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4-17 23:26
[5]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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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968  

로마서 

2.6.1.   

2.6.1.1. 로마교회

로마교회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에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으며 그가 로마서 15:20에서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는다고 말함을 보아 이미 로마의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함께 갔던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들"(행2:10)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돌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이 로마의 교회는 신자들 가운데서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아마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혼합된 하나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색채는 이방적 요소가 강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바울은 본서의 초두에서 그들을 이방인으로 분류했으며(롬1:13), 바울의 로마방문 기사에서 보여 주듯이 그곳 유대인들마저도 기독교 진리에 대해 전연 무지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6.2.   

로마서를 기록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롬1:1).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자기들의 편지에서 본 서신을 인용함으로써 본서가 바울의 서신임을 말해 주고 있으며, 초대 교회 이후로 이점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기록자는 자신을 사도 바울로 말하고 있으며(1:1), 바울이 기록한 다른 서신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로마서에 담긴 교리적인 내용들은 사도 바울에게 늘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내용들임을 볼 때에 본서의 기록자가 사도 바울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6.3. 저작 장소  저작 연대 

2.6.3.1. 저작장소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좌절되었다(15:21,1:13). 그 당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모든 지역에 전한 후에 예루살렘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모금을 방금 마친 상태였다(15:22). 그리고 그 편지는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위하여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다음 해에 쓰여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이 편지를 썼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증거로서 바울이 "겐그레아 일군"으로 지칭하는 뵈뵈를 천거하고, 고전1:14에서 언급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가이오의 인사(롬16:23), 에라스도의 문안인사를 들 수 있다. 특히 에라스도에 대하여 딤후4:20에서 "고린도에서 머물렀고"라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로마서가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6.3.2. 저작연대에 대하여

저작연대를 잡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바울이 최초로 고린도에 체류한 것은 제2차 전도여행(행15:36-18:22) 동안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짧은 체류기간 동안에 이렇게 긴 서신을 저술하기에는 힘들다고 볼 때에 행20:3에 기록된 아가야(그리이스)에서 있었던 3개월에 걸친 전도의 막바지인 제3차 전도여행 중 세 번째의 고린도 방문기간(행18:23-21:16)에 로마서를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의 전 기간을 53/54-57/58년으로 추정할 때에 로마서의 저작 연대는 그가 고린도를 출발하기 직전인 57년 또는 58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6.4. 수신자 

본서의 수신자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는데 윌리엄 맨슨은 바울이 구약성경에 호소하는 것으로 보아 이 서신의 전체적 주장은 이방인보다는 유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J.Munck는 주로 이방인들에게 보낸 서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어느 한쪽이 우세한 하나의 혼합된 공동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바울 당시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로마 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로마 교회가 이방인 세계의 가운데 있다는 "너희 가운데"라는 표현을 볼 때에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지만 로마 교회의 대다수가 이방인인 성도로 구성되었음이 타당한 것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은 그가 편지하고 있는 그들 가운데 유대인과 이방인 중 어느 편이 더욱 많은가 하는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의 강조점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죄 아래" 있으며 모두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으며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임을 말하고 있다. 

2.6.5. 저작동기와 저작목적 

바울은 이제 제3차 전도여행의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그는 몸소 로마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복음이 전파되면서 이곳에 친구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수년 동안 가져왔던 소망인 로마에 가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 때문에 곧 바로 갈 수 없어 구제헌금을 전달한 후에(행24:17), 로마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바울이 로마서를 저술한 목적은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그는 먼저 동료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자 저술을 하였다(롬1:11). 그리고 개인적 상면의 대용물로서 서신의 수단을 통하여 로마교회와 교제를 갖기 원하여서 쓰는 것이다. 또한 목회적인 관점에서 불신자들의 공격에 어떻게 방어하고 이겨내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해서 썼다. 마지막으로는 바울 자신의 서바나에로의 여행과 관련하여 로마 교회의 협조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본서가 쓰여졌다고 본다. 

2.6.6.   

바울은 이신칭의의 교리가 실제적이며 필요한 것이고(1-3장), 성경적이며(4장), 효과적인 즉 열매를 맺는 것(5-8장)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후에, 9-11자에서 역사의 노정에서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약속이 신앙하는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의도되었고, 그들 안에서 실현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12-16장에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을 담고 있다. 

2.6.6.1. 서론(1:1-17)

바울은 서론에서 로마 성도들에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 자로 소개하고, 로마 성도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서론부 마지막에는 로마서 전체의 주제이며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다.

2.6.6.2. 하나님의 의의 필요성(1:18-3:20)

1:18-32절은 이방인의 죄로서 이방인들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고의적으로 감사치도 않고 영화롭게도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을 내어 버려두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2:1-3:8절에서는 유대인의 죄를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방인을 판단하며 비방을 하지만 오히려 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의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모습과 할례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고 할례라는 의식만 자랑하는 형식주의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유대인들을 지적하자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라는 질문에 유익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이용하여서 구속계획을 성취하셨는데 이는 불의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참되심과 선하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리고 불의한 자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서 하나님은 결코 일부러 불의하게 만들어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불의를 섭리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시는 것 뿐이다.

앞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죄인임을 말한 바울은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고 3:9-20절에서 선언하고 있다.

2.6.6.3. 하나님께 나아가는 의의 (3:21-5:21)

1:18-3:20에서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밝힌 바울은 이제는 새로운 구원의 길이 나타났음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죄악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어서 절망적이었는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므로 믿음에 의한 구원의 길이 나타났음을 말하고 있다(3:21-31). 이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미치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이미 구약에서부터 증거되고 있음을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은 아브라함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4:1-25).

그리고 5:1-11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의 복은 하나님과의 화목임을 말한다. 그 근거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에 있다.

5:12-21에서는 첫 사람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오늘에까지 의롭다함(구원)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2.6.6.4. 죄에서 해방됨(6:1-8:39)

사도 바울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와 죄와의 관계를 6장에서 밝히고 의롭다함을 받은 자와 율법과의 관계를 7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6장에서는 사도 바울은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어떻게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한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를 지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7장에서는 의롭다함을 얻은 신자는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그 내면의 동기와 목적을 바로 알아 그리스도 아래 있으므로 강제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지키고자 하는 성도에게 부딪치는 내적인 투쟁을 치열하게 마지막에 기록하고 있다.

8장에서는 성령을 통한 해방을 말하고 있는데 성화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좇아 행할 때 가능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은 오히려 고난에 직면해야 되는 삶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이루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2.6.6.5. 이스라엘에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9:1-11:36)

본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문제를 포함하여 전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밝히고 있다. 즉 많은 특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이 배척함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없이 선택한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9:30-10:21에서는 인간의 책임편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다루고 있다.

11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많은 수가 실패했지만 여전히 남은 자가 있음을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면서 교만하지 말고 거울로 삼아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경륜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2.6.6.6. 의의 적용(12:1-15:13)

1-11장에서 기술한 교리의 윤리적 적용에 대한 내용이다. 구원 받은 신자는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취할 태도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 원수와 불신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믿음 없는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도의 거룩한 공동체를 위한 태도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다.

2.6.6.7. 결론(15:14-33)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전도의 계획을 말하며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2.6.6.8. 추신(16:1-27)

사도 바울은 동역자의 이름을 일일이 들어가며 문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단에 대한 경고를 하고 게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붓을 놓고 있다. 

2.6.7.   

본서는 바울의 다른 어느 서신들보다도 더 풍부하고 더 조직적인 기독교의 중심적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은 성질상 논쟁적, 교정적인데 반해 본서는 주로 교육적이다.

즉 본서는 오랫동안 기독교 신학을 받쳐온 地主가 돼왔으며, 칭의, 전가, 수양, 성화와 같은 신학적 전문용어들은 본서의 어휘들로부터 전용된 것들이며 이 서신의 논증적 구조인 선교적 목적을 위한 논리 역시 기독교 사상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바울은 불같은 어조로 복음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옹호하는 갈라디아서와는 달리 로마서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죄인을 위하여 율법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충분하고 값없이 주시는 구원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2.7. 골로새서 

2.7.1.   

골로새 지방은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市들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리쿠스 강의 협곡을 내려다보는 바위로 이루어진 산의 정상, 아시아의 오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전 5세기 경 페르시아 전쟁 기간 중에는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 읍이었으나,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가 도시로 발전되어감에 따라 골로새의 상업은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그곳은 특히 인근에 언덕으로 된 시골에서 목동들의 손으로 길리워진 양떼들로부터 얻어지는 검은 윤택이 나는 양모 때문에 중요시되어 왔다. 바울 당시에도 아직은 웬만한 크기의 도시로 남아 있긴 했었으나 이미 퇴폐기에 접어 들어 있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때 브루기아 지방을 지나가긴 하였지만 그가 직접 골로새나 그 인근 도시들을 방문했다는 정확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방문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곳 사람들이 "그의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골2:1)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는 바울이 아시아에 체재해 있는 동안 아마도 디모데나 에바브라(골1:7)에 의해서 복음화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파하고 있을 때 여러 곳을 순회중이었던 것이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잡다한 신들을 숭배하는 브루기아인들이 사는 도시였으며, 행2:10에 '브루기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기록되었음을 볼 때 이미 이 도시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행2:5)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전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이러한 배경들을 살펴 볼 때 골로새에는 기독교의 반대 세력이 많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바울 역시 본 서신에서 그러한 사실들을 암시하고 있다(2:8,16,18). 

2.7.2.   

본서의 기록자는 사도 바울이다. 내증으로 본서 자체도 기록자가 '바울'임을 밝힌다(1:1,23;4:18). 뿐만 아니라 본서의 문체나 용어 역시 바울의 다른 서신인 에베소서와 비슷하다. 또한 본서는 바울이 쓴 빌레몬서와도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골4:1-14과 몬23,.24). 외증으로 초대교회의 지도적 인물들도 본서가 바울의 기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순교자 저스틴, 이레니우스 등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2.7.3. 저작 장소  저작 연대 

에베소서와 빌립보서, 빌레몬서처럼 골로새서도 옥중서신에 속한다. 그러므로 한 서신의 저작 시기와 장소가 대체적으로 네 서신들 모두의 시기와 장소를 결정한다.

바울은 이 서신을 쓸 때 죄수의 몸으로 있었다(골1:24;4:3,10,18). 그 장소에 대하여는 가이사랴에서 썼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행24-26장을 살펴 보면 가이사랴의 감옥생활과는 일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로마에서의 생활과 조화를 이룬다(행28:30,31). 그리고 에베소의 감옥에서 쓰여졌다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를 인정할 때에 누가가 바울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누가가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갔었다는 행27:1과 28:16의 말씀을 통하여 로마에서 쓰여졌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작 시기는 A.D.61-63경인 듯한데 아마 이 시기의 중간쯤에 썼을 것이며 빌립보서 보다 먼저 썼을 것이다. 

2.7.4. 수신자 

수신자는 1:2에 저자가 기록한대로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임에 틀림이 없다. 바울이 직접 골로새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동역자인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졌으므로 골로새 교인들은 바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에바브라의 권위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편지할 수 있었다. 

2.7.5. 저작 동기  저작 목적 

당시의 골로새는 혼합종교가 만연하던 도시였다. 따라서 교회는 이교주의적인 물결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었으며, 또 유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혼돈 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에바브라를 통하여 알게 된 바울은 그러한 이단적 사조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벗어나야 될 것을 염려하며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 서신을 바울이 쓴 목적은 골로새인들에게 영혼을 파멸케 하는 이전의 악한 행실로 되돌아 가지 말도록 경고하고(골1:21,23;3:5-11),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구세주(2장)로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해결책이란 것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그리고 골로새인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에게로 돌려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경배하게 하기 위함이다(1:13-18;2:8,9). 또한 에바브라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도 썼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용서와 자비의 덕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관련된 교리적인 문제와 기독교인의 삶과 관련된 실천적인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2.7.6.   

2.7.6.1. 서론(1:1-12)

바울은 문안인사에 디모데를 포함하고 있다(1:1,2). 그리고 그의 제자 에바브라에 의해서 세워진 골로새 성도들 가운데 믿음, 소망,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그들이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도록 기도하고 있다.

2.7.6.2. 기독론 해설 : 교리부분(1:13-2:23)

바울은 이 부분에서 골로새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짓 가르침을 말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15), 창조와 만물과의 관계에서(16-17), 교회와의 관계에서(18) 말씀하고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인가(20)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역은 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비록 고난이 있지만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단에 대한 경고(2:8-23)를 하고 있는데 헛된 철학을 피해야 하며, 의식의 준수 특히 음식과 절기에 관한 율법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재가 된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므로 피해야 하며, 천사숭배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되신다는 사실을 손상시키므로 피해야 하며, 엄격한 금욕주의는 방종을 억제하는데에 무력한 인간의 고안물에 불과하므로 피해야 한다.

2.7.6.3. 복음의 적용 : 실천적 부분(3:1-4:6)

그리스도인 삶은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해야 한다(3:1-4).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3:5-9) 새사람을 입은 새사람은 교회생활에 대하여(3:12-17), 가정생활에 대하여(3:18-21), 직장생활에 대하여(3:22-4:1) 새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전도를 위해서 항상 감사함으로 깨어 기도하고 불신자들에 대하여 지혜로 행하고 말을 맛있게 곧 은혜스럽게 해야 한다(4:2-6).

2.7.6.4. 결론(4:7-18)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본 서신과 함께 추천을 하고 바울 자신의 동역자들인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 에바브라, 누가 데마가 에바브라에 대한 특별한 언급과 함께 인사하고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서신교환을 하라는 지시가 있고 아킵보는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도록 요청 받고 있다. 그리고 친필로 자신의 매임을 생각하라는 감동적인 요청으로써 서신을 마치고 있다. 

2.7.7.   

에베소서가 교회론을 부각시켰다고 한다면 골로새서는 기독론이 두드러지게 담겨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시며 그에 의하여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형상화 되셨으며, 하나님께서 모든 충만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고, 그리스도 안에는 지식의 모든 보화들이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바울은 이론들만 말하지 않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인은 그리스도만을 붙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으며 따라서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듯이 바울은 기독교인은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할 뿐만 아니라 새 사람을 '입도록' 요청을 받고 있다. 항상 부정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긍정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금욕적 경향을 지닌 그 당시의 모습을 강하게 공격하며 반대로 금지들과 함께 적극적인 내용들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2.8. 빌레몬서 

2.8.1.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다. 그는 빌레몬에게 죄를 저지르고(아마 주인의 것을 훔친 듯함;18,19절) 주인 집에서 도망하여 멀리 로마까지 갔다. 로마에서 노예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다. 그는 바울의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되어 변화된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도망친 노예는 주인이 붙잡아 사형에 처할 수도 있었으므로 오네시모는 언제 주인에게 붙들려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가련한 신세에 처해 있는 사람이었다. 

2.8.2.   

본서의 저자는 세번 이상 자신을 바울이라고 부르고 있다(몬1,9,19절). 그리고 그의 요구는 매우 결정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위조자 그것을 위조하였다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바울의 편지들의 개성들이 본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외증으로 유세비우스가 유명한 저서들의 목록에 포함시키고 "공인된 바울서신"이라고 간주하였으며 오리겐도 인정하였다. 그리고 터툴리안은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이단자 말시온조차도 바울의 작품으로 인정하였다.

이와 같은 증거들을 볼 때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다. 

2.8.3. 저작 장소  저작 연대 

본서는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처럼 골로새서와 함께 옥중서신에 속한다. 그러므로 본서는 다른 옥중서신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기록연대 역시 서로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즉 A.D.61-63년경 로마의 옥중에서 바울은 본서를 기록하였다. 

2.8.4. 수신자 

본서의 수신자는 골로새에 살고 있던 빌레몬이다. 그는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냈다(1:7). 그는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1:19) 아마 에베소에서 바울이 3년간 사역하고 있을 때인 것으로 여겨진다. 신앙 안에서 새로워진 빌레몬을 통해 그의 가족들도 신앙을 갖게 되었다. 신자들은 빌레몬의 집에서 정규적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 같다(1:2). 

2.8.5. 저작 동기  저작 목적 

빌레몬서의 저작동기와 목적에 대하여 전통적인 견해에 도전을 하는 새로운 가설이 제기되었다. 이 가설은 J. Knox와 E. J. Goodspeed에 의해서 나온 것으로서 대부분 낙스의 가설이다. 그는 오네시모에 대한 사건을 재구성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유익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어떤 노예가 있었는데 사실 주인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 종이었다. 그의 주인은 아킵보였는데 골로새 교회의 조력자요 교인이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주인과 불화로 도망을 하였고 에베소에 투옥된 바울을 찾아 갔다. 그는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전도활동을 위해서 그와 함께 있기를 원했고 생각 끝에 아킵보로 하여금 오네시모를 해방시키게 하여 전도의 일을 시키겠다는 소망을 품고 주인에게 보내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가 형벌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빌레몬에게 펴지를 보내어 빌레몬이 바울의 요구에 지지를 보내게 하였다. 빌레몬은 바울의 요구에 찬성하고 종과 편지를 골로새로 보낸다. 그리하여 골로새 교회는 바울의 요구룰 지지하게 되고 오네시모는 바울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낙스의 가설은 본서에서 세번씩이나 말하고 있는 실제적인 수신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오네시모의 주인은 빌레몬이다. 그리고 바울은 본서를 에베소에서 쓴 것이 아니라 로마에서 쓴 것이다. 또한 바울은 몬14절에서 오네시모를 자기에게 돌려 보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원히 노예로서가 아니라 사랑 받는 형제로서 대하라고 말하고 있다(16절).

다시 정리하면, 골로새 교회의 일원이었던 빌레몬은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다. 그의 종 오네시모는 로마로 도망을 쳤는데 그곳에서 바울을 만났다. 그는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바울의 필요를 따라 섬기는 유익한 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가 로마에 머물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주인에게 돌려 보내도록 작정한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제로서 다시 맞아 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따라서 본서의 목적은 오네시모에 대한 용서를 확실히 하고,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도록 지혜롭게 요구하며, 바울 자신이 놓인 후에 자신을 위한 처소를 예비케 하기 위함이다. 

2.8.6.   

2.8.6.1. 서론(1-3)

바울은 감옥에서 편지를 쓰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수신인은 빌레몬, 압비아, 아킵보 그리고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이다.

2.8.6.2. 빌레몬에 대한 칭찬(4-7)

빌레몬의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주 예수에 대한 믿음에 대해 감사와 칭찬을 하고 있다.

2.8.6.3. 오네시모를 위한 간청(8-22)

노예요, 도덕질했던 오네시모를 위해 마치 자신이 빚진 자처럼 자기가 회계하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즉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 무익한 자였으나, 이제 주 안에서 거듭났으므로 형제로 영접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2.8.6.4. 결론(23-25)

골로새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동료들로부터의 인사말이 전해진 후 통상적인 축도가 덧붙여진다. 

2.8.7.   

본서는 빌레몬이 왜 도망친 종을 용서해주고 다시 받아 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본서에는 용서에 대한 모든 요소들이 담겨 있다. 불법(11,18), 동정(10), 중보(10,18,19), 대상(代償,18,19), 호의의 회복(15), 새로운 관계에로의 승화(16) 등, 죄의 용서라는 각각의 양상이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해 간청한 용서 속에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편지이다.

또한 노예제도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편지이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자유롭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노예제도를 초월한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로 대해 줄 것을 권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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