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3-03 19:55
평신도가 신학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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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015  
 

평신도가 신학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 평신도 신학 강좌 소감문, 저자 미상 -

 

  ‘평신도’라는 전제가 붙어야 하는 이유가 먼저 궁금하다. 아마도 ‘평신도는 굳이 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제에 대한 해명인 것 같다. 성경을 묵상하고, 경건 서적을 읽고, 신앙생활에 관련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 정도만 해도 평신도로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기다 ‘신학공부’까지 하라고 한다면? 나는 ‘목회자가 될 생각이 없다’는 대답이나 ‘신학은 신학자나 목사가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학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는 공부,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지식>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다. 그것은 성도의 기본인 것이다.

1. 신학공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이교적이며 비성경적인 개념을 성경적인 개념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성도들은 각자 다듬어지지 않은 원초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때론 비성경적인 개념을 포함한 이단적인 것인 경우가 있다. 신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병아리 신학’을 죽이지 않고 폐쇄적인 틀 속에 갇혀 있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하나의 신학적 체계로 굳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른 신학의 토대 위에서 건전한 분별력과 비판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학생 때 ‘건전하다’고 하는 한 기도원의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설교를 마친 목사님이 ‘100만원을 헌금’하기로 작정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서원을 요구하고, 작정한 사람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고, 성경책에 축복의 메시지를 적어주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은 어른들이 의심 없이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것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교회 안과 밖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예의 하나였다. 하나님은 결코 100만원의 헌금으로 복을 주고 말고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신학적인 이해를 하게 된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인해 이단적인 신앙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2. 신학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자라가고자 하는 갈망의 발로이다. 즉,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온 열정인 것이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깊게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영적 게으름’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평신도 중에도 신학을 하는 경우가 많고, 개혁교회에서는 어려서부터 교리공부를 통해 신앙을 정립해 간다. 한국에서는 교리공부나 신학훈련이 없어서 신앙에 안정성도 없고, 이단이 득세하는 경우도 유난히 많다. 누구의 강요나 설득이 아니라,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열망이 신학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성경공부와 신학공부를 이원화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신학은 바로 성경을 좀 더 심도 있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만 공부하면 됐지 인간이 만든 신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신학교를 가지 않고 목사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게 되어 이단으로 빠지기 쉽다. 신학은 단순한 성경공부가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좀 더 종합적이고 조직적인 관점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복음의 진리를 <창조, 타락, 구원(성화), 종말>이라는 네 단원의 구속사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큰 주제로 하나님 형상, 하나님 나라, 영생, 새사람, 안식, 자유, 의로움 등에서 네 단원의 창조, 타락, 구원, 종말의 과정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창조 때에는 완전하였는데 ‘죄’로 인해 타락하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부 회복하게 되고, 종말에 이르러 완전히 완성되고 회복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개념이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부분적으로 이미(already) 회복되었지만, 종말이 되기 전까지는 불완전하기에 아직(not yet)이라는 것이다. 이 양 측면을 균형있게 이해하고 강조해야 한다.

4. 성경자체가 신학적인 연구와 공부를 필요로 하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학공부를 해야 한다.

성경은 구원에 대한 진리와 증거를 흩어놓았다. 따라서 그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른 구원관을 정립하고 구원론의 맥을 추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2:8에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는데, 빌립보서 2:12에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상충되는 말씀들이 성경 곳곳에 있다. ‘구원’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는 문제에 대한 해석도 아주 다양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신학이 필요하다.

  2000년 교회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말씀을 깨닫고 해석하고 교리를 정립해 온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전수 받은 신학의 유산들을 역사의식을 가지고 힘써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쓰는 <칼빈주의>라는 말은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에 있어서 성경을 충실히 해석한 칼빈의 성경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따른다는 말이다. 그 예로 종교개혁 시 중요한 논쟁 중 하나인 <구원론>을 들 수 있다. 구원에 있어서 믿음과 거룩함이 있어야 하지만 카톨릭은 거룩함이 구원의 우선적 조건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구원을 확신하기가 힘들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칼빈은 거룩하게 되는 것(성화)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죄 사함을 받는 것(칭의)에 대해 날카롭게 구분한 것이다. 이런 칼빈의 가르침이 개신교의 구원론의 근간이 되고 있다.

  신학은 성경공부와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을 공부하되 좀 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점과 2000년 교회사의 관점에서 총괄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구체적인 노력인 신학을 공부할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 감사, 찬양이 더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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