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 (The Three Offices of Christ)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외적으로 보여준다. 구약 이스라엘에 주어진 직분은 제사장, 선지자, 왕이었다. 진정한 왕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종류의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여주었다. 구약의 3 직분은 모두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다.
1. 선지자
선지자라는 말은 구약 히브리어로 “나단 (נָבִיא)”이며, 신약의 헬라어로는 “프로페테스” (προφήτης) 이다. 구역 히브리 및 신약의 헬라어 단어의 선지자는 “대언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진리 (forthtelling, 오늘날 설교와 같음)이며, 그리고 미래에 발생할 예언 (foretelling)이다.
그리스도는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성육신 이전)에 구약에서 종종 “하나님의 사자”로 나타나셨다 (창 16:7; 22:11-12, 15; 삿 13:3-20). 물론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말하지만,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창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기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하갈에게 친히 하갈의 후손을 번성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물론 일반 은총으로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내가” 1인칭으로 사용하셨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에 “여호와의 사자”는 그 제물을 가리켜 자기 자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말씀하셨다. 물론 성육신 이전의 성자 예수님께 제물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가리킨다.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자는 “너희가 구하는 주” 곧 “언약의 사자”이다. 이 명칭들은 모두 장차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육신 이후 신약, 행 3:22-23에서는 신명기 18:15의 예언대로 오신 그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사도들은 구약에 예언된 그 선지자를 전했고, 이분이 복음의 기초가 되신다.
(행 3:22-23)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2. 제사장
제사장은 히브리로 “코헨 (כֹּהֲנִ)” 이며 헬라어는 “히에루스 (ἱερεύς)” 이다. 제사장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는 직분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이나 제물은 신약의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의 죽으시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친 것을 예표로한다 (히 9:9-14). (히 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여기에서 “이 장막”은 6-8절의 기록된 것들, 즉 구약의 제사제도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또한 “현재까지의 비유”라는 말은 (παραβολὴ εἰς τὸν καιρὸν τὸν ἐνεστηκότα) “현시대, 즉 신약 시대까지 비유”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혁의 시기”는 신약 시대를 말한다.
구약의 제물은 신약의 실체에 대한 예표 (type)이다. 신약의 실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신 주님의 속죄 제사이다.
메시야는 반드시 고난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인류가 범죄하고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저주를 받은 자를 구원하는 방법은 그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예수님이 대속죄물로 자기의 몸을 영원한 제사로 드린 것은 갑작스런 사건이 아니라, 구약에서 희생제물로 예표된 예수님의 대속죄물에 대한 예언의 성취이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된 대속적인 죽음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셨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인류의 죄를 위해 대속적인 죽음임을 많이 증거한다.
제사장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는 사역을 하며,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이다. (히 5: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벌코프는 예수님께서 제사장직을 수행하시기 위해 율법 아래 오셔서 율법을 온전하게 순종하셨으며 이것을 능동적 순종(active obedience), 또한 그가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시고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신 것이 수동적인 순종 (passive obedience) 이라고 한다. 그리고 벌코프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이 되고, 또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 (그리스도의 수난) 때문에 우리가 사죄함을 받는다.
그러나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2가지로 나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하나로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들이 순종하신 일이다. 능동적, 수동적으로 나누어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바빙크에 의하면 성경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을 “하나의 의 (ἑνὸς δικαιώματος), 하나의 순종 (τῆς ὑπακοῆς τοῦ ἑνὸς)”으로 말한다고 주장한다.
(롬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바빙크는 성도들이 죄용서함과 칭의의 은혜는 예수님의 사역 전체에 기초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는 것만 (능동적 순종)이 칭의가 될 수 없고, 예수님의 죽으심만 (수동적 순종) 사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모든 사역 전체가 (성육신, 고난, 죽으심, 부활, 율법을 완성하심, 등) 칭의와 사죄의 기초가 된다는 주장이다.
개신교에서는 만인 제사장 (Priesthood of all believers) 교리를 주장한다. 이것은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너희는”은 평신도들을 가리킨다. 신약에 사용된 “제사장”이라는 말은 특별한 계급에게 주어진 직분이 아니다. “제사장” (히에루스; ἱερεύς)이라는 말은 신약에서 교회의 특별한 직분자들에게 사용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성경은 제사장의 사역, 곧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사역이 목회자에게만 있다고 하지 아니하며,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딤전 2:5)이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권리는 목회자, 평신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게 주어졌다.
3. 왕직
구약의 왕들은 신약에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을 예표한다.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장은 다윗 언약의 절정을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나라와 다윗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다윗의 왕위는 유다의 멸망(586 BC)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면 이 나라와 이 왕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말한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예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눅 1:31-33),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분명히 다윗의 왕위와 다윗의 나라는 신약에 오실 메시야의 왕직과 메시야 왕국의 모형과 그림자이었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다윗의 언약이 성취되었다.
그리고 이사야의 메시야 탄생의 예언을 보면,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는 왕이심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사야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리고 구약 시 110편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되신 메시야 이심을 다윗의 입을 통해 전한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은 “성부 하나님”께서 “나의 (다윗)의 주”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다윗의 주는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 타이틀이 “주” (κύριος)이다.
스가랴 9:9에서도 오실 메시야의 왕되심을 말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많은 곳에서 가르친다 (눅 19:38; 마 21:5; 요 1:49; 행 17:7; 엡 1:20-22; 마 28:18; 고전 15:25; 계 19:16).
고전 15:27; 엡 1:20-22에서 “특별히 만물 (모든 것을) 발아래 두신다” 하신다. 여기에 “모든 것 (πάντα)”은 원수들을 포함한 만물이다. 예수님만이 온 우주 만물의 왕이시고, 주가 되신다. 주님께서 만유의 왕이시기 때문에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이길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