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식 목사의 '바울 신학'에서 발췌
사도 바울은 한 때 예수님의 제자를 핍박하던 자였으나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
한 후 예수님을 강력히 증거 하였고,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로마시민이자 율법학자로 복음을 체계화 해 여러 서신서를 통해 우리에게 남겨준 학자적 사도입니다.
바울 신학
Ⅰ. 서 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예수의 제자들은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기적과 이적을 행하며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시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대한 핍박은 날로 더욱 심화되어 갔다.
하지만, 성령이 충만한 예수의 제자들은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의 복음 전도의 범위는 이방 지역에 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당시 사울은 헬라문화권에서 성장한 유대인(디아스포라)으로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으며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예수의 도를 좇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여 조상의 유전인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켰던 자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역사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처하던 율법주의자 사울을 택하여 복음으로 새롭게 거듭난 사람 복음의 사도 바울 되게 하시고 이방 지역에 복음을 증거 할 사도로 택하셨다. 다시 말해서 율법주의자 사울이 복음의 사도 바울이 된 경위는 주님의 일방적인 강권 역사로 시작되었다.
조상들의 유전인 율법을 열심히 믿고 지켰던 사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이단시 하였다. 그는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의 도를 좇는 자들은 남여불문하고 투옥하기 위하여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대제사장에게 청하여 가지고, 예수의 도를 좇는 자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홀연히 빛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 또한 그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깨닫게 되었고, 더욱이 아나니아라 하는 예수의 제자에게 안수를 받고 그를 통하여 예수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들을 때 멀었던 눈이 다시 보게 되었으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율법주의자 사울이 복음의 사도 바울로 변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 이방의 사도로서 복음 선교에 전 생애를 바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변한 사도 바울의 회심의 동기와 소명 그리고 그의 신앙과 사상을 신학적 차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Ⅱ. 사울이 바울 된 신학적 배경과 소명
사울은 예수와 같은 시대(로마제국 통치하)에 살았으며, 종교적으로는 엄한 율법아래에서 교육받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공경한 철두철미한 율법사상의 소유자였으며, 사회적으로는 헬라문화권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이방문명 속에서 보고 배워 이방 문화에 박식하였으며, 특히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울은 두 세계의 사람 즉, 유대인세계와 헬라인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는 내적으로는 철저한 유대적인 기질을 가졌으며, 그뿐 아니라 사울은 유대인들이 거의 알지 못했던 로마와 헬라를 잘 알고 있었다. 사울이야말로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복음을 전하기에 최적합한 자로 인정 택함 받아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 유대종교와 예수 그리스도
A. 유대종교와 사울
유대인들의 종교관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으로 믿어왔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도 여호와이시며, 다스리는 분도, 명령하시는 분도, 심판하시는 분도, 구원하시는 분도, 여호와 한 분으로 믿어 왔으며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수많은 민족 중에서 그의 후손을 택하시고,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다(신 4:20, 10:14-15)고 믿어왔다.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은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신6:14-15) 하나님의 뜻을 체험하고,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백성으로 선택되었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신 율법(계명)이 이스라엘 역사상 항상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언약이며, 축복의 약속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이 백성을 축복하였으며 불순종할 때 벌을 내렸다.(신 11:26-28)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관은 제물인 소나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드림으로 죄 사함 받으며 깨끗해지는 줄만 알아왔다. 고로 항상 외적인 의식에만 치중하여 왔다. 이러한 율법적인 신앙관에 굳어버린 그들이지만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함으로 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말론에 기대가 눈에 보이는 현실과 육신적인 면에만 치우치다보니, 그들의 미래에 대한 소망관도 항상 세상적인 눈에 보이는 희망에 치중하였다. 즉, 메시야의 오심과 잃어버린 국토의 회복, 그리고 모든 이종교자들의 침해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줄 것과 이미 예정하신 다윗의 혈통에 주어진 약속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메시야 바로 구세주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그들은 오리라 한 메시야는 영광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권세자들을 심판하고 통치할 줄만 알아 왔다. 율법주의적 종교관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에게는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로 믿어지지가 않았다.
유대인들의 기대는 반드시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면, 육신으로 영원히 계시어서 통치하실 줄로 믿고 있었다.(사9:6-7;겔37:25; 시89:4; 단2:44; 막11:10; 눅1:33; 요12:34.)
그런데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예수는 죽을 것을 말하며, 또한 많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였으나 로마 식민지 노예에서의 해방에 대한 주권 회복의 말은 없고, 도리어 유대인인 율법주의자들의 신앙의 모순된 점을 지적 개혁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유일한 택한 백성으로 자부하던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성경에서 마지막 율법의 예언자인 세례 요한도(마 11:13) 오실 메시아가 바로 예수임을 예언하고(마 3:11-17,요 1:33-34) 세례까지 베풀고도 믿어지지 않아 자기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에게 확인하였다.(마 11:3)
율법 안에서 택한 백성임을 자부하는 유대인들은 택함 받은 유대인외에 다른 민족은 버림받는 자들로만 알아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백성이 바로 유대인들이었다.(마 23:14, 롬 10:3)
예수님께서는 이 그릇된 신앙을 복음으로 개혁하시었다. 유대인들은 이 복음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유대교 종교가정에서 자라난 사울 역시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철저한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부하였으며,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열심 있는 자로 예수의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여를 결박하여 옥에 넘기기까지 하였다.(행 22:3-4, 빌 3:5-6)
B. 예수와 그의 제자들
예수에 대하여 유년시절 과정을 기록한 문헌은 별로 없다. 이교적인 멸시를 받고 있었던 갈릴리의 나사렛이 그의 고향이고, 그의 부친 요셉은 목수였으며, 그의 모친은 마리아이고 그리고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는 그의 형제였다.
그 형제들은 예수의 권능을 믿지 않았으며, 도리어 예수를 배척하였다.(막6:1-3, 마13:55) 이들 형제 중 야고보는 나중에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일하였으며, 그의 누이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에 자주 나온다.(막6:3, 마13:56)
예수의 모국어는 갈릴리어와 아랍어였으며 히브리어는 종교적 특수 용어로만 사용되었었다. 그리고 예수의 복음 전파 활동은 세례 요한보다 좀 늦게 시작되었다. 예수의 공적 활동은 30세가량 되었을 때부터였으며, 그가 3년 동안 천국 복음을 온 백성에게 담대히 전하였다.(눅 3:23) 또한 예수는 그의 제자를 택함에 있어 열 두 제자를 택하여 하나님 나라(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훈련시켰다.(마10:1-3)
예수는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였으며, 율법주의자들에 모순점을 변론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며, 많은 기적을 나타내어 사람들의 죄를 회개케 하였다. 고로 백성들은 그를 권능자 또는 메시야로 믿었으며, 오직 예수만이 죄를 심판하며,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확신하였다.
즉 이스라엘이 대망하고 있는 구약선지자들이 예연 한 메시야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받은 고난으로 그들의 신앙에 동요가 생기고 무력해졌으나, 예수님의 죽음에서 부활로 인해 믿음에 확증을 얻어 새로운 힘(성령)을 얻어 담대히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였다.
성령의 충만함 입은 제자들은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오리라던 메시아 즉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거 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유다와 사마리아에 있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행2:1-11, 40-43, 5:41-42.) 이에 정통 유대교에서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은 날로 더하여 갔다. 사울(바울)도 바로 유대교 정토를 부르짖는 열열한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사도들을 핍박하였다.
2. 바울의 성장 과정
A. 출 생
사도행전 22장 3절에 바울은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하였다. 연대는 주후 1년경이라고 한다.(The Life and Letters of St. Paul, p.22; 도양술저. [사도바울의 신학]. 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p.21.)
다소는 역사적인 도시였다. 주전 800년경 앗수리아의 샬만넷셀이 정복한 도시 중에 다소의 이름이 기술된 것을 보면 매우 일찍이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 같다.( Wiliam Barclay. The Mind of St. Paul. 서기간역. {바울의 인간과 사상}, 서울:기독교문사, p.18.)
다소는 길리기아에 있으며 다소 중심으로 흐르는 시드너스강은 지중해와 다소 중간에서 넓은 호수 "레그마" 호를 이룬다. 다소 사람들은 호수 기슭에 배들이 정착할 수 있는 선착장을 건조하여 지중해를 항해하는 배들을 이곳으로 정착하도록 했으며 그뿐 아니라 그들은 길리기아 내륙지방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가바도기아와 갈라디아 대륙과도 빈번한 왕래가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다소는 대륙과 해상의 교통을 연결하는 동서교통의 요충지이며 무역이 활발하였다. 또한 다소는 학문의 도시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많은 학자들이 있어 다른 도시에 비하여 학구열이 컸었다. 특히 "스도이고" 학파 철학자들로 유명하였다. 그러므로 다소에는 "스도아" 철학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컸고, 그들의 사상적 영향은 일반시민에게 까지 미쳤다.
감수성이 예민한 바울은 이러한 학문적 풍토 속에서 넓은 시야로 인류의 세계를 보았으며 세계의 끝까지 진출하려는 꿈을 키웠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유대주의나 율법에 국한된 사고를 벗어나 당시 세계를 풍미했던 "노스틱" 철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후에 그가 선교활동을 하기 전 다소에 머물러 있을 때 이러한 사상과 기독교 내지는 유대교의 사상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런 자기 출생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가 예루살렘에서 잡혔을 때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행 21:39)고 하였다. 이런 곳에서 자라난 바울의 설교도 매우 도시적이다.(바울의 설교;①도시건축 (고전3:11) ②군대의 행진 (고후10:3-5, 고전14:8) ③노예 시장 광경 (고전6:20, 7:23) ④체육장의 형편(고전9:24-25)
B. 가 족
빌립보서 3장 5절에 바울은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라고 하였다.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출생한 그의 집안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제롬" 이 전해준 전승에 보면 바울의 부모는 본래 갈릴리의 마을인 "기사랄" 에서 로마군이 팔레스타인을 폐허로 만들 때 다소로 피난했다고 한다. 그는 로마 시민으로 태어날 수 있을 정도로 부요한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베냐민 지파의 혈통을 가졌고, 그 이름을 사울이라 함은 베냐민 지파에서 출생한 최초의 왕인 사울을 따라서 명명한 듯하다. 바울은 이와 같이 부요한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나,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에는 다 분토와 같이 버리고, 셋집에 유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행 28:30-31)특히 바울의 생질은 유대인 40명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할 때에 그는 바울을 도와 구원하였다.(행 23:16-24)
바울이 다소에서 얻은 로마 시민권은 그가 전도 여행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런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조건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당시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은 자기 영토 내에 거주민을 크게 두 부류로 구별하였다.
① 이탈리아의 원주민을 위시하여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로마에 공을 세운 자,
② 금전 또는 정복민과 함께 온 노예들이다.
전자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해서 특수한 인권과 권리를 허락하였다. 이것이 어떤 명예나 지위는 아니라 하더라도 로마법에는 그들에게 체포, 구금, 매질이나, 십자가에 처형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전도여행 중에 반대자들에 의하여 빌립보 옥중에 투옥되었을 때,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자임을 밝히자 즉시 석방되었고(행 22:24-30),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의 난동으로 가이사랴에서 구금되었을 때, 억울함을 황제에게 호소하여 정당한 재판을 받기 위해 고소했던 것이다.(행 25:9-12)
고대 세계에서는 로마 시민은 영예스러운 칭호였으며 땅 끝까지 통하는 완전 통행증 이었다. 바울은 그러한 시민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또 그것을 자랑하였다.(William, Barclay, The Mind of St. Paul. 서기간역,[바울의 인간과 사상], 서울:기독교문사,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