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7-12 10:41
마태복음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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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081  

마태복음 서론

  

   마태복음을 비롯한 복음서들은 구약과 신약의 사이에 존재하는 400여 년의 공백기를 연결하여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록들이다. 그중에서 이 마태복음은 특별히 유대인들을 위하여서 기록되어졌는데 여기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언약의 성취를 말하면서 믿는 자들의 삶을 소망으로 연결시켜 주고 그리스도 예수가 약속된 나라의 왕이신 유대인의 메시아임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본 서론에서는 마태복음의 기본적 대전제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배경과 마태복음의 특징적인 신학적 주제들을 간략하게 다루려고 한다. 

   제1부 역사적 배경 

   I. 저자와 연대 

   1. 저자 

     전통적으로 마태복음은 예수의 제자이자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마태가 기록한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성경 상에 마태에 대해서 그의 이름과 직업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의 명단에 기록된 후 아무 곳에서도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마태복음의 어느 곳에서도 명백히 그를 저자로 지목하는 부분은 없으나 초대 교부들은 마태복음의 저자에 관한 논의에서 그것을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의 저술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전통적 견해는 유세비우스(Eusebius)가 인용한 파피아스의 글에 나타난 '마태가 예수의 말씀을 히브리말로 기록하였다'라는 말이 뒷받침하고 있다. 또 유세비우스보다 1세기 이전 사람인 이레니우스는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있는 동안에 마태는 히브리인들 중에서 그들 자신들의 언어로 복음서를 발행했다'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클레멘트(Clement)는 네 복음서 중 첫 번째의 것은 '한때 세리였다가 나중에 사도가 된 마태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이 초대교회 교부들의 주장을 토대로 마태복음이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마태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견해가 정설로 오랫동안 인정되어 왔다. 한편 현대의 비평학자들은 ① 파피아스가 언급한 '말씀들'이 오늘날의 마태복음을 가리킨다는 근거가 없고, ② 전통적으로 마태복음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어서 나중에 희랍어로 번역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마가복음 우선설을 근거로 해서 유추해 볼 때 마태복음은 희랍어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가복음을 기초로 희랍어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③ 예수의 12제자 중의 하나이며, 예수의 행적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던 마태가 열두 제자 중의 하나도 아니고 목격자도 아닌 마가의 기록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저자를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마태로 보는 것은 초대교회가 복음서와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논리에 의하면 마태복음의 저자가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가 아니라 후대의 기독교인이며, 마태복음 본문의 성격에 유대적 경향과 이방적 경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기록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초대 교부들의 견해를 더 정확한 역사적 근거로 받아들여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였던 마태라고 본다. 

   2. 연대 

     마태복음이 언제 기록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또 정확히 밝혀내기도 쉽지 않다. 학자들은 대략 A.D. 70년 예루살렘 성전 멸망을 기점으로 그 이전설과 이후설로 나뉘는데 이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①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을 자료로 이용한 것을 생각해 볼 때 마가복음이 기록된 주후 30년경보다는 후대에 기록되었을 것이며, ② 마태복음의 본문을 통해서(22:6, 7; 23:38) 마태복음 기자가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저작 시기는 자연적으로 그 이후로 추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③ 마태복음의 내용 중에 범죄한 형제들(18:15-17)이나 거짓 선지자들(7:15 이하)에 대한 언급 등은 1세기말 경에 교회 안에 나타났던 위험들을 암시해 주고 있으며, ④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적인 어조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유대교와 분리되면서 극심한 긴장 상태에 있던 시기를 반영해 주는데 그 시기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라는 것이다. 그 반면에 이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마태복음이 바울과 베드로가 아직 로마에 있는 동안인 네로 통치 시기(이레니우스)라고 보고 특히 마태의 본문에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에 관한 기사가 예언의 형식으로만 기록되어 있고 실제로 그 도시가 파괴된 것에 대한 일말의 내용이나 어떤 암시도 전혀 있지 않으므로(마 24:1-28), 이 복음서가 성전 파괴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마태복음은 성전 함락 이전의 시기에 기록되었는데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가 없고 대략 A.D. 50-70년 사이의 어떤 시기였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II. 기록 목적 

   ① 역사적인 목적: 마태복음을 기록하게 된 동기와 목적을 단적으로 말하면 유대인 신자들이 유대교에서 개종한 자들을 양육하고 유대교에 있는 자기 동족을 전도하기 위해서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 시기는 아직 유대교와 기독교가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지 못한 때였고 유대교인들은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일종의 종교적 분파로 인정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태는 핍박을 당하고 있는 신자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유대인들에 대하여 복음은 구약의 말씀과 결코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과 맺으신 언약의 완전한 성취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이 당시의 유대 기독교인들의 정황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삶, 그리고 그 사명의 본질적인 목적에 대한 명백한 증거와 이들을 반대하는 대적자들에 대한 변증적 반박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였음을 우리는 여기서 잘 알 수 있다.

 

   ② 교리적인 목적: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참조, 마 1:1)는 구절은 메시아 약속의 각 발전 단계를 포함한 마태복음의 교리적인, 특히 기독론적인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족보는 창세기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다가 메시아의 계보가 다윗에게서 끝나는데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끊어진 족보를 다시 이어 하나님의 메시아 약속의 성취를 예수를 통해서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의 모음이 아니라 역사적인 동기를 넘어선 하나님의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그 성취, 즉 인류를 향하신 구체적 사랑의 체현인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어떻게 완성하셨고, 그의 길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받들어 살아가야 할 제자로서의 삶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삶 속에서 진행되어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다.

 

   III. 특징과 구조

   1. 특징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 다른 복음서들과 비교해 볼 때 마태복음만 지니고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그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유대 지향적 성향

   ① 마태복음에 모세 유형론이 나타나 있고 오경적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는 자체가 유대인들을 염두에 둔 유대적 특징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몇 가지 유대적인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구약성경을 상당히 많이 인용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100번 이상이나 구약을 직접?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빈번한 인용 외에도 마태는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소개하면서 예수는 보통 인간이 아니라 유대인이 수난의 역사 속에서 그렇게 대망해 왔던 자,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보내신 메시아임을 나타내는 데 많은 구약의 용어를 인용하고 있다.

   ② 유대적인 관용구의 사용: 마태복음에는 다른 신약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유대적 표현들이 많이 있는데 그 대표적 예가 '하늘나라'(The Kingdom of Heaven)이다.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란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하늘나라를 대신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건한 유대인이 '야훼'의 거룩한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 그 별칭으로 '하늘 아버지'나 '하늘'이라는 용어를 쓰던 관습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외에도 유대인의 묵시 문학에서 많이 쓰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든지 '심판의 날들'도 전통적인 유대의 표현들이고 예수의 명칭을 이야기할 때 '아브라함의 아들', '다윗의 아들', '임마누엘', '오실 이' 등은 다 유대적인 명칭들이다.

   ③ 다른 복음서에서와는 달리 마태복음에서만 예수님의 공생애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 같은 구절이 여러 번 나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을 위해서만 보내심을 받았다'(15:24)든지 '이방 사람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10:5, 6)라 하신 구절은 모두 다 마태의 유대적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유대적 특징들은 대부분의 독자가 유대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마태가 복음을 자기 동족들에게 변증하기 위해 사용한 기술적 측면의 한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이방 지향적 성향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 독자들을 위해서 쓴 기록이면서도 마태복음의 전면에는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즉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다분히 이방적인 경향을 많이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서 예수의 족보에 여인의 이름, 그것도 이방 여인의 이름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과 동방 박사의 이야기,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칭찬받은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로마의 백부장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으로부터 와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여하겠고 이 나라의 아들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8:11, 12) 등의 구절들은 마태의 근본적인 관점이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이다. 무엇보다도 명백한 보편주의적이고 이방적인 경향성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28:18-20)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가지 구절들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 볼 때 마태는 유대 민족을 편향하는 국수주의적 인물이 아니라 비록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복음을 기록하였지만 그 서술의 근본적인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후손으로서 그의 가르침을 유대인들의 유대교와 전혀 반대되지 않음을 변증함과 동시에 메시아는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모든 족속을 위한 것임을 적절하게 시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3) 윤리적인 강조점

   마태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 중의 하나는 마태가 윤리적 행위, 선한 행위들을 강조하면서 거기에 대한 상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무와 열매의 비유(7:15; 12:33), 세례 요한과 예수의 설교를 통해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혀 불에 태워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고 했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7:21),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곧 예수의 형제요 자매(12:50)라고 증거하고 있다. 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10:42)고 하신 말씀을 기록하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제자의 자격이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의 의보다 나은 의를 행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태는 적극적인 악행보다는 오히려 선행을 행하지 않는 타성과 나태함이 섞인 무관심을 정죄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점이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마태가 이렇게 선행과 보상 그리고 심판을 강조하였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마태복음이 초기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한 신앙 지침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서술하면서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생활로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 당시의 이름뿐인 기독교인들, 형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에 상응하는 선한 행위와 선한 삶을 강조했다. 이 길만이 개종자들을 당시 외식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으로부터 지켜 하나님 앞에 진실한 생활을 하게 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마태가 행위를 강조하는 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행함이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구원의 삶을 강조한 야고보의 신학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4) 교회의 복음서

   ① 앞에서 마태복음이 초대 교인들을 위한 신앙 지침서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복음서들 중 마태복음만큼 '교회'를 염두에 둔 교회 중심적인 복음서는 없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교회'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유독 마태복음에서만 '교회'라는 어휘가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참조, 마 16:18; 18:17).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과는 달리 예수의 생애보다는 예수의 말씀을 더 많이 기록하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그의 복음서를 형성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교인들을 지도하려는 교회의 교육적 의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마태복음은 일종의 요리문답서(Catechis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② 마태는 교회의 기초를 건물이나 사람이 만든 제도 위에 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독생자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고백 위에 두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태복음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는 구절은 후대의 세례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며, '모든 족속들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든가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는 말씀도 그 당시 교회의 교육적, 선교적인 측면을 인식한 말씀이라 할 수 있다.

   ③ 마태는 또 마태복음이 교회의 의식에서 사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 같다. 그 좋은 실례가 마태복음에 소개된 주기도문(6:9-13)이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눅 11:2-4)를 비교해 보면 마태는 주가 가르치신 기도를 교회의 예배 형식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서술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복음서가 교회를 염두에 둔 복음서일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마태복음은 가장 교회를 의식한 교회를 위한 교회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다.

 

   2. 구조

     마태복음은 산상 설교(5-7장), 제자들에 관한 설교(10장), 천국에 관한 설교(13장), 교회에 관한 설교(8장), 종말에 관한 설교(24, 25장)를 중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본 구조로 삼아 서술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메시아의 출현(1-4장), 예수의 고난과 죽음, 부활(26-28장) 등을 잘 엮어서 서술하고 있는데 그 세부적인 구조는 다음 도표를 참고하라 (참조, 마태복음 도표4).

   마태복음의 구조적인 특징 중 참으로 독특한 것은 대칭 교차적 구조(Chiasm)이다. 마태복음의 중심적 설교 다섯 개 중 첫 번째는 '하늘나라에 들어감'에 대한 것인데 마지막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설교이다. 또 두 번째 설교는 '제자들을 보내심'에 관한 것이고, 네 번째는 '제자들의 활동'에 관한 것이며, 세 번째 설교인 천국의 비유들은 다섯 설교의 중심을 차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때 마태복음은 하늘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형성되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대칭 교차적' 구조는 다른 세부적 부분에서도 눈에 띄는데 마태복음의 서두에 예수의 탄생이 나타나고 마지막에 부활이, 즉 새로운 탄생이 나타나며, 첫 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1:23)가 나오고 마지막 장에서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28:20), 4장에서 예수께서 시험받으실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한 것같이 27장에서는 십자가 앞에서 사람들이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말하여 예수를 조롱한다. 이 같은 독특한 구조는 다른 복음서에서보다 마태복음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도적으로 나타내려는 마태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제2부 마태복음의 특별한 주제들 

   I. 예수의 가르침에 나타난 윤리성

 

   어떤 이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당시의 유대교 랍비들의 가르침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독창성이 없이 그냥 그 이전에 유대 랍비들이 말해 왔던 윤리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예수의 가르침에서는 많은 유대 전통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는 전통적인 윤리를 이어받으면서도 그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예수께서는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율법 조항들 중에서 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선별하셨다. 그는 바리새인들이 이해한 모세의 율법들 중에서 부적절한 주변의 것들은 다 정리해 버리고 단지 핵심적인 원리들만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둘째, 예수께서는 비록 그 당시의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격언들을 선택하여 사용하셨지만 동일한 문구라 할지라도 다른 색다른 관점에서 강조하였다. 그는 외적인 규정보다는 오히려 내적인 동기에 더 크게 치중하셨고, 그 당시 서기관들과 예수님이 다같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율법에 관해 말했지만 그 강조하고 있는 방향은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다. 왜냐하면 서기관들은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전해 내려오던 율법을 자구적으로 강조하였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근본의도'를 꿰뚫으시고 강조하셨다. 셋째, 예수께서는 기본적인 원리를 추출해 내셨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맥락에서의 그 원리들까지 도출해 내셨는데, 이를테면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사랑하라는 말(레 19:18)을 인용하여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의도를 나타내셨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나타난 또 하나의 독특성은 그의 가르침을 새로운 종교적 개념 및 경험적 실천으로 연결지으셨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윤리적 교훈의 종점은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이런 구체적인 행위로 옮기는 윤리적 차원은 종교적인 범주 속에 속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 하는 믿음, 즉 성령의 도우심을 전체로 한 행위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며 자신들의 의지 자체를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려는 간절한 믿음을 동기로 하는 윤리였기에 형식적인 윤리 체계와는 구별되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가르침과 자신을 동일화하셨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은 곧 예수께 순종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 자신부터가 가르침의 내용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사랑과 소망의 확신을 심어 준 인격적인 스승과 그 가르침을 동일시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지니는 독창성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에서 근원하는 것이다.

 

   II. 마태복음에 나타난 제사장

   마태복음에 나타나 있는 제사장은 마가복음의 제사장과는 다르다. 마가복음에는 제자들이 무지하고 깨달음이 없는 자들로 나타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완전히 무지한 자들도 아니며 오히려 예수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깨달은 자들이다. 본문에 나타나는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면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마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13:1-24)를 설명할 때에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막 4:13)라는 구절을 생략하면서 마가복음에는 없는 13장 16, 17절을 첨가함으로써 제자들의 무지를 단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마가와는 달리 제자들의 위치를 격상시킨다. 이렇게 마태가 마가의 제자상을 수정하여 그들을 좀더 고양된 모습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마태복음 전반에 걸쳐 특히 마가의 자료를 손질하여 다루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의 무지로 나타나는 구절들을 생략 혹은 삭제해 버리는 입장을 취하면서 반대로 제자들이 깨달은 상태에 있었음을 강조하는 구절을 별도로 삽입하고 있다. 마태는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사건(마 14:22-33)을 기록할 때에도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해졌음이러라'(막 6:52)라는 구절을 삭제함으로써 무지했고 깨달음이 없는 제자들이라는 인상을 제거해 버리고 오히려 그 결론 구절을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 14:33)라는 말로써 제자들을 예수께 경배하며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자들로 격상시키고 있다. 제자들에 대한 마태의 이런 관심은 제자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를 특별히 중요하게 높여 주는 그의 태도 가운데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마태는 열두 제자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베드로의 이름 앞에 '첫째로'<prw'to">라는 단어를 삽입시키고 있는데 이 부사 하나를 삽입시킴으로써 마태는 베드로가 수제자임을 강조한다. 베드로가 제자 중 첫째 가는 제자라는 표현은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첫째로'라는 말은 베드로가 제일 먼저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요한복음(1:40-42)에 의하면 오히려 안드레가 베드로보다 먼저 제자가 되었고 베드로는 안드레의 전도를 받았던 사람이다. 마태가 베드로를 수제자로 강조한 이유는 초대교회 내에서의 그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그의 지위와 권위를 확립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유대 기독교인을 위한 사도로서 이스라엘 교회 안에서 기둥처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마태의 의도는 무엇보다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록하는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서 마태는 다른 복음서에서 쓰고 있지 않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너는 베드로라 내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7, 18)는 축복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6:19)라는 특별한 권한 부여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본문이 오직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베드로를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의 특별하신 축복을 소유한 자로 강조하려는 마태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제자들의 모습을 좀더 나은 모습으로 나타내려고 했는가? 우리는 마땅히 그 대답을 마태가 처해 있던 역사적 상황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자체적인 교회 조직이 형성되어가고 있던 1세기 말의 초대교회 안에서 기독교인들을 위한 신앙 지침서로서의 목적을 띤 마태복음서임을 고려해 볼 때 마태는 예수께서 명한 것을 가르칠 임무를 부여받은 제자들이 그들이 전하고 가르쳐야 할 메시지를 완전히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 마태는 이러한 의도는 제자들이 예수의 교훈을 가르쳐야 할 합법적인 대표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서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보아야 한다. 마태가 특히 베드로를 탁월하게 강조한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마태의 독자들이 유대인 기독교들이었기 때문에 할례자를 위한 전도자 베드로가 특별히 마태복음에서 높이 강조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제도화되어가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할 만한 가르치는 자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세우신 권위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이것이 마태가 처해 있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마태의 제자들에 대한 관점은 이 시대적 상황과 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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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6 [3]새신자교육과 성장 웹섬김이 03-27 7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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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4 [1]사도신경의 모든 것 웹섬김이 01-29 7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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