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1-10 18:57
(4)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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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037  

인생의 네 가지 단계

 

힌두교에서 인간은 아침에 시작하여 정오를 지나 오후, 그리고 저녁에 이르는 것과 같이, 각각의 삶의 단계를 거친다.

 

1)학생의 단계

인생의 제 1기는 8-12세 사이에 시작 되어 12년간 계속된다. 학생은 출가하여 스승의 집에 거하면서 베다 등의 학문을 배우며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자신의 카스트를 나타내는 표시인 성스러운 흰 천을 수여받아 어깨에 두르는 성인 입문식부터 시작된다. 도제식의 가르침을 받고 봉사해야 하며, 지식만이 아니라 인격을 수양해야 한다.

 

2)가장의 단계

인생의 2주기는 학습기간이 끝나고 스승을 떠나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가업에 열중하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한다. 자녀를 낳고 신께 제사를 올리고 사회생활을 한다. 가정은 즐거움을, 직업은 성취를, 공동체는 참여와 봉사의 기쁨을 준다. 그러나 모든 애착이 사라질 때가 온다. 성이나 감각적 환희도, 성취와 명예와 직위도 더 이상의 새로움이나 자극적인 요소가 되지 못할 때가 온다.

 

3)은둔의 단계

첫째 손자가 생길 즈음 이후가 되면 모든 책임에서 안식이 필요하다. 인간은 젊음 이후 인생이 내리막길이라는 사실에 수긍해야 한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심오한 풍성함을 누리라"고 말한다. 인생의 후반기의 삶에서 이런 일들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무지의 장막을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읽거나 생의 의미를 숙고한다. 이시기가 되면 은둔자가 되기도 한다. 부부가 함께 은둔하거나 또는 부인이 원치 않으면 남편 홀로 은둔한다. 대개 친족들과 떨어져 집안의 보호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아발견의 구도에 이르기 위해 숲속에 칩거한다. 사업과 가정 세속적인 삶, 청년의 희망과 아름다운 성년의 성취 등이 이제는 모두 흘러간 것이고 영원만이 남겨진다. 은둔은 수많은 별 너머를 보는 것이지, 마을의 거리를 구경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철학을 위한 시간이며, 또한 철학에 삶을 일치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감각의 세계를 넘어서서 이 지상적 세계의 배후에 있는 실체를 발견하고 이 안에 거주하는 시간을 말한다.

 

4)‘사냐신’의 단계 : 성인의 단계

<바가바드 기타>에서 ‘사냐신’이란 미움도 없고 사랑도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서, 해탈을 얻은 성자를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사냐신 단계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비구름과 함께 북으로는 히말라야까지 갔다가 다시 남으로 돌아와서, 모든 호수와 습지를 보금자리고 삼아 끝없는 하늘과 무한의 창공을 휘젓고 다니는" 백조에 비유하곤 한다. 사냐신은 모든 욕구를 포기한다. 지상에 어떤 거처나 의무감, 목표, 소유도 없으며, 아무런 육체적 욕망도 없다. 겉치레도 없으며 자랑도 없다. 힌두교의 일파이기도 한 자이나교의 사냐신 성인들은 홀랑 벗은 상태로 다니며 "우주를 입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그와 반대로 황금색의 옷을 입는데, 이는 사회에서 추방된 범죄자나 죽은 자들에게 입히는 옷의 색깔이다. 미래에 대해 괘념하지 않고 현재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사냐신의 삶은 "영원한 진아(眞我)와 합일된 무소유의 삶"이다.

 

This picture shows a sannyasin - Hindu holy man -

sitting near a street corner in Jaipur, Rajasthan.

 

 

 

8. 평가

 

“모든 것이 신이고, 신이 곧 모든 것”이라는 힌두교의 범신론(汎神論)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므로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 또한 초월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악의 문제도 인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사소한 윤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 아트만과 브라만이 하나라는 힌두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은 최초의 인간 아담이 범했던 죄, 즉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교만'을 여전히 부추긴다. 우리는 힌두교가 인간을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여길 정도로 고귀한 인간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인간을 극단적으로 차별하는 카스트 제도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힌두교 윤회 사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게 하지만, 부조리한 현재의 삶 자체는 개혁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인간의 내세가 전적으로 개인의 현재적 행위에 달려있다고 보는 한, 어떠한 내세가 주어지든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달려 있다. 인간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러한 자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힌두교 안에도 '은혜'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외적이지만 박티 힌두교에는 여타의 힌두교와는 다른 타력구원의 입장이 엿보인다. 업보와 윤회 사상을 파괴하며, 누구든지 어려운 고행이나 특별히 요가 등을 하지 않아도, 단순히 크리슈나 신만을 믿고 이름을 부르고 사랑하고 헌신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 곧 해탈에 이을 수 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크리슈나 신이 힌두교 대중들에게 최고의 영광과 경배를 받고 있으며 가장 많은 추종자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힌두교 안에 자력구원과 타력구원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복음이 순수하게 전해지는 데 큰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인도의 어느 선교사가 100명을 설문 조사를 한 것을 보면 예수만 구원의 길이라는 질문에 대해 긍정 21명, 부정 72명으로 예수의 유일성을 인정치 않았다. 한편 힌두교인 이지만 타 종교집회에도 참석한다는 사람도 83명이나 되었다. 종교는 다르지만 그 도달점은 같다는 의견은 89%나 되었다. 이는 힌두교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인다 해도, 단지 힌두교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되기 쉽다. 힌두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한갓 비슈누신의 화신 가운데 하나인 크리슈나 정도로 폄하되기 십상이다. 기독교는 절대적인 종교이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취미거리와 같은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힌두교와의 접촉점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어떻게 기독교 신앙의 절대성을 확보하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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