresistible Grace(불가항력적 은혜), Perseverence of Saints(성도의 견인) 이라고 하는데 신학자들은 이 교리의 영어 첫 글자를 따서 'TULIP'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펄전은 이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지금 설교하고 있는 것은 무슨 진기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교리도 아니다. 나는 '칼빈주의'라는 별명이 붙어있지만 진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임이 확실한 저 강력한 옛 교리를 기쁜 마음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처럼 칼빈의 5대 교리는 기독교 진리를 잘 드러내주고 있는 중요한 진리이다.

첫 번째 교리 “Total Deprevity”(전적타락)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첫 번째 것을 상고할 때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체계가 구원받을 자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알미니안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인간의 타락이 단지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구원의 공로를 온전히 하나님께 돌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 선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구원의 공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공로가 있다고 생각해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과 칼빈주의 5대 교리를 공식화한 도르트 총회의 개혁주의자들은 이 점에 관해 충분히 인식했기 때문에 성경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서 타락한 이후의 인간의 자연 상태는 전적 부패의 상태라고 선언 했습니다. 이는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이룬다거나 구원에 어떤 류의 기여를 하기에는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 곧 전적타락은 모든 인간이 전적으로 악하다거나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아낼 수 없다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인간이 동료 인간에서 어떤 선을 행할 수 없다거나, 외면적으로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곧 인간은 악마 그 자체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선을 행하고 신앙 행위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 즉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전전타락이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타락했을 때 인간의 인격 전체가 타락의 영향을 받은 상태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죄는 능력 전체, 곧 의지, 이해, 애정, 기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진노의 대상일 뿐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본래 죽은 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성경은 인간이 마귀에 속박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2:25이하). 성경은 인간이 눈멀고 귀먹은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막4:11이하). 성경은 우리가 가르침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좇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성경은 우리가 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성경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죄 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느니라”(창6:5).

이상이 인간의 자연적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가? 속박된 자가 스스로 놓여날 수 있는가? 눈먼 자가 스스로 보거나 귀먹은 자가 스스로 들을 수 있는가? 종이 스스로 속전을 낼 수 있는가? 가르침 받을 수 없는 자가 스스로 가르칠 수 있는가? 날 때부터 죄인된 자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가?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욥은 욥기 14장에서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고 욥은 물은 다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욥14:4) 예레미야는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라고 묻습니다.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렘13:23). 부패가 전체적인 것이고, 구원을 바라거나 얻을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 또한 전체적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명백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우리는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손과 발이 속박되어 있으며 부패가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죽은 시체 속에 생명의 빛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 속에 수용적(受容的)인 내적 불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육적으로 죽은 자는 물론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도 기적을 행하십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구원은 바로 그 본질상 주께 속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1) 죄로 죽음- 구원을 달성하기에 족한 만큼의 어떠한 공덕도 전혀 행할수가 없음(엡 2:1,창 8:21,롬 2:1,요 6:33,욥 15:14-16,렘 13:23,17:9)

2) 이성과 지식에 있어서도 -죄로 죽고,육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고전 2:14,1:18,2:9-10,요 3:3,5, 10-12, 엡 4:17-18,마 11:27,행 26:18,고후 4:3-4)

3) 정에 있어서도

4) 의지에 있어서도 죄로 죽음- 우리의 의지는 자유인바, 즉,우리들은 외부에서의 어떠한 힘에도 지배되거나 강제되어 있지 않으나 우리들은 날개 꺾인 새와도 같은ㅈ로 본래부터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증오하며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없어 하나님께 오지 못하는 것이다( 요 3:19,5:40,롬 8:7,요 8:43-44,딤후 2:26)

5)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선행 그 자체에 있어서는 적극적인죄의 행위는 아니지만 그러한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까락에 죄있는 행위이다(롬 7:8,히 11:6, 롬 14:23)

6) 타락에 의해 인류는 유죄와 부패의 상태로 떨어졌다(창 2:17,3:1)

아담은 고의로 죄를 범했다(딤전 2:14) 또 그는 대표적으로 인류의 처음으로서 대표로서 죄를 범했다.우리들이 타인의 죄 때문에 고생하는 분명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출 34:6-7,롬 5:12,18-19,고전 15:22,시 51:5) 그렇듯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인 대표적 희생에 의해 구원되는 것이다(엡 2:1-5,5:24,고후 5:17)

7) 우리들은 본래 정죄된 상탱에 있다(요 3:36,롬 11:20)은혜로 구원되지 않으면 우리들은 영원 형벌을 받을 수 바께 없는자들이다. 형벌에 대한 마태복음의 증거들은 (마 5:29-30,7:19, 10:23,11:24, 13:31,41,42,50, 18:8,9, 34:, 21:41,22:14,24:51,25:12,30,41,26:24)


2. 무조건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택정을 입는데는 어떠한 인간적인 조건도 없다.

에베소서 1:4-5절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시는 예정 섭리에는 이미 창세 전에 결정되는 작정과 전적인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은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딤후1:9), 인간의 어떠한 선한 행위나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딤후 1:9, 행13:48)(예정예지론)

만약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동이나 의지에 의하여 좌우된다면 이미 전능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가지신 전능자이시며, 인간의 모든 의지는 그분께 종속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칼빈의 5대 교리 중에 첫 번째 교리인 ‘전적 부패’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알미니안주의 자들은 인간은 타락은 했어도 선을 완전히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얻고자 하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의 공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 자들은 인간은 전적인 타락을 믿습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과 선행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믿는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 중에 두 번째 교리인 ‘무조건적인 선택’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 두 번째 교리는 첫 번째 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알미니안들은 무조건적인 선택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조건적인 선택을 주장합니다. 곧 그들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음에 응답하리라고 알고 계신 자, 즉 복음을 믿고자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미리 예지하시고 그들을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고자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택하시는 것은 조건적인 선택이 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조건적인 구원이 됩니다. 이런 알미니안들의 주장에 대해 칼빈주의 자들은 무조건적인 선택을 믿고 받아드립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은 피택자 곧 선택을 받는 자의 어떤 행위를 미리 보시고 한 것이 아니라 그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절대주권에 의해 특정한 죄인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택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조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의 구원과 직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알미니안들의 주장과 같이 만약 우리가 믿을 것을 아시고 선택하셨다면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형편과 조건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주의 자들과 같이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과 절대주권 가운데 무조건적으로 선택된 것이라면 우리의 구원은 변개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알미니안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느냐, 칼빈의 주장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을 증거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후서 2: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1:4절에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처음부터 구원할 자를 택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9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이루어진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역사입니다. 로마서 8:30절에서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9:11절에서는 “그 자식들이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선행을 행할 것을 아시고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곧 선행이 하나님의 선택의 근거나 기초가 아닙니다. 우리가 나기도 전에, 무슨 선행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절대 주권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48절은 말합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러므로 우리가 택함을 받고 예수를 믿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선행은 예정의 결과이지 선택의 근거나 기초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5:16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하나님의 선택은 신앙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선택의 결과요, 선택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신앙과 선행을 보아서 그가 부르심을 받고 택함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특수한 자비의 기초입니다. 로마서 9:21절은 말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겠느냐?” 또 로마서 9:15절은 말합니다. “나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리라.”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은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과 절대 주권 가운데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믿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사 당신의 백성 삼아 주신 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은혜 위에 굳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우리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과 절대 주권적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 선택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우리의 구원이 변개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 위에 굳게 서서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벧후 1:10). 그리하여 흔들림이 없이 부르심과 택하심 위에 굳게 서서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풍성히 맺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택정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유로운 영원한 결정이다 하나님은 이에 의해 타락한 인류 중에서 누가 천국의 후사가 될것인지를 결정한다 택정에 참여치 못하는자는 그 타락과 죄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받아야 할 당연한 벌을 받을뿐이다. 그들은 결코 부당하게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선택은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실시된다.

2) 택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다( 신 7:6-8, 마 20:23,엡 1:4,11, 3:11,롬 8:28-30, 9:11,12,19-23, 11:7,요 15:16,살전 1:2,4, 살후 2:13,마 24:24,31,딛 1:1, 살전 5:9,행 13: 48,요 17:9,6:37,65)

민족의 택정(암 3:2,신 7:6-8,벧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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