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3-11 10:18
그리스도인의 거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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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12  

그리스도인의 거룩함

C. H. 매킨토시

사람들이 성화에 대해 언급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 의도는 옳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그것들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성화의 진리에 관해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들도 상당수입니다. 사람들이 성경에 관해 잘못 얘기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면서도, 성화와 같은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에는 온전한 말씀에 기대어 진술해 나가는 것이 언제나 가장 바람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교리가 잘 설명되어 있는 신약의 중요한 구절들을 독자들에게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무엇이 거룩함이며 그 효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주목할 첫 번째 구절은 고린도전서 1장 30절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구속]이 되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끔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보물상자를 주셨는데, 그 상자를 믿음이라는 열쇠로 열 때 우리 눈앞에는 빛나는 보석들이 나타납니다.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라는 값진 보석들을 보십시오. 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는다면 이 모두를 얻는 셈입니다. 그분을 얻고 또한 이 모두를 얻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는 왜 구원함(구속)을 맨 나중에 언급했을까요? 왜냐하면 성도의 몸이 사망의 권세에서 신음하다가 구속되는 일은 맨 나중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려날 때 죽은 사람들은 무덤에서 일어서거나 눈 깜짝할 새에 변화됩니다. 이런 일이 점진적으로 일어나겠습니까? 확실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납니다. 몸은 죽은 상태였다가 “순식간에” 다른 상태로 변합니다. 눈이 한번 깜빡이는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우리의 몸은 썩음에서 해방되어 썩지 않을 것으로 일어나고, 수치스러운 것에서 영광으로, 연약함에서 강함으로 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요! 이러한 변화는 즉각 이루어지고 완벽하게, 영원한 영향을 미칩니다.

자, 그렇다면 “거룩함”(성화)이 이러한 “구원함”(구속)과 한 무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우리는 ‘구원함’은 장차 몸에 적용될 것이며, ‘거룩함’은 현재 우리의 영혼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말하자면 이 구절에서 사용된 의미로 본다면 ‘거룩함’은 즉각적으로, 완벽하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함께 언급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거룩함 역시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즉각 이루어집니다.
거룩함은 다른 선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완벽한 사역이며 사람의 노력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 몸이 영광스런 변화를 겪게 될 때에는 영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 역시 새롭게 길이 열려 그 미답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을 보내면서 이러한 영광으로 채워져 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을 위해 적합하게 준비된 여러 사역들은 순간적으로 적용될 것입니다. 성화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로 인한 실제적인 결과는 계속하여 발전되어 갑니다. 하지만 그 일 자체는 본문에서 표현되고 있는 바와 같이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거룩함으로 붙들고자 열심을 다해 분투하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이러한 소식은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모릅니다. 또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헛되이 수고하면서 자신을 위해 거룩함을 이루어가려고 하는지요! 그들은 자신의 의를 얻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무가치한 노력을 한 뒤에 그리스도께 나아와 의로움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성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은 의”를 얻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행위로써 거룩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노력을 통해 거룩함을 얻어야 한다고 짐작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은 것과 정확히 동일한 방법으로 거룩케 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되어주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뭔가 노력을 기울여서 그리스도를 얻게 되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믿음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모든 것들에 관해 이것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서 “거룩함”(성화) 부분만 뚝 떼어내, 다른 축복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그 어떤 근거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어떠한 지혜도, 의로움도, 거룩함도, 구원함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만한 일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심으로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실 때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충만도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만이십니다.

참된 거룩함 2:거룩함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된 것이다
다음 구절로 사도행전 26장 18절을 봅시다. 여기서 회심한 이방인들에 관해 말할 때 “죄들의 용서를 받고 내[주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흠정역)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구절에서 믿음은 우리가 거룩해지는 수단으로 소개됩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그 순간 그는 주님과 연결됩니다. 그는 주님과 하나가 되었고 그분 안에서 완전해졌으며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이 참된 의로움이며 거룩함입니다. 이것은 어떤 과정이 아닙니다.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점차 발전해가는 뭔가가 아닙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단호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사람들”로 보십니다. 구별‘될’ 사람들이라거나 구별‘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이에 대한 언급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성도들은 이러한 거룩함에 대한 지식으로 성장해갑니다. 그 능력과 진가를 알게 되고, 실제적인 영향과 결과가 어떤지 볼 수 있게 되며, 그것을 경험하고 즐거워합니다. “진리”가 그 영혼 안에 신적인 빛을 가득 쏟아내면서 성도는 이 악한 세상 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구별되었다”는 의미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 모두는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이 진리가 더욱 명확해질수록 거룩함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가져오신 것이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 외에도, 우리가 그분의 어떠하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되었기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즉시 일어나는 일이고 완전하고 영원토록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전 3:14).

그분이 의롭게, 거룩하게 하시는 일들은 영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영원이라는 도장이 찍힙니다. 그것에 무엇을 더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시다. 그것에서 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그리스도께 나와 그분을 믿는 순간, 그는 자신이 서 있던 옛 본성의 터전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그를 얽어매던 옛적의 모든 법적 지위나 그에 따른 모든 부속사항들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더 이상 “육체 안에” 있지 않고 “영 안에” 있게 됩니다(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하나님은 그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보실 따름이며 심지어 그리스도처럼 보십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영원토록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하나님의 가족 중에 있는 매우 연약한 아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절대적인 지위와 안정되고 영원한 위치를 누립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지체들에게는 한 가지 지위만 있습니다. 그들이 지닌 지식과 경험, 능력과 은사, 지성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이 서 있는 자리는 동일합니다. 그들에게 있는 의로움과 거룩함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빚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완전한 거룩함을 얻지 못했다면 필연적으로 완전한 의로움도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신다고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이 말뜻은 우리가 의로움과 “어느 정도의” 거룩함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일 그래야만 한다면 ‘의로움’ 앞에도 “어느 정도”라는 형용사를 붙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느 단어 앞에도 이 말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이 둘은 모두 완전하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둘 다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절반만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절반의 의로움이란 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절반만 거룩하다는 말도 어불성설입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가족 혹은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가 되어 온전히 의로워지긴 했는데 거룩함은 반밖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은 성경이 말하는 바와 반대되며, 신적인 본성에 따라 주어진 감각들은 여기에 모두 저항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보신다
성화와 관련된 대부분의 오해는 실질적으로 매우 다른 두 가지, 즉 우리의 위치와 행실, 혹은 우리의 지위와 상태 사이의 차이를 혼돈하는 데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도의 위치는 완전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의 행실이 매우 불완전하고 이리저리 요동하며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얼룩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위치는 변함없고 절대적이지만, 육체에 거하면서 날마다 온갖 종류의 적대 세력에 둘러싸여 있다보면 자신의 도덕적 상태는 날마다 영향을 받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는 여러 불완전한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행실에 따라 위치를 평가되고, 상태에 따라 지위를 가늠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신다고 생각할 것이고요.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결론으로 이끕니다. 만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이 아닌 내 안에 있는 자신을 통해 가치를 결정한다면, 나는 필연적으로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상당히 주의깊게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관점보다 자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훨씬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빛나는 천체가 지구에서 까마득히 먼 것처럼, 내 생각과 내 길은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길과 아득히 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그들의 행동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위치에 근거하여 보십니다. 그분이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절반만 의롭게 되었다고 하면 하나님께 큰 불명예를 안겨드리는 것이 되듯이 절반만 거룩해졌다고 한다면 하나님께는 동일한 불명예가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함없는 우리의 위치
이런 일련의 생각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는 권위 있고 결정적인 말씀에 의해 또 다른 유력한 증거를 만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의 영감어린 구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앞에서 사도는 타락한 인간들이 행하는 두려운 모습들을 나열하고 고린도 성도들도 이전에는 그와 같았다고 분명히 지적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사도는 그들에게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본성은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타락했다는 진실을 조금도 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도가 외친 ‘그러나’를 기준으로 얼마나 극명한 대조가 이뤄지는지 한번 보십시오. 한편에는 인간의 도덕적 타락의 상태가 모두 나열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성도의 절대적 완전함을 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비교입니다. 영혼은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순식간에 옮겨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were) [그러나] …하심(are)을 받았느니라.” 자, 지금은 확실히 뭔가 다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순간 그들은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늘에 적합한 자들이 되었고, 만일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작품에는 큰 오점이 남을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네. “깨끗함을 받으라.”
이 말씀에 어떤 의심이 있으리요?
주님의 말씀은 신실하시니,
그 사역은 이미 완성되었다네.

이 말은 참으로 사실입니다. 이제 갓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라도 그가 뭔가를 이루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인해 “깨끗함을 받습니다.” 물론 그는 진정한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더욱 알고 경험하면서 성장해갈 것입니다. 그는 실제적인 거룩의 능력을 접하여, 습관과 생각, 감정, 정서, 여러 관계들, 말하자면 자신의 전반적인 삶의 행로와 품행, 인격에 하나님의 거룩이 어떤 놀라운 영향력을 행사하시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밝히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연결된 순간, 하나님 보시기에는 완전히 거룩해졌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 임재의 빛살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집중적으로 발산되는 영광의 빛을 반사하게 됩니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활동영역이나 생활환경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광야의 불모지 위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성소로 난 황금길 위에 서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욕된 몸이 아닌 영광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선 위치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주님께 받아들여지고 완전해지며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는 이 모든 일은 그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는 순간 확실히 결정됩니다. 앞으로도 이 위치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고린도전서 6장 11절을 통해 우리가 자연스럽고 의심할 여지없이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참되고 실제적인 거룩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가 분명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떤 진리와 이 진리를 실제로 적용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것을 구분합니다. 다시 보십시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 관한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에게 이 진리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보려면 다음 구절을 보아야 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5-2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

하지만 우리가 이 진리를 어떻게 적용하며, 이런 결과는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일까요? 성령께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일하심으로 가능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도 읽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성하신 사역에 근거하여 성도를 실제적으로 거룩하게 하는 사역을 행하십니다. 즉 성도의 마음과 양심에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적용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완전한 위치에 관한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새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완전한 위치에 걸맞지 않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도록 도우십니다.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거룩함이 깃들지 않은 마음상태와 정욕이나 열정을 경계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구별되어 있으며,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떠나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온전히 거룩하게”(고후 7:1, 새번역) 합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최상의 정결함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성도의 거룩하고 행복한 특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과 습관들은 자신이 이미 완전하게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는 고결한 진리를 충분히 인식하고 거기서 나오는 힘에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되고 실제적인 거룩함입니다. 참된 거룩은 우리의 옛 본성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치 부서져버린 것들을 다시 세워보려는 헛된 노력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진리”를 능력 있게 적용시키심으로 새 사람이 자신이 속한 영역(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게 하십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이 소중한 진리로 인해 도덕적 능력이 향상됩니다. 옛 본성에 속한 것들을 억제하고 다스리는 영적 능력도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를 둘러싼 악으로부터 구별되는 능력도 향상됩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천국에 합당하게 변화되어 갑니다. 그곳을 향해 순례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복된 일이지요. 또한 그런 사람이 되게 하는 거룩한 훈련들이 더욱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영혼이 어떤 고귀한 위치에 서 있는지를 눈뜨게 해주시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을 가능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운 사역으로 말미암아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를 실제적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히 10:10) 자기 몸을 드리심으로 성도들이 거룩하게 된(are)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사 이 지식을 깨우쳐주시고 경험하게 도우시며, 믿는 그 순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가능해진 일들을 다른 이들도 알 수 있도록 드러내려는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성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에 있어서는 영원히 완전합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이 진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매우 실제적인 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 제시된 거룩함은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고 영원히 참된 실재로서만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매일 매시간 가져오신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거룩함을 본다면 명백히 점진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나는 오늘보다 내일, 그리고 내년에 개인적으로 더 거룩해져야 합니다. 실제적인 거룩함에 있어 나는 은혜를 통해 날마다 진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내가 주님을 믿은 바로 그 순간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으로 가능해진 그 절대적인 거룩함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이 부분은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성령님께서 성도 안에서 주관적인 사역을 이루실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토록 완전하게 되었다는 객관적인 진리에 기초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유의하십시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여기서는 우리가 열렬히 추구하여 “따라야 할” 거룩함이 제시되었습니다. 모든 참된 성도라면 반드시 이렇게 살아가고자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사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이것이 우리 지성에 교리로만 남아 있지 않고 마음 안으로 들어와 거하게 하시고, 신성하고 강력한 영향을 주는 실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거룩하게 하시는 진리의 능력을 알게 하시고(요 17:17), 거룩하게 하시는 믿음의 능력(행 26:18)과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고전 1:30, 6:11), 그리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님(벧전 1:2)과 거룩하게 하시는 아버지의 은혜(유 1)에 눈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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