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21 12:39
[4]십계명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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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947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니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시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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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넷째 계명까지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야 할 도리를 다룬 십계명의 앞 부분에 해당된다. 즉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4계명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이 진술되고 그 다음 5-10계명은 인간에 대한 사실이 진술된다. 그 가운데서도 4계명은 성격상 전반부와 후반부의 경계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미 나온 세계명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주장된 다음, 사람들 상호간에 지켜야 할 도리를 다룬 뒷 부분의 계명들로 넘어가기 전에 이 넷째 계명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 넷째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영원히 상징한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사람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속적인 일에서 떠나 영적인 일로 완전히 돌아서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안식일을 준수함으로써 매일의 생활이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계획되고 평가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는 일주일에 단 하루동안이라도 자신의 영적인 본성이 영적 진리들을 붙잡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육체적인 활동에서 돌아섬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것이며 자신의 행복은 하나님의 통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있어 육체와 영혼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일상 생활의 매 순간마다 육체와 영혼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적절한 상호 관계 속에서 상대의 힘을 돋우는데 이바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 일은 이같은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법칙을 보여 주는 영구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현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 숨쉬는 기간 동안에 안식일의 가치는 평일 때문에 생겨난다.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은 평일의 진정한 의미와 최종적인 취지를 부단히 암시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안식일과 평일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넷째 계명의 진정한 의미와 준수 방법을 올바로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우선, 넷째 계명이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명령을 고찰한 후 그것을 오늘날에 적용시켜 보자.

넷째 계명에 대한 이해

이 계명은 오직 안식일만을 언급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 계명 중 일곱째 날을 언급한 부분의 중요성은, 그 나머지 부분이 안식일을 제외한 엿새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비로소 충분하게 평가된다. 우선 넷째 계명에서 설명적인 부분을 제거해 보면, 그것이 간단한 두 가기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첫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둘째,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


사람에게 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째 날이 되면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여지는 엿새 동안의 일이라는 것은 사실 그 자체가 가장 고상하게 드려지는 실제적인 예배이다. 또한 숙고와 명상과 경배의 시간을 갖는 일곱째 날의 예배는 가장 고귀한 영역에 속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명령은 각각 서로를 보완한다. 따라서 전혀 일하지 않는 자는 예배드릴 자격이 없다. 또한 쉬지 않고 예배만 드리는 자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앞으로 분명하게 드러날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지금은 안식일의 의무에 대해서만 다루겠다. 하지만 십계명의 앞 부분에 있는 최종적인 진술 곧 이 넷째 계명이 말하고 있는 바는, 사람이 일하고 예배 드릴 때에만이 비로소 처음 세계명에 나타난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성취한다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시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에 대한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과 유사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사람의 본성의 모든 면은 하나님의 사고와 행동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의 사고와 행동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였다. 따라서 결국 한 인격 안에서 합일을 이루는 사람의 본성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만 그 최고의 가능성들을 성취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육일간 천지 창조를 하신 후 칠일때 쉬신 것처럼 인간에게 먼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현대 문명의 복잡한 체계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도 살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상을 떠나버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사람은 그의 육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유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한다. 사람은 생존에 필요한 곡식을 흙에서 얻는다. 그러나 사람은 먼저 흙을 일구고 엎드려 노동을 해야만이 비로소 그가 필요한 것들을 흙에서 얻어낼 수 있다. 수확은 일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흙을 일구지만 사람의 노동에 풍성한 수확이라는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한편 노동을 해야 한다는 이 사실 자체는 타락의 결과가 아니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창조시부터 본래 의도하신 것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락하기 이전 에덴 동산에 거처하면서부터 "그것을 다스리며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로 자연이라는 보고에 깊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 모든 비밀들을 바르게 알고 적절히 활용하면 인류의 필요를 채우는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보다 증대될 것이다. 거대한 인류 집단은 넷째 계명의 이러한 면에 복종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자발적이 아니라 많은 경우 필요성에 의해 복종한다.


아무튼 피조물의 필요를 완전히 아시는,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엿새동안은 힘써 일하다가 일곱째 날에는 이 세상에서의 일을 그만 두고 자신의 영혼의 활력을 도모키 위해 보다 상위 영역으로 들어가도록 규정하신다. 안식일에 대한 히브리 사람의 본래 개념은 우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쁜 것이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안식일은 기쁜 날이며 육체와 영혼의 피로를 풀게 하는 휴일이었다. 즉 이 날은 사람이 고된 일을 그치고 즐거움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신의 본래의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었다. 여호와를 생각하는 즉 하나님을 친근하게 느끼면서 무한자와 친교를 나누는 사람은, 현재는 비록 영광된 미래의 수습 기간에 불과한 이 지상에서 살고 있다 할지라도 보다 넓은 삶 곧 천국을 미리 맛볼 수 있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에 올 한 주간의 일에 새롭게 헌신하며 그 일의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안식일에는 종교적인 면과 더불어 현실적인 의미가 있었다. 사람은, 안식일에 평온히 휴식을 취하며 남은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해야 할 일에 열심히 임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일하는 엿새 동안 내내, 안식일에 묵상하였던 것들의 고결함과 공의로부터 힘을 공급받으며 의미있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은 이 두 가지 명령은 서로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결코 분리시킬 수가 없으므로 사실상 하나이다. 따라서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다른 명령도 복종할 수 없다. 반면에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할 때 다른 명령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일을 해야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일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넷째 계명의 현대적 적용

이상의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안식일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정 시대, 특정 민족에게만 속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전 인류에게 해당되도록 정하신 것이며, 인간이 탄생하기 전부터 이미 예정된 시간의 경륜의 일부였다.


한편 기독교 시대에 와서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이 첫째 날 즉 주일로 바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비록 날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는 전혀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기독교의 영적 사실들에 의해서 안식일은 주일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사람들은 안식일을 바라보고 일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는 주일로부터 한주일이 시작된다. 요컨대 구약에서는 안식일이 일에 의존해 있었고 신약에서는 일이 주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일과 안식일 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부분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안식일 개념이 타락한 인류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일찍이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가장 바쁜 시대가며 투쟁적인 생활과 신속한 활동을 요구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미 효력을 상실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만 아직까지 효력이 있는 동안만 당분간 그것을 존중하는 그런 시대이다. 무력해진 것들은 제거되며 오직 인류의 복지에 이바지하는 것들만이 보존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양상은 넷째 계명에 대해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앞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현대 생활의 여러 조건은, 거대한 인류 집단 속에서 점점 더 많고 강도 높은 일을 하도록 요구한다. 부드럽고 인정 많은 하나님의 법 뿐만 아니라 가혹하고 잔인한 인간 사회의 법도 사람에게 "너는 일을 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이 명령을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오늘날 가장 유감스러운 사회 문제로 취급된다. 돈 많은 사람이든 상류 계급의 사람이든 번화가에 사는 사람이든 서민층의 사람이든,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속한 일터에 자기 몫의 수고를 지불함으로써 양식을 얻지 않는 한,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일을 하는 시대라는 앞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며 하나님을 소홀히 한 것이 결국은 안식일에 관한 하나님의 법을 소홀히 생각하거나 반대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무서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무신론자들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동정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시간인 안식일을 완전히 무시할 것이다. 안식일을 끊어버리면 필연적으로 이를 제정하신 하나님의 왕권을 부정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국민 생활에서 일곱째 날의 안식을 없애버릴 때마다 반드시 따라오는 인간의 모든 타락 현상은 무신론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바울은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atheists)라는 말로 무신론자들의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그러나 안식일에 대한 가장 교활하고도 위험한 공격은, 공격하는 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식일을 세속화하려는 자들의 공격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에 의해 자기들에게 주어진 안식일을 악용하여 어리석은 쾌락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광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에게 참된 가치를 바라볼 눈이 있고 소리 없이 진행하는 영원한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환락의 도시 파리에서 한번 지내 보라. 여기서 안식일의 신성함과, 인간 본성이 신성을 모독하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인간 본성의 영광스런 모든 것들이 타락되었으며, 타락되어 가고 있음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계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넷째 계명에 대해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한다. 안식일에 관한 그리스도의 태도는 그의 말씀과 행동에서 자주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언행을 통하여 안식일 준수에 대한 옛 계명의 속박하는 성격을 완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와 가르침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 먼저 기억해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유대인의 메시야로서 자신의 사명을 이행하시는 중에 안식일에 관해 여러 말씀을 하셨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행위와 말씀을 명백하게 해석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시대에 와서, 안식일의 본래 개념은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릇되게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사실 서로 구별하여야 할 다른 일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주님의 여러 말씀은 유대적인 질서 하에서 지켜졌던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보다 풍부하게 계시하고 있다. 그 말씀은, 안식일 제정의 본래의 개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또 멀리 세상 끝날까지 밝혀 주는, 훨씬 적용 범위가 넓은 말씀이다. 주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람을 위해 주어진 이 큰 선물을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대로 사용해야 한다. 더욱이 주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께서 예수의 다른 이름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인자"라고 하신 점을 주목해야 한다. 주님은 여기서 확실히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다만 안식일 제정에 대한 하나님의 최초의 의도를 완전히 성취하는 대표자로서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안식일의 파괴자가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임을 주장하신 것이다.


이처럼 안식일의 주인되신 주께서 완성하신 사역으로 말미암아, 기독교 시대에는 모든 활동이 안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그리스도의 수난의 십자가와 장사되신 무덤에서 벗어나신 부활의 아침의 영광에서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새로운 영역에 들어온 자들은 언제나 무한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에 따라 주일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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