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5-23 19:51
칼뱅의 주기도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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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499  

칼뱅의 주기도문 이해

박건택 교수

1. 칼뱅은 1536년 기독교강요 초판에서'율법'과 '믿음'에 대한설명에 이어 '기도 (제 3장)에 대해 언급했다. 율법에 십계명 해설을, 믿음에 사도신경 해설을 포함시킨 것처럼 기도에는 주기도문 해설을 포함시켰다. 이듬해 그는 제네바 교회의 신앙 교육서(Cat chisme)를 만들면서 자신의 기독교 강요를 요약 정리했는데, 이곳에 그의 주기도문 해설이 잘 요약되어 있다. ' 본고의 말미에 이 주기도문 해설 전문을 실었다.칼뱅은 이후 기독교강요 최종판(1559에 이르러 기도에 대해 더욱 많은 분량의 해설을 달았는데 <기도>는<그리스도인의 자유> 바로 다음인 제3권 20장에 위치한다. 그밖에도 그는 공관복음서를 주해하면서(1555년), 그리고 그것을 설교하면서(1559년)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설명했다. 그의 주석은 오늘날 우리에게 남아 있으나, 주기도문에 대한 설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2. 칼뱅은 주기도문의 해설에 앞서 기도에 대해 일반적으로 설명한다. 여기에는 기도의 정의, 필요성, 유용성, 그리고 기도의 규칙에 대한 모든 설명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기도의 서식과 양식 자체"'를 배울수 있기 때문이다.

3. 이 “기도문" 또는 ”기도의 규칙"은 여섯 가지 간구로 되어 있으며 첫 세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것이요, 다음 세가지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 구하는 것들이다. “기도문의 내용인즉, 각 부분에서 우리가 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응시해야 하고, 또 그곳에 담기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구하는 대로 적절히 이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세 간구는 특별히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선 아무 고려도 하지 않고 오직 마땅히 생각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도록 되어있으며, 나머지 세 간구는 특별히 우리의 필요를 위해 구해야 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하지만 이 두 부분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일종의 변증법적 형식을 이룬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가 간구하는 대로 거룩하게 될 때, 또한 우리의 성화도 이루어지며", 반면 “우리가일용할 양식이 주어지도록 구할 때, 비록 우리가 우리의 유익과 관련된 것을 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곳에서도 마땅히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되, 만일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않을 경우 그것을 구하거나 바라거나 소유하기를 원치 않아야 한다. "41537년 신앙교육서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러나 처음 세 가지 간구에서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결과적으로 우리의 이익을 얻어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우리 정신을 우리의 이익에 대한생각에서 돌이키게 해야 하며, 한편 다른 세 가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 "5

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설명함에 있어서, 칼뱅은 축자적으로 설명하는 자신의 주석적 습관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하나님의 부성(父性, "아버지여"),

신도의 형제적 공동체성("우리“),

우리 아버지의 지고성('하늘에 계신").먼저, 모든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사실은 우리도 양자가 되는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우기를 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부성애와 같은 사랑 감정에 비할 것이 다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하늘 아버지의 사랑은 육신의 부모의 사랑보다 더 위대하고 탁월하다. 육신의 부모가 자녀를 버리는 일은 간혹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는 바로 이 아버지에게 그의 자비를 간구하며, 그는 자신에게 애원하는 자녀들의 눈물과 신음을 들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이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에 대한 불신이다.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아버지"가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한 아버지 밑에서 동일한 자녀이므로 우리 가운데 형제애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모든 것이 한 아버지에게서 오는 것이라면, 우리 중에 분리나 독점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 말은 우리의 기도에는 언제나 형제를 비롯한 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의 모든 기도는 너무도 공동의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 주님이 자신의 나라와 가정에 두신 공동성(communit)을 추구해야 한다. "6 이 말은 개인 기도를 부인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언제나 공동체와 관련시키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하늘에 계신"이란말로 "우리 아버지"의 속성을 말씀하는 바, 이 무소부재하신 영광의 하나님은 "무한히 크고 위대하시며, 이해할 수 없는 본질과, 말할 수 없는 권세와, 영원 불멸성을 가지셨다. "7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지상의 척도를 떠나서 높이 비약되어야한다.

5.주기도문의 첫 부분인 세 가지 간구는 이렇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처음 세 간구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한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아야할 영광이 그에게 돌려지도록 구해야 하며, 사람들은 오직 특별한 존경심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거나 생각해야 한다. "8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이름이 다른 모든 이름들에게서 분리되어 영광 중에 드높여질 때, 그때 그 이름이 거룩히 여겨진다면,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모든 불경과 경멸에서보존하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길들이고 복종시켜서 올바르게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경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도록 명령받는다. "9다음으로 하나설의 영광과 관련해서 그의 나라에 대한 간구가 뒤따르는 바, 여기에는 두 가지가 포함된다. 곧 자기 부정과 하나님의 질서 수립이다. 10 그러므로 이 기도를 할 때, 세상의 부패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는 일이 선행되고 그리고 나서 이런 사람들의 수효가 많아져 그 빛으로 사탄의 나라를 소멸하는 일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일은 말씀 선포와 성령의 은밀한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 세계가 기꺼이 그에게 굴복하도록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그의 능력을 행사하시도록 기도한다.”11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마지막 세 번째 간구는 앞의 간구를 보다 분명히 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만물을 주관하시며 자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의 목적을 향해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아니라," ”우리를 자발적인 복종으로 부르는" “하나님의 다른 뜻”으로 이해해야한다. 12곧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뜻으로, 지상에서 사람들이 갖는 사악한 의지와 대립된다. 그러므로 여기서우리가 받는 명령은 하늘을 표준으로 삼아서 지상 생활도 모든 교만과 사악함이 제거되고 정직함 속에서 평온하게 영위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이다. 이 일은 육의욕망을 포기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이우리의 심령을 주관하는 일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세 가지 기도는, 비록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한 것이지만, 실제적으로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비록 우리가 이 간구를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라고 구해야 한다. 나아가 이 기도는 우리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와 종임을 입증하는 시금석이 된다.

6. 주기도문의 두 번째 부분13 에 속하는 세 간구는 우리의 필요와 관계되어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제쳐두고 이뤄질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 전제 하에서 우리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한다. 네번째 간구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히 “빵 한 조각, 물 한 방울"같은 지상의 구체적 요소들이다. 여기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의복 및 기타”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하지만 "양식"에 대한해석이 그 폭을 넓힐 수 있음직하나, 칼뱅은 그러한 전개를 절제한다. 다만 그는, 혹 너무 영적인 것을 추구하여 육신에 필요한 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겨냥하면서, 최종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상당한 양을 첨가하는바, 그의 "미완성의 변증법"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14 "오늘', "우리의", "주옵시고“ 순으로 이어지는 그의 축자적 설명은 그의 후손들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다.네 번째 간구가 지상 생활과 관련된다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간구는 '천상의 삶'15과 관련된다. 16 지상에서 하늘나라의 삶은 두가지 은혜로 이루어지는 바, 하나는 죄용서의 은혜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사…우리가 모든 시험에 대적하여 이기도록 하시는” 은혜이다. 칼뱅은 죄 용서를 말하면서 초기에는 공로의 신학을 비판했고 (초판참조), 후기에는 중생 후에는 죄 용서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신령파” 및 “자유파”(libertins)에 대해서 공박했다(최종판 참조).<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는 우리가 용서받는 조건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시기와 복수심의 제거를 통해서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적의를 품고 복수심에 차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으며 그의 자녀들에게서 제외된다.마지막 간구인 보호의 은혜는 시험과 관계한다. 그리고 시험은 우리의 좌우에 있다. 우측에 있는 시험이 부와 권세와 영예 등이라면, 좌측에는 가난, 치욕, 경별, 고난 등이 있다. 앞의 시험이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여 하나님을 잊게 한다면, 뒤의 시험은 절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이 두가지 시험은 '우리의 탐욕이 일으키기도 하며, 마귀의 간계로 제시 되기도"17 하는 바, 우리는 여섯 번째 간구를 통해 이것에 지지 말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물론 시험이 전혀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은 하나님의 자녀를 연단한다. 칼뱅은<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와 <악에서 구하옵소서>를 같은 기도로 본다. 칼뱅에 따르면, 주님이 가르치시기를 “우리로 시험에 지도록 허락하지 마시고,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구하사, 우리로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라고 한 것과 같다. 18 지금까지의 모든 간구가 그랬지만 이 간구 역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우리 자신 및 우리와 관련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세 간구는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공적인 것이어서 교회의 일반적 유익과 교화를 지향하고 성도의 교제의 증진을 목표 삼아야 함을 보여준다. "이 간구들을 통해서 누구도 각자에게 별도로 주어지기를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우리의 방을 구하고, 우리 죄가 우리에게 용서되기를 구하며,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건져지기를 구하는 것이다. "19

7. 이 기도의 규칙과 서식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하고 또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 기도문에 다른 것을 첨가하는 자들은 우선 “하나님의 지혜에 자신들의 것을 참가하려는 자들이요",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만족치 않는 자들이며",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상달되지 않는 자들이다. " 20그렇다고 이것이 주기도문의 문자에만 매달리라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주기도문의 문자적 용어가 아니라 그 내용과 뜻이다. 말은 달리 사용될 수 있으나 의미가 바뀌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다른 기도들과 신자들이 사용하는 기도들이 주기도문과 관련되어 있음에 분명하다. " 21주기도문처럼 완전한 기도는 없다."여기에는 하나님 찬양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인간의 유익과 안락을 위해 갈망해야 할 모든 것에 대해서 빠뜨려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22

8. 주기도문해설에 칼뱅의 신학이 거의 담겨져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이 언급되는 곳에서뿐만 아니라, 일용할 양식과 죄용서와 보호의 은혜를 말하는 곳에서 도처에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되고 그의 영광이 추구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의 필연을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확히 기독교강요 제 1권 1장의 출발을 상기시킨다. 곧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간을 아는 것의 상관 관계이다. 그것은 마치 주기도문의 첫 번째 부분과 두 번째 부분과의 관계와도 같다.늘 상 외우는 주기도문이 칼뱅의 해설에 의해 다시 한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칼뱅이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바는 기도의 공동체성이다. 기복신앙과 관련해서 자기중심적 기도로 가득한 오늘날의 교회 앞에 기도의 이 요소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은밀한 개인적 골방 기도에도 해당된다. 이것은 또한 개교회의 공공 기도에도 해당된다. 나아가 한나라의 국가적 기도에도 해당된다. 이 기도는 모든 개인적 집단적 이기성을 타파한다. 한편으로 칼뱅은 기도의 실존성 내지는 개체성을 굳게 유지한다. <우리>란 언제나 간에게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에서 올바른 순서를 지키려는 자라면, 그는 마땅히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해야 한다. "23 이처럼 기도는 항상<나>를 포함한 <우리>의 것이다.


1537년 제네바 교회 신앙교육서에 들어 있는 주기도문 해설

더욱이 이 관용의 아버지는, 모든 환 1난가운데서 그를 찾으라고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 외에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것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이 무지에서 우리를 돕기 원하사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수용력에 모자라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채우셨다. 그의 친절에서 우리는 특별한 위로를 받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의 그의 입을 통해 기도하는 고로 당치 않거나 엉뚱한 것, 또는 목적도 없는 것은 아무것도 구하지 않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기도의 형식과 규칙은 여섯 가지의 간구로 되어 있으며, 처음 세 가지는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에 할당되어 있는 바, 이 간구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유익에 대한 어떤 참작도 없이 이 영광만을 고려함이 마땅하다.다른 세 가지는 우리 자신의 간청과 우리 이익에 속하는 것들을 구하는 것으로 충당된다. 그러나 처음 세 가지 간구에서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결과적으로 우리의 이익을 얻어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우리 정신을 우리의 이익에 대한 생각에서 돌려야 하며, 한편 다른 세 가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첫째로 모든 기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규칙이 제시된다. 어떤 기도도 다른 이름으로는 그를 기쁘게 하지 못하기 까닭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움이 확실하다. 분명 세상에는 하나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그의 면전에 나서기에 합당한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선한하늘 아버지는 당연히 우리를 괴롭히는 이 혼란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사 중보자와 변호인이 되게 했다. 이 예수의 안내로 우리는 그에게 담대히 나아가는 바 마치 예수에게 있어 아무 것도 아버지에게서 거부되지 않듯이, 우리는 이 중재자를 통해서 그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 중 어느 것도 거부되지 않으리라는 강한 확신을 갖는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가 위엄의 보좌일 뿐만 아니라 은혜의 보좌임도 확신하는바, 우리는 필요할 경우 긍휼을 얻고 은혜를 발견하기 위해서 이 보좌에 결연히 담대하게 나아간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부르도록 명령된 법이 있고 또 그를 부르는 모든 자들이 응답되리라는 약속이 있는 것처럼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부르라는 특별한 명령과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얻게 되리라는 약속이 있다(요 14,16장).여기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이 말에는 그의 놀라운 위엄이 의미되고 있는 바, 모든 위엄(우리의 정신은 조잡하여 달리는 이해할 수 없다)중 우리 눈에는 하늘보다 더 탁월하고 명백한 것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이유에서 이 소절(小節)은 마치 하나님이 지고하고, 힘이 있으며 이해할 수 없는 분으로 불리운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들을 때 곧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있을 때면 언제나 우리의 생각을 높이 들어올려야 하는 바 이는 그의 어떤 것도 육체적으로나 세상적으로 상상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를 우리의 이해력으로 측정한다거나 그의 뜻을 우리의 생각에 복종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첫 번째 기도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은 그가 인간들 사이에서 그의 지혜, 선함, 권세, 성의, 진리, 긍휼이 그러하듯이 그의 능력으로 인해 칭송되는 명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름의 위엄이 그런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기를 구하는 바 이는 그 이름이 그 자체로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거룩하게 여겨지도록, 다시 말해 그이름이 진실로 인정되고 칭송되며, 하나님이 행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의 모든 행위가 있는 그대로 영광스럽게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그가 처벌할 경우엔 의로운 자로, 그가 용서할 경우엔 긍휼을 베푸는 자로, 그가 자신의 약속을 이를 경우엔 진실된 자로 여겨진다. 요컨대, 마치 새겨진 것과 같은 그의 영광이 비취지 않는 사물은 전혀 없다는 것이며 이처럼 그의 칭송이 모든 영과 모든 언어로 메아리친다는 것이다.


두번째 기도 :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통치)란, 자신의 백성들의 모든 행위에 자신의 선함과 긍휼의 풍요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그의 성령으로 인도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권세에 저항할 수 있는 권세가 결코 없음을 명백히 보이기 위해 그의 지배에 굴복하려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저주스런 오만을 굽히려 하지 않는 버림받은 자들을 격파하고 꼼짝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한다. 즉 주님이 날마다 모든 행위 속에서 그의 영광을 찬양하는 그의 신자들의 수를 늘리며, 그의 은총으로 그가 점점 더 그들 안에 살고 다스리고 은총을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풍부히 하되, 그들을 자신에게 완전히 결합시켜 그 수를 온전하게 채울 때까지 하시기를 기도한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새로운 팽창을 통해서 날마다 그의 빛과 그의 진리를 밝히사 사탄과 그 나라의 거짓 및 어두움이 사라지고 없어지도록 기도한다.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또한 그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완전하게 완성되기를 바라는 바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영광 중에 영접하고사탄의 나라를 온전히 파멸시킨 다음 그의 심판을 드러내시는 날, 다시 말해 홀로 찬양 받으시고 모두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날이다.


세 번째 기도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 하늘에서 하듯이 땅에서도 그의 선한 뜻에 따라 모든 것을 다스리며 인도하되, 만사를 그가 보기에 선한 대로 이끌며 모든 피조물을 그의 기쁨에 따라 사용하며 모든 뜻을 그에게 복종시키기를 구한다. 그의 뜻을 구하면서 우리는 모든 우리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우리가 애착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우리의 소원대로 일을 이끄시되 그가 적당하다고 여기는 대로 하시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단순히 그의 뜻에 어긋나는 우리의 욕망을 헛되고 아무 효과 없이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안에 새로운 영과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고 우리의 것들을 없애고 소멸 시키사 순수히 그의 뜻에 동의하는 것 외에 어떤 탐욕의 움직임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구한다. 요컨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다만 그의 영이 우리 안에서 원하기를 구하는 바 그의 영의 조명으로 우리는 그가 기뻐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그가 싫어하는 모든 것을 미워하는 법을 배운다.


네 번째 기도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기도를 통해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세상의 요소들로 되어 있는 우리 몸의 빈곤에 필요한 모든 것들, 곧 음식과 의복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당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구하는 바 이는 우리가 평안히 우리의 양식을 먹을 수 있기 위함이다. 이 기도를 통해서 (간단히 말하자면)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양육하고 부양하며 보전하도록 하기 위해 그의 섭리의 보호를 요청하며 그의 배려에 맡긴다. 이 선한 아버지께서는 우리 음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을 경멸하지 않는 바 이는 이 가볍고 작은 것으로 인해 우리가 그에게서 마지막 빵 한조각과 물 한모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모든 필수품을 기다리도록 그를 향한 우리의 신뢰를 연단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가 오늘 우리를 먹이실 때, 내일도 우리에게 모자람이 없으리라는 확신을 갖고서 그 날의 삶으로서 필요로 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바라서는 안됨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풍부하다 하더라도 모든 존재가 주님이 축복의 주입으로 번성케 하고 유익을 얻게 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아님을 인정하면서, 그리고 우리 수중에 있는 그 축복이 주님께서 매 순간 그것을 베풀어 사용케 하고 그 몫을 분배하지 않는 한 우리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면서 언제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함이 합당하다.우리가 그 축복을 우리의 것이라고 부르도록 하나님의 친절이 보다 힘 있게 나타나는 바 이 친절이 어떤 법률로도 우리에게 정당치 않았던 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그 양식을 우리에게 달라고 구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어디에서 오든 간에, 설사 그것이 우리의 근면으로 얻은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단순하고 거저 주는 선물임을 의미한다.


다섯 번째 기도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은혜와 죄 사함을 우리에게 베풀어 달라고 구한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빚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보상의 댓가를 하나님께 드려야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긍휼의 거저주는 용서인 이 죄사함을 통해 사면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그것을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빚진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듯이, 다시 말해 방법이야 어쨌든 우리에게 상처를 주되, 부당하게 행동으로나 말로 모욕한 자들을 우리가 용서하듯이 그 긍휼이 우리에게 베풀어지기를 구한다. 이 조건 부분은 마치 우리가 타인들에게 베풀 죄사함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죄사함을 요구하는 식으로 덧붙여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를 자비로 받으셨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표지인 바, 이는 우리 마음이 온갖 증오와 시기와 복수에서 진정 깨끗케 될 경우, 분명 우리가 양심적으로 타인들에게 자비를 베풀기 때문이며 반대로, 복수로 기울고 잘 용서하지 못하며 원한을 마음속에 뿌리박아 둔 자들이 자신을 그들의 아버지로 부르고 그들이 사람들에 대해 키우는 분노가 자신들 위에는 떨어지지 않게 구하는 일을 지속하지 않도록 그들을 그의 자녀의 수에서 지워버리기 위함이다.


여섯 번째 기도 :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아멘.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시험도 맛보지 않도록 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험들은, 우리가 지나치게 큰 휴식으로 너무 맥 없고 게으르게 되지 않도록 각성하고 자극받고 동요되는 데 크게 필요하다.이처럼 주님은 그의 택한 자들을 날마다 시험하되 치욕, 빈곤, 번민, 기타 다른 종류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들을 교육한다. 그러나 우리의 간구는 주께서 시험과 함께 출구 또한 주사 우리가 이 시험에 져서 압도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능력으로 굳세고 강건하여 우리가 싸우는 온갖 세력들과 변함 없이 맞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나아가 우리의 간구는 그의 지켜주심과 보호 가운데 있어 그의 영적 은혜로 거룩하게 되며, 그의 인도에 따라 다스림 받아 마귀와 죽음 등 지옥의 모든 군수품들 위에서 무적의 승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으로, 이것이 악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기도가 사랑의 규칙에 따라 측정되기를 주님이 원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이웃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에게 좋은 것을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우리 형제의 행복을 우리 것처럼 배려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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