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죠지 뮬러는 마차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를 듣자 자기 아버지가 몹시 노기에
차 있음을 알았다. 죠지는 넓다란 계단 중간쯤 내려가 참나무 문이 홱 열리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는 자기 집에서 죄수가 된 느낌으로, 두려워하기보다는
더욱 초조해 하며 아버지의 마차가 헤이머스리벤(Heimersleben)가의 자갈을
흩뿌리듯 튕기며 질주해 오기를 이틀 동안이나 기다려 온 것이다.
문이 홱 열리자 그의 아버지가 척 들어섰다. 그래 이 망할 자식아! 죠지의
아버지는 그에게 고함을 쳤다. 네놈에겐 숨어 있을 예절도 없단 말이냐!
죠지는 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아버지 때문에 제가 이
모양이 된 거예요.
이 때 그의 아버지는 계단 밑 난간 기둥에 손을 대고 있었다. 너에게 정직과
존경에 대해서 가르칠 기회를 놓쳐 버렸어! 에잇! 이거 원, 내가 한 달 동안
술집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아들놈에게 뭘 가르친담.
죠지는 입을 꼭 다물고는 입가에 모멸스러움을 표했다. 독일 교도소 식사는
끔찍스러워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간 기둥에 손을 대고 있던 죠지는
어깨를 움찔했다. 그러나 그것은 읍내 여관 식사보다는 낫죠. 그런데 청구서를
가로채어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슬쩍 도망쳐 나왔으니 제가 보통 도둑놈이
아닐테죠.
아버지, 어떤 여관 주인이 숙박비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저의 제일 좋은 옷을
빼앗아 갔어요. 그런 사실들을 누가 아버지께 말하지 않던가요?
그래, 넌 그 순간 창 밖으로 도망치려 했니? 뭘 생각하고 있었지?
절호의 챤스라고 생각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으니까요.
경찰이 네게 그런 기회를 가르쳐 주더냐? 역시 개중에는 권위를 존경하는
자들도 있거든
경찰이라구요! 하!
너는 16세 아이답지가 않아. 네 어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죠지는 정색을
하며, 아, 어머니는 비참한 2년을 보내셨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밤 어디 계셨죠? 술에 취해 거리를 흥청거리고 다니셨겠죠!
그 순간 죠지는 팔을 뻗어 벽에 걸린 단장을 낚아채고는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 올라갔다. 이것이 아버지에게 권위에 대한 존경을 가르쳐 줄지도 몰라요.
죠지는 계딴 위에 겁없이 척 버티고 서 있었지만 그 마음 속에는 무서운
반항심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누가 다른 사람을 매질할 권리가 있어요? 종과
주인인들 그러겠어요, 부자지간인들 그러겠어요? 누가 항상 이래라 저래라하고
말 할 사람이 있어요? 아버지들인들 그러겠어요, 선생들인들 그러겠어요? 여관
주인도, 경찰관도 그렇게 하지는 않아요. 항상 그런 식이에요. 꼭 그래야만
되겠어요? 이 때 그의 아버지가 죠지를 옆으로 밀쳐버렸고, 죠지는 또다시
담벼락을 뛰어넘어 갔다.
저에게 존경할 만한 점을 보여줘 봐요! 죠지는 외쳤다. 당신은 시골
식탁에서 떨어진 빵부스러기만 줘도 굽실거릴 이급 세금장이에 불과해요! 제가
그런 당신을 존경할 줄 알아요!
이 때 대들보로 받혀진 천장을 향해 곧 바로 치켜든 단장 끝이 보였다. 내
그걸 네 놈에게 가르쳐 줄 테다.
죠지는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자유로운 몸이 되리라.
아버지로부터의 자유, 모든 사람으로부터의 자유---자유. 그 순간 그는
날카로운 격정에, 단장으로 허공을 홱홱 후려갈겼다.
* * *
노드하우젠(Nordhausen)의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고
그로부터 매를 맞던 일이 유일하면서도 불쾌한 추억이었다. 그러나 전적으로
불쾌한 것만을 아니었다. 그것은 맥주잔 앞에서 쓸만한 잔소리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와 고전어를 배우고 노드하우젠 읍내 선술집에서
숱한 맥주를 마시는 데 2년 반을 보냈다. 죠지는 19세가 되었을 때 할레
종합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할레 역에서 자갈길을 따라 소리를 내면서 걸어 올라갈 때, 제비꽃들과
가도에서 열을 지어 거래되는 옛날 책들의 냄새를 맡으며, 그는 이제 공식적으로
신학생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 루터교회에 정식으로 입교되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전보다 더욱 자유스러움을 느꼈다. 그는 포장 도로 위에 배낭을
내려 놓고 그 시를 가로질러 있는 중세 요새의 유적지인 억센 옛날 돌벽도 그의
진로를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었다. 신학생이 되었든 신학생이 아니든간에 그는
바로 자신이 기쁘게 여기는 바를 행할 것이었다.
어느 늦가을 밤 여급은 긴 테이블가에 않아 있는 학생들에게 네 순배들이의
맥주를 제공하였다. 바로 할레 종합대학에 이르는 길 건너편 드 그랜너
티채(술집 이름)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바쁜 거래를 하였다. 서까래 밑의 공기는
지독한 담배 연기로 질식할 지경이었고 세 청년을 흥겨운 리듬에 따라 긴 녹색
테이블을 두들겨 댔다. 그 때 문이 홱 열렸다.
누군가가 외쳤다. 아니, 죠지 뮬러가 아닌가, 이거 참 기묘한 출발인걸.
성경책을 읽기보다는 놀음 빚을 갚기 위해 자기 손목 시계를 전당잡히는 횟수가
훨씬 많은 유일무이한 신학생이라니! 모두들 대판 웃어댔고 테이블을 두들겨
대던 학생들은 테이블이 부서져라 더욱 두들겨 댔다. 죠지는 돌 바닥 위에 있는
의자를 홱 앞당겨 테이블가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틈바구니로 헤집고
끼어들었다.
자신이 루터교 목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는 죠지의 말을 곧이
듣지마. 그 자야말로 전과자야!
좋아, 에밀. 그들 모두가 나를 알고 있어. 내 맥주 잔이 어디 있나 보라구!
죠지는 테이블 주위의 담배 연기 사이로 자신 만만하게 곁눈질해 보였다.
거기에는 그의 대학 친구들과 타락 후의 술 동료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
구석에는 낯선 학생이 있었다.--그는 친근하게 보이는 낯선 자였다.
에밀, 나는 오늘 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알까?
어리석은 소리하지마! 자, 이쪽을 베타야. 신참이지. 베타, 이 친구는 죠지
뮬러, 바로 지난 주에 한 번에 맥주 다섯 되를 마신 친구야.
베타는 테이블 이쪽을 보려고 머리를 앞으로 숙였다. 그의 목소리는
재빠르고도 열렬했다. 난, 죠지 뮬러를 알고 있어. 죠지는 그 친구가, 너
기억 못하겠니? 우리는 같이 학교에 다녔잖아.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를
보려고 등을 뒤로 제쳤다. 죠지는 마음 속으로 지나간 일들을 연상해 보았다.
할베르스타트? 노드하우젠? 저 친구가 왜 저렇게 열렬하게 말하지?
그 때 찬송가인가 성경책 속의 불쾌한 사진이 순간적으로 생각났다. 그제야
죠지는 베타를 기억한 것이다!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 정말 선량한 사람이었지.
시험 때 부정한 일도 하지 않았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고, 바로 자기 앞에서
허물을 지적해줘도 항의하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았지! 그랬던 그가 드 그랜너
티체에 와서 자기 앞에 맥주잔을 놓고 앉아 있는 것이다. 죠지는 입술에
긴장감을 띠고 그를 다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 이제야 기억나는데, 베타. 자, 여기 맥주 한 잔 주게나. 아니, 내가
들어와서 이야기를 중단하고 있는건가? 자, 우리 그 나머지 말을 들어 보자구!
그러나 그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죠지였다. ...그래 나는 내 방
안에다가 물건을 매달아 놓고 마치 정말 강도처럼 보이게 했지. 모두들 그것을
보고 실망해버린 거야. 사실은 내 방에 들렀던 사람들 모두가, 놀음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나에게 말하기 위해 들렀던 거야. 그 뿐 아니라 그들은 모두 나를
위해 모금을 하잖겠어? 그래서 나는 내 돈을 갑절로 만들었었지.
한밤중이 되어 드 그랜너 티체가 문을 닫게 되자, 테이블을 두들겨 대던
죠지의 세 친구들은 그들의 하숙집으로 갔고 죠지는 에밀과 그 나머지
친구들에게 잘 가라. 고 외쳐 인사한 후 홀로 길을 내려오기 시작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베타가 바로 죠지 곁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저녁 내내 그 친구를 본다는 것이 죠지에게는 불쾌한 일어었다. 죠지는 베타가
그 이유를 알고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죠지,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나도 알아. 잠시 그들은 자갈길을 저그럭 거리며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그러자 죠지가 말을 이었다. 나도..그러길 바래. 이 말은 그 순간까지 그
자신으로서는 허용할 수 없는 대단한 말이었다. 그러나 죠지는 그 친구가 자신이
할 말을 취소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베타는 싱긋 웃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기뻐. 네가 옛날에 나를 알게
되었을 때--저, 나는 내가 너에겐 싫은 사람으로 생각했었지.
베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구나.
달라졌다구?
옛날엔 학교에서 돌아올 때, 나 -- 나는 너를 우러러 보았었지.
나를 우러러 보았다구? 너는 나를 죄인이라고 불렀잖아.
이 때에야 베타는 서슴없이 말했다. 나는 네가 놀음을 썩 잘 할 뿐 아니라
선생들이나 경찰도 겁내기 않았기 때문에 너를 부러워 했었어. 그 때마다 나는
뒷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성경책을 갖고 기도회 같은 곳에나 가곤 했었지.
죠지는 난처함과 모욕감을 느꼈다. 너는 이제 기도회에 질려버려서 더이상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아냐, 질리지는 않았어. 그렇지만 난 적당히 살고 싶어. 나는 네가 이 곳
할레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너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웃음도
배울 수 있을 테고 하여간 행복하리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죠지는 깜박이는 가로등 밑에 갑자기 멈추어서서 머리를 뒤로 제치고 껄껄
웃어 댔다. 죠지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만일 베타와 친구가 될 수
있다면--나도 선량함을 배울 수 있을꺼야! 미친 수작이지! 내가--선량해지기를
배우기 원한다고?
이미 죠지는 몇분 전부터 자기 자신의 감정에 따라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변명하려 했다. 베타, 이제 난 신학생이야.
그렇지만 그것은 너의 아버지의 말에 따라 그렇게 되었잖아.
이것 봐, 실제적으로 살라구. 교회란 의식일 뿐이야. 실컷 퍼마시고 맘껏
놀음이나 하라구. 그러면 넌 아무도 원치 않은 어떤 버림받은 교회롤 내동댕이
쳐질 것 아냐?
베타는 가로등 밑에서 어휴! 라고 소리 없이 한숨지었다.
ㅈㅅ자눈 계속해 말햇다. 그것이 전부가 아냐. 나는 거의 언제나 이 천치같은
수작에 멀미가 나 있어. 그렇지만 나로서는 이런 미친 수작에서 벗어날 제간이
없다니까.
베타는 여전히, 마치 자신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그 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죠지 자신은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 베타, 나는 네가 나에게 그에 대한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그보다는--
하여튼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감상적인 열망일
뿐이었다.
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될 수 있을꺼야. 자--우리의 숙명으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게 해볼까?
결정을 한다구?
우리 중 어느 쪽을 택할까? 네 숙명-- 아니면 내 숙명,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거지? 숙명이 결정을 한다구? 에라, 빌어먹을!
결국 죠지는 혼자 자기 하숙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종합대학 건물들은 캄캄한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침울하게 보였다. 그는 자신이
만일 버젓한 지교회에 나가기를 원한다면 당장 치러야 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라면 아마 베타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그는 5년 전 안수례 이후 그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던 하나님에 대해서 의아하게 여겼다.
어떤 이유에선가 그는 그의 생각을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아버지에게로
급전환시켰다. 그는 후들후들 떨며 외투로 몸을 바싹 휘감고는 하숙집
돌계단으로 뛰어올라 갔다.
2장
다섯 사람이 제각기 바지 뒷주머니에 여권을 휴대하고 할레 밖에서 활보하고
다니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위반 행위였다. 그 여권을 받기 위해 죠지 뮬러,
그의 친구 베타와 그 외 세 친구들은 그들의 부모가 서명을 한 편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서명들이란 모두가 위조였다! 죠지는 자기 아버지의 성함을 사악한
호기심에서 멋부린 필체로 위조했다.
이제 그들 모두는 스위스를 향해 기쁨에 넘쳐 등산용 단장을 짚고 자갈길을
경쾌한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왜 이번 여름을 지루한 읍내에 틀어박혀 헛되이
보내려 하지? 휴일이란 멀리 지평선에 보이는 산봉우리들을 답사하거나 외국산
포도주를 맛보기 위한 날들이 아닌가 죠지는 이렇게 주장하여 자기 친구들을
설득시켰다. 이렇게 하여 그는 테가 넓은 모자를 멋드러지게 되로 제쳐 쓰고는
스위스행 여름 하이킹에 나선 그 일행을 앞장 서서 거느렸다.
빨리 죠지를 따라가! 뒤에 쳐진 동료가 앞을 향해 외쳤다. 그가 돈지갑을
갖고 있어. 우리는 저자즐 믿을 수 있을까?
죠지가 그의 배낭을 반대편 어깨로 바꿔 걸머지는 그 순간 가죽 돈지갑에서
짤그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심할 여지없이 리지(Rigi)산을 오른다는 것은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었으리라!
여러 마을을 지나 산길을 오르내리며 골짜기들을 통과하며, 모직 양말을 신은
다섯쌍의 튼튼한 다리들이 휙휙 지나갔다. 그들은 목이 타자 스위스산 포도주를
꿀꺽꿀꺽 들이마셨다. 그들은 몸이 달아올라 더워질 때마다 산속 호수로 뛰어
들어갔고, 지칠 때마다 벌판에 나동그라진 듯 누워서 피로가 회복되어 계속 갈
수 있다고 느껴질 때까지 잤다.
그러나 친구들이 자주 뜨거운 햇볕에서 코를 골고 있는 오랜 후까지도 죠지의
눈은 말짱하게 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어느 날, 그는 나무에 기대어 서서는
머리를 돌려 누워 있는 베타를 슬그머니 넘겨다 보았다. 그러나 베타의 머리는
헝크러졌고, 개미들 때문에 그의 얼굴을 신경질적으로 홱 돌리는 것을 보니 깊이
잠들어 있음이 분명했다. 그들 모두가 배낭을 자기들 곁에 내동댕이 쳐놓은 채
잔디 위에 완전히 뻗어 녹아떨어져 있었다.
죠지는 베타의 코고는 리듬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는 그의 배낭곁, 잔디 위에
있는 주머니를 향하여 쥐죽은 듯이 몸을 굽히고 손을 뻗쳤다. 그는 배낭을 열고
조그마한 가죽 지갑 다섯 개를 끄집어 냈다. 그러나 테타의 눈은 감겨 있었고
개미 한 마리가 그의 이마를 소리없이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죠지는 급히 행동했지만 그러나 그 가죽 지갑들에서는 경화 하나 쨍그렁거리지
않았다. 그는 지갑 중 하나를 쓱 열어 손가락을 넣고 경화 몇 개를 꺼내어
그것을 모두 쥐도 새도 모르게 둘째 지갑에 넣었다. 세번째 지갑의 주둥이 끈은
속수무책으로 말을 듣지 않았다. 죠지는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물어 뜯어
버리고는 가장 큰 경화들로 감촉되는 것을 순간적으로 끄집어 내어 그것들 역시
둘째 지갑에 쓱삭 처넣었다.
흠, 뮬러, 넌 비열한 놈이야!
그는 손을 급전환 시키고는 지갑 끈을 그저 한 번 가지고 놀아보기 위해서
그랬다는 듯이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머리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베탄가? 넌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베타는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새들 때문에 시끄러워 잘 수가 있어야지.
넌 뭘하고 있었니?
하긴 뭘해. 지갑들은 불룩하고도 말끔하게 그대로 잔디 위에 있었다.
아니, 네가 지금 하고 있던 일말야.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어? 죠지는 초조한 듯 풀 한 잎으로 입술을 가볍게
스쳤다.
우리 모두 낮잠 자고 있는 동안에 넌 뭘했니?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장부 정리를 하고 있었지? 죠지 넌 역시 좋은 놈이야.
휙 휙- 죠지는 계속해서 풀잎을 입술에 스쳐댔다.
우리는 네게 지갑을 맡긴 것이 무엇보다도 기뻐.
베타는 크게 하품을 하고는 뭘 삼키기라도 하듯이 꿀꺽했다. 난 뭘 계산하고
보태는 일에 대해서는 질색이야.
그 순간, 죠지는 입가에 기쁜 듯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계산하고 장부 정리 하는 일이 싫거든 그 일에 대해서 더이상 골치아파
할 것 없어. 우리 중 누군가가 돈에 대해 좀 재능있는 사람이 있을꺼야.
그렇다면 정말 다행인걸, 뮬러. 그럼 나중에 결산하기가 편할꺼야.
죠지는 입가에 풀잎을 스치던 일을 딱 멈추고 베타를 날카롭게 주시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눈을 감고 입을 벌린채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죠지는 큰
주머니에 다섯 개의 작은 지갑들을 집어 넣고 주머니 끈을 조여 매였다. 죠지의
빈틈없이 계산하는 재능으로 인해서 그는 그의 친구들이 낸 돈의 절반으로
그들을 스위스까지 인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 지갑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간수해야만 했다!
* * *
가을에 있었던 433일간의 도보 여행은 드 그랜너 티체(술집) 서까래 밑 긴
테이블가에 좋은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베타가 그 술집에 같이 들어가게 될
때는 언제나 죠지 곁에 않아서 죠지의 유우머에 대해서 가장 큰 소리로 웃어
댔고 죠지의 술잔이 빌 때마다 여급에게 신호를 하는 바람에 죠지는 재미 있는
이야기를 위한 실마리를 놓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죠지는 하숙집에 홀로 앉아 조반 후에 비스켓과 커피를 먹으면서 때로
베타와의 우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던가를 찌푸린 얼굴로 상기했다. 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기에는 틀려먹은 기묘한 기분이었다. 그에게 있어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할레 종합대학에는 신학생이 9백 명이
있었지만 그들 중 어떤 누구보다도 특별히 더 불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개심
문제는 전적으로 잘 진행되었다. 베타는 술 마시는 법을 거의 어른처럼 배웠을
뿐 아니라 놀음에서도 능란하게 속일 수가 있었다. 베타는 소문난 놀음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