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3-19 12:02
조회 : 2,758
|
술 담배와 죄의식
술 담배는 사단의 작품(?)
간혹 술 담배 같은 무익한 것이나 자연 재앙은 사단이 지었고 일으킨다는 아주 엉뚱한 주장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는 동양적
이원론에 바탕을 둔 기독교에선 절대 배격해야 할 사상입니다. 한 마디로 우주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의 싸움터로 승패가 번갈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주가 악한 신의 수중에 들어가는 때와 장소가 있다는 뜻인데 구원의 내용과 믿음의 본질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니 아예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악한 영적 존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주의
주인이자 창조주는 오직 한 분이자 삼위일체이신 하나님뿐입니다. 사단과 그 수하졸개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영적 존재인 천사 중에
일부가 타락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하나님이 공중권세를 일시적으로 사단이 잡고 있도록 당신의 절대적 섭리와 주권으로
허락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는 사단의 권세에 절대 다시 묶일 수
없습니다. 물론 신자와 사단의 영적전투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주님의 재림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지만 그 전부를 주관
운행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입니다. 욥의 경우에 보듯이 사단이 능력은 가졌지만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결정권은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악한 존재 사단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다른
어떤 존재에게 빼앗기기는커녕 절대로 영향조차 받지 않습니다. 무에서 유가 되는 창조는 오직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사단이 창조에
개입 내지 영향을 미쳤다면 창조 자체가 선하고 완전한 수준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술 담배도 당연히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그럼 술 담배를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아편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분명할진대 어떻게
판단해야 합니까? 이 문제는 비유컨대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목적은 선했지만 나중에 인간이 악용한 것과 같습니다. 노벨과
다이너마이트에는 잘못이 전혀 없습니다. 토목공사 발파에 사용되면 선하고 인명 살상용으로 둔갑하면 악해집니다. 따라서 이 질문도
술, 담배를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을 제대로 알면 해답도 자연히 얻을 수 있습니다.
술 담배를 지은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자를 사랑한다고 나머지 불신자를 저주하지는 않습니다. 요나서에서 보듯 호박넝쿨조차 당신이 지으신
피조물로 사랑하므로 인간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예수를 믿음은 영원한 구원의 은혜에 드느냐 못 드느냐의 기준일 뿐입니다.
다
른 말로 불신자나 신자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동일한 환경 가운데, 신학적 용어로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 살 수 있습니다.
예수 믿지 않았다고, 더 정확하게는 구원으로 예정하지 않았다고 당장 심판하거나 현실적 불이익을 따로 주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아담의 타락으로 함께 벌을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에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고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 마디로 모든 인생은 희로애락이 겹치게 되어 있습니다. 슬픔과 상처와 분노와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칩니다. 신자는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여러 고난을 이겨낼 수 있지만 불신자는 마땅한 수단이 없습니다. 술 담배 아편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임시방편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수단으로 불신자에게 주신 것이 술
담배입니다. 아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질병이나 부상의 극심한 고통만 잠시 진정하거나 이겨내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술 담배는 정신적 고통을, 아편은 육체적 고통을 진정 마취시키는 효용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임시
방편적인 수단이란 항상 완전한 수단이 따로 있거나 그것이 마련될 때까지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로선 정신적
고통은 기도와 말씀으로 이겨낼 수 있고, 육신적 고통은 이제 의술의 발달로 이겨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자에게만은 술 담배의
창조 목적의 효능이 다한 것입니다.
또 임시방편이기에 더 완전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주만물을 운행하고 인생만사를 주관하심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롬1:18-23) 또 때가
차매 당신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직접 오셔서 인간의 모든 상처, 질곡, 문제, 고통, 수치, 허물, 죄악을 다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Comforter, 위로자)를 당신을 믿음으로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신자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예수를 모르는 일반인도 술, 담배, 아편 등이 상처와 고통을
진정 마취시키는 일시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당신의 뜻을 분명히 보여 알게 했습니다. 그 목적 외에 사용할 때에는 확실하게 부정적인
부작용과 심하면 큰 폐해가 나타나도록 했습니다. 임시방편에 불과하므로 절대 과도하게 또 상시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 담배와 죄의 문제
그런데 신자마저도 술 담배를 세상 윤리와 연결시키는 우를 많이 범합니다. 도덕적으로만 따지면 그 자체는 다이너마이트처럼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아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술은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잘 쓰면 약도 됩니다.
담배도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고 마음에 안식을 줍니다. 그러나 똑 같은 목적으로 시작은 했는데 과하면 술 담배는 오히려 인간관계를
악화시키고 몸도 망치며 금전적, 가정적, 사회적 폐해가 발생합니다.
아편의 경우는 마취약이 개발됨으로써 용도폐기
되었습니다. 물론 아주 잘 조정하여 사용하면 부작용 없는 자연 진정 내지 마취제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조정과 관리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에 오히려 폐기 처분하는 것이 낫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 윤리로 따지면 술, 담배, 아편은
잘만 사용하면 득이 되므로 죄의 문제와 연관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그들로선 논리적으로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정당한 의견입니다.
반면에 신자의 경우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지은 죄입니다. 술 담배는 정신적 고통이 있을 때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위로와 평강을 구하고 의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죄가 됩니다.
물
론 친구나 부부끼리 정말 순수하게 그 관계를 더 친밀하게 할 목적으로 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술을 했을 경우까지 그분께 죄가
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신자라고 24시간 기도와 말씀으로만 고통을 이기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하지 않도록
절제를 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과다한 사용 즉 중독 내지 일상적 습관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자연히 도덕적 죄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신자는 가능한 술 외에 인간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담배는 정서를
일시적으로 진정시키는 효과 말고는 백해무익입니다. 신자로선 기도, 말씀, 찬양 등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을 얻을 수 있는 더
강력하고 영속적이며 완전한 수단이 있습니다. 담배 자체가 도덕적 죄는 아닐지언정 담배로 고통을 잊겠다는 뜻이라면 하나님께
죄입니다. 요컨대 알게 모르게 술 담배가 하나님을 대체하는 효용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담배가
백해무익이라는 것은 건강과 연관됩니다. 신자로선 육체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므로 아름답고도 건강하게 가꿔야 합니다. 단순히
의무가 아니라 건강한 신체는 하나님께 받은 복이자 그분의 은혜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통로입니다. 따라서 술, 담배는 하나님이
주신 육체를 잘 가꾸지 못하게 만든다는 면에서 그분께 죄가 됩니다.
요컨대 신자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연관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술 담배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육신의 건강을 해치니까 금해야 합니다. 술의 경우는 건강과
인간관계에 좋은 점이 있지만 그 측면에 한정지어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항상 문제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술 담배에
중독습성과 금연현상이 따르게 해놓으신 이유는 신자는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특별한 위로 수단이 없는 불신자라도 절대 과하게 사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론 절제하지 못했다고 해서 당장에 하나님이 야단치거나 벌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이는 이웃이나
원수를 사랑하지 못했다고 해서 당장에 죄가 되고 그분의 징계로 연결될 수 없지만, 여전히 신자로선 잘못하고 있는 문제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원리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신자라면 술 담배를 하는 만큼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 많이 계속해서 할수록, 아니 극히 일부라도 그것들이 하나님의 역할을 알게 모르게 대체하는 효과까지
낸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알기 쉽게 말해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술 담배에 의지하느냐는 것입니다.
술 담배로 죄의식이 드는 이유
어떤 문제에 죄의식이 드는 이유는 도덕적 종교적 계명을 어겼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판단을 하게 되는 경로는 두
가지입니다. 후천적으로 도덕 내지 신앙 교육을 받은 것과 선천적으로 하나님이 심겨준 양심에 의한 것입니다. 술 담배의 경우는 둘
다에 해당됩니다.
학교 윤리 시간에 술 담배의 폐해는 몰라도 죄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한국교회에선 그동안
종교적 계명으로 금기시해 왔습니다. 종교적 계명이란 당연히 도덕적 선악간의 판단을 그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왜 술
담배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지, 무엇 때문에 금해야 하는지는 심도 있게 가르치지 않고 단순히 죄라고만 가르쳤기에 신자들도 무조건
술 담배를 해선 안 된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우를 범했습니다.
그렇게 된 시초는 한국에 기독교를 처음 전한
외국 선교사들에게 이어집니다. 당시는 한국 국민들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했는데 지금 같이 겨울에도 영농하는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고
여가를 즐길만한 시설 내지 수단이 없었습니다. 가을 추수기 이후 봄에 개간할 때까지의 농한기(農閒期)에는 주로 술, 담배,
도박으로 지샜고 필연적으로 온갖 죄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신자의 삶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가장 큰 장애로 주초(酒草)
문제를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죄라고 가르쳤다고 해서 하나님이 심겨준 양심으로 인해 죄의식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교육에 의한 죄의식입니다. 반면에 술 담배를 하는 불신자의 경우에도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나름대로의
죄의식은 생깁니다. 중독으로 인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가정적 부작용과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폐해 현상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컨대 술을 마시면, 그리 자주 또는 많이 먹지 않아도, 아내 아닌 아무 여자를 봐도 음욕에 사로잡히게
된다든지, 돈을 아무렇게나 낭비하고 싶다든지, 폭력적 논쟁적으로 변하고, 분노와 복수심이 증대하며, 아무 까닭 없는 염세 비탄
허무주의에 빠지는 등의 현상을 분명히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담배도 잠시 몽롱한 심리 현상에 젖어들거나,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다가도
나태나 무책임으로 이끄는 효과가 있음을 느낍니다.
또 사람에 따라선 술 담배에 과하게 의존해서 본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아주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심지어 완전히 폐가망신까지 합니다. 따라서 술 담배가 만들어내는 악한
부작용을 많이 보고 겪기에 그것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연히 죄의식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
런 죄의식은 본인이 구체적으로 명확하게는 몰라도 하나님이 인간 심령에 심어놓은 양심에서부터 유발된 것입니다. 임시방편의 안정 내지
치유책을 절대 과도하게는 사용하지 말라는 그분의 경고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들은 것입니다. 또 중독과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모든 고뇌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부터 먼저 찾으라고 인간의 양심을 두드리는 그분의 호소입니다.
커피와 죄의식
커피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단지 기호식품의 일종입니다. 마치 겨자, 후추, 고추 등을 과도할 정도로 아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고 또 하등 죄와 연결되는 문제도 아닌 것입니다.
물
론 커피도 중독이 되고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금단현상도 나타납니다. 또 술 담배처럼 한시적으로 정서를 안정 치유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자라고 24시간 기도와 말씀으로 고뇌를 이겨낼 수는 없고 또 그러는 것이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술, 담배와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질문자님이 의아해 했듯이 바로 아무리
중독이 되어도 죄의식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지정의로 판단하고 양심으로 느끼기에도 전혀 죄라고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 앞에도 죄가 아닌 것입니다.
죄의식이 안 드는 구체적 이유는
술과는 달리 커피를 마셨다고 음란한 생각이 들거나 폭력적 방임적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커피로 인해 가정적, 금전적,
신체적, 사회적 폐해가 없습니다. 담배처럼 정서와 육신을 망가뜨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효과가 더 많습니다. 정신이 맑아져서
일에 집중하게 되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정서적인 안정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독이 따르고 약간의
금단 현상이 생기는데 이유는 마찬가지로 너무 과하면 혹은 체질과 건강상태에 따라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안정과 힘을 얻는 데에 커피에만 너무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신을 맑게 하는 용도로만 절제한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주신 아주 좋은 선물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사람의 육체와 정신적 특성에 따라 커피와 동일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창작품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수도 없이 많고
지역적으로 다른 과일, 채소, 약초, 열매, 차, 등등 중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골라서 과하지 않으면서 정신과 건강에
유익한 방향으로 적절하게 사용하면 됩니다. 그래서 기호식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커피는 죄와는 아무 연관이 없고 오히려 잘
활용하여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위해 먹고 마셔라.
신자는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10:31) 해야 합니다. “식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는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게”됩니다. 따라서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서 모든 일을 “믿음으로 좇아” 해야
합니다.(롬14:20-22)
믿음으로 좇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되 거리낌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술 담배의 문제에 적용하면 하나님이 계명으로 금하고 도덕적으로 죄가 되어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성경에는 그런 구체적 언급이 없습니다. 대신에 성경이 말하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거룩하게 가꾸어서 그 존재와 삶과 인생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맡긴 소명을 죽을 때까지 적은 일에서부터 충성해야 합니다. 물론 죄와 사단과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눠지고 실현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신자로 인해 더
넓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입니다. 그럼에도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일에 도움이 될지 장애가 될지를
사건과 장소와 시간과 사람에 따라 잘 판단하여 행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부정적 요소가 많은데다, 잘 절제가
되지 않고, 중독성마저 따르므로 신자라면 가능한 술 담배를 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식물은 다 하나님이 창조하여 정한
것이로되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운”(롬14:21)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로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는 결단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술 담배가 구원을 얻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신앙을 성숙시키는 데에 누구에게나 다 큰 방해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골2:16) 해야 합니다. 남들의 구원이나 신앙의 좋고 나쁨을 꼭
술 담배와 연관시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좇아 행한다는 것이 종교 행위, 교회에서 시키는 일,
성경 계명들을 준수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권능이 더 많이 증거 되고 확장되는데 도움 되도록
행하는 것입니다. 술 담배의 문제도 그렇게 하는 데에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칠지 스스로 잘 판단해서 시행하면 됩니다.
그
럼에도 어쨌든 술 담배를 하는 그 만큼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방해 받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신자가 원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당장에
정죄나 징계 받을 문제는 아니지만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 원수로서 분을 품고 있으면 잘못하고 있으며 엄격한 의미에서 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나아가 사단에게 넘어갈 빌미를 쉽게 줍니다. 신자가 술 담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로 인해 다른
부작용이나 도덕적 죄를 수반하지 않는다 해도, 이웃 사랑을 전혀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육신의
건강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