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1-30 18:26
예언의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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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2,178  

예언의 은사 (고전 12:10)


오늘은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프로페테이아)을"(고전12:10)이라 했습니다. 예언을 뜻하는 프로페테이아는 "전하다, 미리 말하다, 대신 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어풀이만 해도 예언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언은 두 가지입니다. 한글로는 구분이 안 되지만 영어로는 구분이 됩니다. forth-telling과 fore-telling인데 forth-telling은 설교로서 말씀을 대언하는 것을, fore-telling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예언입니다. 고전 12장의 예언은 이 포 텔링(fore-telling)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해서 설교만이 예언이라는 주장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 외에도 성령 은사적 예언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은사적 예언이 더 많이 나타납니다. 이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예고해 주시거나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예언입니다.


1. 예언의 은사란 무엇일까요?


이해하기 쉽게 역시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데이비드 피체스(David Pytches)와 웨인 그루뎀이라는 학자는 “예언은사는 우리 마음(또는 생각)에 하나님이 즉흥적으로 주시는 것을 사람의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정의가 대동소이합니다. 예언이 마음과 생각으로 임한다고 했습니다.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와 바디 클린턴(Bobby Clinton) 역시 두 사람은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예언의 은사는 신적인 기름부음을 받은 언어로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주시는 메시지를 받아서 전달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이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 더 소개하면 케네스 해긴(Kenneth Hagin)은 “예언의 은사는 신자들을 권면하고 건덕하고 안위하고,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예측적인 것은 물론 설명적인) 진리를 표현하는 능력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제 대략 예언이 무엇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2. 예언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예언에는 개인을 위한 예언, 교회를 위한 예언, 국가를 위한 예언, 세계를 향한 예언 등이 있습니다. 회개를 위한 경고와 약속과 소망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고전 14장에 나오는 예언 대상은 믿는 자와 불신자로 나타납니다. 신자는 물론 불신자에게도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고전14:3에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라. 여기 권면은 숨은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안위는 처한 형편에 대해서 위로하시고 말씀으로 약속해 주심입니다. 힘들고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 예언의 말씀은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해 줍니다.


고전14:25에 불신자에게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예언을 들을 때 불신자들이 하나님 살아계심을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3. 예언의 은사는 얼마나 유익한가?


대단히 유익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언은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안위합니다. 혹은 내가 잘못 하고 있을 때 예언은 바른 길로 일깨워 줍니다. 또 예언은 우리에게 사명을 알려줍니다. 아나니아도 사울에 대해 예언하면서 사명을 알려주었습니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자기 사명을 알게 된다면 참으로 유익한 일입니다.


또 예언은 생각과 관점을 바로잡아 줍니다. 어느 성도가 수년 간 남편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남편이 잘해주지도 않고 예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이런 생각이 밀려옵니다. "그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 이제 곧 내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자비를 베풀어라." 그래서 자기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의 자녀처럼 잘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자기도 이제 죄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알 때가 된 것 같다면서 교회를 따라나서 부인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예언은 책망하고 훈계합니다. 혹은 예언을 통해 기도제목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언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확인해 줍니다. 내가 늘 생각해 오고 품고 있는 것을 말씀할 때 아 그런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음성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대 결정사항일 때는 예언을 들었다고 바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통로를 거쳐서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까지 25년에 걸쳐 7-8회의 말씀을 주시면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언은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예언을 통해 새로운 만남, 새로운 사역, 새로운 사업, 새로운 방향 설정이나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합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육신의 이런 일 해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악한 무당의 영이 역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맞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큰 시험이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 물어도 내가 예언의 주체가 되어 무당의 짓을 하면 성령께서는 침묵하시고 악령이 좋아합니다. 지난 날 한국교회가 예언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폐해가 심했습니다. 그 결과 고귀한 예언의 은사가 한국교회에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하여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4. 예언의 은사는 어떻게 임하는가?


구약에서는 보통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그러한 표현은 없고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을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참말을 하고", "내 양심이 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와 같은 표현을 씁니다. 그러니까 신약의 예언 은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즉 우리 내부의 증인이신 성령님의 자극의 결과로 행해집니다.


방법으로는 꿈을 통해 임하기도 합니다. 깊은 잠 혹은 비몽사몽 간에, 비몽사몽이란 잠시 의식을 잃고 망각상태에 있을 때를 말합니다. 혹은 환상을 통해 임하기도 합니다. 혹은 생각으로도 임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떤 생각이나 단어나 문장이 갑자기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초보를 지나 생각이 더 강력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언에 관한 원문을 보면 예언자의 마음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언하다’의 히브리어는 ‘나바’인데 "거품이 일듯 부글부글하다. 솟아나다, 분출해 나오다, 앞으로 뿜어져 나오다"는 뜻입니다.


예언을 주실 때 마음이 어떤 내용에 사로잡혀 말을 토해내는 그런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생각과 의도가 예언자의 입술을 통해 거침없이 마음으로부터 솟아나고 거품처럼 뿜어져 나오게 됩니다. 성령의 생각이 나를 사로잡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상태에 이르도록 더욱 성령에 충만하고 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5. 예언은사자의 마음 준비는 어떠해야 하는가?


예언은 하나님께서 마음과 입술을 쓰시는 은사이기 때문에 마음과 입술 관리를 아주 조심해야합니다. 말은 입을 나오는 순간 주어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지만 그것을 받아 말하는 예언자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달과정에서 잘못할 수 있습니다. 예언은사의 딜레마가 여기 있습니다.


아합이 아람과 전쟁을 앞두고 선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인은 승리를 예언합니다. 하지만 미가는 패배를 말합니다. 서로 상반되는 예언 앞에 아합은 결국 시드기야의 말을 듣다가 멸망합니다.


이처럼 예언은사는 은사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오감으로 오는 것은 악한 영의 의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신비적인 것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깨끗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죄와 오염에서 떠나야 합니다. 주파수가 세상에 맞추어져 있으면 세상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적 감정과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편견이 있으면 하나님의 생각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겔13:2에“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찐저” 이 말씀은 자기 생각대로 예언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마음이 깨긋한 것입니다. 겸손하게 쓰임 받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교만하면 악령이 역사하게 됩니다. 개인의 취미나 취향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예언 은사는 하나님을 경외함의 결과이지 사색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김 없이 음성 듣기 위해 사색하는 것은 사탄의 생각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많습니다.


요즘 서양 쪽의 영성운동은 묵상 묵념 침체 침묵 그런 분위기를 추구하는데 사단의 음성이 많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한다고 예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활발하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생명의 성령을 따라 사는 삶에서 마음은 정화되고 참된 예언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도록 항상 힘써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거나 성령께서 주장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우리에게 은사가 있든 없든 쓰시든 안 쓰시든 나는 하나님의 종이요 도구라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이 모든 은사의 기초입니다.


6. 예언 은사는 어떻게 활용합니까?


다른 은사들과의 연계시켜서 종합적으로 활용할 때 가장 좋습니다. 여러 은사가 풍부할수록 예언은사 활용에 좋습니다. 예언을 할 때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영분별, 능력, 신유 등의 여러 다른 은사가 종합적으로 활용되면 육해공군이 합동작전을 벌이듯이 잘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중에서 지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예언을 지혜롭게 잘 전할 때 부작용도 없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앙 상담 형태로 하면 됩니다. 예배에서 활용법에 대해서 바울은 고전 14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먼저 적당히 해야 합니다. 29절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예언이 좋다고 예언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두 세 사람 정도하면 좋고 그것도 순서대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29절) 왜 그럴까요? 개인도 아니고 잘못했을 때 회중에게 끼칠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덕이 되는지, 안위가 되는지, 말씀에 이탈은 없는지, 예언한 후에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은 바로잡아주어야 합니다.


질서대로 해야 합니다. 30절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예언을 하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예언을 하게 되는 일이 생길 때 그 때는 처음 하던 사람은 속히 예언을 마무리하고 바턴을 넘겨주라는 것입니다. 질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개인적인 예언도 가능합니다. 31절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14:1) 개인 예언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게 하는 촉진제가 됩니다. 이럴 때의 예언은 영적 상담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언의 은사는 개인이나 교회에나 국가나 세계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잘못된 예언으로 교회가 당한 피해도 크거니와 반대로 예언을 무시하여 받는 피해도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예언의 은사는 성도들만이 아니라 미신으로 달려가는 많은 불신자들에게도 돌이킴의 귀한 은혜를 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최대의 예언자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예언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모두 자연과 섭리와 성경과 강단을 통해 들려지는 주의 음성은 물론 우리 심령에 들려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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