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03 07:16
예배학 바른 예배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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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900  

저자서문

‘열린 예배’(Contemporary Worship) 예배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교회 생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그 동기를 예배에서 제공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예배의 실제적인 면을 현실감있게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했다.

개혁주의 전통의 바른 예배를 배워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우리의 교회를 바로 섬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예배는 우리교회의 삶과 활동의 중심 동력이다.

예배의 신학적 기초

대상, 종보자,원동력,예배는 본질젉으로 공동체적인 행위이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전 삶이다.

예배의 계획

대상,성경

예배의 인도

정신,역활,문제점

화중의 참여

주일 아침은 토요일 밤에 시작된다.

예배에서의 기도

예배는 기도이다.

예배에서의 실천

말씀의 선포

예배를 말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맏음의 표현이요,마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곧 예배하는 사람들이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이다.사람은 아는 만큼 행동한다.

기독교 예배의 진수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대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데 있다.

예배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편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 지성과 감성과 의지,태도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그분의 탁월하심에 합당한 존귀와 찬송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 이다.

예배의 어원적 의미

예배의 현대적 용어

예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는 언어에서부터 시작 된다.

예배라는 말(단어)을 한자어로 이해하면 ‘예를 다하여 절한다’는 의미이다.

‘worship' '하남님께 대한 최대한의 존경으로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to ascribe Him supreme worth)'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부여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영어나 독일어를 사용하는 서구국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예배의 개념을 살펴보면 예배를 섬김과 봉사의 의미로 이해하여 ’봉사적 개념‘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예배의 구약적 용어

‘예배’로 번역되는 구약 성경의 중요한 단어는 봉사와 섬김을 나타내는 ‘아바드(abhacdh)'와 굴복하는 것 EH는 엎드리는 것을 뜻하는 ’사하아(shachah)'가 있다.

아바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주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샤하아

아바드와 함께 예배의 의미로 사용되는 ‘샤하아(shachah)’는 엎드린다.

굴복하는 의미로서 예배로자들이 숭배 대상에게 최대한으로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샤하아로 종교적 숭배와 순종을 겸하여 마음과 몸으로 존경을 표하는 태도를 뜻한다.

구약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무한의 겸소으로 자기를 낮추고 그분의 뜻을 따라 봉사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그 외적 표현은 ‘육체적인 겸손의 자세’djk '물질적인 희생으로소의 봉사 행위‘로 예배자의 진실한 마음과 생활의 표현이어야 한다.

예배의 신약적 용어

프로스쿠네오는 ‘누구의 손에 입맞추는 것’ 혹은 ‘존경의 표시로 다른 이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것을 뜻한다.

‘레이투르기아’는 레이토스와 에르곤의 합성어로소 ‘백성을 위하여 일한다’라는 뜻이다.

교회를 위한 공적인 봉사를 예배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예배는 개인적으로 나아가는 구약의 제사적인 희생의 예배와는 달리 어떤 특정인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 전체가 참여하여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봉사를 뜻하기 때문이다.

예배는 전체 회중의 일이요, 행위라는 것이다.

라트레이아

‘라트레이아’란 구약 성경의 아바드를 70인역에서 변역한 것으로 ‘섬긴다’는 의미이다.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라트레이아라는 단어를 통래 제사적인 예배와 전문적인 종교적 행위로서의 예배, 기독교인의 전생활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참 예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배의 생활, 그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참 예배인 것이다.

이상의 용오에서 신약 성경의 예배는 최대한의 존경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 교회를 위한 공적인 봉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 믿음의 순종으로서 말씀 선포,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섬기는 삼 자체 등의 개념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배란 사람이 존경과 경외감을 갖고 최상의 존재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경의와 존경을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함께 모이는 이유이다.

예배는 하니님께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 우리의 마음의 태도 및 우리의 소유물을 드리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예배의 교회적인 의미

제의(Cult)

종교적 의식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종교의 형식적, 의식적인 면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봉사(Service)

예배의 주관자이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예배(Worship)

하나님께 영광 ,찬미, 감사를 돌린다는 뜻이다.

예식(Liturgy)

의식주의적 예배를 가리킨다.

17세기 이르러 이용어에서 의식적 색채가 없어졌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는 개신교 일부에서도 예배를 리터지라고 부리게 되었다.

기도

예배는 공중의 기도 생활이다.

근본족으로 예배는 개개인의 기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공적인 교회의 예배는 바로 공동체의 기도의 장이다.

그 기도 가운데는 감사와 찬양, 회개와 도고와 간구 등 적어도 다섯 가지의 요소가 포함된다.

기도를 기원의 요소만이 아니 감사와 찬미를 포함한 광의적 의미로 생각한다면, 기도가 예배 전체를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예배의 성격

기독교의 예배는 다만 경험될 수 있을 뿐이다.

예배 인도자나 참여자들이 마음속에는 기독교 예배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신비적 성격

예배는 놀람에 대한 반응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한 사람은 놀라게 되고 놀람은 예배로 표현된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예수의 열둘 제자 그놀람의 결과는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었다.

“이가 누구이기에 이런 일을 행하는?” 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이와 같이 예배는 계시적 성격과 신비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우리를 예배로 인도한다.

우리는 예배에서 신비(하나님의 초월성)와 의미(하나님의 내재성)를 모두 경험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계시가 기적이고 교회에서의 성령님의 계속적인 활동이 기적인 것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도 언제나 기적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인도하는 목화자가 신비감과 경외심과 경의심과 경이감을 가지고 예배에 임하도록 회중들을 인도 할 때 교회의 예배는 도욱 진실하게 될 것이다.

축제의 성격

기독교 예배는 본질적으로 역사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활동, 즉 창조, 섭리 구속의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족 계시,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을 찬양하고 축하하는 축제이다.

예배의 축제적 성격은 구약의 예배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예배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으로부 어떤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베퓨신 은혜를 상기하고 신뢰를 회복하며 말씀을 들음으로써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그에게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을 묘사하는 행위로서의 축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하신 일을 감사하면서 예배를 드린다.

섬김과 봉사의 성격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임재하셔서 그의 백성과 교제하고 그의 백성은 예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영적 진리를 나타낸다.

예배는 헌신의 행위와 의식 그리고 예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는 생활 전체를 의미한다.

예배는 생활의 모든 경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실현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2절에 “너희 몸을 하나나미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다.

이것은 곧 성도의 삶 전체가 섬김과 봉사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있다.

진정한 예배는 날마다 하나님께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드리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종교한 기도를 드리는 것과 장엄한 의식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매일의 삶을 드리는 것이다.

교육적 성격

예배는 비의도적 교육 프로그램이다.

예배의 목적은 교육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언제나 교육적 성격을 가진다.

우리는 지금도 예배 가운데서 교회를위한 신앙적 삶의 원리를 강화시키고 있다.

예배의 가장 중료한 요소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가르치는 것으로서, 항상 윤리적 관점에서 사람의 지표로 선포되는 것이며 개개인의 신앙 강화에 교육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종말론의 성격

예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이 세상 너머로 바라보게 하며 종말론적 소망을지니게 된다.

교회는 예배를 계속하는 일을 맡았다.

특별히 성찬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시대의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는 한 표정이다.

진정한 예배는 항상 예배하는 자의 실존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게 마련이다.

진정한 예배는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항상 공급해 준다.

교회는 예배의 경축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종말론적 성취를 보고, 종말론적 교회로서의 자신을 알아차리고,종말론적 완성의 소망을 갖는다.

예배의 성경적 근거

‘기독교는 예배하는 종교이다’‘

기독교의 예배는 역사적인 것이다’

예배학의 기본적인 연구는 역사적 이해를 전제해야 하며, 예배의 역사를 살피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를 살피는 것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독교의 예배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적 과정과 함께 하기 때문에 교회사의 맥락을 따라서 전개될 수 밖에 없다.

기독교 예배의 근원은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한 특별한 백성에세 자신을 계시하여 자기를 섬기도록 그들을 선택했다고 했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공족 예배 생활은 역사적으로 출애굽에서부터 시작되었디.

이것이 이스라엘 왕국 시대로 이어지면서 일정한 장소에 국한된 예루살렘 성전의 예배가 되었고,민족의 수난과 함께 회당 예배로 새로운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구약 시대의 예배

기독교 예배의 원리는 먼저 구약 성경에서 찾을 수있다.먼저 일정한 제사가 발전했다.

또한예배의 실천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변화햇다.

예배 처소의 경우 처음에는 다듬지 않은 큰 돌을 그냥 세워놓던 것이 광야에서는 이동식 성전인 성막으로 발전하고, 솔로몬 때는 항구적인 성전으로 발전한다.

예물을 드리는 방식도 더욱 상세하고 엄격하게 규정된다.

족장들은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렷으나나중에는 제사가 제사장의 고유 권한으로 확립되어 왕이라도 친히 예물을 드리지 못했다.

고대 세계에서 이교도들이 드린 예배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린 예배와의 차이점은, 하나님께서 한 특별한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한신 사실과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선택하신 사실에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셧다.

그는 역사 안에 개입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셨다.

이스라엘은 그 예배에서 아무런 형상을 가지지 않았다.

이교도들의 예배는 아래로부터 시작된 것인 반면에 기독교의 예배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족장시대

족장 시대의 예배는 주로 개인과 가족 중심의 예배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족장이나 그의 가족와 계약을 맺으셨고 족장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단을 쌓았다.

‘희생 제물’이 그 제단의 중심이 되었다.

족장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였고,그들이 머무는 곳이 어디든지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되었다.‘

가족이 교회이고 교회가 곧 가정’이었던 족장 시대 예배의 신학적 성격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둘째, 계약 백성의 구별된 표로서 할례의 제도를 세운 것이었다

셋째, 십일조의 실례를 세운 것이엇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찾는 자에게 오시고 예배드리는 자리에 임재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배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원리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족장 시대의 예배는 원리를 표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율법 시대

율봅 시대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자신을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로 이스라엘에게 계시하고 예배의 형식을 요구(출20:1-18)하신 것으로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구체화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이란 새 계약을 그 백성에게 부여했으며 예배를 위한 성소의 내용과 규례 문제, 제사장 계열(레위 지파)의 확정, 제사 제도의 제정 들을 명하셨다.

이로부터 노예 생활 속에서 무질서했던 여호와 종교의 독특한 예배 형태를 쇄신해 가는 구체적 발전 단계가 계시된다.

시내산에서 있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만남

첫째, 이 만나을 소집한 주체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은 각기 역할을 분담하여 전원이 참여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 선포이다.

넷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로 굳게 약속햇다.

다섯째,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만남은 언약에 인을 치는 비준의 극적인 상징으로 그 절절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희생 이후에는 주님의 성만찬이 교회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를 보증하는 인이 되었다.

성맏은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였다.

이 성막 예배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가 있었는데, 첫째가 절기의 축제 예배였다.

둘째는 법궤를 중심으로 한 희생 제사의 예배였다.셋째는 안식일 제도가 지켜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신앙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기 백성에게 구원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가르쳐주신 사건인 율법 시대의 예배는,모세로부터 아론과 그 아들들이 의하여 공중 예배의 한 제도로 확립되었다.

율법 시대와 주어진 이스라엘 예배의 뜻과 목적은 “우상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말라”(출20:5)는 하나님의 요구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라는 말씀 속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

사사시대사사 시대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산당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길갈은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께 예배하기 위해 건립된 첫 장소였을 것이다.

길갈(삿2:1),오브라(삿6:24),실로와 단(삿18:29-31),헤브론(삼하5:3), 기브온(왕상3:4)의 제단들을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위하여 그 땅을 계속 정복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 시대

모세의 출애굽에서 계시된 제물에 의한 제사, 즉 제물 중심의 예배는 이스라엘 왕국 시대로

오면서 계속되었고, 디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의 집을 세우면서 그 전성기와 절정을 이루게 된다.

다윗시대에 하나님께로부터 계시 되었지만 솔로몬 시대에 비로소 건축된 예루살렘 선전(왕상 6:37-38)은 유동식 장막을 대치하여 나타난 예배로 장소로, 모세의 광야 예배에서 구원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심을 상징하는 언약궤(법궤)가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성전 예배와 성막 예배는 구조나 내용상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이 성전 예배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다.

첫째, 예배 장소가 성전에 국한되어 성전 이외의 다른 곳에서 희생의 제물을 드리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둘째, 예배에 관한 모든 요소가 성문화되어 세부적인 것까지 규정지어 있었다.

셋쩨, 특정인을 통하여 대리, 위탁 예배를 드렸다.

넷째, 의식적인 예배로소 설교와 기도가 없는 예배였다.

다섯째, 상징적이고 모형적인 예배였다.

포로이후 시대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 곧 예배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존폐 여부와 직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예배는 솔로몬 말기부터 그의 타락과 함께 형식화되기 시작했고 예배의 본래적 목적을 상실하는 현상을 가져왓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솔로몬 성전의 파괴, 예배의 중심지로부터 멀리 떠나 있어야만 했던 오랜 포로 시절,예언 활동의 쇠퇴 등과 같은 역사적 상황의 변화는 ‘회당’이라는 예배의 새로운 형태를 일으켰다

포로 이후 시대의 예배는 한마디로 회당 예배라 할 수 있다.

회당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있었는데, 성전 예배의 참여자는 구경꾼에 불과하지만 회당 예배는 모두가 예배의 참여자인 것이 특별한 점이었다.

회당 예배는 임시적인 것으로 메시아가 성전을 건축할 때 까지로 한정되어 있었고 성전에처럼 행을 피우거나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회당에서는 안식일마다 예배가 거행되었는데 예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akfTMa, "쉐마“의 낭독으로 예배는 시작된다.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한 신앙 고백(신6:4-9)과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받을 축복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 이 받을 저주(신11:13-21),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복(민15:37-41)의 순서로 세 구절을 차례로 낭독한다.

둘째, 회당 예배는 기도를 중시한다.

셋째, 율법의 낭독이 있었다.

넷째, 구약의 예언서를 낭독했다.

다섯째, 강해와 권면의 시간이 있었다.

여섯째, 제사가 있을 때에는 축도가 있었고 축도가 있은 훙에 는 아멘으로 끝났다.

이 회당 예배는 주후 1세기에 와서 더 이상 변동하지 않고 고정 순서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면모의 회당예배는 기독교 예배의 요람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오늘의 개혁 교회가 가지는 말씀 중심 예배의 근원이 되고 있다.

회당 예배는 신약 시대에 와서 매우 활발히 전대 전개 되엇으며 교회의 확장 속에 새로운 기원을 이룩하는 절대적 영향을 남겼다.

신약 시대의 예배

구약 시대의 예배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였다면, 신약 시대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한 구속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라고 할 수 있다.

또 구약 시대의 예배를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께 예배하는 역사라고 한다면 신약 시대의 예배는 새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께 예배하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은 백성은 누구나 새 이스라엘 민족이 된다는 것 이다.

구약 성경의 예배와 신약 성경의 예배 사이에 근본조적인 단절은 없다.

일반적으로 신약 성경에는 다음의 세 가지 융합된 예배 형태가 있다고 말한다.

곧 성전에서의 예배, 회당에서의 예배,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특수한 집단으로 모인 가정 및 다른 장소에서의 예배이다.

예수님 시대

예수님께서는 말과 행동을 통해 예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모습을 보여 주셨다.새로운 예배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의식적인 제도보다는 사람들의 내면적 각성과 실천을 추구하는 가운데 드려지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요4:23)였다.

그는 백성들의 내면적 각성과 실천을 추구하는 가운데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함을 강조했다.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으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장소에는 더 이상 제한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 시대 예배의 특징

첫째, 비교적 개방적이고 비형식적인 전도 형식의 예배였다.

둘째, 사도 시대에는 통상적으로 밤에 행하는 예배가 있었다.

사도 시대의 예배는 구속주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 행위로서의 예배라기보다는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흔히 병행되는 비예전적 형태였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중심적 위치에 서 있는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님이 곧 과거에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신 역사적 예수님이며,동시에 미래에 그리스도임을 지시하고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신약시대는 성전 예배와 회당 예배,마가의 다락방에서와 같은 다락방 예배 요소들이 서로 용해되어 새로운 예배의 규범이 만들어지는 시기로서,예수님께서 이 모든 예배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자신을 향한 예배이어야 함을 주장하면서 유대 민족이 주장ㅎ라는 예배의 대상과 예배의 기본 생각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려 주셨던 시기이다(막2:27-28)

예배의 역사적 배경

초대 교회의 예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남겨진 네 개의 문헌은 초대 교회의 예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문헌들은 1.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A.D. 96년경), 2.소아시아 버지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Pliny)가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A.D. 112년경), 3.디다케(didache)라 불리는 열두 사도의 교훈집(A.D. 130년경), 4.저스틴(Justin A.D. 140년경 순교)이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에게 보낸 변증문, 일명 ‘이집트 교회 예식’이라고 불리는 사도들의 전승(A.D. 200년경)들이다.

초대 교회의 예배에 대한 최초의 일반적인 개요는 저스틴의 ‘제1변증서’안에 있다.

저스틴의 자료를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의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

1.찬송 부름(시편이나 성경)

2.성경 낭독(사도들의 언행록과 예언서)

3.인도자의 설교(훈계와 권고)

4.회중의 기도(기립하여 힘에 지나도록)

*다락방의 예전

5.성찬식 -평화의 입맞춤(밷전 5:14)

떡과 포도주와 물을 인도자에게 가져옴

성찬식 기도(인도자 즉석에서 드리는 찬양과 감사)

응답(아멘)

분배(떡과 포도주 분배, 결석자의 몫은 집사가 가져다준다)

6.헌금(가난한 자와 과부를 도와 줌) 등의 순서이다.

초대 교회의 예배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가 중심이었다.

둘째,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써 예배자들의 마음을 주께 드렸다.

셋째, 구약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읽고 그 말씀의 뜻을 강해하면서 신앙과 행위에 대한 권면과설교를 했다.

넷째, 주님의 기도를 비롯하여 감사, 간구, 남을 위한 기도 등과 주님의 재림을 소원하는 기도를 드렸고 아멘으로 응답했다.

다섯째, 예물을 드림으로써 감사와 헌신의 표현을 했다.

여섯째,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공동으로 죄와 신알을 고백했으며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끝으로 예배의 극치를 이루었던 성만찬 및 세례를 배풂으로써 예수님의 구속 사건의 새로운 경험과 은총의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 예배 속에서 다져진 신앙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복음 전파에 역동적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예배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었고, 예배의 핵심적인 순서는 말씀과 성례에 집중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의 증인으로서의 새로운 생명을 재확인하는 데 역점을 둔 예배 분위기를 형성해 나갔다.

중세 교회의 예배

초기 로마 교회의 예배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기독교 역사와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초래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로마의 콘스탄트누스 대제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기독교인들의 일요일을 법적으로 성스러운 날로 지정했으며, 이 교들의 재산을 이용해서 교회를 만들도록 했다.

이로 인해 이 시대의 기독교 예배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첫 번째는, 사적인 예배에서 공적인 예배로의 변화이다.

두 번째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다.

세 번째는, 예배의 전문화(상직화)와 평신도 참여의 후퇴이다.

네 번째는, 외적 형식과 예식의 강조이다.

이처럼 외적인 형식과 강조하게 된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례전주의(Sacramentalism)와 성직주의(Sacerdotalism)의 신학 제돋에 기인한 것 이었다.

교회의 이러한 급겨한 비약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예배 양식에 대한 심각한 대립을 야기시켜 결국 1054년 동방과 서방교회의 영원한 분열이라는 불행을 가져오게 되었다.

동방 교회의 예배

A.D. 350-380년경애 언디옥과 알렌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교구를 정착시킨 동방 교회는 그 때부터 예전의 독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4-6세기 사이에 오늘의 예배 모습을 갖추었다.

동방교회 안에 정착된 예배의 중심은 구원 역사의 상징적 묘사로서 주일 예배를 통해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역사 가운데 참여했다는 구원 계시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다.

동방 교회의 예배 의식은 문화와 역사가 어떻게 예배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헬라문화의 영향으로 동방 교회의 예배 으식에는 신비스런 행사가 많이 발견된다.

언어를 사용하는 말씀의 예전보다는 신비의 능력과 표현이 담겨 있는 성만찬 예배에 더욱 큰 강조점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의 현상은 개혁자들의 눈에 우상 숭배라는 낙인이 찍혀 이단 취급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동방 교회 예배의 이상은 영속적인(영원한) 예배이다.

동방 교회의 예배는 준비 예배, 세례 청원자의 예배,믿는 자들의 예배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동방 교회의 예전은 예배에서 그리스도가 주님으로서 임재한다는 생각을 전체한다는 면에서 서구의 예배의 주된 축제로 삼고(부활 장면을 그림으로그려서 교회의 중심에 세워둔다) 있으며,강한 명상을 중심하는 예배라는 면에서 서방 교회의 예배와 차이를 보인다.

서방 교회의 예배

서방 교회 즉 로마 교회의 예배는 교황 그레고리 3세에 의하여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여 트렌트 종교 회의가 있었던 1570년경에 확고한 가톨릭 교회의 예배 의식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400년이 지난 1963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라틴아로 진행되던 미사를 자국어로 인도하도록 하며, 성찬 중심의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도록 예배(미사)의규정을 새롭게 수정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서방 교회는 말씀과 성례를 예배의 두 기둥으로 붙들고 있었지만, 신비적인 면을 강조하던 동방 교회와는 달리 자신들이 속해 있던 문화권의 영향 아레에서 로마인들의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즉 예배가 회중이 알 수 없는 단어로 성직자에 읳래서 연출되는 하나의 연극이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설교의 쇠퇴로 초대 교회와 기독교 예배의 본질이며 특색인 말씀과 성찬의 균형이 상실 되었다.

교회의 본래 모습을 예배 가운데서 상실한 중세 교회는 결국 면죄부 판매와 같은 모순을 범하며 시대를 암흑기로 몰고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명의 새 아침을 추구하는 참신한 개혁의 일꾼들이 드디어 나타나게 되었다.

종교 개혁시대의 예배

16세기 종교 개혁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패역한 세대’로 전라된 중세 교회와 사회는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교화의 폐단을 개혁 할 때에 가장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착수 한것이 바로 예배의 개혁이었다.

종교 개혁은 단순히 예전의 불만과 시정을 위하여 발생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자리에 교황이라는인간이 앉아 믿음보다는 제도 속에서 공적을 더 중요하게 취급한 것, 미사의 헌금과 면죄부의 구입은 성직 매매와 착취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의 필연적 발생을 서두르게 하는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반복하지만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교회의 폐단을 개혁할 때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바로 예배의 개혁이었다.

종교 개혁 시대의 예배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가장 보수적인 개혁성을 띤 루터주의 예배 형태로서 로마 가톨릭 시대의 것을 상당히 축소하긴 했지만 많은 부부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던 예배 의식이다.

둘째는 루터주보다 더 용감했지만 츠빙글리보다는 급직적이지 못했던 온건한 칼빈주의의 예배 형태로서, 오늘날 장로 교회 또는 개혁 교회 예배 의식의 원형이다.

셋째는 가장 급직적인 츠빙글 리가 주장한 예배 형태 로서, 재침례교 및 퀘이커교와 같은 청교도적 전통의 독립 교회예배 의식의 근간이 된 것이다.

루터의 예배

루터는 첫째,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귐을 강조했다.

둘째,주님의 민찬은 중심이 되는 의식으로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매일 거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음식에 실제로 임한다는 셍체 공재론을 믿었다.

넷째, 미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의 반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바쳐서 그분의 희생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섯째, 자국어로 미사를 드리도록 권장했다.

여섯째, 라틴어로 대부분위 의식적 등불과 분향 및 제복을 사용하면서 로마 교회의 옛 관례로 돌아갔다.

루터가 의도한 것은 복음적 태도에 입각하여 초대 교회의 예배의 균형을 다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역사적인 교회 음악을 선호했던 루터는 츠빙글리나 칼빈과는 달리 오르간을 계속 사용할 뿐 아니라 성가대로 하여금 라틴어로 합창하게 했으며, 반주 없이 노래를 부를 때는 성가대가 회중의 찬송을 이끌어가도록 했다.성가대가 교회에서는 ‘칸토(cantor,노래하는 자)’가 찬송을 인도했다.

그는 성경에 금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교회가 도움이 된다고 결정하면 허용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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