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십니까? 김요한목사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27:4)
제가 들은 바로는 어떤 목사는 볼링을 좋아하는데 미운 사람 얼굴을 생각하고 공을 던진다는 말을 했습니다. 부흥회 강단에서 버젓이 말하곤 했지요. 그거 살인이죠(마5:21-26) 차라리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더 낫죠. 이건 화풀이일 뿐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잖아요. 조금 나은 사람은 등산, 또는 사진 찍기 등으로 자연의 섭리와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푸는 분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 또한 코로나 이전에 한국에 들어와 백두대간을 다 오르고 백령도를 가거나 근처 해안 길을 걸으면서 나름대로 마음에 맺힌 여러 가지 마음들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꼼짝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목동출신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전이 있었을까요? 인간들은 육신의 조건을 두고 맹공격을 합니다. 지금의 대선 판국을 한 번 보세요. 능력이냐 인품이냐는 젖혀두고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외모 재산 몸가짐 등 갖가지로 서로 태클을 겁니다. 아마 이런 스트레스를 잘 이길 수 있는 지도자가 가장 훌륭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 중에 영으로 사는 사람들은 육신의 사람들에게 엄청 당합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못 살게 굴 듯 육신의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를 미워합니다. 십자가를 두고 양쪽에 진을 친 원수의 대첩이니까요. 십자가의 원수는 불법(마7:23)이기 때문에 주의 원수이며 나의 원수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자신을 공격하는 무리들을 맹수라고 표현했습니다(고전15:32) 생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니 탈출구는 날마다 죽는 일 뿐이죠. 다윗에게도 깡패들이 삥 둘러싸고 두들겨 패려고 하는 것과 같은 형국에 처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군대와 같은 대적들과 전쟁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다고 노래합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인데 주께서 그의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시27:1)이 되시므로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도 오히려 태연하답니다(시27:3) 빛은 어둠을 이기고 구원은 죄와 사망을 이기며 생명의 능력은 확신과 자신감과 용기를 주시는 의의 에너지입니다. 시편을 읽는 분이라면 주님이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임을 다 알고 있을 테지요. 그러나 실제적인 사건으로 자신에게 나타나느냐는 별개일 겁니다.
산봉우리를 쳐다보는 것과 올라가는 것은 다른 이야깁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듣고 받아들여 세례로 죄 사함의 자리로 옮겨와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와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영적장치가 설정이 되어야만 주님이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이 되시므로 다윗처럼 스트레스를 골방에서 풉니다. 그 방법은 1) 평생 여호와의 집에 머물면서 2)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앙망) 3)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것입니다(시27:4) 중요한 것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하늘 길이 열린 영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사방에 욱여쌈을 당해도 답답하지 않습니다(고후4:8) 씩 한 번 웃고 끝낼 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렇고 제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