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8-30 22:24
(1)칼빈주의란 김지호 교수 (칼빈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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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1,575  

칼빈주의란?

김지호 교수 (칼빈신학교)
1. 칼빈주의 기본원리
칼빈주의란 존 칼빈으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사상체계인데 이것은 칼빈이 창작한 것이 아니고 칼빈이 성경을 해설한 것이다. 이 사상은 어거스틴 교설의 부흥이고 그보다 수세기전의 바울교리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주의는 하나의 통일체를 형성하는 집합체로서의 사상의 총화가 아니라, 기본 원리를 공동의 토대로 하는 유기체적인 총체이다. 그리고 그 통일성은 신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예술, 정치, 사회, 과학 등을 포괄하는 사상체계이다.

칼빈주의의 기본원리는 하나님 중심 사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사상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워필드는 "칼빈주의자는 모든 현상 배후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을 보며, 기도하는 태도로 자기의 전 생애를 살아가는 자이다. 그는 구원에서 자아의존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칼빈주의에 원리에 대한 오설(誤設)들 중 예정론은 칼빈주의 기본원리라기보다는 구원과 관계된 칼빈주의의 결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목표는 되어도 칼빈주의 자체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원리로 하여 인간의 전 생활(신학, 과학, 예술 등)의 부분에 관한 체계를 구성하였다. 그 체계는 하나님의 창조, 인간은 범죄, 예수님의 구속을 통한 계시록의 회복을 지향하는 체계이다.


2. 칼빈주의 체계에서의 성경과 신앙의 위치
성경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자연을 자연계시 또는 일반계시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칼빈주의 고백에 "자연계 전부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성한 법정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인류는 범죄로 눈이 어두워져서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의 안경을 써야만 자연 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죄인의 구원에 대해서나 이 땅에서의 삶의 모든 부분들도 특별 계시인 성경의 지도를 받아야 하게 되었다.

칼빈주의자에게 있어서 성경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성경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오직 순종뿐이다. 그 이유는 성경을 축자 영감된 - 유기적으로 -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기 때문이다. 칼빈주의 체계와 생활에서 성경은 중심 원리며 생활의 법칙과 표준이다.

신앙 신 신학 혹은 자유주의자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은 초자연을 부정하며, 신앙의 근거를 이성에 둔다. 이들은 하나님을 비인격적인 세력으로 보고 성경도 특별계시로 믿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자기 자신과 자기가 보는 것과 자연 세력만을 믿을 뿐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신 신학과는 반대로 초자연적이며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다. 신앙은 계시에 근거를 두며 계시의 유일한 원천은 특별계시인 성경이다. 이들은 죄로 인해서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며 신앙을 통해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가 하나님의 보내신 거룩하신 자이신 줄 알게 된다.

신 신학자는 과학주의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학적으로 관찰될 수 없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으나 세상과는 구별되시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칼빈주의자의 신앙의 방법은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에 근거한다. 성경에는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창조론, 내세론, 삼위일체, 동정녀 탄생, 이적 등이 많이 있다. 이런 이유로 교부들은 "신앙이 지식보다 앞선다"고 했으며 터툴리안도 "나는 하나님에 대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믿는다"고 고백하였다.


3. 칼빈주의관
(1) 칼빈주의 경제관

들어가는 말
성경은 경제를 가르치는 경제 이론이나 교과서는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제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칼빈주의의 근본사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인간의 모든 삶의 원리요, 표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주의의 경제관은 그것이 곧 성경적 경제관이다. 그런데 독일의 경제학자 웨버(Marx Weber)는 자본주의의 기원은 기독교 정신 즉, 칼빈주의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경제의 개념
경제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명백하고 쉽게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어원을 살펴보면 동양에서는 경제란 말의 근원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치국(治國)이라는 말은 경국제민(經國濟民)이란 것이다. 이 말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즉 경제란 국가적인 스케일에서 사용되는 용어였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영어의 Economy나 독일어의 konomie는 헬라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집을 뜻하는 O s(오이코스)와 법을 뜻하는 s(노모스)란 단어가 합하여 된 것이다. 즉 서양에서 사용하는 경제라는 말은 가정적인 크기에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경제학설에 의하면 「생산과 분배와 소비라는 기초적인 삼단계」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복합적인 면에서는 인간들의 물질생활을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관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생산을 위한 노동, 노동의 결과로 얻어진 생산물, 분배, 교환 및 화폐를 매개로 한 유통, 인간생활을 위한 소비, 다음의 생산을 위한 축적, 그리고 재생산 등의 모든 관계를 의미한다.


경제의 이념
1. 인간의 무한한 욕망에 대한 충족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욕망은 욕구대로 충족시킬 수는 없다. 인간이 충족시킬 수 있는 객체의 분량은 인간의 욕구와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상대적 희소성”즉, 인간의 욕구 충족 대상의 희소성을 인간은 극복하여야 하며 인간은 무한히 변화하는 욕구를 되도록 지속적으로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 충족에 있어서 평화적으로 행사하여야 하며 전쟁, 약탈, 폭력 등에 의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수단의 “상대적 희소성”“평화적인 행사”와 두 가지 요건이 경제생활의 기본특징이다. 수단의 상대적 희소성 극복을 위해 많은 물자가 필요하며 방법은 노동을 통하여 자연에 작용하면서 자연에서 물자를 얻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자연과 밀접한 상호교섭을 하는 것이다.

2. 인간 상호간의 사회관계를 중요시한다.
인간은 고립하여 물자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사회관계 안에 들어가서 물자를 얻는다. 그러기에 경제생활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인 동시에 인간 상호간의 사회관계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하여 많은 물자, 재화를 필요로 하는데 이를 농업, 어업, 광업 등을 통하여 얻는다. 농업, 어업, 광업을 통해 얻은 물자는 공업 등을 통하여 담당하는 것이 상업 유통 과정이다. 이와 같이 물자의 생산, 유통, 분배의 과정을 밟으면서 우리의 생활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경제실태이다.

3. 생산, 분배, 소비(생산을 위한 축적), 재생산 등의 순환을 중요시한다.
경제이념은 생산을 위한 노동, 노동의 결과로 얻어진 생산, 분배, 교환 및 화폐를 매개로 한 유통, 소비, 다음의 생산을 위한 축적, 그리고 재생산 등의 모든 관계가 정상적으로 순환하는 것이다.

경제의 원리
1.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모든 인간들에게 바른 삶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경제질서란 “생명보존에 필요한 물질적 상품이 생산되고 분배, 그리고 소비되는 과정을 말한다.”(에밀 부르너)

2. 경제질서는 다른 말로 경제윤리이다.
이것은 경제형태와 조직 및 계급의 계급의 구성 등이 변천됨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신학적 경제윤리는 크게 재화에 대한 금욕적 태도와 하나님의 창조와 실제적 필요성에 입각한 긍정적 태도 이 두 가지 입장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 이 금욕과 필요의 이중성을 어떻게 실천적 이론적으로 표현하는 가에 따라 기독교의 경제윤리관은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3. 역사상 경제행위가 적극적으로 시인된 것은 종교개혁을 할 때이다.
칼빈주의에 의해 현세의 세속적 노동이 종교적으로 신성시되고 직업윤리가 확립되었다. 이들은 경제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회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당연한 의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른 경제윤리를 파괴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는 경제생활을 규율할 수 있는 최고의 윤리적 힘을 사랑에 두고 이것을 이기심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항 수단으로 삼는다.
우리의 물질관
1. 물질의 취득방법
약자를 압박함으로 부를 증대시키는 것을 금하고 또 책망하고 있다.(출 20:15, 렘 22:13, 약 2:6 ; 5:4) 물질이란 이웃을 위해 선한 목적에 사용될 위탁물이지 이웃을 해칠 목적으로 맡겨진 것이 아니다.

2. 물질의 사용방법
물질은 세력을 얻는 일에만 사용되지 않는다. 물질은 인간의 방종과 과장을 위해서도 사용된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목적으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치나 자녀교육을 위한 지나친 낭비나 탐심에서 오는 물질의 남용을 말아야 한다.

3. 물질에 대한 마음의 태도
인간은 누구에게나 물질에 대한 욕망이 있다. 성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할 것이지 타인의 것에 욕심을 가진다든지 자신의 특수한 기술의 부족을 속이는 방법으로 해서는 안된다. 기독교 기업인은 이윤을 극대화해서는 안되며, 항상 고객이나 종업원에게 최대 가치를 주는 경제 행위가 가장 가치 있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특별히 성도들은 주인의 소유권과 사용권과 회수권 그리고 감사권을 인정해야 한다.


(2) 칼빈주의 교육관

들어가는 말
칼빈주의는 현대 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해 놓았다. 즉 현대 교육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칼빈주의의 영향이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교육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근대 정신의 지주를 이루는 포괄적 사상 체계로서 교육을 포함한 모든 문화면에도 큰 영향을 끼쳐 왔던 사상이다. 칼빈의 교육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책을 따로 쓴 것은 없으나 그의 교육 목적이나 학교교육의 중요성, 조직 등은 “기독교 강요”를 위시하여 그의 여러 책에 잘 나타나 있다. 기독교 교육이 무엇인가로부터 기초, 대상, 목적, 내용, 방법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교육의 개념
교육이란 educare(에두까레)라는 라틴어에서 온 말로 “끌어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한 상태로 향상시킨다는 의미이다.
그 리고 기독교 교육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쉐릴(L. J. Sherill)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 사회, 이웃, 세계, 자신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참여하고 지도하는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노력이다”한 마디로 교육은 변화이고 변화를 위한 모든 활동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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