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5-23 21:00
3. 십계명/ 아더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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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490  

제 10 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

여기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은 현세이니 이를테면 타인의 소유에 대한 부당한 탐욕이다. 앞서나온 여러 계명들을 해설할 때에 계명들의 실제적인 용도는 외부적으로 들어난 죄 된 행위를 금지하는 데만 국한되었지만, 그러나 각 계명이 미치는 범위는 외부적으로 드러난 죄에 이르게 하는 경향이나 원인을 망라한 모든 것들을 정죄한다고 하였다. 십계명의 마지막인 이 부분에서도 동일한 사례를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신 위에 계명을 뚜렷이 부여하시고, 그가 금하시는 모든 것에 대한 욕망을 금지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는 최상의 방법은 마음속에서 죄에 대한 소원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이전에 나온 아홉 계명들의 권위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의 가장 은밀한 의도에까지 미치지만,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속에서 이것을 문자적으로 분명하게 기록하셔서 그가 금지하시는바 물질로 향하는 우리의 최초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구체적으로 열거하여 책망하신다. 그렇게 함으로서 이 십계명 전체를 강화시키는 고리가 되는 것이다. 악한 세상적인 욕망은 인간의리가 하락하기 전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은밀하고 내적인 죄이며 모든 악의 씨앗들이다. 욕망이나 정욕은 타락한 인간 마음에서 나오는 첫 열매 즉 우리 인간성의 부패에서 나오는 첫 소산 혹은 첫 번째 표출되는 것이다.
그것은 악한 것으로 향하는 격렬한 성향 혹은 의향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명령에 반대하여 나타나는 성향이다. 인간은 활동적이고 정렬적인 피조물이어서 언제나 그의 악한 본성에 어울리는 활동만을 계속한다.
타락 전에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서 나왔으나 인간이 하나님께 배반하고 그에게서 떠나자 인간의 영혼은 피조물에 유혹을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신령한 생명과 은혜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는 성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물질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가지고 죄 된 길로 사용하게 되었다. 타락한 인간이 물질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도 않기 때문에 결국은 악하게 되었다.
현세욕은 이 계명에서 “탐욕”이라고 표현되었는데 이는 영혼의 불규칙적인 성향이라는 뜻이다.
청교도 에스겔 홉킨스는 (그는 앞서 나온 계명들에서도 많은 도움을 준 것처럼 여기서도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준다.) 세상욕심과 탐욕에는 네 단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죄가 우리 안에 형태를 갖추기 전 악한 생각의 영상 내지는 죄의 불완전한 싹이 생기려는 단계다. 이것은 성경이 “마음의 모든 생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러한 모든 생각들을 “악”이라고 명백히 선포하였다. (창 6:5) 그러한 것은 인간의 관능적인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것이며 인간의 부패한 본성의 시발점이 된다. 이들을 과감히 직시해서 거부하고 증오해야 한다. 그들은 위험한 불꽃과 같음으로 우리의 뇌리에 명백하게 새겨져야 한다. 이는 그들이 우리 안에 와서 휘젓기 시작하자마자 우리의 영혼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거울위에서 숨을 몰아 내쉬면 거울을 흐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내부에 있는 악한 소원과 생각을 처음부터 내쉬기만 해도 우리의 영혼은 오염된다.
이 욕망의 다음 단계는 인간 부패성의 악한 움직임이 마음속에서 어느 정도 자기도취에 겨워 환대받을 때 그것이 도달된다. 죄 있는 대상이 정욕적인 마음 앞에서 자신을 내어 보일 때 기쁨으로 함께 하려는 내부적인 반응이 일어나며 그 마음과 대상 사이에는 이미 공명이 일어난다. 자연스러운 공명심이 일어나는 즉시 그 인간은 왜 그런지 이유도 알지 못하고 그 대상을 좋아한다. 또한 죄악 된 공명과 반응이 일어나는 때에 그 마음은 그것ㅇ데게 죄를 짓게 하고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할 시간도 갖기 전에 그 대상에 사로잡힌다. 한 사람에 대하여 한번 안면이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똑같이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다른 모든 군중들보다도 그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의식한다. 우리 마음속에 죄의 소욕이 얼핏 일어난다는 사실은, 우리가 죄가 왜 그런지 이유를 조사할 여유를 갖기 전에 죄에 끌리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욕망의 둘째 형태나 단계는 첫째 것보다도 몰아내기가 더욱 힘들다.
만약 그러한 죄의 움직임이 우리로 말미암아 환대를 받는다면 죄에 대한 동의와 승낙이 그 사람의 실제적인 판단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부패하고 육욕적인 세력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게 되고 수행되어지는 그 사람의 판단은 실천적인 기능을 죄에 완전히 맡겨버린다.
식별이란 모든 행위를 신중하게 결정하는 법정과 같다. 그리하여 거기 법정을 먼저 통과하지 않으면 어떠한 행위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 저러한 행동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 법정에서 논란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정신적인 모든 기능들이 여기에서 명확한 판결이 나기를 기다리고 그 이후에야 시행한다. 보통 두 증인이 출두하여 죄에 대한 식별과 판결을 내리도록 증언한다. 하나님의 율법과 대리자는 양심이다. 율법은 정죄하며 양심은 죄를 서술한다.
인정심문단계가 있자 좋게 해 준다는 약속으로 재판관에게 뇌물을 준다. 그렇게 함으로 죄에 투표를 하여 죄를 승인하는 재판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그녀와 뱀 사이의 대화 가운데 있는 실례에서 얻었다는 것을 주목하라.
어떤 죄 된 움직임이 판단으로부터 허용을 얻게 되면 판결 규정에 의해 의지적으로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오성이 죄 된 행위를 허용했기 때문에 인간의지는 그것을 수행할 것을 결정해야만 한다.
그때 죄는 마음속에서 충분히 형성되어 밖으로 나와 행사할 기회만 엿보게 된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이와 같이 우리는 욕망과 탐욕이 무엇인가를 보이도록 힘써왔다. 그리고 그것의 여러 가지 단계들도 보아왔다; 먼저 우리 마음속에 죄악 된 생각이 일어나는 단계; 그것을 환대하는 단계(그것은 우리 정신 속에 일어난 죄악 된 첫 열매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패한 본성에 만족을 줄 수 없다) ; 판단의 동의와 허용; 우리의지의 결단, 이들은 특히 십계명이 금지한다. 죄가 더 이상 나아가면 그것은 이 계명의 한도를 넘어서게 되고, 특별히 외부적인 죄의 행위를 금하는 이런 몇몇 계명들의 금지 상태에 떨어진다.
이 마지막 계명은 내부적인 삶에 있어서 죄에 대한 엄정한 항거를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무한 광대한 영역과 주권을 보게 되고 찬양하게 된다. 그는 욕망의 감추어진 영역위에도 그의 권리를 선포하신다. 그의 권위는 영혼과 양심에 미치고 어떤 인간의 율법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놓여 있는 의무에도 주장한다.
재판권에 해당될 수 없는 것에다 법령을 부여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헛된 일이며 그러므로 욕망이나 정욕은 그들이 들어난 행위로 발견되지 않는 한 탄핵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의 계명과 눈치에서는 벗어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이 보지 않으시고 사람이 판단하는 것과 같이 판단치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문책과 선고는 피할 수 없다.
모든 마음의 비밀은 그의 보시는 눈앞에서 밝히 드러나고 벌거벗은 것이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의 전지하심 같이 욕망의 가장 보잘것없는 미풍도 하나님 앞에서는 정오의 햇빛 속에서 보다 더욱 뚜렷이 우리의 영혼을 휘저을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 영혼의 가장 은밀한 처소에까지 이르시며 당신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감찰하시며 아무 인간의 눈도 탐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정욕을 심판하신다.
그들이 숨겨져서 인정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당신의 외부적인 움직임을 좋게 한다 해도 범법자로 영원한 죽음에 합당한 자로 당신을 정죄한다.
바깥으로 들어난 하나님 율법에 일치한다고 우리가 스스로 만족해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함과 정결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인정받도록 힘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대접의 안쪽이 더러운 정욕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바깥쪽만 씻는 한낱 바리새인의 의식(외선)에 지나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에게 외부적으로만 미친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그들 마음속에 악한 욕망과 악한 의도를 환대하고 열망해도 된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외부적인 범죄만 터뜨리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심판 날은 그것이 정반대 방향에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얼마나 적은 소수의 사람만이 마음의 죄를 생각하고 있는가! 적은 소수만이 “나의 은밀한 죄에서 나를 씻기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가! 속지 마시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그는 외부적인 화려한 쇼에 속을 리가 없다.
십계명의 마지막 부분에 이 계명을 두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아라. 왜냐하면 그것이 다른 모든 계명의 울타리요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실의 죄는 영혼의 더러움에서 일어난다.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 것은 불행한 욕망에서 나오는바 안식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간음”등이 나온다(마 15:19).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무리의 선두주자로서 첫 번째에 “악한 생각”을 위치시키신 것을 보아라.
“탐내지 말지니라.”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조금이라도 바라지도 말고 거기에 마음도 두지 말라는 것이다. 혹 반대자는 “우리가 열망하는 소원을 제어하기는 불가능합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 점이 바로 타락한 인간 상태와 인간 마음의 절망적인 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죄 많고 저주받을 욕망은 이 계명의 조명 속에서만 발견된다. 십계명의 이 마지막 명령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자는 죄에 유죄판결을 받은 모습과 무력함을 깨달아야 하며 이것이 계명의 궁극적인 의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거룩한 율법을 주어 우리도 우리자신이 그냥 버림을 받는다면 철저히 소망 없음을 깨닫게 하셨다.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그의 무한광대하신 은혜로 돌리시기 위하여 그가 친히 주신 것이다.
그때 참회하는 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신뢰할 것인데 이는 그 아들이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셨고 성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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