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1-29 13:42
[2]사도신경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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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862  

4. 사도신경의 원문

개신교회에서 사용되는 한글로 번역된 사도신경은 영문으로된 사도신경 원문과 몇 군데에서 차이가 납니다.

 

 

사도신경원문

카톨릭의 사도신경

한국 개신교회 사도신경

1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전능하사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2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3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4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본시오 빌라도'통치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5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orm the dead;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6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7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그리로 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8

I believe in the Holy Ghost;

성령을 믿으며,

성령을 믿사오며,

9

The Holy catholic Church;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The Communion of Saints;

10

The forgiveness of sins;

죄의 용서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11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몸이 다시 사는 것과,

12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 사도신경의 문제 구절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a)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영문에는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라는 구절이 있으나, 한글번역에서는 생략되었습니다. 
오늘날 영어로 된 사도 신경에는 거의 모두가 "지옥에 내려가셨다가"를 그대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혼란 때문에 미국의 감독 교회는 1789년에 제정한 기도에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표현을 아예 삭제하거나 
다른 표현을 쓰게 했다가 1892년에는 이를 철회하는 등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는 혼돈입니다.
사도신경에 삽입될 만한 구절이라면 성경에 조예가 깊은 신학자가 만들었을 것입니다.

마태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계시록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베드로전서 3/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사도행전 2/31 그가 미리 앞을 내다 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은,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

요나는 고래 배속에 들어가 살지 못하고 땅 속 지옥에 내려 갔고, 거기서 회개해 다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요나와 같이 사흘동안 땅 속 지옥에 내려갔다가 부활하는 표적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계시록에서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자로 3일동안 흑암과 싸워 이겨 뺏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씁니다.

사도 베드로 또한 예수님이 무덤기간 동안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구약시대에 구원 받은 지하 낙원에 있는 영과 예수님을 믿을 기회가 없었던 지옥에 있던 영들에게 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지옥에 갔다오신 것은 성경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 일이나, 이는 구원에
필연적인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생략해도 큰 지장은 없다고 사료됩니다.
 

요한1서 4/1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한2서 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말씀이 육체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모두를 갖고 있는데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면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예수님이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와 똑 같이 죄를 지을 수 있는 인간이었으나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사야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으로 육신의 죽음 뿐만 아니라 영혼이 지옥에 가는 영혼의 죽음까지 동일하게 체휼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망에 버려두지 않고 
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하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때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됩니다. 
그래서 구원의 마지막 승리는 사망을 이기는 것이며, 불순종으로 사망이 왔지만 순종으로 사망을 굴복시킬 때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b) 거룩한 공회(공교회)를 믿사오며

영문에는"거룩한 카톨릭 교회" 혹은 "거룩한 우주적/보편적 교회"로 되어 있으나, 한글번역에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나
"거룩한 공회"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공회(公會)는 "공적인 일을 위한 모임"(assembly)이나 종교 회의의 의미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church" 의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이는 해석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영 찬송가]에 함께 쓰여진 영문 사도신경에는 "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써서 그것이 8세기의 개정 
신조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5세기의 [로마 교회 구 신조]에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거룩한 교회(the Holy Church)를 믿사오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8세기 개정 신조에는 거기에 "카톨릭을 첨가하여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사오며"로 표현했습니다.

"카톨릭"(catholic) 의 뜻은 본래 "보편적" 혹은 "세계적"(universal) 이란 뜻이어서 일반적으로 쓸 경우에는 구태여 로마 
카톨릭(Catholic) 교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세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높히기 위해 인위적으로 삽입한 흔적이 보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공회"를 예수님의 지체되는 "거룩한 교회"로 고치거나 "거룩한 공회"로 발음하면서 '거룩한 교회'를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c) 성도가 서로 교통(성인의 통공)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교제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교인들을 성도(聖徒.saints)라고 합니다. (고전1:2)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죽은 카톨릭의 신앙적 영웅을 성인(saint)으로 봉해 일반적인 의미의 성도(saint)를 신성시 
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교제"를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죽은 성도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성인숭배와 죽은 사람에게 기도하는 교리적 근거로 오용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성인은 죽은 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후에야 특별 심의를 거처 서품(敍品)되는 비성서적인 개념이고,
죽은 자와 교통하는 일은 사단의 속임수로 (삼상28:8-19), 성경에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사8:20; 신18:11.12)

사도행전 3/42 그들이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교제,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데 전념하더라.

(And they continued stedfastly in the apostles' doctrine and fellowship, and in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 KJV

교제는 영어로는 fellwship으로 서로 정감 있게 친분을 맺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본래의 문자적인 의미대로 거듭난 성도들이 서로 믿음과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물론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과"로 바꾸어서 암송하셔도 무방합니다.

 

d) 본디오 빌라도

유대 총독인 빌라도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준 인물이지만 그는 오히려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를 쓴 흔적을 여러 곳의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참고 : 마27:24 ; 눅23:4, 14-22]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켰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은 틈만 나면 기회를 노려 예수님을 없애고자 노력하였고 결국 빌라도를 윽박질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전히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행3:13)라고 책망했습니다.

요한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위에서 네게 주신 것이 아니라면 너는 나를 대적할 아무런 권세도 갖지 못하였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는 더 큰 죄를 진 것이라.”고 하니

예수님이 무죄함으로 놓아주려는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해할 권세를 세상에 주셨기 때문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빌라도보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준 유대인들이 더 큰 죄를 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들의 죄, 좀더 구체적으로는 나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이므로 올바른 신앙 고백이 
되려면 "나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고백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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