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팔레스틴, 성서 고고학
성서 고고학과 마찬가지로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도 W.F. Albright, G. Glock, Toombs, Moory 같은 상당수 전문가들에 의해 주기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현재 논문(present essay)은 ⑴학문(discipline)으로써 고고학 분과의 발전 ⑵1970년대 이후 고고학(its)의 이론적 입장에 대한 고심(elaboration) ⑶미국 학파의 특색 있는 접근에 대한 특별한 언급과 함께 통용되는 인문과학의 범위(state of art)를 설명함으로써 토론을 새롭게 하려 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일반적인 오리엔테이션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보다 쉽게 특정 유적, 연대, 주제 등의 목록에 대한 고고학의 최근 결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곳에서나 적절히 행해지고 있는 발굴 기술 같은 고고학 분야의 방법론에 대한 미세한 최근의 발전을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좋은 field고고학을 구성하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몇몇 설명의 말들은 제한적이고 과도하게 이론적인 접근으로 간주될 것이다.
1.이론적 경향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신중하고 실용적이다. 그것이 자주 그럴지라도 오늘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개념적 틀을 바꿈으로써 시리아-팔레스틴 그리고 성서 고고학을 정초할 뿐이다.
고고학은 단순히 골동품을 추적하고 환상적인 유물을 발견해 내는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인간 경험을 꿰뚫고 조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상적 이론(speculation)이 아니라 고고학을 고고학 그 자체로 보는 기본적 방법으로써의 이론(theory)은 분명히 근본적인 것이다.
2.미국인의 지적 지평을 강조하는 변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의 공헌이 추측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논문이 대다수 미국인인 청중을 일차적으로 겨냥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시리아-팔레스틴, 성서 고고학 자체라는 것은 없다. 미국, 유럽, 중동의 다양한 학파들은 (항상 변화되는 독특한 방법 안에서) 제각각 구별되는 문화와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고고학이 미국에서 최근 발전해 온 특정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것이다.
A. 신 고고학의 성숙기
몇몇 학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가장 흥미 있어 하는 첫 번째 경향은 우리 분야에서 근본적으로 변혁되었다. 과거 10여년 동안 상당수 방법들은 우리의 고고학 분과에 대한 미국 학자 군의 1960년대 신 고고학의 뒤늦은 충격을 분석해 왔다(데버, 글록, 툼브). 그런 류의 경향은 이제 잘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요약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인들의 연구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신세계 고고학자들에 의해 거의 개척된 다양한 이론적 방법론적 교리들은 연구 계획(resaerch design), 현장 답사(field work)와 분석 그리고 중요한 출판에 영향을 주었다.
1.복합 학문적(Multidisciplinary) 접근
이것은 우리가 전통적 관점이라고 여겼던 단순히 건축학적, 요업(ceramic)적 국면보다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시도에서 생겨났다. 우리는 식물과 동물의 유적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과거 생활양식의 흔적, 환경학적 변화의 증거, 고고학적 기록에 우연히 주어진 모든 물질문명의 자료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통적 층위 학자와 도자기 전문가(물론 성서 역사 학자도) 원정발굴대가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많은 분야들을 동료로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지리학자, 지형 학자, 기상 학자, 고식물학자, 고동물학자, 물리 학자, 문화 인류학자, 기술 역사 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전엔 고고학과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던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Gezer에서의 첫 복합전공적 접근 방법은 이론적 재형성을 얼마만큼 나타내느냐 보다는 순전히 실용적인 차원이었다. 그 새로운 모습은 많은 햇수동안 불확실한 가설과 숨김없는 실험으로 남았고 명백하게 뛰어난 결과로, 완전히 요약되거나 통합된 마지막 보고서에 쓰일 정도는 아직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합전공적 접근 방법의 충격은 신고고학의 다른 어떤 측면보다 강하다. 이것은 아주 현학적인 연구 계획에서 특별히 찾아볼 수 있다. 동양 연구소의 미국 학파 위원회, 휴매니티를 위한 국립기금, 국립 지리 학회에서 연구하기 위한 시리아-팔레스틴(그리고 근동) 고고학자의 제안은 이제 근본적으로 복합전공적이다. 이들 제안 중 가장 좋은 것은 어느 곳에서나 현대 고고학의 이론적 표준이 된다. 이런 것들은 아주 인상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15년 전 만해도 고고학 분과는 종종 편협하고 단순하고 아마추어적인 다른 고고학자들에 의해 거부되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속적인 차원에서조차 승인과 재정적인 지원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우리 시대가 온다는 징조이다. 그것은 다른 단순한 변화보다도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을 주류로 편입시키는 복합전공적 접근 방법의 채용 때문일 것이다. 복합전공적 접근이 유행을 일으킨 새로운 현장 방법들(firld methods)은 종종 본질적으로 단순하지만 그것들의 결과는 혁명적인 것이다. 그것들은 거품을 일으키는 체(sieve)와 식물과 동물의 흔적을 구별해 내는 (꽃가루 분석 방법인)palynology와 고대 기후와 생활 수단과 음식물과 같은 것을 구별해 내는 것을 기본적으로 포함한다. 1970-80년대에 있었던 높은 수준의 미국의 복합 전공 계획들 사이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W. G, 데버와 R. 코헨의 중앙 네겝 고지 계획과 M. Meyers, C. Meyers, J. F. Strange의 Shema - Meiron - Nabratein계획과 J. D. Seger의 라합(Lahav)발굴; T. E. Levy의 Shiqmin 발굴; 그리고 텔 미크네에서 S. Gitin과 T. Dothan의 연합 계획을 선발해야 했다. 요르단에서 우리는 R. T. Schaub의 W. E. Rast의 Bäb edh-Dhrả-fson 발굴과; L. T. Geraty의 Madeba평지계획; G. Rolle Khirbet Iskander발굴; 그리고 S. Falcomer와 B. Boraas의 ness-Gardiner의 Tellel-hayyāt 발굴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2.생태학적 지향(An Ecological Orientation)
복합전공적인 교수진(Staffs)을 고용한 것은 필연적으로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의 범위를 넓혀 놓았다. 첫째로, 이것은 전문가 스텝들의 다양한 이론적 관심에 대체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대부분의 질문들은 고고학적 작업 자체에 의해 대답이 주어졌다. 이것들 중 대부분과 특히 고고학적 조사에서 가장 다루기 쉬운 것들은 환경에 대한 발굴 현장(즉 그 문화)와의 관계라는 근본적인 물음의 중심에 놓여졌다. 우선, 개인적인 고고학적 현장은 그들의 환경이나 다른 현장과의 관계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발굴되어 왔다(몇몇 블레셋 발굴 현장-유적-은 네브라스카처럼 그들이 파고 발표하는 식이었다). 대부분의 발굴자들은 현장 사이(intersite)와 환경적 관계는 관심을 둘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당연히 가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실패는 아마도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의 전통적, 역사적(즉 성서적) 지향에 더 기인했다. 그래서 문화적 변화를 위한 설명을 물질적 요인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요인에서 찾았다. 그러나 곧 고고학이 주로 인류학적, 생태학적 지향을 차용하면서 어떠한 문화의 독특한 양식도 대체로 경제적인 요인들에 기인하고 이런 문화들의 양식(these)은 자연적 환경에 의해 빡빡하게 조건지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문화란 지리학적 상황, 기후, 자연 자원에 대한 접근성, 무역 통로, 재료(raw, material) 경제적 결정론을 대하는 동시에 1970년대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자들은 유적을, 문화/역사적, 자연적 상황이라고 하는 더 큰 틀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조사와 반론을 진화시키고 필요로 하는 주된 연구 전략은 지역적 스케일에서 수행되어졌다. 경제학적 지리학자에 의해 개발된 유용한 도구들을 사용하는, 정착지 유형 변화와 분배 형태 변화에 대한 비교 연구는 고대 기후와 기술적 적응을 포함하는 생활 양식과 아직까지 우리 분야에서 수행되는 가장 진지한 인구 통계학 계획들을 재구성하려 한다.
이들 모든 질문들이 모든 계획과 전 기간 속에서 똑같은 긴급성을 가지고 추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 지향은 충만하고 유익하기 때문에 그것의 개요에 앞서 그 분야를 추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혀졌다. 전부 진행되고 발표되어 이제 축적되어 있는 환경적 자료(data)는 한 세대 전에는 꿈꾸지 못했던 전망을 열어 주고 여러 기간과 문제들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해력을 줄 것이다. 다양하게 언급된 지표 조사(surface surveys)처럼 위에서 언급한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서의 모든 발굴 계획은 현장 작업에서 더욱 새로운 생태학적 지향의 예가 될 것이다. 해석에 있어서, 이스라엘과 미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일련의 논문들은 초기 청동기 시대에서 로마 시대를 지나는 기간동안의 인구 통계학적 이슈를 다루어 왔다.
3.체계 이론(System Theory)
일반 체계 이론의 주의 사항 아래 평범하게 그룹 지어진 몇몇 전공학문들의 범주와 기본 원리의 채용은 복합 전공과 생태학적 접근 방법 모두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근본적인 원리는(postulate) 유기체적 상태(organized state)는 몇 개의 순응적인 하위 체계를 구성하고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전체라는 것이다. 이들 하위 체계는 모두 유기체적으로 미묘하게 서로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역동적이고 상시적으로 변화하는 균형(equilibrium) 때문에 체계의 어떤 부분의 변화는 체계의 축소하는 피드백 고리(feedback loops)와 일탈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정보와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의 균형에 의존함으로써 체계들은 높은 차원의 통합을 포함하는 항상성(homeotasis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유지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혹은 전부를 약화시키든지.
원래적으로 생물학적 현상 연구에 적용되는 동안 체계 이론은 경제학, 통계 관리, 사회 계획 등을 포함하는 인문주의적 연구의 많은 측면에 점차 더 적응해 왔다. 최근의 사례 분석은 체계 이론이 미국 고고학에서 이제 주도적인 이론적 접근 방법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체계적 모형(paradigm)이 고고학에 응용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가정들에 대해 작용해야 할 것이다.
⑴문화란 자연 환경에 대한 인간의 놀랄 만한 적응 반응이다.
⑵문화란 시간과 공간이라는 특정한 조건으로 특징지어지고, 집단적인 것이며, 유형화되고, 축적되고, 전이되는 것이다.
⑶그래서 문화는 “체계적(systemic)”인 것이다. 즉 문화란 이데올로기와 같은(예술 철학 종교를 포함하는) 정치적 조직, 자연적 거주지, 기술, 경제적 전략, 혈족 관계, 사회 구조와 관련된 지역 정착 같은 많은 하위 체계들의 작용(operation)이 고고학적 기록에 동등한 흔적을 남겨 놓지는 않았다(텍스트가 없는 철학과 종교의 재구성같이). 물질적 유물(remains)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유형화 된 인간 사상과 행동의 반성인 한, 고고학적 기록은 관습의 물질적 상호 관련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고고학자들은 동일함을 증명할 수 있는 물리적 흔적을 남겨 놓은 모든 다양한 하위 체계들의 성질, 효과, 상호작용을 식별해야만 한다. 다행히도, 복합전공적, 생태학적 접근 방법은 더 나은 고고학적 기록을 개척하는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했다. 요약하자면, 문화의 진화(문화-과정 설명이 아니라)가 고고학의 주된 목표이고 ‘정치적 역사’같은 편협한 종류의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면,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접근 방법이 체계적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론과 이론적 해석은 나무랄 데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어려움들이란 전형적인 중동 고분에서 보존되어 온 고고학적 기록이 불완전한 성질이라는 것이다; 무언의 가공물로부터 문화적 유형을 추론하는 위압적인 전망, 그리고 과거나 현재의 인간사회 체계의 완전한 고집스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 접근 방법은 충분히 실제적이고 여기 머무를 것 같은 발견을 돕는 이득이 있다. 위에서 기록 한대로, 하위 체계에 대한 관심이 더 나은 연구를 조직하는데 효과적인 접근 방법이 아니라면 더 편리한 범주에 따라 더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사회 경제와 관련된 특정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더욱 체계적으로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 현재의 연구 단계에서 우리는 인구 통계학의 역량 성장과 함께 고대 팔레스틴의 정착 유형과 생활 양식 체계를 가장 성공적으로 복구해 왔다. 몇가지 유용한 증거가 이제 얻어졌지만 아직 사회 조직의 재구성은 시작 단계이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는 소홀히 취급되어 왔고, 명백히 그것들은 특히 선사 시대의 추측에 대한 가장 만만치 않은 하위 체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조차 발전은 있었고 특히 대중적 제의(cult)를 조명하는데 진전이 있었다.
복합 전공과 체계적 접근 방법에 의해 이제 만들어진 엄청난 양의 자료들은 쉽게 관리될 수 없고, 존재하는 시스템들과 아주 적게 발표된다는 장애가 있다. 고고학의 컴퓨터화(전산화)는 정보의 기본적인 기록과 다양하게 변하는 통계분석 모두에 명백히 필수적이다. 그러나 수년전 고고학 분과에서 ‘컴퓨터 혁명’이라고 불렸던 예측은(데버에 의해 1976년에)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1960,70년대 미국 신고고학을 특성 짓는 나머지 경향은 ⑷민족 고고학(ethnoarchaeology)의 사용 혹은 먼 과거의 고고학적 흔적을 설명하기 위해 아직도 잔존해 있는 원시 문화를 묘사해서 유추하는 것 ⑸진화되는 모델에 의존해서 문화적 변화를 설명하려고 다선 궤도, 인간 행위의 독특한 성질, 인간 진화에 대한 강조와 함께 생물학적 진화를 묘사하는 것. ⑹비교 문화 분석과 교차 문화 분석을 통해 식별된 문화적 과정의 보편적 특성을 설명하는 것과 함께 인간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고고학의 모든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 그리고 ⑺문화적 과정에서의 보편적 법칙을 테스트하고 정식화하려고 가정된 주된 목표와 함께 자연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려는 아주 과학적이거나 독단적인(nomothetic?) 접근 방법의 선호
이들 중 후자의 네 경향은,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에 얼마간 영향을 끼쳤지만 처음 세 경향만큼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민족 고고학(ethnoarchaeology)은 자신의 명백한 역량과 초기부터 작은 스케일로 보통 수준의 적용을 했음에도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우리 분야의 숙련자 부분에서 인류학적 민족지학적 훈련의 부족으로 설명될 수 있고, 또 부분적으로 식민주의자들이 아주 원시적이어서 고대 수준 높은 문명에 대해 빛을 던져 주는 원주민 관습을 무시 한데서 설명될 수 있다. 혹은 성서적 배경으로 주어진 어떤 양식의 ‘진화’는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에겐 저주(anathema)였다(비록 그 경향이 의식적인 거부보다는 경직되거나 게으르다는 문제였지만).
행동주의 심리학자-과정 주의자와 nomothetic학파들은 단지, 너무 난해하다는 이유로 많은 추종자들을 얻었다. 대부분은 생물학적 영역과는 달리 인간 본성의 영역은 예언에 의한 증명이라는 그들 주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법칙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거부해야 했다. 역시 보편적 현상으로서의 문화가 설명이 아니라 적절히 기술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결국, 고고학적 기록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든 없든 의심의 공간은 있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 문화적 과정에 대해 충분히 우리를 깨우치는 전적인 탐구가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 많은 경우, 고고학이 참된 ‘과학적 방법’을 갈망할 수 있느냐가 기본적 물음이 되어 왔다. 반면에 고고학에서 현재 통용되는 논의는 lan Hodder의 신랄한 비판과 그가 후기 과정주의 접근 방법이라고 부른 역사학적 고고학과 밀접히 관련된 방법에 의해 행동심리주의자와 nomothetic학파로부터 얼마간 비껴 나가게 되었다.
보다 급진적인 것은 포스트 모던과 사회적으로 자작된 고고학을 논쟁한 Shanks와 Tilly의 신 마르크스주의 작품인데 - 그것의 관점은 평론가가 ‘순수의 상실’이라고 작품의 충격을 말할 정도로 아주 혁신적이다. 이런 식으로 1970-80년대 신고고학은 우리가 그것을 따라잡기도 전에 과거의 것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의심하는 우리 분야의 아주 모호한 회의주의는 성서 시대에 고대 팔레스틴 특히 이스라엘은 독특하다는 가정-문화적 진화라는 기본적 원칙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뭔가 초역사적이라는-에 있다. 보다 노골적인 그것의 형태는 세속적 역사의 거부라는 단순히 종교적 근본주의이다. 그러나 말을 좀 더 현학적으로 바꾸더라도 특별한 변명(pleading)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신고고학의 이들 후기의 측면들에 대해 진실되고(꽤 그럴싸한) 의혹들이 배타주의자 혹은 의심 없는 믿음으로 충족되어지는 역사적 진술에 찬성하여 무시되어졌다.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신세계 고고학’의 신조(원칙)들은 우리 분야에서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그들은 종종 그들의 오랜 역사와 대단히 복잡한 사회계층론과 함께 ANE의 고분에 그들을 적용시키는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이 우직스럽게 차용되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1970년대와 80년대에 발전해 온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 같은 경우에다 이론적 틀을 제공해 온 1960년대 미국 신고고학의 주된 경향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전공이 성숙했기에 내적인 지적 자극으로 ‘혁명’이 탄생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은 그 경우가 아니다.
B.독립된 전공을 향하여?
우리가 1970년대 초 미국, 시리아-팔레스틴 고고학에 의해 무언가 논의하고 제안했던 상당수 경향들은 독립된 학문으로의 위상을 향하던 Albright-Wright시기를 특징 짓는 성서 연구의 지배 아래로부터 떠나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성서 고고학 운동의 지배는 신고고학의 도전이라는 형태의 외적 발전 뿐 아니라 역사학적 신학적 형태 모두의 내적 약화에 의해서도 위협받았다. 특히 족장 시대, 정복 시대 같은 성서적 전승의 에피소드에 대한 역사적 타당성을 제공하기 위해 이용되는 고고학의 목표는 아직 만날 수 없었다. Albright의 가장 저명한 제자 중 하나이며 성서고고학의 훌륭한 변호사인 D. N. Freedman은 최근 존경받을 만한 공평성으로 인정받았다:
성서를 고고학의 토대에 확고히 정초시키려는 Albright의 원대한 계획과 기대는 실패한 듯이 보이고, 적어도 허덕이는 듯이 보였던 실증할 수 있는 자료들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결국 모든 발굴은 행해졌었고, 행해진 것 그리고 아직 행해지지 않은 것도 있다. 얼마나 많이 수행되어져 왔나? 성서에 대한 고고학의 관련성에 관한 격심한 토론과 논쟁 그리고 그 역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많은 이슈들을 암시한다. 어떤 사람이 족장과 족장 시대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회의적인 목소리가 이제 그 장면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올부라이트주의자의 종합(synthesis)이 벗겨졌고 지금까지보다 해결로 좀 더 우리가 나아가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고고학은 가장 자주 질문되어 왔던 물음을 대답하는 데 아주 유용하거나 결정적인 증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특별히 초기 시대의 성서적 인물과 성서적 사건의 역사성을 증명하는데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