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2-08 20:54
(8-1)이스라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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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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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현대 아랍 문제의 근본적 원인과 전망.

1946, 유대 철학자 마틴 부버는, 시온주의자들의 정책이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과 지역 협정에 기초를 두지 않고 국제 협정에 의해 '정복'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해석을 받게 된다면, 시온주의에 대한 아랍인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아니라, 아랍인측으로 보았을 경우 유대인과 아랍인 민족의 상호 이해를 위한 모든 노력은 의심을 받게 되어, 아랍인은 이러한 노력이 진정한 의도를 은폐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고들 상상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한 유다 마그네스도 말한다. "유대 국가의 실현이 만일 가능하다면 그것은 무력에 의하는 외에는 불가능하다.... 아랍인들에게 유대 국가 소리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유대 국가는 정의에 있어서, 유대인이 유대 국가 내에 거주하는 민족을 통치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야보틴스키 역시 이전부터 이러한 분쟁의 가능성을 에견하였다. "자국을 스스로 내놓을 국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도 그렇지. 힘으로 강점당하지 않는 주권을 포기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결국 시온주의자들로부터 파문당하여 추방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처음부터 시온주의자들의 독립 정책은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배태하고 있었으며, 책임 역시 그들에게 있음을 부인할 없다. 1947 11월의 UN결정은 결정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영구 분쟁의 불씨를 낳고 말았다. 이들 열강들은 영국의 밸푸어 선언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비유대인들의 권리와 지위가 손상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입장이었고, 루스벨트나 트루먼 대통령도 "아랍과 유대, 민족에게 충분히 자문을 얻은 다음이 아니면 팔레스타인에 관한 어떤 결정도 않을 것이며, 아랍측 이익에 반대되는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겠다." 확약하였던 바가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들 양자 간의 이해의 차이를 줄일 만한 어더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족 간의 상호 불신과 테러는 상황의 개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PLO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이스라엘을 보는 기본 입장은 '이스라엘은 제국주의의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갈등의 본질은 시온주의와 아랍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지, 인종이 대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반유대주의 정책의 희생자들인 난민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느냐 아니면 '영원한 유대 민족 국가의 부활'로 보느냐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질 것을 나타낸다. 왜냐 하면, 시온주의자들은 영국이나 다른 제국들의 자본가들과 전혀 무관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들의 이상을 위해 이들과 부분적으로 결탁하였음은 어느 정도 사실이나, 결코 그들의 조종을 받은 자들로 규정될 수는 없다. 그들은 이런 자기들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귀향'이라는 굼과 희망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비어 있는 땅'을 찾아온 것이며, 곳은 시대에 영국의 식민지였을 뿐이다. 문제는 1897, 헤르츨이 선언한 "팔레스타인에 공법으로 보장되는 유대 민족을 위한 고향을 세운다." 입장이 , 1917 밸프어 선언의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비유대인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한다." 선언과 상호 대립된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엑 있어서 이스라엘의 독립은 2,000 년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국가 없는 민족의 설움을 씻는 명예 회복이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방랑과 수난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이다. 국가 없던 이스라엘의 흩어진 백성들의 생존권이 보호되어야 하듯이, 역시 팔레스타인에 나라 없이 살던 원주민들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들도 인간이며,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가정과 국가를 가질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1961 1,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에서 개최된 공개 토론회에서 행한 역사가 토인비의 견해는 옳다. "1947, 유대인이 아랍인에 대해 취한 태도는, 나치스에 의한 600 명의 유대인 대학살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일은 예전에는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다. 1991 1 15 자정을 기해 시작된 걸프 전쟁은 중동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다 주었다. 먼저, 걸프 전쟁은 중동의 아랍 국가들의 분열을 가져다 주었다. 이라크의 침략에 대한 입장이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양분되었으며, 특히 이라크를 중심으로 아랍 제국의 군사력은 전후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축으로 바뀌었으며, 아랍 연맹의 방향이 아랍 국가의 국제적 이해 관계에 따라 분열된 셈이다. 특히, 시리아의 국제적 지위, 전후 미국과의관계 변화를 대단히 중요한 중동의 변화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걸프전 당시 PLO 아라파트 의장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면서 심각한 재정난과 정치적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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