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0-04 12:06
신약에 나타난 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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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551  

신약에 나타난 중보기도 

김연태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 신약학)

신약에서 기도를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는 δ?ησιs,? προσευχ?, ?ντευξιs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실제적으로는 서로 상호 교환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 중에서 중보기도(?ντευξιs, 딤전 2:1)는 특별히 타인을 위해서 기도할 때 쓰여지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보기도를 연구할 때 "엔튴시스"라는 용어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약의 저자들이 기도를 말할 때 자신의 필요와 의도에 따라서 자유롭게 용어를 선택하여 쓰고 있고, 그들이 선택한 용어에는 중보기도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와 관련해서 어떠한 용어를 선택해서 쓰든지 그것이 내용상 타인을 위한 기도라면 그것을 중보기도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보기도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의 유형 중에서 가장 차원이 높은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중보기도는 목회를 살아있게 하며, 신자들을 성숙한 신앙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이러한 중보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중보기도를 성서적으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그것을 실제에 적용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차원 높은 목회사역을 위해서, 좀더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우리는 신약성서가 중보기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 성서적 원리를 배우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 소고에서는 우선 신약 전반에 흩어져 있는 중보기도에 관한 이야기들을 선택적으로 살펴보고 이것을 통해서 중보기도와 관련한 몇가지 원리들을 파악해 보려고 한다.

 

우선 복음서 중에는 누가복음 22:32절에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중보기도 한 것이 나와 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여기에서 중보기도의 상황은 사탄과의 대결에 설정되어 있다. 제자들이 과연 사탄과의 투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의 물음에 대해서 누가는 예수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베드로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묵시적 상황 설정은 이 세상을 이원론적인 구도로 보고 있는 신약성서의 가장 중요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자들은 항상 사탄의 도전 앞에 있다.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인가 사탄의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구도에서 사람을 건져내어 하나님의 편에 서게 하는데는 중보기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누가의 생각이었다.  

누가는 이밖에도 예수가 그의 적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 중보기도의 상황은 원수사랑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누가는 십자가 상황에서 예수의 중보기도를 설정함으로써 예수의 원수사랑의 실체를 보여주려고 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 사상 중의 하나가 원수 사랑이다. 이 원수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기초적인 단계가 바로 원수를 위한 중보기도에 있다는 것을 누가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좀 더 구체적으로 중보기도를 신학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7장으로서 이것을 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장은 전체적으로 예수의 기도에 대한 요한의 해석을 담고 있다. 크게 네 개의 문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첫째 문단(1-5절)은 예수 자신을 위한 기도를 담고 있고, 둘째 문단(6-19절)은 제자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담고 있으며, 셋째 문단(20-24절)은 후대신자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이고, 넷째 문단(25-26절)은 기도의 결론부분이다. 이중에서 우리가 중보기도와 관련하여 관심을 갖는 단락은 둘째와 셋째 단락이다.

6-8절은 중보기도의 도입부로서 중보기도의 전제조건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라고 하면서 중보기도하는 대상에 대한 분명한 신앙적인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확고한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중보기도의 정당성을 확인해 주며, 책임감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다. 둘째는 기도하는 자의 태도다. "모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중보기도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결코 그들보다 우월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신적인 능력으로 중개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다. 특히 무속종교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한국신자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보기도하는 자는 어떠한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무당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도하는 자는 완전히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행위를 기도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9-19절은 제자들의 보전과 성결을 위한 실제적인 중보기도이다. 그 중보기도의 내용은 첫째로 제자들의 보전을 위한 것이다.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1절)라고 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제자를 보호해 주도록 간구하고 있다. 이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할" 것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특별히 이렇게 세상과의 단절을 촉구하는 신학적 입장이 강하다. 따라서 중보기도도 세상과의 단절의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진리로 거룩하게"(17절) 해달라는 기도이다. 공동체의 거룩을 기도하면서 이 거룩이 단지 소극적인 의미의 거룩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거룩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중보기도하는 자도 그 대상을 세상에 보내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20-23절은 범위가 좀더 확장된 중보기도이다. 이제 중보기도의 대상이 자신의 제자에게로부터 일반신자에게로 넓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도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특별히 자신의 공동체의 상황과 관련하여 강조점을 두고 있다. 신자 공동체는 시대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것만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24-26절은 신자들의 완전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것은 중보기도의 완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을 기원하고 있다. 이와같이 요한복음에서는 그 공동체의 상황을 전제로 하여 중보기도가 상당히 탈 세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중보기도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사도행전과 서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사도행전에서는 스데반이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이것은 누가가 예수의 십자가의 장면에서 설정했던 기도와 비슷하다. 원수를 위한 기도의 한 예로서 제시된 것으로서 예수의 원수사랑의 기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에는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그를 위하여 간절히 중보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12:5). 이와같이 사도행전에서는 초대기독교에서 중보기도가 신자들의 삶 속에서 절실하게 행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바울에게서 실제 목회사역에 있어서 중보기도의 역할과 위치가 무엇인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바울은 목회자로서 그의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마다 자신의 신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였다. 우선 바울의 최초의 서신이라고 할 수 있는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바울은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한다"(살전 1:2)라고 하면서 중보기도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중보기도 하고 있다. 첫째로는 사랑을 풍성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빌 1:9), 둘째로는 종말론적으로 그리스도의 날까지 진실하여 허물이 없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빌 1:10).

  로마교회 교인들을 위해서는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한다"(롬 1:9)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른 교회와는 달리 로마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성도가 아닌 자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중보기도를 해왔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특별히 주목할 만 하다. 또한 로마서에서 바울은 중보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와같이 바울의 1차 서신에서는 중보기도가 역동적으로 행해졌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이 후기 공동체로 가면서 상당히 신학화 되어감을 알 수 있다.

  목회서신에서는 중보기도가 어느정도 정착화되어 목회의 일부로 정형화되어 있는 것을 보여 준다. 디모데전서 2:1-2절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함이니라"라고 하면서 중보기도를 목회사역에서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야고보서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상황인 병든 자를 위한 중보기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 5:14). 야고보서가 행동의 신학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중보기도도 실천에 강조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서는 예수의 중보적 위치를 가장 잘 설명한 책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의 위치를 멜기세덱적인 대제사장의 위치로 인식하면서 예수께서 중보의 위치에서 신자들을 위해서 항상 간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로 중보기도는 예수에게서, 제자들에게서, 그리고 초대교회 신자들에게서 빠질 수 없는 목회적 요소이면서 동시에 신자들의 기도의 중요한 일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선택적으로 신약의 중보기도를 살펴보았는데 이제 그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겠다.

첫째, 중보기도의 필요성, 혹은 근거와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중보기도를 해야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본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 분을 따르는 신자들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보기도를 우리가 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수 자신에게 있다. 예수 자신이 우리를 위해서 자기를 내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고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중보기도는 나 자신의 능력이나 신적인 위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중보기도의 유효성과 관련한 것이다. 물론 중보기도를 이루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그 기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효과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큰 것이 타인을 위한 사랑이다. 중보기도는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기도의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고쳐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되기 때문에 사랑의 실천이 구체화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수께서는 원수를 위한 중보기도도 강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기도를 통해서 원수 사랑의 실천에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중보기도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 신앙생활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으로만 머무르는 한계를 넘어서게 해 준다. 중보기도는 사람 뿐 아니라 국가, 세계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해 주며,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결코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와 우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의 실현을 위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셋째, 중보기도에서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대상은 한계가 있을 수 없다. 우선 자기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원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목회자, 성도들로부터 불신자들에 이르기까지 기도할 것이며, 더 넓게는 나라의 위정자들, 세계의 지도자들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혀야 할 것이다. 중보기도의 내용에 있어서는 타인의 구원과 선교를 위한 내용 뿐 아니라 이 세계와 우주로까지 관심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중보기도는 우리의 기도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최상의 기도이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회와 신앙의 차원을 높일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의 넓이와 차원에 따라, 또한 우리가 중보기도하는 그 내용의 넓고 깊음에 따라 신앙의 질적인 차원이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중보기도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도록 기원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기도를 통하여 이 땅과 우주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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