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2-01 21:40
영지주의(Gnos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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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912  
영지주의(Gnosticism)
일반적인 의미에서 영지주의는 2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던 기독교 이단을 의미한다.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같은 교부들은 영지주의를 단순히 기독교 이단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이레니우스로부터 시작하여 하르낙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기독교의 견해였다.

사실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자들을 '탈선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에게 회개와 회심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분명하게 교회밖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은 교회에 위협이 될 만큼 교회에 가까이 있었다." 많은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이었거나 최소한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18세기 이후 영지주의는 많은 논란과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영지주의가 2세기에 존재했던 이단인가 아니면 1세기 혹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던 것인가, 그리고 2세기 이전에도 존재했다면 신약성경과 그 저자들에게 영향이 있었는가 아니면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1. 영지주의의 정의

영지주의(Gnosticism)란 말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하였다. '그노시스'는 일반적 지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특히 신비적 합일을 통한 지식, 친밀한 결합을 통한 앎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종의 '영적인 지식'을 뜻한다. 따라서 어원으로 볼 때, 영지주의는 신비적 지식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려고 한 종교 운동으로 풀이된다.

영지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과제이다. 왜냐하면 현대 저자들은 '사색적 종교 현상'의 폭넓은 다양함을 망라하기 위해 그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 현상을 서쪽의 골(Gaul)에서부터 동쪽의 이란에 이르기까지, 1세기로부터 최소한 9세기에 이르기까지 볼 수 있다. 심지어 금세기 초에 리용(프랑스 남동부)에는 영지주의자들의 교회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창설자로부터 그 이름을 끌어내었다: Valentinians, Marcionites, Basilideans.
그들의 기원지나 민족, 그들의 활동이나 교리 또는 예배의 대상에 따라 그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들의 다양한 이름들은 그 분파들이 매우 다양했음을 잘 보여 준다.

독일 학자들은 'Gnostic', 'Gnosticism'과 같은 용어를 더 폭 넓고 느슨하게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C. H. Dodd도 'Gnostic'과 'Gnosticism' 같은 용어들이 현대 저자들에 의해서 '혼란케하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랜트(Grant)는 "영지주의의 체계는 조로아스터교, 바벨론 종교, 유대교, 헬라 철학과 종교, 그리고 기독교의 개념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영지주의를 전체적으로 정의하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영지주의'라는 용어로 '신비주의', '밀교(Esoterism)',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주 넓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이다. 이와 같이 넓은 의미의 '영지주의'를 말하는 학자는 영지주의를 신약성경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초기 문서들에서도 발견한다.

예를 들면, 불트만은 영지주의 사상이 바울의 어떤 사상 기원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바울과 영지주의 사상에 공통하는 인간 실존의 이해에도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영지주의 역시 바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별히 기독론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불트만은, '영지주의의 변형된 특징들'이 바울의 로마서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울의 사상 안에 나타나는 그노시스는 헬라사상으로부터 빌려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당연히 구약으로부터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J. Dupont). 따라서 우리가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 영지주의 체계나 밀의 종교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이 자신의 복음선포의 공식화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그 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2. 영지주의의 기원

영지주의 사상의 기원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들이 있었다. "영지주의 사상은 페르시아의 종교에서도, 유대교에서도, 기독교에서도, 헬레니즘 철학과 점성술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의 엄청난 종합적 성격을 고려할 때, 그 수많은 요소들이 모두 영지주의의 형성에 기여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영지주의에 대한 최초의 상세한 논술은 이레니우스가 발표하였다. 그는 180년경에 <이단논박>(이단에 대하여)이라는 글을 썼는데, 오늘날 그 내용의 일부는 유실된 유스티니아누스의 저술(150년경)에 근거하고 일부는 영지주의자들 자신의 구두 또는 문서로 된 증언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증언 중에는 요한 외경이라 불리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4-5세기경의 여러 콥트어 성서에 수록되어 있던 것이다."

그랜트에 따르면, 영지주의의 기원에 관련하여 네 가지 주요한 설명이 있다. 즉 ① 헬라 철학 ② 동양 종교(주로 이란 종교) ③ 기독교 ④ 이설(異說)의 유대교이다. 이 관점들의 모든 요소들이 영지주의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 요소들이 상호관련성 때문에 문제는 더 곤란하다.

영지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다양하나, 영지주의 자체가 페르시아의 이원론, 동양의 신비주의 종교, 바벨론의 점성술, 헬라 철학, 이 외에도 2세기에 실제로 통용했던 모든 이론들을 총망라해서 혼합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르낙의 유명한 명제인,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예리한 헬라화"는 그렇게 정확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 물론 영지주의 안에는 헬라의 영향력이 강하게 들어 있다고 해도, 이것은 영지주의의 선생들이 섞어서 마신 여러 종류의 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가장 오래된 전통인 저스틴의 해석에 따르면, 시몬 마구스(Simon Magus)가 영지주의의 창시자이다. 전승에 의하면 시몬 마구스는 로마에 갔고, 베드로와 경쟁했고, 영지주의파를 세웠다. 저스틴과 그 외의 고대 저술가에 의하면 시몬 마구스는 많은 추종자들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권능을 가졌다고 주장했으며, 동료인 헬레나(Helena)는 성령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기독교의 다른 교리들을 악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지만, 사도행전 8장의 일화는 영지주의의 혼합주의적 기질을 가장 잘 예시해 준다.

시몬 마구스의 제자 메난더(Menander)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유태적 영지주의자라고 보는데, 그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고대 이단연구가에 의하면, 메난더는 그의 스승이 그랬었던 것과 같이 마술에 능통했다. 자신이 구세주이며, 사자(使者)로서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며, 자신이 가르치는 마술에 의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노예상태로 속박하고 있는 천사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몬 마구스, 메난더 그리고 사투르니누스(Saturninus)는 모두 천사의 세력들이 최고의 세력(the supreme power)에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어떤 구원자가 그 천사들을 쳐부수기 위해 강림하셨다는 것과, 그 구원자가 강림했을 때 그와 같이 행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시몬의 기사에서는, 시몬이 강림한 구원자이다. 사투르니누스에게는 그 구원자가 그리스도이다.

곤잘레스에 따르면, 기독교의 복음을 재해석하려고 노력했던 첫 번째의 영지주의자는 케린더스(Cerinthus)이다. 그는 제1세기 말엽에 에베소에 살았으며 그의 가르침을 분석하면 일반적 영지주의의 특징인 파생적 이원론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는 물론 그리스도와 예수를 구별했다. 예수는 인간으로서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인 반면, 그리스도는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에 내려온 신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케린더스는 비록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서의 관계를 엄격하게 구별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연합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의미에서 이원론자라고 부를 수 없다. 우리는 신약성경의 요한 일서가 케린더스를 반대해서 쓴 글이라고 본다.

영지주의 지도자 발렌티누스는 기독교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 시리아와 동양에서 발전한 영지주의가 로마에까지 전파되었으며, 그의 가르침으로 서방 기독교가 영지주의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발렌티누스는 초기 얼마 동안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다. 그가 어디에서 혹은 어떻게 신학적 입장을 발전시켰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내용이 없다.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가 2세기 중엽에 로마에서 활약하다가 주후 155년경에 로마교회로부터 추방당했다는 것이 고작이다.

발렌티누스와 동시대 사람인 바실리데스(Vasilides)는 시리아 태생으로 2세기 중엽부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면서 발렌티누스파의 교리와 유사한 가르침을 전파했다. 그는 많은 신들의 계보와 365개의 하늘들을 말했고, 최고의 신과 창조의 신(God of Jews)과의 대립을 가르쳤다. 그에 의하면 구원은 사람의 육체 속에 갖혀있는 영혼이 육체와 물질세계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한편 마르시온(Marcion)은 전통적으로 영지주의자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다른 영지주의 자들보다는 기독교에 더 근접해 있는 '독창적' 사상가였다. 그는 독자적인 교회를 세웠기 때문에 당시의 교회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이원론, 구약성경의 부정, 가현설 등이다. 그는 바울 서신과 바울의 동료가 쓴 복음서(누가복음)만을 신약성경의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대로 영지주의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다양한 분파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기원은 모호하며, 근원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제시되고 있다. 한 마디로 영지주의는 헬라, 유대, 동양 및 기독교적 요소의 혼합물이다. 2세기의 이단인 기독교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동양의 대도시로 전파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3. 나그 함마디(Nag-Hammmdi) 사본의 발견

영지주의 연구에 새 시대를 열게 한 것은 나그 함마디 문서들이다. 중요한 자료들이 대량으로 발견됨으로써 영지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은 크게 확대되었으며 분명하게 되었다.
1945년 이집트(upper Egypt)의 나그 함마디(Nag-Hammmdi) 근처에서 큰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5세기의 콥트어 영지주의 장서(Coptic Gnostic Library)가 들어 있었다. 이 사본들의 대략적인 연대는 주후 4세기 중엽이다. 그 사본들은 400년경에 땅에 파묻혔다. 최소한 13개의 가죽으로 제본된 책들이 있었는데, 700페이지 이상의 분량으로 총 48개의 영지주의 글들이 있었다.

<진리의 복음>의 저자는 유명한 영지주의 지도자 발렌티누스라고 본다. 이것은 인간의 상실된 상태의 원인이 무지라고 본다. 역시 발렌티누스의 글로 보이는 <레기노스의 편지>는 부활이 육체적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도마 복음서>는 외경 '도마복음서'와 다른 사본인데, 예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114개의 '로기아(logia), 즉 중요한 어록의 수집서이다. 발렌티누스의 작품인 <빌립 복음서>는 몇 가지 성례를 묘사하고 있다. <요한 외경>은 우주의 기원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영지주의에 관하여 새로운 조명을 해주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1세기말과 2세기초의 초기 영지주의 발달에 관한 교부들의 정보는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나그 함마디 근처에서 나온 콥트어 사본들은 부분적으로 교부들의 어떤 작품을 확증해 주었다.


4. 영지주의 체계(가르침)

1) 영지(그노시스)

영지주의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영지(Gnosis)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이름이 나타내듯이, 이것은 '인식'을 뜻한다. 영지주의자란 단지 믿기만 하는 사람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알고 있다. 실로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자기 인식, 자신의 심원한 자아이해에 선행하는 이 인식은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사람을 자기 자신과 물질 세계로부터 해방시키며, 그에게 진정한 그의 운명을 되돌려 준다.

이 지식은 단순한 앎을 뜻하지 않고 영원한 계시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신비적인 조명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지식이란 인간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즉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상태에 있었으며,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아는 것이며, 이러한 앎을 통해서 우리를 물질세계와 묶어 놓는 구속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영원한 진리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초월적인 영적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해방의 계시를 전달해 줄 사자(使者)가 와야 한다. 이 사자 개념은 모든 영지주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기독교 영지주의에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이 사명을 완수시킨다.

<진리의 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는 자는 위로부터 온 존재이다. 만일 그가 부름을 받는다면 그는 듣고, 응답하고, 그를 부르는 분에게 되돌아 가기 위해 그를 부르는 그 분에게 돌아선다...
그노시스(gnosis)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는 그를 부르신 분의 뜻을 수행한다. 그는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바를 행하기를 바란다. 그는 안식을 받는다.

이와 같이 그노시스를 소유한 자는 어디로부터 그가 왔으며 어디로 그가 가는지를 안다"(Gospel of Truth, 22.3-19). 영지주의자는 계시에 의해 그의 진정한 자아가 누구인지를 알기 때문에 영지주의자이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은 신 중심적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self-centered)이다.

한편, 발렌티누스파는 '그노시스'를 두 가지로 정의 내리고 있다:
1) 첫 번째 정의는 '그노시스'가 몸이나 혼(soul)의 구속이 아니라, 내적인 영적 사람(the inner, spiritual man)의 구속이라고 설명한다.
2) 두 번째 정의는 '그노시스'가 어떤 물음들에 대해 답을 제공하는지를 말해 준다. 즉 영지주의자는 "우리가 누구였으며, 우리가 무엇이 되었으며, 우리가 어디 있었으며, 혹은 우리가 어디서 타락에 이르게 되었으며, 우리가 어디로 서둘러 가고 있으며, 어디로부터 우리가 구원을 받으며, 출생이 무엇이며 중생(rebirth)이 무엇인지"를 안다.
탕자처럼 영지주의자는 처음에 '제 정신이 든다'(comes to himself, 눅 15:17). 그리고 나서 그가 잊고 있던 아버지께로 돌아온다. 영지주의는 구원하는 지식의 종교이다. 그리고 그 지식은 본질적으로 자아-지식(self-knowledge)이요, 참된 자아를 이루는 신적인 요소에 대한 인식이다.
지적 귀족 계급의 존재를 주장한 회랍 철학자들의 주장과도 흡사하게,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신적인 일들에 대하여 일반 신도들보다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영지주의자들 그노스티코이(gnostikoi) 즉 '아는 자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영지주의의 신비적 사상은 자연히 대중적 신조를 가지고 있던 당시의 기독교보다 더 심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보다 높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만적 주장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는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2) 이원론

대부분의 학자들은 영지주의의 본질이 신적인 것과 피조된 것 사이의 급진적인 존재론적 이원론(radical ontological dualism)이라고 본다. 영지주의와 영지주의적 운동은 본질적으로 이원론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실재(實在)를 영과 물질, 혼과 몸, 선과 악과 같은 두 개의 근본적 원리 사이의 불변의 상호작용(interplay)으로 본다. 영지주의는 성경적 창조교리를 부인한다. 왜냐하면 영적인 힘(spiritual power)은 천한 물질 세계의 원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의 관점에서 우주를 선과 악 사이의 전장(戰場)으로 묘사하였다. 세계는 선과 악의 혼합을 포함하고 있는 바, 그것은 선한 하나님에 의해 모두 창조된 것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원론적인 영지주의에 의하면, 세계는 저급한 창조신(데미우르게)의 작품으로서 악한 것이다. 이런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지주의는 일련의 신화들, 특히 "구원받은 구원자"와 "영혼의 승천"의 신화를 사용한다. 즉 영혼은 물질적 세계 안으로 떨어졌고, 구원자가 영혼을 해방시키려고 내려왔다. 그는 영혼에게 그의 현실적 처지를 계시하고는 먼저 하늘영역으로 승천했다.

3) 유출설

이 유출설은 특별히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의해서 주창되고 또 널리 발전되었는데, 이것은 세계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이론이었다. 특히 발렌티누스의 사상은 천지개벽과 신들의 계보(系譜)에 대하여 극히 환상적이고 사변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즉 숨겨진 하나님으로부터 아이온(aeons)의 긴 계열이 유출되었는데, 그러한 아이온이 지닌 신적 능력은 원래의 신적 근원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반대로 점점 감소되었다. 이러한 약화의 과정은 영적 원리가 물질과 접촉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물질적 육체의 감옥 속에 갇히게 되는데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세계와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4) 가현설(假現說)

영지주의의 이원론을 기독론에 적용시키면 끔찍한 결과가 나타난다. 만일 물질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하나님의 의지로써 생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적하는 다른 원리에 의해서 생성되었다고 보면 물질과 인간의 육체는 지고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하나님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자들은 가현설(Docetism)이라고 부르는 기독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지주의의 그리스도는 "나사렛의 진짜 인간 예수"가 아니요 또한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죽지도 않았다. 이러한 이론에 대해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나사렛 예수는 육체와 삶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시를 찾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지주의를 반대했던 기독교인들은 영지주의가 기독교신앙을 다르게 해석하였다고 말하지 않고,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을 이루는 신앙 자체를 말살시키려는 것으로 보았다.

5) 혼합주의

교회사가 곤잘레스에 의하면,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말은 일반적 호칭으로 제2세기에 성행했던 각종 종교적 이론들을 총망라해 버리는데, 그 특징은 혼합주의이다. 영지주의는 통일을 이룬 하나의 종파는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많은 분파로서 이루어졌고, 고대 말기에 널리 퍼져 있던 하나의 종교 운동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혼합주의(syncretism)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서, 당시의 모든 종교적 전통의 혼합물이었다. 그것은 세계 전체에 퍼져 있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어떤 이론이 가치 있다고 판단되면, 그 근원이나 혹은 그 이론을 취하게 될 맥락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자기네 것으로 해 버린다. 즉 초대 기독교를 알게 되고, 기독교가 매력이 있음을 보자, 기독교에서 자기네들에게 가장 유용성이 있는 부분들을 곧바로 가려 뽑아서 자기네들 사상체계에다 적용해 버렸다.

영지주의자들의 이러한 적용 작업을 용납치 않았던 기독교인들에게는 커다란 도전이 되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 교리를 잘못 해석하였으며, 또한 예수를 영지주의 체계 안에 있는 한 요소로서 단순하게 변형시킬 수 없음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혼합하는 경향'(amalgamating tendency)은 영지주의의 아주 초기부터 존재하였다. 바벨론, 시리아, 소아시아, 페르시아, 인도 등의 종교, 필로(Philo)의 유대교. 그리고 예수와 사도들의 기독교 등이 모두 영지주의라는 도가니 속에서 융합되었다. 영지주의는 예컨대 신적 구원의 계획, 기독교적 전통, 인간 역사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중심됨 등, 기독교와 공통된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은 심히 왜곡된 것이었으며, 대체로 이교적 사상이 우세하였다.

각 분파의 선생들은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른 데서 끌어들였기 때문에 영지주의에 속한 각 분파들과 학파들은 너무나도 뒤얽혀서, 근대 역사가들은 정확하게 구별해 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6) 인간 이해

초기의 영지주의는 인간을 두 계급으로 나누었으나, 후기의 영지주의는 세 계급으로 분류하였다. 인간은 그의 본성 가운데 있는 영적 원리의 정도에 따라서 영적 계급, 물질적 계급, 육욕적 계급 등으로 구분되었다. 즉, 인간에겐 세 계층이 있다는 것이다(영적 인간, 흔적 인간, 육적 인간). 중간 집단인 흔적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길이 열려 있어 어느 길로도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첫째 계급은 참된 기독교인들 흑은 영지주의자(Gnostic)에 해당되는 자들이었으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계급에 속하였다. 둘째 계급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것이었는데 그들은 신앙은 가졌으나 그노시스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계급은 이교도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 세 계급 중에서 첫째 계급에 들게 되는 것이 최대 목표로 생각되었다.

영지주의에 의하면 구원은 인간의 육체 내에 감금되어 있는 신적이며 불멸한 영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 육체적 몸은 구원의 계획 내에서 부정적이다. 각 영지주의 집단은 자체의 이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전부가 영혼을 육체와 대조시켰다. 육체는 여하튼 영혼이 빠져 있는 함정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선한 영혼들이 재탄생의 순환 속에서 악한 육체들 속에 사로잡힌 바 되었다는 데 동의하였지만, 그들은 악이 맨 처음에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각 영지주의의 조직은 영혼이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에 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그랜트에 의하면, "영지주의의 가장 큰 오류는 신적 본질에 관한 그들의 사색보다는 그들의 인간관에 있다 "

7) 구원(구속)의 문제

영지주의의 중심 사상은, 모든 신비 종교들처럼, 구속(redemption)이다. 그러면 구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구속의 근원은 영적 세계에서 구해야 한다. 창조신은 세계와 인간의 창조를 초래하였으며 거기에 부수된 죄와 고통을 있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인간에게 있는 영적 원리가 구속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창조신에게는 구속의 계획을 수행하고자 하는 뜻도 없었고 또 그럴 능력도 없었다. 그러므로 최고의 아이온이 완전한 구원을 확보해 줄 구속자로서 세상에 오게 되었다. 그 구속자가 곧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은 높이 평가되었으며 그의 강림은 위대한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찬양을 받았다. 그들의 이러한 가르침은 수많은 기독교도들을 현혹케 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속죄는 필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영지주의가 필요로 한 것은 '무지를 쫓아 버리고 죽음을 철폐하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이 그 전부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구속적 사업에서 일탈하여 그의 가르침에만 쏠리게 되었다.

영지주의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구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단순히 한 종교를 세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종교를 세우려고 의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변적이고 신화적인 요소 이외에도, 영지주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적 계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신적 계시, 신비적 경험, 상징적 형식의 마법, 금욕주의의 실천 등- 이런 모든 것들은 보다 높은 생명을 얻게 하는 방편이 되었던 것이다. 구원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교의 모든 신비적 의식이 모방되고 채택되었으며, 정교한 의식을 갖춘 종교적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 하였다.

8) 성경에 대한 태도

구약 성경은 부정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지주의 체계를 위해서 우의적으로 해석되었다. 사도들의 저작도 용납되기는 했으나 영지주의 사상에 부합되도록 해석되었다. 이처럼 영지주의자들은 최초의 성경 주석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주석된 문서는 주석자의 선입견에 일치되도록 왜곡되었다. 문서화되지 않은 사도들의 모든 전승과 가르침이 존중되었다. 또한 영지주의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서 수많은 위경적 문서와 익명의 책들이 출판되었다.

9) 윤리

영지주의자들은 윤리에 관해서 그들 사이에 의견이 불일치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육체가 우리의 진정한 자아의 일부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였지만, 그 결과 그들 중 일부는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육체와 육체의 모든 욕망을 엄격히 부정하였다. 또다른 일부는 (만일 최소한 우리가 그들의 적대자의 말을 신뢰한다면) 육체는 우리의 본질적 자아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육체적 쾌락들은 진정으로 우리를 해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극한까지 그것에 탐닉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5, 기독교회에 미친 영지주의의 영향

저스틴의 생도 타티안(Tatian)은 그의 스승(master) 저스틴이 죽은 후 영지주의자가 되었다. 우리는 클레멘트, 오리겐의 글에서 발렌티아누스파에게 빚진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저스틴, 타티안, 클레멘트, 오리겐은 발렌티아누스파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그노시스는 그들의 숨쉬는 공기 중에 있었고, 그 일부는 그들의 폐에 들어갔다."

어쨌든, 교회는 영지주의와의 접촉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과를 낳게 되었다.

(1) 영지주의가 스스로 보편적 종교임을 주장한 것 교회로하여금 자신의 보편성(Catholicity)을 주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2) 영지주의는 구약 성경과 사도들의 저작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약의 영감과 신약 정경의 내용을 영구적으로 확정해 놓는 일이 교회의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영지주의에 대항해서 행동하는 것은 신학자들이 아니라 '교회'였다. 교회는 받아들일 수 있는 책들의 권위 있는 목록을 발전시켰다.
(3)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하나의 교리적 체계로 볼 수 있다고 하는 영지주의의 논란에 대하여 교회는 그러한 교리가 실제로 어떠한 것인가를 진술함으로써 답변을 주었다.
(4) 교회의 교리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표준'(regula fidei)이 요구되었다. 지역에 따라서 상당히 다양한 것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신앙의 표준'으로부터 고대의 기독교적 신조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5) 영지주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대 되기 시작하자, 교회는 유능한 수호자를 요구하치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감독이 선두에 나서서 이단 전체를 대항하여 싸우게 되었다. 그 결과로 감독의 우위성이 확보되었으며, 감독직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이 주어졌다,

6. 나가는 말

영지주의는 지나치게 사변적이었다. 지나치게 사변적인 신화론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는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구원론적 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이단 연구가들에 따르면, 영지주의가 구원 종교로서 영적 매력이 있었다고 본다.

영지주의에 대해서 교회가 직면했던 문제는 권위에 관한 물음이었다. 즉, 올바른 가르침을 지니고 있는 것은 성경인가 아니면 영지주의의 교설(敎說)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반 영지주의적 교부들은 영지주의와의 대결에서 정경을 확립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성경의 진리와 아주 다른 것을 가르치는 영지주의적 가르침이 침입한다면, 교회의 기반은 그 때문에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경(正經)의 확립은 교회가 생사를 건 영지주의와의 싸움에서 생겨난 것이다.

해롤드 브라운은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하버드 앞뜰(Harvard Yard) 입구의 문을 장식한 '부분적 인용구'를 언급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한 이 인용구가 시사하듯이, 영지주의는 때로 기독교적 '의상'을 걸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교설(敎說)은 성경적 진리와 전혀 무관하거나, 성경 말씀을 자의로 왜곡시켰다.

오늘날에도 고대 영지주의의 근본적 사상을 부흥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동양 사상에 대한 현대의 관심과 비교 종교학의 지나친 응용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뉴에이저들(New Agers)은 유사한 형태의 지식을 강조한다.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영적 전쟁터에서 거짓된 교설과 주장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의 궤계(詭計)를 간파하기 위해 교회 역사에 나타난 이단의 정체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 가운데 하나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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