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8-25 16:28
[3]한국 개신교 이단의 발생과 교리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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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20,377  

이만희와 신천지

 

출생과정부터 거짓과 왜곡

성경적 간증으로 위장, 신비감 부추기는 허세 가득

 

 
 
 

이만희의 출생과 종교체험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의 대표자 이만희는 1931년 9월 15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현리 702번지에서 아버지 이재문과 어머니 고상금 사이에서 태어났다. 10남 1녀 중 6번째 아들로 태어난 이만희는 <영핵>이라는 자료집에서 자신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대해 다음처럼 밝히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매일 기도생활을 하시던 나의 할아버지는 어느 날 몽중에 해, 달, 별이 어두워지고 떨어진 후 다시 하늘이 열리더니 빛이 나와 나의 어머니에게 비추는 것을 보시고 나의 이름을 빛이라는 뜻을 가진 만희(萬熙)라고 지어 주셨고 그것이 지금의 나의 이름이 되었다.’

이만희는 17세 때 상경하여 성동구 금호동 형 집에 머물면서 건축하는 일에 종사했다. 1948년 집 앞에 사는 외국선교사에게 이끌려 경복궁 앞 천막교회에 출석하여 침례를 받았다고 한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서 생활하던 이만희는 고향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박군의 심정(요한복음)과 학생 문장독본을 탐독했으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일요일에는 높은 산으로 가서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도하는 생활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기도 중 큰 별(천사)이 내 머리 위에 임하였고 그 별은 나를 북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이 일은 삼일 동안 계속되었다.’

이만희는 이 사건 이후 자신과 가족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과 환난이 계속되어 자살을 하고자 산을 향하던 중, 신비한 사람을 만나 자살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일 후 나의 집안과 나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험과 환난이 계속되었고, 나는 세상을 버릴 목적으로 산을 향했다. 산으로 가는 도중에 희고 빛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고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이구나!’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땅에 엎드러졌다.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이제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니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 얼마쯤 지났을까 일어나 보니 그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고 그때 감동받은 나는 총을 버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출생부터 과장과 왜곡

하지만 이만희의 어릴 적 이야기는 거짓되고 과장되거나 사실을 왜곡시키고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첫째, 이만희는 자신의 이름 ‘만희’의 뜻이 ‘빛(熙)이 가득하다(萬)’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자신을 재림시대의 ‘빛의 목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만희(萬熙)’라는 이름을 풀이를 해보면 ‘빛(熙)이 가득하다(萬)’의 의미가 아니라 이름을 ‘크게 빛내라’, ‘크게 빛나다’라는 뜻이다. 어둠을 물리치는 빛과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이만희는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두움을 밝히고 물리치는 세상의 빛의 목자로 오신 분이라고 말하면서, 이 구절을 자신에게 대입하고 있다. 재림 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영을 받은 ‘빛의 목자’가 자신이라는 것이다.

또 이만희의 형제들 이름을 보면 ‘만(萬)’자 돌림으로 되어 있다. 형제 가운데 ‘만용(萬龍)’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을 예시로 들어보자. 신천지 식 영적풀이를 해보면 ‘만용(萬龍)’은 ‘용(龍)이 가득하다(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요한계시록 20장 2절에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라고 되어 있다. 이만희 식대로 해석하면, ‘만용(萬龍)’이라는 형제분은 사단이요 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만희의 간증에 나오는 조부(祖父)와 이만희 자신이 정통교회에서 정식으로 신앙생활을 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만희 부모 또한 신앙생활을 했다는 언급이 없다. 이만희는 스스로 일요일에 산에 올라가 개인적인 기도를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정통교회에 출석하거나 신앙고백에 따라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큰별이 임했다’ ,‘희고 빛난 사람을 만났는데 하나님이었다’라는 이야기도 자신을 메시야적 인물로 묘사하기 위해 등장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만희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도 않고 기독교적이지도 않다. 성경적 간증인 것처럼 왜곡과 위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자료:만국소성회 <영핵>(경기도 안양:신천지, 1996)

 

‘신비체험 각색’ 유재열에 영향

교주 등극위한 정당성 확보 차원서 서슴없이 조작

 

 
 
 

 

이만희에게 영향을 준 유재열

 

아버지 유인구와 어머니 신종순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난 유재열은, 성남고교 재학 중 국가 기계체조 대표선수로 발탁되었다. 기계체조 선진국인 일본에 가서 경기를 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환경이 여의치 않아 고민하던 유재열은 호생기도원교주 김종규를 추종하던 어머니 신종순이 중국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고 일본어 방언을 받으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호생기도원에 출석하게 된다.

1965년 1월 어느 날 유재열이 친구들과 함께 호생기도원을 향해 가던 중 눈앞이 캄캄해지고, 한 손에 어린양을 안고 있는 예수가 나타났다. 이 신비한 현상을 친구들은 볼 수 없었고, 오직 유재열에게만 보였다. 이 때 하늘로부터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네게 큰일을 맡기겠노라’하는 음성이 들렸고 환상은 약 40여 분 간 지속되었다. 유재열은 성남고등학교를 중퇴(2년)하라는 계시를 받고 호생기도원에 전념했다. 16세의 나이로 호생기도원 경비를 책임지던 유재열은 밤에 기도원을 찾아온 여신도들이 원장 김종규 방에 들어가 성관계를 맺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고, 간음한 여신도 수가 약 60명이나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게 실망한 유재열은 김창도 등과 함께 호생기도원을 이탈하여, 1966년 2월 17일에 과천 삼거리에 있는 아버지 유인구 집에서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정당성 확보 위한 신비체험

유재열의 신비체험을 통해 우리는 이단 교주들의 신비체험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주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비체험에 등장하는 도구들을 보면, 하나님 예수님 양 두루마리(성경) 빛(태양) 고기 등이 등장한다. 교주들은 계시로 포장한 이 도구들을 사용하여 자신이 하나님에게 부름 받은 목자나 선지자라고 선전한다. 나아가 이를 통해 성경적인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신비체험에서도 ‘흰 옷 입은 하나님’과 ‘빛’을 강조하고 있다. 또 다른 신비체험에서는 저수지와 고기 등을 등장시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목자임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재열 교주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유재열의 신비체험을 들어보면, 1966년 3월 1일 경에 운동 후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강렬한 태양 빛이 그에게 비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재열은 이 빛을 피하려고 방으로 들어갔으나, 계속 이 태양빛은 방 안까지 따라 들어와 자신을 비추었다고 주장한다.

그때 아버지 유인구가 환상을 봤는데, 유재열이 두루마리를 먹는 광경이 나타났으며, 이 현상은 주위의 27명도 봤다고 주장한다. 두루마리를 다 먹은 유재열이 누운 채로 입에서 두루마리를 다시 다 꺼내 보았더니 한권의 성경이 되었다. 이 성경을 한 장 한 장 펼쳐보던 유재열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기도 했다. 에스겔(2:8~16)과 요한계시록(10:9~11)에 나타난 지구심판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인상을 찌푸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유재열은 지구 모형을 두 손 안에 넣고 돌리더니 이를 갈면서 힘을 주어 부셔버렸고, 그 지구 모형에서는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각색된 교주의 신비체험

그러나 교주들의 이런 신비체험은 후대에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유재열의 신비체험의 경우 장막성전의 발전 과정을 볼 때 후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유재열의 신비체험이 사실이고 27명의 장막성전 구성원들이 그것을 목격했다면, 장막성전 초대 교주는 유인구가 아니라 유재열이 되어야 한다. 장막성전은 초창기 아버지 유인구가 교주가 되고 유재열은 그의 지시를 따랐다. 이 점을 볼 때 유재열의 신비체험은 그가 교주로 등극하기 위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한 장막성전의 교주인 유인구는 아들 유재열을 목자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장막성전의 초기 구성원인 백만봉 신종환 신광일 등도 유재열을 목자로 보지 않았다. 이들은 유재열과 자주 다투었고 결국 이탈했다. 이런 사실들 때문에 유재열의 신비체험은 후기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신빙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참고자료: <종교세계의 관심사> 1984년 신천지 발행, 탁명환 <기독교이단연구>

 

신천지, 장막성전과 긴밀히 관련

선민교회로 생각…세례요한 같은 교회로 맹신

 

 

 
 
 
 

장막성전과 긴밀한 신천지

 

유재열의 장막성전 사건을 자세하게 다루는 이유는 신천지 이만희와 유재열의 장막성전이 긴밀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만희와 신천지 신도들은 신천지와 장막성전이 하나님의 역사로 세워진 ‘선민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는 자신이 유재열의 장막성전을 다님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신천지 신도들 또한 이만희의 말을 맹신하고 있다. 신천지 교리는 유재열의 장막성전을 ‘길을 예비하는 사자’인 세례요한 같은 교회로 보고, 자신들은 예수 그리스도 같이 참 목자가 역사하는 교회로 보고 있다.

결국 장막성전과 유재열의 역사가 허구이면 신천지 또한 거짓된 집단임이 판명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밀하게 유재열의 장막성전과 신비체험의 문제성을 이야기했다. 신천지 신도들 또한 장막성전 역사가 거짓이면 신천지 역사 또한 거짓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재열 장막성전의 태동

어쨌든 유재열의 신비체험을 목격한 27명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1966년 3월 14일을 성탄절로 지키기로 했다. 1966년 4월 4일에 그들은 유인구와 유재열 부자를 따라서 호생기도원이 있었던 경기도 과천 막계리의 청계산 계곡에 들어가서 약 6개월 동안 기도생활을 하고, 9월 24일 하산하여 본격적인 전도활동에 들어갔다.

그런데 신천지증거장막성전에서 발간한 자료집 <종교관심사> 3쪽에는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1966년 4일 4일부터 100일 동안 성신으로부터 8명이 양육을 받는 가운데, 여호와의 성신이 유인구와 유재열 부자를 비롯한 8명과 새로운 구원의 언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유인구 유재열 부자를 포함한 8명은 순종의 표시로 손바닥과 손목의 동맥을 잘랐으며, 유인구와 신종환은 두 번이나 잘라 피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유인구는 8명의 피를 두 병의 링거 병에 담은 후 8명의 사령장(임명장)을 쓰고, 사령장 뒷면에 피를 손가락에 묻혀 십자가를 그려서 영명(靈名)과 함께 사령장을 수여하였다. 그리고 유인구를 제사장으로 나머지 7명은 천사라고 호칭하였다.

‘영명과 사명’ 부분에 보면 유인구는 ‘임마누엘 왕’, 신종환은 ‘제사장 모세’, 김창도는 ‘미카엘’, 정창래는 ‘사무엘’, 백만봉은 ‘솔로몬’, 신광일은 ‘여호수아’, 유재열은 ‘삼손’, 여자 김영애는 ‘디라’ 라는 영명을 받았다. 신천지증거장막성전에서 1997년 3월 14일 발간한 <신천지 발전사>를 보면 유인구와 유재열 부자를 비롯한 8명의 사진과 영명이 함께 실려 있다.


유재열 장막성전의 분열

이들은 1966년 6월 1일부터 6월 24일까지 약 23일간 청계산 기슭에 장막성전을 건축하고, 그 해 7월경부터 유인구와 유재열 부자를 비롯한 여덟 명이 강단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66년 4월 4일부터 100일 간 양육 받은 후 장막성전을 건축했다면, 시기가 7월 14일 쯤 된다. 그러므로 6월 1일에 성전건축을 착공했다는 주장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신천지는 1966년 2월 17일부터 성전을 착공했다고 수정했고, 100일 간 양육받기 시작하여 5월 27일에 하산 한 후 조금 있다가 6월 1일부터 장막성전 건축을 착공했다고 신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장막성전이 세워진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청계산 기슭으로 몰려들어, 입주자가 600세대가 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한기독교장막성전의 원장 유인구는 아들 유재열과 7천사들에게 매우 엄격하여 서로 잦은 마찰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7목자 8군왕’ 교리를 해석하는 문제로 유인구과 유재열은 대립하게 됐고, 1967년 6월 유재열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인천 송도로 떠났다. 이후 유재열은 다시 대한기독교장막성전으로 돌아와서 1967년 7월경 유인구를 단상에서 내려오게 한다. 유인구는 자신을 따르는 장로 몇 사람과 함께 결국 장막성전에서 쫓겨나게 된다.

참고자료:탁명환 <기독교이단연구>, 한순찰 <종교세계의 관심사>(신천지), 신천지증거장막성전 <신천지 발전사>

 

구속된 이만희 오류 투성 기록 조작

선고유예 끝난 후 신천지 설립·확산 나서

 

 

 
 
 
 

유재열 관련 거짓말

 

이만희는 기독교청지기교육원에서 활동했던 기성교회 목사들을 멸망자라고 지칭하지만 기독교청지기교육원 목사들은 대한기독교장막성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독교청지기교육원은 기성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훈련기관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이었던 탁명환은 기독교청지기교육원 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천지는 탁명환 소장을 포함한 목사들을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일곱 머리를 상징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과거에는 기독교청지기교육원 7명의 목자를 원세호 김정두 김봉관 탁성환 오평호 탁명환 한의택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현재는 원세호 김정두 김봉관 탁성환 탁명환 한의택 백동섭으로 교리를 수정하여 가르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백동섭과 탁명환은 기독교청지기교육원 소속도 아니고, 기독교청지기교육원 목사들이 유재열 장막성전에 들어가서 정화운동을 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신천지는 계시록 13장에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오평호와 이초주라고 했다가, 현재는 탁성환과 오평호로 교리를 변경했다.

또한 이만희는 유재열이 대한기독교장막성전을 기성교회 목사들에게 위임한 사건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탄에게 넘겨준 것이다’라고 편지를 통하여 비판했다. 이 때문에 이만희는 1980년 10월 27일 유재열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1981년 2월 2일 선고유예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만희는 장막성전의 실권을 장악한 오평호 목사를 비롯한 기독교청지기교육원 목사들에게 고소를 당하여 구속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신천지 관련 거짓말

이만희에 따르면 대한기독교장막성전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선민들이 모인 곳이다. 유재열은 하나님과 언약한 목자였는데,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이방의 교법을 따라 배도의 행위를 한 배도자가 되었다. 오평호 목사와 기독교청지기교육원 목사들은 ‘하나님과 언약한 장막성전을 침노하여 선민을 이방교권으로 미혹하여 이마와 오른손에 표를 받게 하고 장막성전을 무너뜨린 침노자이며 멸망자’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이 타락하여 배도한 것과 멸망자들에게 장막성전이 빼앗긴 것을 한탄하시다가 다시 구원자 한 사람을 택하여 말씀과 계시를 주시고 다시 새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그게 바로 이만희라는 주장이다. 이만희는 1997년 3월 14일자 <신천지 발전사>의 ‘신천지 증거 장막성전 창립 연혁’에서, 자신이 1980년 10월 27일 구속되어 1981년 2월 2일에 3년 6개월의 선고유예를 받고 풀려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자료집보다 먼저 출간 된 <천국비밀 계시록의 진상>이라는 책에는 다르게 쓰여 있다. 이 책은 1985년 12월에 출간되었으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두 증인이 증거를 시작하여 마쳤던 그 해의 시월에 구속되었으므로, 사실상 한 해가 지나서 이듬해 2월에 석방되어 풀려났다. 그러나 풀려날 때에 2년 반의 선고 유예 처분을 받음으로써 징계를 당한 기간은 세 해 반에 이르게 된다. 또 죽었다는 말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고, 말씀을 증거하지 못하도록 유예 처분을 내렸으니 결국 죽은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다.”

위의 <천국비밀 계시록의 진상>에 의하면, 이전에 밝힌 날짜 및 기간과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만희는 ‘3년 6개월’을 짜맞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오류들을 살펴 볼 때에 이만희와 신천지 증거 장막성전에서 성서의 요한계시록 11장 2절과 3절이 이만희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교리를 만들고, 본문에 나오는 두 증인은 이만희를 의미한다는 주장을 억지로 짜 맞추기 위해 날짜들을 수정한 것이다.


신천지 설립과 확산

이만희는 <신천지 발전사>에서 신천지 창립과 연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84년 2월 7일 선고유예 기간이 끝난 후 배도와 멸망의 일을 알리는 <인류 최대의 관심사(종교세계의 관심사)>라는 책을 발간하여 온 세계에 널리 증거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4년 2월 21일에 충남 천태산 앞 국사봉에 입산,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책 두 권을 쓰고 3월 14일에 산상예배를 드렸으며, 1986년 6월 3일에 안양시 비산동 동산아파트 지하실에 성전을 마련하여 정식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만희는 신천지증거장막성전 창립일을 1984년 3월 14일로 정했다. 1985년 12월 15일에는 문화재단을 창설하여 도서출판 ‘신천지’를 발족하였으며, 1985년 4월 5일에는 안양시 비산2동 238-13로 예배처소를 이전하였다. 1984년 6월 5일에는 <신탄>이라는 책을 출간하였으며 동년 12월 12일자로 <요한계시록의 진상>을 출간하였다.

1986년 1월 2일에는 교육자선교협의회라는 기관을 설립하였다. 이어 영등포 성북 안양 인천 천안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동해시에 신천지증거장막성전 산하 지교회를 설립했다. 같은 해 12월 11일 <계시록 완전 해설>을 출간하였다. 1987년 8월 16일에는 안양시 비산동에서 관양동 173-1번지로 이사하여 첫 예배를 드렸다.

참고자료:이만희 <천국비밀 계시:요한 계시록의 예언과 성취된 실상>(신천지), 신천지증거장막성전 <신천지 발전사>,

만국소성회 <영핵>, 이만희 <천국비밀 계시록의 진상>(신천지)


신천지 설립 앞서 장막성전 비판

“배교로 무너졌다” 주장하며 거짓말로 신도 속여

 

 

 
 

 

유재열을 비판한 이만희

 

이만희는 신천지를 설립하기에 앞서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대한 비판을 한다. 유재열의 장막성전이 배교를 했기에 무너지게 됐고, 이만희 자신이 성경에 근거해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만희는 1980년 제5공화국 정부가 ‘사이비종교 정화령’을 발표하고, 이에 현대종교문제연구소장 탁명환과 장로교 목사들이 장막성전을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탁명환 소장과 목사들이 유재열 장막성전에 입적한 장로교 출신 오평호 목사와 결탁해 ‘기독교청지기교육원’이란 이름으로 장막성전을 장악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독교청지기교육원 목사들이 장막성전을 관리하게 된 것은 “언약의 교법이 배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방의 교법을 통하여 심판하신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행위이고, 창기의 행위”라고 유재열을 비난했다. 그래서 현재 이만희의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은 유재열과 6명의 간부들을 ‘배도자’라고 가르치고 있다.


장막성전이 무너진 진실

그러나 유재열 장막성전이 무너지게 된 것은 이만희의 주장과 다르다. 장막성전이 무너진 결정적인 계기는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제4공화국 박정희 정부시절, 외국 순방길에 오른 대통령은 가족들이 함께 문화생활을 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고 대한민국에도 가족들이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놀이공간과 휴식공간을 마련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때 세웠던 계획이 현재 과천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자리에다 유원지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로 인해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로 계획이 넘어갔다. 그래서 지금 과천 어린이대공원을 건설했는데 당시에 국가 재정이 열악하여 원래 계획보다 축소하여 조성했다.

건설 당시 정부는 유재열 장막성전 신도들과 보상협상에 대해 논의했다. 만약에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가 유재열 장막성전을 종교정화 명목으로 탄압했다면 보상과 관련된 협의 자체가 없었을 것이며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을 것이다. 당시 자료들을 살펴보면 장막성전 신도들은 불법으로 토지를 점유하여 사용하고 있었고, 협상과정에서 과도한 요구와 환경오염이 심각했다는 내용이 게재되어 있다. 그리고 최후까지 보상협의에 대해 마무리를 했다고 발표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주장하는 것처럼 제5공화국 정부가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에게 이단사이비 정화운동의 전권을 주어 탄압했다고 하는 것은 허위사실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신천지 신도들을 속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부적인 요인은 홍종효를 비롯한 일부 신도들이 유재열을 고소했기 때문이다. 이 고소건으로 유재열은 1995년 9월 6일 서울지검 영등포지청(김성남 검사)에서 구속됐고, 언론(동아일보)에 보도까지 됐다. 고소인들 가운데 이만희도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데, 이만희와 신천지에서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않다.


드러나는 이만희의 신천지

기독교청지기교육원 오평호 목사는 장막성전이 정통 기독교와는 다른 예배 모습을 보고, 언약궤와 비석 등을 혁파하는 정화(淨化)를 했다고 한다. 오 목사는 이 정화하는 일에 반발하는 신도들을 출교시키고, 1975년부터 잘못된 성경해석을 바로잡으며 성도들을 정통 기독교 교리로 가르쳤다. 그리고 1981년 9월 20일 17명을 목사로 세우는 임직식을 거행했다.

이만희는 1981년에 임직식을 거행한 것에 대해 “언약을 받은 장막성전이 언약이 없는 이방교법에 의해 무너진 것”이며, “이방과 언약하고 안수 받아 이방목자가 된 것으로, 언약을 배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통 교회의 목사가 되는 것이 “짐승들인 이방목자에게 이마와 오른손에 표 받는 일”이요,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멸망당하는 것이며, 나라의 본 자손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만희는 장막성전이 없어진 것을 성경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에 빗대어 신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멸망의 가증한 것’은 오평호 목사와 기독교청지기교육원 목사를 의미하며, 거룩한 곳은 ‘장막성전’을 지칭한다. 그리고 ‘산으로 도망가라’에서 ‘산’은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진다’는 뜻은 ‘장막성전’ 터 위에 서울대공원(서울랜드)이 세워진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만희는 유재열의 장막성전이 오평호 목사와 기독교청지기교육원 목사들에게 침탈당하여 빼앗긴 사건과, 장막성전이 허물어지고 서울대공원이 들어서게 된 것을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했던 예수님의 예언이 한국에서 현실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주장하고 있다.

자료:탁명환 <기독교이단연구>, 현대종교 <한국의 신흥종교:자칭 한국의 재림주들>, 한순찰 <종교세계의 관심사>(신천지).

 

1990년대부터 신천지 본격 세력 확장

전국 지교회 설립하고 세 과시…해외로도 눈 돌려

 

 

 
 
 
 

신천지의 설립 이후 발전

 

지난 17편에서 <신천지 발전사>를 통해 이만희가 밝힌 신천지 창립 이후 초기 부분을 기술했다. 1984년 2월 7일 선고유예가 끝난 이만희는 2월 21일 충남 천태산 국사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책 2권’을 썼으며, 3월 14일 산상예배를 드렸다고 말한다. 신천지는 이 산상예배를 드린 1984년 3월 14일을 신천지증거장막성전 창립일로 정했다. 그리고 이만희는 1984년 6월 3일 안양시 비산동 동산아파트 지하실에 처소를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신천지를 시작한다.

신천지는 이후 지교회와 각종 기관을 설립하며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만희는 1984년 6월 5일 <신탄>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12월 12일 <요한계시록의 진상>을 출간했다. 1985년 12월 15일에는 문화재단을 창설하여 도서출판 ‘신천지’를 발족했으며, 1986년 1월 2일 교육자선교협의회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또한 이 즈음 영등포 성북 안양 인천 천안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동해시에 신천지증거장막성전 산하 지교회를 설립했다.

1986년 12월 11일 이만희는 <계시록 완전 해설>을 출간한 후, 이듬해 8월 16일 안양시 관양동 173-1번지로 처소를 이전해서 첫 예배를 진행했다. 이후에도 이만희는 1998년 2월 25일 <성도와 천국> 출간, 8월 6일 월간지 <신천지 소식> 창간, 5월 31일 <계시록의 진상 2> 출간, 8월 1일 <성도와 천국> 제2권 출간, 1989년 4월 15일 <성도와 천국> 제3권 출간 등 자신의 이론에 대한 기초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1990년대 신천지 본격화

1990년 1월부터 신천지와 이만희는 부산에 지교회로 여명교회를 설립하고, 4월 성남교회를 설립하면서 확산 속도가 높아졌다. 6월 12일 방배2동에 ‘신천지신학교육원’ 설립에 이어, 1991년 1월 부산에 ‘신학교육원’을 설립하고 5월 광주에까지 ‘신학교육원’을 설립했다.

1992년에 들어서도 영등포 경북 동해 천안 대전 대구 제주도 부산 성남에 신학원을 연이어 설립했다. 그리고 본부 산하에 인천 안양 불광 구의 신설동 신촌에 신학원을 설립했다. 1993년 마산 전주 포항에 지교회를 설립했고, 인천에 120평의 지교회를 지어 봉헌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이렇게 급속히 세력을 확장한 신천지는 본부 산하에 계속 신학원을 설립해 본부를 중심으로 전국에 45개의 신학원을 설립했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세력이 커진 신천지는 본격적으로 자신감을 갖고 자신들을 당당히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천국비밀 계시록의 진상>을 출판하고 전국의 도서관과 기관들에게 기증했다. 그리고 1993년 10월 ‘제1회 신천지 전국 체육대회’를 대전에서 개최하며 세력 과시에 나섰다.


해외까지 나가는 신천지

1994년에도 신천지는 지교회와 신학원 설립을 계속 진행했다. 대전 익산(이리) 전주 인천 울산에 신학원을 계속 설립했다. 주목할 사항은 신천지가 1994년 해외까지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1994년 중국에 지교회를 설립하여 봉헌예배를 드렸다. 이로써 신천지는 본부 산하 신학원이 15개에서 28개로 늘어났으며, 전국적으로 80여 개의 신학원을 설립했다.

1995년 3월 14일 창립 11주년 기념일에 신천지는 본부 7교육장, 12지파장, 24장로 등의 보좌를 구성한다. 서울 구의동과 부산 동래에 지교회도 설립했다. 또한 본부 산하 28개 신학원 중 불광 인천 지역 신학원은 지파로 승격시키게 된다. 이후 이만희와 신천지는 <감추었던 만나>, <성도와 천국>제5집, <계시록 실상>책을 영어로 번역하고, 전국 도서관과 미국 이스라엘 등 해외까지 보냈다.

1996년 신천지는 보좌 구성으로 본부 7교육장, 12지파장, 중앙 24실무 장로를 두고, 각 지파마다 실무장로, 원로장로, 권사, 집사, 문도, 평신도, 신학생으로 조직체계를 만들었다. 각 지파 부서는 총무부, 교육신학부, 재정부, 문화부, 섭외부, 건설부, 사업부, 선교부, 전도회, 장년회, 부녀회, 청년회 12개 부서로 구성했다. 신학원은 전국 신학원 총원장, 각 지파 수원장, 원장, 교육강사, 교사, 교육전도사로 구성했다.

현재 신천지증거장막성전 예배당과 본부는 경기도 과천시 정부청사 앞 뉴코아빌딩 9층과 제일쇼핑 4층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 신도 수는 4만5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천지 본부가 과천에 들어온 후, 2007년 7월 19일 과천시기독교연합회를 비롯해 과천시노인회 과천환경21실천협의회 과천지키기시민연대 등 사회 단체들이 연합해서 ‘신천지대책 과천시 범시민연대’를 발족하고 발대식을 가졌다. 신천지대책과천시범시민연대는 신천지가 과천시를 자신들의 성지로 만들기 위해 부동산을 매입하는 행위에 대해 중지시켜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나아가 시민연대는 아예 신천지가 과천시를 떠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신천지에 대응하고 있다.

참고자료:신천지증거장막성전 <신천지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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