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27 10:28
초신자를 위한 신앙생활 길잡이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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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698  

“너희는 나를 시험해 보라” 


Part 1. 하늘 창고를 여는 비결

초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십일조다. 신앙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엔 자신이 피땀으로 번 돈을 이유 없이(?) 10%나 헌금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은 억울할 수도 있다. 또한 어렴풋이 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피땀 흘려 번 물질을 헌금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교회 내에서 십일조를 바쳐야 되는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십일조는 구약시대 유산이며 한국교회의 잘못된 관행이라는 주장이 있다. 과연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 십일조 바쳐야 되는가 말아야 되는가? 십일조에 대해 교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11월 23일~30일까지 20~40대 남녀교인 100명을 대상으로 십일조와 기타 헌금생활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현재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45%가 ‘교회에 다닐 때부터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31%는 ‘처음에는 십일조를 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고 있다’, 14%는 ‘교회에 헌금을 내지만 십일조는 하지 않는다’, 10%는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현재 형편이 어려워 미루고 있다’고 밝혀 80%이상이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거나 해야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십일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가운데 10%를 드리는 것’(84%)이라고 생각했으며, 이외에 소수지만 ‘구약시대 제도일 뿐이며, 축복 받는다는 것은 헌금을 더 걷기 위한 것이다’(5%), ‘다른 헌금을 내면 굳이 십일조를 낼 필요가 없다’(4%)는 반응도 보였다. 또한 최근 일부에서 십일조 제도는 교회의 잘못된 관행이라는 주장에 대해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65%는 반대한다고 응답했으며, 그 이유로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 ‘교회에서 십일조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라고 답했다. 찬성이란 응답은 19%, 무응답은 16%로 나왔다.

한편 교인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헌금에 대해 1위가 건축헌금(23%), 2위 십일조(22%), 3위 절기헌금(5%) 순이었으며, 부담되는 헌금이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39%나 됐다. 현재 교인들이 교회에 내는 헌금들을 백분율로 분석했을 때, 공동 1위가 주일헌금과 십일조로 교인 100명 가운데 88%만 십일조와 주일헌금을 하는 것으로 나왔다. 2위 감사헌금(86%), 3위 절기헌금(71%), 4위 건축헌금(43%), 5위 선교헌금(40%), 6위 구역헌금(38%) 순으로 나왔으며 기타로는 자선 및 구제헌금이 22%, 월정헌금이 17% 등으로 나왔다. 

성경이 말하는 십일조 정신과 기원
성경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헌금이 있다면 ‘십일조’다. 십일조의 기원과 정신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경에서 십일조에 대한 첫 기록은 창세기 14장에서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만남에서 언급된다(창14:17-24).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한 전투에서 많은 전리품 중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바치고 축복을 받았다.

 

두 번째는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던 중 벧엘에서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를 보고 축복을 받은 후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 했다(창28:10-22). 우리는 이 두 이야기에서 십일조는 곧 축복이란 공식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십일조가 의무적인 관례로 행해지게 된 것은 모세가 율법으로 제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즉 십일조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 명령하여 제정하신 것이다.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27:30).

이처럼 하나님은 십일조가 자신의 것이며 성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며 성물에 손을 대는 것과 같다는 것.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 떠난 것이며, 하나님의 물건에 손을 댄 자의 결과는 하나님의 강력한 진노와 저주가 기다리고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말3:7-9). 반면에 온전한 십일조는 하늘 창고(축복)를 여는 비결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데(말3:10), 이것은 단순히 물질만의 축복을 약속한 것이 아닌 영육간에 내려지는 축복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십일조가 갖는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①자신의 모든 것 즉 생명이나 재산?건강?명예?실력 등이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가 된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②상징적인 최소한의 액수를 드리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열 가운데 아홉은 우리가 쓰고 그중 하나만 하나님께 돌려 달라는 것이다. 
③신앙생활의 성별의 표식으로 하나님께서 거룩히 성별하셨음을 의미한다. 
④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요구하시는 것이다. 

십일조의 용도와 목적


구약에서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는 사용 용도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로 성전 운영을 위한 십일조다.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이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재물이나 성전을 보수하고 수리하는데 사용됐다(왕하12:4-15).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되는 전기료, 수도료, 건물 보수비, 각종 비품 구입 등 교회운영관리를 위한 비용과 같다.


둘째로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위한 십일조다. 열두 지파 가운데 가나안에서 분깃을 얻지 못한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의 생활비로 사용했다(왕하12:16, 신18:1-5). 교인 헌금에서 지급되는 교회 교역자와 직원들의 사례비(생계비)가 이에 해당된다.


셋째로 자선과 구제를 위한 십일조다. 매 3년마다 떠돌아다니는 객이나 부모 없는 고아, 남편 없는 과부 등 유업을 얻지 못하는 자들을 배부르게 먹이는데 사용되었다(신26:12-13). 교회에서 벌이고 있는 선교와 구제헌금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십일조를 바치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에게 일깨워 준다. 즉 하나님의 소유물을 대신 맡아 경영하는 청지기(종)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둘째는 성직자와 교직원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 할 수 있게 한다(고전9:14).

 

한 예로 이스라엘 백성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에는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중단됐고, 고아와 과부들이 굶주리는 결과를 가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다. 

한편 레위기 27장의 십일조의 법칙이 있는데, 주님을 속이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①십일조는 예외 없이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
십일조는 월급에서만 십분의 일이 아닌 보너스나 그 외 모든 수입도 예외 없이 무조건 십분의 일을 바쳐야 한다(레27:30).


②십일조를 미루거나 속였을 때는 20% 과태의 법칙 
십일조를 수개월간 내지 않고 미루는 경우나 십일조를 속여 적게 내거나 지불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20퍼센트의 벌금이나 과태료가 추가된다(레27:31).


③좋은 것을 흠 있는 것과 바꾸면 모두 몰수의 법칙
하나님께 십일조(헌금)를 바치려다가 아까운 마음에 적게 바쳤을 경우에는 원래 작정한 십일조까지 둘다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레27:32-33).


Part 2. 헌금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수단

최근 한국교회에서는 헌금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과연 십일조 생활을 해야 되느냐’는 것과 ‘성도들의 헌금을 일부 목사들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다’,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헌금의 종류가 너무 많다’ 등이다. 특히 헌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역자의 설교가 마치 헌금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주거나, 헌금 액수는 곧 믿음의 분량이란 잘못된 생각을 심어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헌금 거부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류도 생겨나고 있는데, 성도에게 있어 헌금이란 무엇일까?

1. 헌금의 의미와 종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헌금에 대한 정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마22:21). 또한 헌금은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서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고후9:13). 그렇기 때문에 헌금을 단순히 헌물이나 금전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넓은 의미에서 헌금은 물질(금전)과 봉사(헌신), 마음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증표인 헌금은 사람의 강요에 의해 것이 아닌 자발적인 차원에서 자원하는 마음에서 바쳐야 된다(고후8:10). 강제로 내야 하는 세금과는 그 성격과 다르며 십일조만큼은 성도의 헌금(Contribution)의 어원적 의미를 살펴보면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 ‘제물’을 뜻한다(마5:23).

 

신약에서 헌금(연보)을 ‘코이노니아’(koinonia, 친교)로 사용하고 있는데, 교회 헌금은 성도간의 교제나 나눔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도들이 각출해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모금되었기 때문이다(고전16:1). 또한 ‘율로기아’(eulogia)도 사용됐는데 ‘은혜의 선물’이란 뜻으로 헌금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린도서를 읽다보면 고린도 교회에도 요즘처럼 헌금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돈을 빼앗아가는 방법으로 모금운동(헌금)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했다(고후12:16-17). 마치 현대의 교역자들이 교회 헌금을 늘리기 위해 헌금강요 설교를 한다고 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전?후서(고전 16장, 고후8~9장)에서 헌금은 어떻게 바쳐야 되며(고후9:1-5), 헌금의 원리와 목적(고후8:6-15), 헌금을 모으는 절차(고후8:16-24), 헌금 관리자의 요건(고후8:22), 헌금이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고전16:1) 등 초대교회에서의 헌금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한 구약시대의 헌금에 대한 정의는 요아스 왕 시대의 성전개혁에 관한 열왕기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왕하12장). 구약시대에도 성전에 바치는 헌금이 일반 헌금과 의무적으로 부과된 헌금, 자원하여 주의 성전에 가져오는 헌금 등으로 세분화음을 볼 수 있다(표준새번역, 왕하12:4). 이렇게 걷힌 헌금들은 성전보수와 관리, 운영 및 제사장들의 생계비 등으로 쓰여졌다. 지금으로 친다면 일반 헌금은 주일헌금, 의무 헌금은 십일조와 절기헌금, 자원 헌금은 감사헌금이다. 현재 교회에 바치는 헌금의 종류를 크게 5가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십일조 - 소득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으로 하나님께서 간곡히 명하신 것이다.
2)주일헌금 - 매주 예배시 바치는 예물로써 한 주간의 생활에 대한 감사이며, 주일헌금은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됐다. 
3)특별작정헌금 - 목적 헌금으로 교회건축이나 선교, 자선 등 목적을 위해 작정하고 내는 헌금이다.
4)감사헌금 - 생일, 회갑, 돌, 추도, 장례, 이사, 건강, 사업, 결혼 등 기념하거나 감사할 일이 생겼을 때 드리는 헌금이다.
5)절기헌금 - 신년,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교회절기를 맞이하여 드리는 헌금이다.

2. 왜 헌금을 바쳐야 하는가?


우리가 헌금을 바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레27:30, 마23:23). 그렇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헌금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헌금 바치는 행위는 예배의 연장선으로 구약시대의 예물과 같은 것이며, 내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표시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을 교회가 돈을 모으는 방법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헌금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감사하는 삶을 가르치는 방법이다. 또한 헌금은 신자들의 신앙상태를 가름하는 척도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비결 중의 하나로, 주님께서 이미 축복해 주셨음에 감사하여 드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헌금을 무엇을 얻어내기 위한 투자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만의 하나라도 심중에 얻어낼 목적으로 바쳐졌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물이 될 수 없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표준새번역, 말3:10)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거나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표준새번역, 마6:20-21)


끝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의 주인이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경영하는 청지기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만물을 경영함으로서 얻는 수익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이것이 바로 헌금인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①만물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② 만물을 맡아서 지키는 청지기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③위임받은 청지기는 그 위임받은 것을 주인의 뜻대로 잘 관리할 의무가 있는데, 헌금은 바로 이러한 청지기 정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려지고 사용되어야 한다.

3. 바람직한 헌금 자세는 무엇인가?


1) 헌금 드릴 때의 마음가짐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드려야 될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각각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내야지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고 있다(공동번역, 고후9:7).
헌금은 믿음으로 하는 것으로,


①가난 속에서도 기쁨으로 헌금을 해야 한다(고후8:2). 
②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후에 헌금을 해야 한다(고후8:5). 
③하나님의 뜻을 좇아 헌금해야 한다(고후8:5). 
④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풍족하게 헌금해야 한다(고후8:7,15). 
⑤헌금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후9:5). 
⑥인색함이나 억지로 드려서는 안되며 처음 정한대로 헌금을 해야 한다(고후9:7). 
⑦억지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고후8:3). 

2) 헌금 어떻게 바쳐야 하는가 
헌금은 교회가 돈을 모으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이 부자들이 성전에 놓인 헌금궤에 자랑하듯 넣는 헌금은 참된 헌금이라 볼 수 었다.

주님은 부자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통해 참 헌금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신다(눅21:1,4). 또한 헌금은 돈이 많고 넉넉하다고 해서 많이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생활에 여유가 없다 해도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첫째, 헌금은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향한 사랑의 증거로 내야 한다(고후8:8)
둘째, 하나님께 ‘뇌물’을 바치는 것과처럼 드리거나 미신적으로 드려서는 안 된다. 
셋째, 일상생활 속에서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드려야 한다. 
넷째, 풍성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한다(고후8:7). 1천원을 헌금해도 깨끗한 지폐로 준비해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순종의 정신으로 바쳐야 한다(신26:14). 
여섯째, 헌금은 충동이 아닌 계획해서 해야 한다(고전16:2).

바람직한 헌금의 자세는 
①능력에 맞게 
②은밀하게 
③댓가를 바라지 않고 드려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6~15절에 헌금하는 자의 자세와 헌금의 효용성에 대해 상세히 가르치고 있다. 


Part 3. 성경에서 나타난 헌금자의 유형

나는 어떤 유형의 헌금자일까? 성경에 나타난 헌금을 드린 성도들의 유형들을 통해 현재 내가 드리고 있는 헌금자세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1. 모범적으로 헌금자 상


①가난 중 최선을 다하는 헌금자세(눅21:1-4, 왕상17:9-15)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과 남은 양식으로 엘리야 대접의 사르밧 과부의 모습은 바람직한 헌금자의 모습으로 가장 많이 예화로 등장한다. 두 과부들이 드린 헌금은 적은 헌물이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간절한 마음도 함께 드렸다. 또한 과부들의 두 렙돈과 한줌의 밀가루는 전 재산뿐 아니라 생명까지 바친 봉헌이었다.


②선한 청지기로서의 헌금자세(행4:34-37) 

초대교회 정신을 몸소 실천한 바나바는 자신의 소유물 전부를 팔아 공동체에 헌금했다. 그같은 행동은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바나바의 행동에서 ‘자원하는 헌금자세’와 재산을 사유화하지 않고 ‘선한 청지기’의 모범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③ 아낌없이 드리는 헌금자세(고후8:2-5) 
고린도 교회에서 헌금에 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바울은 가난 중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마게도냐 교인들을 칭찬했다. 그들은 환난 속에서도 기쁨하며,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 헌금만큼은 넉넉한 마음으로 바쳤다. 어려움에 처한 교회를 구제(헌금)하는데 아낌없이 최선을 다해 드렸다. 

2. 축복 받지 못한 헌금자 상


①남의 눈을 의식하는 헌금자세(행5:1-11)
부정직한 청지기의 대명사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명예욕과 재물욕으로 인해 바치기로 한 작정한 헌금의 일부를 횡령함으로써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남의 눈을 의식한 위선적인 헌금자세를 보여준다. 결국 이 부부는 베드로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했다.

 

②외식적인 바리새인의 헌금자세(마23:23, 눅11:42)
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 외식적인 헌금자세를 책망하셨다. 이들은 율법에 흠이 없도록 십일조생활을 정확히 했다. 하지만 그들의 십일조 모습에는 형식적인 외양만 있을 뿐 진정으로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음을 지적하셨다.


③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헌금자세(수6:17-19, 7장)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정복한 여리고에서 얻은 전리품 전부를 하나님께 헌금으로 바쳐졌다. 그런데 아간이란 자가 하나님께 바쳐진 성물을 훔침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이 아이성 전투에서 크게 패하게 된다. 아간의 모습은 하나님께 바쳐진 헌금을 도중에 가로채는 헌금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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