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6-02 22:26
(1)유태인의 자녀를 낳고 기르는 53가지 지혜(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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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772  

유태인의 자녀를 낳고 기르는 53가지 지혜

지은이: 루스 실로 지음

제1장. 지혜를 기른다
1.'남보다 뛰어나게' 아니라 '남과 다르게'
아인슈타인은 여덟 살 때까지도 저능아 였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교육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영어의
'Jewish Mother(유태인 어머니)'란 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자녀들에게 배움의 필요성을 지겹도록 강조하는 극성스런 어머니'란 뜻이다.
그러므로 유태인들은 이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을
어머니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출애굽기 19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야곱은 유태인의 조상이다. 하나님이 후세에 유태인의 일상생활의 기본이
되는 십계를 가르치라고 모세에게 명령한 이 성경 구절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아주 부드럽게 말씀하셨지만 나중에는 매우 엄하게 이
말을 되풀이했다는 사실이다.
이 일로 인해서 십계의 구상은 먼저 여성에게 전해졌고, 다음에 남성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랍비(유태교의 율법사)들은 생각했다.
'야곱의 집'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부드럽고 여성적인 느낌이 감돌게
발음되는데, 이것으로도 짐짓 수긍이 간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먼저 듣게 된 여성은 그것을 가족들에게 전달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태인 어머니들은 여성이야말로 최초의 교육자이며, 자녀들은
가르치는 의무는 당연히 여성이 지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어머니들과 유태인
어머니들과는 약간의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이웃집 어린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거나 일류학교 진학을 지상목표로 삼는다고 해도 유태인
가정에서는 그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또한 '남보다 뛰어나라, 남들을 앞질러라' 하고 어린이들을 달달 들볶지도
않는다. 일류학교이든 이류학교이든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대학은
어느 대학에 가야만 된다는 식의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엄마들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은 여덟 살 때까지 저능아였다'는 사실을 유태인 어머니들은 잘
알고 있었다.
유태인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다.
그러나 네 살이 되도록 말을 못하자, 아인슈타인의 부모는 그를 '저능아'라고
체념했다고 한다.
그는 학교에 들어가서도 생각하는 것이나 머리 회전이 늦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아서, 1학년 때 담임선생은 '이 아이에게서는 어떤 지적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는 신상기록을 남겼다.
또한 그가 학교에 계속해서 다닐 경우, 다른 학생에게 방해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리만큼 아인슈타인은
저능아였다.

다른 아이와 다른 점, 즉 개성을 중요시한다.
내 여동생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늘 '너는 츠바이슈타인이야!'라는
칭찬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아인'은 독일어로 'l'을 의미하고 츠바이는 '2'를 의미한다.
즉'아인슈타인 다음으로 머리가 좋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의미의 농담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들먹인 진짜 이유는, 커 가는 어린이에게는
저마다의 개성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각자 타고난
개성에 따라 긴 안목으로 지켜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이다. 이것이 바로
유태적인 교육을 하는 어머니들의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다른 집 아이들과 똑같이 뛰어 놀고 함께
공부하면 행동하는 스테레오 타입(고정적인 틀)에 속해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어린이와는 어딘지 다른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성장하는 것이
좋은 장래를 약속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열을 다투는 경우 승자는 언제나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저마다 남과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모든 인간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경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은 담임 선생으로부터 저능아 취급을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 다섯 살 때까지 유클리드, 뉴튼, 스피노자, 그리고 데카르트를
독파했다.
후일 그는 '나는 강한 지식욕을 품고 있었다'고 지난 일의 일들을
술회했으리만큼 속마음이 꽉 차 있었지만, 그 당시 그의 심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그가 다른 어린이들과 똑같이 되기를 강요했더라면 그의
재능을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열세 살 난 딸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어학에 특히 재능이 있어서
모국어인 히브리어는 물론이고 영어, 불어, 일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늘 '너는 어학에 재능이 있으니 통역관이 된다면 아주
좋겠구나'하고 부추켜준다. 대신 '너는 어학을 잘하니까 수학도 잘한다면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없겠지'라는 식으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유태인 어머니들은 예외 없이, 다른 집 어린이와는 무엇인가 다른
자기 자녀만의 특성을 찾아서 그것을 신장시켜 주는데 전력투구한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히브리'라는 말의 원래 뜻은 '혼자서 다른 쪽에
선다'이다. 자기만의 개성을 충분히 키워준다는 것은 유태인의 생활방법 전반에
걸친 원칙인 셈이다.

2.'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성적인 어린이는 잘 배우지 못한다
동양의 어머니들은 대개 '댁의 아이들은 어쩌면 그렇게 얌전하고 착한
가요?'라는 말로 칭찬하기 일쑤인데, 유태인들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우리 집 아이들이 만약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얌전하다, 착하다.'라는 말은
'진취성이 없어 공부를 잘할 수 없다'라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유태인의 속담에 '내성적인 어린이는 잘 배우지도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내성적인 아이는 공부를 잘 못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수줍음을 잘 타서
남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성격이라면 참다운 학문을 깊이
터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는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닥치는 대로 질문하도록 길들여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러시아 문제 연구가이고, 러시아혁명사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진 폴란드
태생의 아이자크 도이처는 불과 열세 살에 랍비가 될 만큼 천재소년이었다.
그가 부모로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던 충고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할말이 정해졌다면 똑바로 서서 큰 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랍비'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겨우 열세 살의 어린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유태인 거리의 많은 군중 앞에서 장장 두 시간에 걸친 대 연설을
했다. 청중은 어린 소년의 말이지만 완전히 매혹되어 감동 어린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조리 있는 연설을 들은 약 1백여명의 랍비들이 논의한 결과 그는
랍비에 임명될 수 있었다. 유태인 사회에서 제일 존경받는 대상인 랍비가
되려면, 내성적이거나 얌전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덕이자 절대적인 조건이다.
내가 동양사람과 이야기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대화 도중에 곧바로
침묵이 찾아오는 일이다. 사실 나는 유태인으로서는 그다지 수다쟁이가
아닌데도 나 혼자만 계속 지껄이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나는 말에 의해서 배우는 것이 어려서부터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침묵이란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에
대한 욕구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매사를 분명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남에게 '나는 진정 배우고 싶다'라는 사인을 보내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듣기만 한다면 앵무새가 될 뿐이다
나는 언젠가 어느 동양인 엄마에게 '당신은 자녀가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무슨 말을 해서 보냈습니까?' 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엄마는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돼요,라고 했지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실에서 하나같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을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 정말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수업방식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그냥 일방통행
식으로 듣게 할뿐이고, 선생님의 말이라면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고 무조건
따르다 보면 독창성이 없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태인의 교육은 다르다. 유태인 엄마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의심나는 것은 주저하지 말고 물어봐야 돼요'라고 일러서 보낸다.
어린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암기가 아니라 이해하는 능력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고 학생들은 그것을 풀면서, 의심나거나 모르는 점은
끝까지 질문하도록 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다.
유태인의 성전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의 말이 있다.

교사는 혼자만 알고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 만약에 학생이 잠자코 듣기만
한다면 많은 앵무새를 길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가 이야기하면
학생은 그것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건 교사와
학생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많이 오가게 된다면, 교육효과는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내가 알고 있는 랍비 중 한 사람인 마빈 토케이어 씨는 <일본인과
유태인>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유태 붐을 타고 일본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어, 일본의 여러 지방에서 초청을 방아 강연을 하러 다녔다. 그런데
그는 그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열띤 강연을
끝내면 청중들은 박수만 쳤지, 누구 한 사람 강연한 내용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침묵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태인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유태인의
모임이라면 이런 초청강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연자가 쩔쩔맬 정도의 질문이
사정없이 날아드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연 내용을 되풀이 질문함으로써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끈질긴
탐구욕인 만큼,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법이 아닐까?

<탈무드>가 가르치는 두 가지 학습법
<탈무드>에 유태인의 탐구욕에 대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 나그네가 있었다. 두 사람은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길을 걷다가 외딴집을
찾아냈다. 그 집안은 텅텅 비어 있었는데, 다행히 높은 천정에 과일이 들어
있는 바구니가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뻗어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그러자 한 사나이가 벌컥 화를 내면서 집에서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런데 남은 한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꼼짝하기 싫을 만큼 허기진
상태였지만 그는 그 바구니를 보고 '이는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는 힘을 내어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사다리를 찾아냈다.
그러고는 사다리로 올라가서 과일이 든 바구니를 내려 맛있게 먹었다.

유태인이라면 언제나 후자의 방법을 모범으로 삼는다. 뭔가 잘못되었을 경우,
자신의 눈앞에 있는 물건에 가만히 손만 내밀 뿐 그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짓은 절대로 사절한다.
말하자면 유태인의 어린이들은 자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과일을
손에 넣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사다리를 찾아 한 칸씩 타고
올라가 기어코 과일을 손에 넣듯이, 한 가지씩 질문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 가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배움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유태인이 많은 것을 발명하고 항상 지적인 개척자의 지위를 지켜온 비결은,
오랜 옛날부터 이런 방법으로 교육받아 왔고 도전적인 질문을 그치지 않는
자세를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독자적인 지의 체계화를 서서히 이룩하고,
그것이 곧 위대한 업적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포인트
유태인이 많은 것을 발명하고 항상 지적인 개척자의 지위를 지켜온 비결은,
옛날부터 도전적인 질문을 그치지 않는 자세를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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