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6-17 20:51
[1]듣기 싫어하는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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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908  


1.1. 듣기 싫어하는 설교

 

1.1.1. 하나님이 보이지 아니하는 설교

 

설교의 주인은 바로 말씀의 주인이신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고 설교자나 세상의 온갖 사건들과 저속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들만 보인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나가는 일은 아니다. 세상 이야기도 있고 예화도 있고 설교자 자신의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데 방해되는 말은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목사의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기면 목사의 집이 보이고, 목사가 여행을 다녀오면 다녀 온 여행지의 모습이 보이며, 선거 철이 되면 강단에 정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설교 강단의 주인 바꾸기는 성도들을 당황하게 하고 설교에 식상하게 할 것이다,

어떤 목사의 말이다. “오늘의 한국 땅에서 진행되고 있는 설교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는 말씀의 주인이 보이지 아니함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설교자의 용모만이 감상되고 그의 개인적인 체험담을 들으면서 그와 관계된 연상(聯想)만을 계속된다. 그리고 회중은 거기에 도취되어 웃고 울다가 "기도합시다"의 구령에 따라 기도를 한 후 폐회 찬송을 부른다. 그들을 붙들고 오늘의 설교에서 하나님을 만났는지의 여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이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성서적인 설교는 바우만의 다음의 충고대로 하나님이 현존하심을 전달하여야 한다.”

바우만은 “오늘의 설교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다음의 종결어(終結語)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설교의 탈선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충분히 입증을 해 주고 있다. 설교 종결어의 주어는 어떤 경우도 설교자 자신이다. 여기서 외국의 설교자와는 달리 한국의 설교자는 너무나 자신의 등장을 극심한 경지에까지 끌고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는 설교 내용이 설교자의 말과 경험과 지식과 그가 즐겨 쓰는 예화로 완전히 채색된다. 그리고 회중들로부터 '아-멘'만 유발시키면 어떤 이야기들도 하나님의 순식간에 말씀으로 변화된다는 착각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현장에서 너무나 뚜렷이 나타난 현상은 막상 전해져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의 말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말씀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설교, 그것은 가장 심각한 설교의 위기를 몰고 온 위급한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으며 계시지 않는 설교는 생명 없는 자기 선전이나 세상의 무엇을 광고하는 연설에 불과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 성도들은 틀림없이 죄인의 본색을 드러내서 이를 들어 내고 목사를 물어뜯으려 할 것이다. 목사는 가끔 자기가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에서 이 시대에 일어 나는 모든 일들을 분석하고 관조하여 성도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세상 이야기를 장황하게 불어 말하려 한다. 50-60년대 우리 나라가 전쟁과 기근과 혼란으로 한참 어려울 때에 목사들은 종말론적 설교를 많이 하면서 당장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자기에게만 특별히 알려 주신 것처럼 소리 높여 설교했다. 그러나 그 설교들은 모두 허구에 불과한 것이 되었으며 세상을 비관하게 하고 공포와 공갈로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되고 말았다. 종말 즉 주님의 재림은 그 시간이나 정황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을 주님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면 정황과 시간이 어떻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대에는 복음의 진수를 외면하고 혼란과 가난이 주님의 재림을 촉발하는 원인인 것처럼 설교를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런 공갈 협박 식의 설교가 성도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오직 살아 역사하시는 참된 복음만이 죽은 심령을 살리며 그런 역동적인 새 삶을 주는 말씀의 은혜를 성도들은 사모한다. 그런 설교는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요, 바르게 나팔을 부는 설교자의 인격과 생활과 입술을 통해 전달된다.


1.1.2. 거룩한 말씀이 없는 설교

 

나는 가끔 설교를 준비할 때에 내가 읽은 책의 이야기나, 누구에게 들은 예화나 신문에 보도된 어떤 사건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성경 본문을 선택하고 설교를 한 일이 있었다. 즉 세상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내 생각을 전달하기 위하여, 어떤 특별함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다. 성전 건축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 목사가 설교에서 흔히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목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자 한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기록되어진 말씀이 설교자에 의하여 현장의 언어로 선포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은데서 생긴다. 설교는 설교자의 사상이나 경험이나 유명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종교 수필 또는 교양 강좌가 아니다. 언제나 본문으로 봉독한 성경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설교자의 정도(正道)다. 그럼으로 진정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 현장에 얼마나 많은 회중들이 모여 열광적으로 '아멘'을 연발하는가에 눈을 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충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그들에게 전했는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강단에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설교자의 연출이 속출하고 있다. 즉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인 본문의 봉사자가 아니라 지배자로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교자가 자신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흥미진진한 예화를 나열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을 들려주는 현상이 너무나 빈번하게 발견되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지식과 분석, 또는 경험을 말하고 난 다음에 그 경험담에 좀더 튼튼한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봉독한 본문을 인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를 선전하는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설교 현실을 우리의 한국 교회에서는 너무 자주 본다. 이러한 선상에서 오늘도 설교하는 목사들은 다음의 말에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재원(財源)이 시대적인 사건, 문학, 철학, 정치 이데올로기 등이 될 수는 결코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설교자 자신의 경험과 감정까지도 설교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설교의 메시지는 성경에만 그 원천을 두어야 한다.”

여기서 목사가 알아야 할 또 한가지 사실은 설교와 간증을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설교는 단순한 신앙 간증과는 너무나 다른 구속력을 가진다. 신앙 간증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기준을 두기 때문에 회중들로부터 공감대만 형성되면 된다는 지극히 한정된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설교는 그 기준이 그 날의 설교 본문에 있다. 그 본문은 설교자와 회중 모두에 의하여 함께 읽혀진다. 거기서 회중들은 그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소유한 상태에서 설교자가 그 말씀을 어떻게 선포하고 해석하고 자신들의 삶의 장에 적용시켜 주는지를 주시한다. 그러기에 설교는 수많은 회중의 감시를 받으면서 본문이 말씀한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되는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설교자는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설교자의 앞에 앉아 있는 무리들로부터 우선적으로 봉독되어진 말씀의 지배자가 아닌 봉사자가 될 것을 철저히 요구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만일 목사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하고 분명한 제한성을 다른 이야기들로 흐려 애매모호(曖昧模糊)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진 죄인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희석(稀釋)시켜 세상에서 흔히 듣는 잡담(雜談)이나 죄인들의 입에서 얼마든지 오르내리는 말로 전락시킨다면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이야기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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