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11-25 04:07
기독교 강요 1-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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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518  
11. 창조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증거가 우리에게는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역이라는 거울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영원한 왕국을 아주 명백하게 보여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에 우리는 그 명백한 증거들을 보면서도 점점 더 우둔하여져서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구조와 질서에 대하여 말한다면,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거나 온 땅을 두루 바라볼 때 마음을 기울여 창조주를 기억하는 자가 우리 중 과연 몇이나 있는가? 오히려 창조주를 무시하고, 나태하게 앉아서 그의 사역을 바라다보고만 있지 않은가? 사실, 자연의 통상적인 과정 밖에서 매일같이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하여 말하자면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로 지배를 받는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맹목적이며 무분별한 운명에34 의하여 회전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우리 중에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것들의 안내와 지도에 따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신성에 대한 개념을 경솔히 파악하고, 즉시 자신의 육적인 망상과 광란에 빠져 들어가서 마침내는 공허한 것으로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를 부패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떤 점에서 서로 동일하지 않은 데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자신의 특수한 오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괴하고 어리석은 것들을 위해서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을 버리는 데는 우리 모두가 한결같이 동일하다. 범인이나 둔한자 뿐만 아니라 가장 탁월하고 다른 일에 있어서는 예리한 식별력을 가진 자라도 다같이 이와 같은 질병에 걸려 있다.
이 점에 대하여 모든 철학자가 얼마나 그들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여실하게 드러내었던가! 가장 미련한 자처럼 행한 다는 철학자들은 그만 두고라도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종교적이며 가장 신중했던 플라톤 역시 자신이 생각해 낸 둥근 구체(球體)35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사람들에게 길을 비추어 주는 것을 그 임무로 하는 지도적인 인물들도 이렇게 방황하고 비틀거리고 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그런 잘못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인간사의 통치가 너무도 명백하게 섭리를 증거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보고도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만사가 생각 없는 운명의 의지에 의하여 뒤죽박죽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공허와 오류에 크게 기울어져 내가 항상 말하는 것은 가장 탁월한 사람에 대해서이지 하나님의 진리를 모독하는데 그 광기가 지나친 천박한 자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12. 하나님의 현현은 인간의 미신과 철학자들의 오류에 의해서 질식 되었다

온 세상을 채우고 뒤덮은 그 무한히 더러운 오류의 진창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왜냐하면 각자의 마음은 미궁과36 같아서 민족마다 여러 가지 허위에 각각 끌려 갔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이것뿐만 아니라 거의 각 사람마다 자신의 신을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경솔함과 천박함이 무지와 흑암으로 더불어 결합되어 하나님 대신 자신을 위해서 우상과 환상을 만들어 내지 않는 사람이 거의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거대하고 풍부한 샘에서 물이 분출되어 나오는 것처럼 무진장한 신들이야말로 인간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그들은 각자가 극단적인 방종으로 흘러 하나님에 대해서 이것 저것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여기서 세계를 혼란의 와중에 빠지게 하는 미신의 목록을 구태여 작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끝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 정신의 그 맹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는 미신에 대하여 아무 말하지 않더라도 많은 부패를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미개하고 교양이 없는 천박한 사람에 대하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성과 교양으로 하늘나라를 통찰하려고 애쓰는 철학자들이 서로 불일치하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37 지혜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 예술과 학문이 세련되면 세련될수록, 그러한 사람은 자기 의견에 더 아름다운 색채를 입혀 위장해 보려고 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엄밀히 조사해 보면 그것들은 모두가 다 허무한 그림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스토아 학파(Stoics)는 자연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명칭을 끌어낼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 하나님의 단일성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이러한 자신들의 사상이야말로 매우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말은 마치 우리가 각종의 제신에 속아 점점 더 심한 오류에 끌려 들어가는 일만 없으면 공허한 것에 기울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같은 수법이다. 애굽인들의38 신비주의적 신학은 아무 이유 없이 헛소리를 한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자기들 모두는 용의 주도하게 이에 대하여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단순하고 부주의한 사람은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을 처음 볼 때에는 이에 속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치고 종교를 기본적으로 부패하게 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와 같이 극히 혼란한 다양성은 에피큐로스(Epicurearts) 학파와 그 외 경건을 경멸하는 자들을 대담하게 하여 마침내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관념을 버리도록 하였다.39 그들은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의견의 불일치와 심지어는 천박하고 어리석은 가르침 때문이라고 보고,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신을 탐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공허하고 어리석게 스스로를 괴롭힌다고 주저 없이 추단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하고도 아무 형벌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불확실한 신들을 날조하여 끝없는 논쟁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을 공공연히 부정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불경을 감추기 위해서 인간적인 무지의 연막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무지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결코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지식인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똑같이 불일치를 일으킬 만한 문제가 하나도 없다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탐구하는데 그렇게 많은 잘못을 범하는 인간이니 만큼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하여는 한층 더 어리석고 눈이 멀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모니데스(Simonides)는40 폭군 히에로(Hiero)에게서 하나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하여 하루 동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답변을 칭찬하였다. 다음날 다시 그 폭군이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하자 그는 이틀 동안의 여유를 더 허락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그는 여러 번 날수를 배로 연기하고 나서 마침내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희미해집니다." 그가 그렇게 희미한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을 중단하였던 것은 지혜로운 일이었다. 여기서 명백해지는 것은 인간이 본성으로만 가르침을 받는다면 확실하고 건전하며 분명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한 원리에 매여 마침내는 알지 못하는 신을 숭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행 17 : 23 참조).41


(인간은 오류를 고집하는 한 핑계할 수 없다. 13-15)

13. 성령은 인간이 고안해 낸 일체의 종교 행위를 거절하신다

우리는 이제 순수한 종교를 부패하게 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자신의 견해에 집착하는 자는 모두가 다 필연적으로 이런 데에 빠지게 된다-한 분이신 유일신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자라고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정말 그들은 마음에 그러한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며, 그들의 확신하는 바가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먼 마음속에 하나님 대신 마귀를 두는 자는 모두 다 배교자라고 성령께서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고전 10 : 20 참조).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이 복음에서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는 "하나님도 없이" 지내던 자였다고 말한다(엡 2 : 12-13). 그리고 이 말은 한 국민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바울이 다른 곳에서도 주장한 대로 사람들은 모두가 다 우주의 구조에서 창조주의 위엄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졌다고 말했기 때문이다(롬 1 : 21).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은 참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 들어가실 여지를 만들기 위하여 전에 이방인들 사이에 신으로 경배받던 것은 어떠한 신도 어리석고 거짓된 신으로 정죄하는 한편,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이 계속 번창하던 시온산 외에는 어떠한 하나님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합 2 : 18,20). 확실히 예수님 당시의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참된 경건에 거의 접근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하신 말씀을 듣는다(요 4 : 22). 이 사실에서 우리는 그들이 무익하며 잘못된 망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비록 큰 죄악에 빠져 있지 않고 혹은, 공공연하게 우상 숭배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공통적인 이해에 근거한 순수하고 공인된 종교는 가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소수의 사람들이 일반 대중의 광란에 감염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라고 한 바울의 주장은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고전 2 : 8). 그러나 가장 탁월한 자가 오류라는 어둠 속에서 헤매인다고 하면 민중의 찌끼와 같은 존재들에 대하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예배 형식을 성령이 속된 것으로 거절한다고 해도 조금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늘 나라의 신비에 대하여 인간의 방법으로 얻어진 의견은 비록 그것이 항상 막대한 오류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오류의 산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예배드리는 것이 비록 나쁜 결과를 수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니다(행 17 : 23 참조).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예배드려야 할 하나님에 대해 율법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자도 모두 죄를 범한 것이라고 하였다(요 4 : 22). 그리고 가장 훌륭한 입법자들은 종교가 일반의 여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말하였을 뿐, 그 이상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아니 크세노폰(Xenophon)에 의하면 소크라테스(Socrates)까지도 사람은 누구나 조상으로부터 받은 의식과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의 관습에 따라 신들에게 예배를 드려야한다고 명령한 아폴로(Apollo)의 신탁을 예찬하였다고 한다.42 그러나 세계를 멀리 초월하고 있는 것을 그들 자신의 권위로 정의할 수 있는 이 법칙은 어디서부터 인간에게 왔는가? 혹은 인간적으로 전해진 신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조상들의 법규나 민중의 제정을 누가 그렇게 감수할 수 있겠는가? 인간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다른 사람의 결정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법이다.43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한 도시의 관습이나 전통의 여론에 따르는 것은 경건의 띠로서는 너무도 약하고 부서지기 쉽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증거하시는 일뿐이다.


14.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구조에서 창조주의 영광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등불이 우리를 위해 비춰 주고 있지만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뿐이다. 비록 그 광선이 우리의 온 둘레를 비춰 준다 하더라도 결코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분명히 약간의 섬광을 발하기는 하나 그것은 충분한 빛을 방사하기도 전에 사그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사도는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바로 그 구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 : 3)라는 말씀을 첨가하였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곧 보이지 않는 신성이 이와 같은 거울 안에서 나타나게 되지만 하나님의 내적 계시에 의하여 믿음으로 조명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세계의 창조에서 명백히 보여졌다고 말한 곳에서도(롬 1 : 19) 바울은 그러한 현현을 인간의 통찰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간으로서는 변명할 수 없을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 주셨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그를 멀리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행 17 : 27), 다른 곳에서는 이러한 접근의 결과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를 가르쳤다. 곧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행 14 : 16-17)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증거가 부족 하지 않는데도 자기를 알리시기 위하여 각종의 풍부한 인자하심으로 인류를 친절하게 이끄시는데 인간은 자기의 길, 곧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15. 우리의 무능함이 죄이다

그러나 아무리 순수하고 명백한 하나님의 지식에 도달할 본래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우둔함의 죄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실로 우리의 양심이 나태와 배은망덕을 항상 깨우쳐 주지 못하더라도 무지를 구실로 내세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다음의 변명들, 곧 잘 못하는 피조물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음성으로 전해주는 그 진리를 들을 만한 귀가 자기에게는 없다고 인간이 변명하는 것과, 눈 없는 피조물이 보여 준 것을 자기에게는 눈이 없어서 볼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그리고 비이성적인 피조물까지도 교훈을44 주는데 정신 박약이라 더 이해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들이 당연히 용납되기라도 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만물이 우리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 줄지라도 우리가 방황자요 방랑자로서 길을 잃고 헤맨다면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의 놀라운 구조 속에서 그들의 마음에 심겨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씨앗을 즉시 부패케 하여 훌륭하고 완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사실은 마땅히 그들 자신의 태만에 돌려야 한다. 그러나 한편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찬란하게 보여 주는 그 단순한 증거만으로는 우리가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도 거짓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주에 대한 명상을 통하여 어떤 가벼운 신성(神性)을 맛보게 되자 우리는 즉시 참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 대신 머리로 만들어 낸 꿈과 환상을 세우며 마땅히 참되신 근원에 돌려야 할 의, 지혜, 선, 권능에 대한 찬양을 그 밖의 어떤 무엇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우리는 하나님께서 매일 하시는 역사를 그릇되게 판단함으로써 그 역사를 희미하게 하거나 뒤집어 엎거나 하여 그 사역 자체로부터 영광을 빼앗으며 창조주에게서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찬양을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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