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1-02 15:01
고대에 나타난 성경의 무오성[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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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907  
왜냐하면, 그는 성경에 대해서 말하기를 “성경 (holy scripture),” “성경 (Holy scriptures),” “신성한 성경 (sacred scripture),” “신적인 말씀 (Divine oracle),” “하나님의 신탁 (the oracle of God),” “신성한 문서들 (the sacred scriptures),” “성경의 신성 (the divinity of scripture),” 그리고 “거룩한 문서들 (holy Writings)”이라고 여러번 강조하여 언급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거룩하고 신성한 글이다. 성경이 신성하고 거룩한 문서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이어서 거룩한 신성이 있는 문서들이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의 아들아, 그런 다음에 너는 신성한 성경을 읽는데 부지런히 너의 마음을 기울이도록 하여라....그리고 이와 같이 신적인 연구에 몰두하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여, 너무나 많이 빠뜨린 성경의 의미를 올바르게 탐구하여라.

오리게네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임을 확신했기에 그의 아들에게 신성한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서 성경에 그의 마음을 기울이도록 하였다. 그는 그의 아들에게 신적인 연구에 몰두하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여, 너무나 많이 빠뜨린 성경의 의미를 올바르게 탐구하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성경을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으로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의 아들까지도 성경을 연구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성경을 연구할 때 그는 성경의 해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 경의 의미를 모든 그리스도인의 혼에 각인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비교적 단순한 사람들은 성경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세워진다. 이것은 내가 공통된 해석에 붙이는 이름이다. 둘째, 어느 정도 진보를 한 사람들은 실제로 '영' (soul)에 의해 세워진다. 셋째, 온전한 자들(참조. 고전2:6,7)은 '신령한' 율법, 곧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에 의해서 세워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듯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신 선물인 성경도 그러하다.....

(12) 성경의 어떤 부분은 '몸'이 없다. 그런 부분에서는 '혼'과 '영'만 살펴야 한다.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라는 요한복음의 진술은 아마 그것에 초점이 있을 것이다. 사도는 때로는 두 통 (즉 '혼'과 '영'이라고 할 수 있는)이 들고, 때로는 세 통 ('몸')까지도 드는 성경 말씀으로 유대인들이 정결케 된다는 것을 수수께끼로 암시한다. '몸'의 유익함은 허다한 단순한 신자들에 의해 증거되는 것으로서, 매우 자명하다. 바울은 '혼'의 예를 많이 제시하며 [예. 고전 9:9,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그것에 설명을 붙인다.

(13) 영적 해석은 '육신으로 난 유대인'의 예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를 내놓는 방식과, 율법이 어떻게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에게 속한다 [예. 고전10:11, 10:4 (신령한 반석), 갈4:21-24 (하갈과 사라)].

위의 글은 소위 그의 영적 해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성경의 의미를 아는 세 가지 방법으로 첫째, 성경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세워지고, 둘째, '영' (soul)에 의해 세워지고, 셋째, ‘신령한’ 율법, 곧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에 의해서 세워지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사람이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듯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신 선물인 성경도 그러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영적 해석은 '육신으로 난 유대인'의 예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를 내놓는 방식과, 율법이 어떻게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에게 속한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성경 해석은 성경의 권위와 성경의 무오를 전제하고 하는 것이다. 그는 성경의 무오를 전제하고 성경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영적인 해석 방법을 사용했다. 다음의 그의 인용문은 그가 성경의 권위를 얼마나 인정했는가를 보여준다.

나 는 최근까지 성경에서 성령이 창조된 존재라고 암시하는 단락을 발견하지 못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심지어 솔로몬이 지혜를 가리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는 의미에서나, 앞에서 주장한 대로 '생명'이나 '말씀' 같은 성자에 대한 호칭들을 이해할 때 준하는 의미로도 그렇게 암시하는 단락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수면에 운행'하신 분은 다름 아닌 성령이라고 생각한다.

오리게네스는 성령이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솔로몬이 말한 지혜나 생명이나 말씀 등이 성자로 호칭되었을 때까지도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조되었다는 성경의 암시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수면에 운행하셨던 분은 성령이다. 따라서 성령은 창조주이시지 피조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자도 창조주이지 피조물이 아니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성경의 연구를 통해서 이다. 이것은 성경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오리게네스의 확신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으로 그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성경으로 결정하였다. 그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그의 글 중 다른 것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실제로 계시다는 것으로서, 우리는 아버지만 낳은 바 되지 않으셨다고 믿는다.

이 제 우리는 가능하다면 성경을 근거로 그의 아들들 곧 사도들과 순교자들이 어떻게 성도들의 죄를 짊어지는지를 입증하려고 한다. 첫째,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이렇게 사도는 자기가 글을 쓰고 있는 자들을 위해 자기가 허비되고 있고 부음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물이 드려질 때는 이런 목적, 즉 그 대상의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드려진다.

오리게네스는 삼위일체를 논의할 때 오직 성경을 근거로 하여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실제로 계시고, 아버지만 낳은 바 되지 않으셨다고 믿었다. 아버지만 낳으신 바 되지 않으셨다고 해서 성자와 성령이 피조되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단지 위의 글들은 오리게네스가 그의 신학적 판단의 기준을 성경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가능한 한 성경을 근거로 어떤 진리를 입증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서 사도들과 순교자들이 성도들의 죄를 짊어진다고 할 때 성경을 근거로 입증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라는 바울의 말을 인용한 것은 오리게네스가 성경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다른 성도들의 영혼을 위하여 바울은 그의 재물을 허비하고 또 그 자신까지도 허비한 것을 성경을 근거로 입증한 것이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고 말한 것도 사도 자신이 다른 성도들의 영혼을 위하여 허비되고 있고 부음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이처럼 어떤 진리를 주장하려고 할 때 성경의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입증하고자 했다. 이것은 그가 그 만큼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확실하고 틀림이 없는 말씀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음의 그의 인용문은 그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음은 물론이요, 동시에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그 런 다음 전승은 성령이 명예와 위엄에서 성부와 성자와 동등이시라고 가르친다. 성령을 나신 분으로 혹은 나음을 받지 않은 분으로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해야 하는지는 아직 명쾌히 결정된 사항이 아니다. 이 문제는 성경에 입각한 세심한 조사를 필요로 하며, 신중한 연구로 검토될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즉, 교회의 가르침은 이 성령께서 모든 성도와 선지자와 사도를 감화하셨다는 것과, 바로 이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강림 이후에 감화를 받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전 시대 사람들 안에도 계셨다는 것을 선포한다.

오리게네스는 성경을 근거로 그의 신학활동을 했다. 성령이 명예와 위엄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와 동등이시라고 가르친 것은 전승인데, 그 전승은 성경에 근거를 둔 것으로 오리게네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그는 성령을 하나님으로 확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성령을 나신 분으로 생각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나음을 받지 않은 분으로 생각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입각한 세심한 조사를 필요로 하고, 신중한 연구로 검토될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보면, 오리게네스에 있어서 성경은 모든 신학활동의 기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성령에 관해서 분명하게 확신한 것은 성령께서 모든 성도와 선지자와 사도를 감화하셨다는 것과, 바로 이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강림 이후에 감화를 받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전 시대 사람들 안에도 계셨다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의 기록자들을 감동 감화하셨기 때문에 성경에는 오류가 없는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모든 신학활동의 표준이 되었던 것이다.

마 지막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작성되었다는 것과, 표면상으로 명쾌한 뜻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에게 감취어 있는 뜻도 가지고 있고, 그런 뜻을 가지고 성경 기사가 신적 문제에 속한 특정한 신비들과 형상들을 제시한다는 것도 교회의 가르침에 들어 있다. 성경 안에서 온 교회가 모든 율법 즉, 구약성경은 신령한 줄을 믿는 데 일치한다. 그러나 이 신령한 율법을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 은혜를 주신 사람들만이 이해한다.

오리게네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작성되었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것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적인 기원을 가지며 신적 권위를 갖는다. 성경은 신적인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 성경은 신적인 기원을 갖는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이기 때문에 표면상으로 명쾌한 뜻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감춰져 있는 뜻을 가지고 성경은 신적 문제에 속한 특정한 신비들과 형상들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성경에 대다수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 더욱 성경의 영감과 성경의 신적 기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이와 같이 하나님에게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성경 안에서 온 교회가 모든 율법 즉, 구약성경은 신령한 줄을 믿는 데 일치한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였다.

그러나 이 신령한 구약 성경은 성령으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 은혜를 주신 사람들만이 이해한다. 위의 인용문은 그가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음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리게네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확신하였다.

'아 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아담'에 관해 쓰는 기사에서 '사람'의 특성을 설명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고, 모든 사람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지었다. 성령의 감화를 받아 기록된 이 구절들은 한 사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전 인류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오리게네스가 신약 성경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기록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말은 사도바울이 고리도전서 15장 22절에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한 말을 오리게네스가 인용한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이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지었다는 오리게네스의 말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 14절에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에게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고 말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들은 한 사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전 인류에 관한 것이라고 오리게네스는 주장하였다. 오리게네스는 이와 같이 어떤 주제를 언급할 때 항상 성경을 근거로 하여 그의 주장을 전개하였다. 교리는 항상 성경에서 유래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아울러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신약 성경의 구절들이 성령의 감화로 기록된 것임을 명백히 주장하였다. 그러니까 초대교회의 가장 박학한 학자로 평가되는 오리게네스는 성경의 글자와 점들까지도 영감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성경이 “성령께서 영감”했으므로 아무런 오류를 포함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또한 성경 무오의 교리가 모든 교회에서 가르쳐지고 있었다는 말을 첨가했다.

“성경 자체는 신적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감동된 것이다”고 주장한 오리게네스는 명백히 같은 책에서 기록하기를, “성경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기록되었다”고 하였고, “성경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감되었는데, 예수님의 자신의 선언대로 복음서와 서신서, 그리고 율법서과 선지서”라고 하였다. 오리게네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스도 자신의 선언대로 모든 성경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감되었다. 오리게네스가 언급한 “복음서와 서신서”는 신약 성경 전체를 가리키고, “율법서와 선지서”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고 본다. 오리게네스는 예수님이 성경 전체가 성령에 의해서 영감되었다고 선언하셨으니까 예수님의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오리게네스는 성경의 완전축자영감 (the verbal, plenary inspirstion)을 주장한 것이다.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 전체가 기록되었다면 성경의 저자는 성령이다. 그리고 성령이 성경의 저자라면, 성경은 오류가 없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성경은 무오하다.

왜 냐하면 그는 모든 성경이, 다윗의 음악이 사울을 질식시키려는 악한 영을 안정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배우려고 하는 자들에게 다른 소리들로부터 하나의 구원하는 목소리를 제공하고, 악한 영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억제하는, 하나님의 한 완전하고 조화된 도구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유일하고 완전한 도구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완전하고 모순이 전혀 없는 도구이다. 모든 성경은 그 자체로 아무런 오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무오하고 완전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조화된 도구이다. 무오하고 신성한 성경은 구약과 신약, 복음서와 율법서, 선지서와 율법서, 복음서와 서신서 등에 있어서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오리게네스의 주장이다. 다윗의 음악이 사울을 질식시키려는 악한 영을 안정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은 배우려고 하는 자들에게 다른 소리들로부터 하나의 구원하는 목소리를 제공한다. 그러니까 성경은 구원하는 하나님의 목소리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은 악한 영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억제하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리게네스는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도 영감되었기 때문에 신약과 구약은 권위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 리고 마찬가지로 그는, 성경 안에서 충돌되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전혀 없고, 신약과 함께 구약, 선지서와 함께 율법서 혹은 사도들의 성경과 함께 복음서, 혹은 각각 다른 것과 함께 사도들의 성경의 어느 곳에서나, 그것들의 일치와 평화를 나타낸다는 것을 그가 증명한 것처럼, 제3의 화평케 하는 자가 된다.

모든 성경 안에서는 충돌되는 것이 전혀 없다. 신약과 구약, 선지서와 율법서, 혹은 사도들의 성경과 복음서, 혹은 각각 다른 성경과 사도들의 성경에 모순이나 충돌이 없다. 모든 성경의 어느 곳에서나, 성경 안에서의 일치와 평화를 나타낸다. 따라서 신약과 구약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구약의 권위도 동일하다. 이와 같이 오리게네스는 성경 내용의 조화와 모순 없는 성경의 통일성을 주장했으며, 하나님이 성경의 원저자임을 현시하였다. 다음의 문장은 이 사실을 더욱 확증하고 있다. “이 분이 바로 사도들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되시면서, 율법서와 선지서와 복음서를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아버지, 공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오리게네스는 신구약의 동등성 및 통일성과 관련하여 그 당시의 교회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성령은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간에, 성도들 각자에게 감동하였다; 그리고 옛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한 영이, 그리스도의 강림에 감동된 자들 안에서는 다른 영이 있었던 것이 아님은, 교회들을 통하여 가장 명백히 가르쳐졌다.

오리게네스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음을 주장하였다. 성령이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 시대의 사도들을 감동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였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영이, 신약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구약 시대와는 다른 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같은 한 성령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감동하여서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그러니까 신구약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한 성령으로 영감되어서 기록되었다는 것이 오리게네스의 주장이다.

이상의 연구를 종합해 볼 때, 오리게네스의 성경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지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모든 판단의 기준은 성경이었다. 그는 모든 결정을 성경을 근거로 하여 교리를 진술하였다. 그는 성경 자체의 증언에 따라서 신약과 구약이 한 성령에 의해 영감되어 기록되었음을 주장하였다. 성경은 성경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완전하여 무흠하고 오류가 없다. 성경의 기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절대적 권위가 있고 신성하다. 모든 성경은 충돌하는 내용이 없고 조화를 이루고 있고 신약과 구약이 동등하며 무오하다. 따라서 오리게네스는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완전하게 영감된 성경의 신적인 권위를 매우 중요시했으며, 일단 그가 정경으로 인정한 성경에 대해서는 그것의 절대적 권위와 무오성에 대하여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6.6. 아다나시우스 (Athanasius, 296-373)

아다나시우스는 성경과 성경의 진리를 위하여 수 십년의 유배를 받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그의 여러 차례의 유배 기간에 많은 저술을 하였는데 대부분 성경과 신앙에 관한 것이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는 아다나시우스의 생애와 행동 방식에 대해서 “감독의 목표”로, 그의 가르침에 대해서 “정통 규범”으로, 아다나시우스 자신에 대해서는 “교회의 기둥”으로, 곧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또한 “산 자들 가운데서 위대한 청지기”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의 저술물들 속에는 거의 전체가 신앙적 이론을 위한 가장 박력 있고 가장 수려한 증언들이 들어 있다. 그는 성경에서 신앙에 관한 가장 고귀한 자료를 보았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숙달한 삼단 논법, 분명한 표현, 잘 정돈된 일관된 사상의 흐름으로 유명하다. 정신력, 힘, 불과 같은 연설, 숭고한 소박성 및 높은 생동감은 당대의 아무도 그와 필적할 수 없었다. 벵트 헤그룬트는 아다나시우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 회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아리우스주의와, 그 이단자들을 후원한 황제의 권력에 대항하여 오랜 세월 투쟁해 나오는 과정에서 교회 신앙의 수호에 가장 충실했던 인물은 바로 아다나시우스이며, 그의 이름은 니케아 종교회의와 관련하여 이미 언급된 바 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328년 사망) 아다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니케아 결정 사항을 끈질기게 주장했던 까닭에, 그에게는 쉬임 없이 박해가 뒤따랐다. 그는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감독 직에서 피신해야 했으며, 거의 20여년 동안을 망명길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가 주후 373년에 사망했을 때, 아리우스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었지만, 그가 남긴 공적으로 인하여 콘스탄티노플 회의(38l)에서 니케아 신학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길이 예비되었다. 아다나시우스의 저작물 가운데 특별히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방인에 대항하여』 (Oratio contra Gentes, 약 318년에 저술)와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Oratio de incarnetione Verbi, 약 318년),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논박하는 글들』 (Orationes Contra Arianos, 약 335년)이 있으며, 마지막의 것은 356년을 전후로 해서 저술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또한 아다나시우스가 『세라리온 (Serarion) 등에게 보낸 네 개의 편지들』도 중요한 신학적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클레멘트나 오리겐과 같은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과는 달리, 아다나시우스는 기독교 신앙을 폐쇄적인 철학 체계 속에 삽입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그는 기독교 교리를 발전시킴에 있어서 철학의 자료를 거부하는 대신에 성경을 유일한 원천으로 삼았다. 그는 클레멘트처럼 신앙 규범을 성경의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의 전통도 그것이 성경과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주후 367년에 기록한 자신의 부활절 서신에서 밝혔듯이, 그에게는 신약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지니는 것이었다. 앞서 얘기한 내용으로 보아 아다나시우스가 일관된 성경적 원칙을 가지고 저술에 임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성경을 율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성경은 그리스도와 그에 의해서 이루어진 구원을 그 중심으로 하는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성경관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외쳤던 루터 (Luther)의 말을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벵트 헤그룬트의 말대로 아다나시우스는 성경의 진리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는 『367년 부활절에 쓴 39번째 편지』 (Letter XXXIX, Easter, 367)에서 “신적으로 영감된 성경” (the divinely inspired scripture)이 신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수납된 정경 (the Canon)임을 말했으며, 현존하는 신구약정경 목록을 말하였다. 그는 구약 22권을 말하였는데, 그것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한 권으로 합산된 12 선지서, 또 한 권으로 취급된 사무엘서와 열와기서와 역대기서, 역시 한 권으로 간주된 에스라와 느헤미야이다. 이것은 현재 39권의 구약성경을 모두 말한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신약 목록을 말했는데, 그것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7개의 공동서신으로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 2, 3서, 유다서, 그리고 14개의 바울서신으로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히브리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다. 그는 현존하는 신약 27권의 정경을 전부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모두 말한 최초의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아다나시우스는 이러한 성경 66권에 대해서 “신성하고 영감된 성경 (the sacred and inspired scripture)”이라고 주장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성하다는 것이 아다나시우스의 성경에 대한 인식이었다. 아다나시우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영감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성경은 단순히 사람의 저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하였기 때문에 “신적인 성경 (the Divine scriptures)”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아다나시우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감되었기 때문에 “신적으로 영감된 성경 (the divinely inspired scriptures)”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아다나시우스는 성경이 신적으로 성령에 의해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였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 “신적인 것으로 신임된 것 (accredited as divine)”이라고 주장하였다. 아다나시우스는 성경의 영감을 굳게 믿었다.

그 러나 가장 단순한 글자와 책 제목까지도 성령의 정확함이 연장되었다고 믿는 우리는 가장 작은 문제까지도 그것들을 기록한 사람들에 의해서 우연하게 다루어졌다는 불신앙의 주장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이와 같이 오늘날까지 명심해오고 있다.

아다나시우스는 성경의 영감을 확신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영감된 모든 성경은 정확무오하다고 믿었다. 그는 성경의 가장 단순한 글자와 책 제목 (the smallest stroke and title)까지도 성령의 정확함이 확장되었다고 믿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성령의 정확함으로 표현되었다. 그러기에 성경은 오류가 불가능하다. 성경은 가장 작은 문제까지도 그것들을 기록한 사람들에 의해서 결코 우연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과 정확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도대로 기록되었고 사람에 의해 우연히 기록된 것이 아니다. 아다나시우스는 성경이 사람들에 의해 우연히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불신앙의 주장이라고 간주하고 그러한 주장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고 있었다. 성경은 결코 우연히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정확무오하게 기록되었다. 그는 이러한 성경이 목마른 자들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만족케 될 수 있는 구원의 원천 (fountains of salvation)이며, 이 말씀에 대해서 아무도 더하거나 덜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것들은 목마른 자들이 그것들이 갖고 있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만족할 수 있는 구원의 샘물이다. 이것들 안에서만 신성한 교리들이 선포된다. 이것들에 아무도 무엇을 첨가하거나 이것들로부터 무엇을 생략하지 않도록 하자.

이것은 아다나시우스가 성경의 무오를 확신했음을 나타낸다. 아다나시스는 성경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신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신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구원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성경이 단순한 인간의 말이라면 구원의 원천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은 구원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기에, 성경은 구원의 원천이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서만 신성한 교리들이 선포된다. 성경은 살아있고 성경은 구원의 원천이기 때문에 성경에 아무 것도 첨가하거나 생략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서 완벽하고 완전하며 틀린 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이 무오하다는 점을 아다나시우스는 이와 같이 강조한 것이다.

아무 것도 첨가하거나 생략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했다”고 하시며, 유대인들에게는 “성경을 상고하라, 왜냐하면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다나시우스가 기록했다.

그러니까 아다나시우스가 성경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325년의 니케아 신조를 따라서 아리우스주의 (Arianism)를 논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변증했는데, 그는 이 작업을 성경에 근거하여 수행하였다. 그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알레고리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성경 전체를 근본적으로 기독론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다나시우스가 아리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함에 있어서 인용한 유명한 구절은 히브리서 3장 2절인데 이 구절은 아리우스주의자들 (the Arians)이 주장하는 것을 전혀 의미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이 구절들은, 아리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과 영원성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이 오리게네스를 오해하여 성부의 유일한 신성과 성자의 영원한 종속을 강조하고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으며, 아들은 “모든 창조물 가운데 먼저 나신 자”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하나의 피조물이라는 주장에 반대하여, 또한 가이사랴의 교회사가 유세비우스 (the church historian Eusebius of Caesarea) 같은 반아리우스주의 동조자들 (semi-Arian sympathizers)이 니케아가 의미하는 것은 아들과 아버지의 유사본질 (a similar substance; homoiouios)이고 아들과 아버지는 동일하지 않고 숫자적으로 구별되고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주장에 반대하여, 아다나시우스는 니게아 신조 (the decree of the Council of Nicea)의 노선에 따라서 아들과 아버지의 동일본질 (consubstantial; homoousios)임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여기에 대한 성경의 근거로써 아다나시우스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 6: 46)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요 8: 42) 그리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 (요 14: 10, 11),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 18)를 언급하면서 아리우스주의자들을 논박하였다.

아다나시우스는, 아리우스주의자들과 유세비우스 (Eusebius)의 몇몇 친구들이 “왜 니케아 교부들은 성경에 있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본질” (예를 들어, Of the essence, One in essence, from the essence of the Father 등)이란 용어를 썼느냐?”는 불평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from God)란 용어를 사용할 경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과 같은 피조물이 되지만, 사실은 만물이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니케아 신조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신” (He was of the essence of the Father), 아버지와 “동일본질” (One in essence)이라고 썼다고 변호하였다. 그는 또한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에 대한 주석을 통하여 기독론을 발전시킴으로 정통신앙의 기둥이 되었다. 이리하여 아다나시우스는 원래 신학자가 아니었으나, 성경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저술들을 통하여 알렉산드리아학파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아다나시우스는 성경에 근거한 저술 활동을 통하여 당시의 이단인 아리우스의 주장을 배격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과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본질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히 주장함으로 정통신앙을 확고히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 성경은 신구약 66권 전체가 하나님의 가감불가한 말씀이었다. 성경은 성경 자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가장 단순한 글자까지도 성령의 정확함으로 영감되었기 때문에 절대 무오하다. 성경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구원의 샘물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성경 자체의 증언대로 신적으로 영감된 절대 진리의 하나님의 신성하고 살아 있는 말씀이었으며, 첨가나 생략이 불가한 정확무오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법칙이었다.

이어서 [7]에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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