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24 19:14
영적 전쟁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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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794  

영적 전쟁의 이해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4-5)

 

영적 전쟁에 있어서 이해하여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흑암의 요새라고 말하는 ‘견고한 진strong-holds’이다. 흑암의 진지, 즉 견고한 진은 마귀가 숨을 수 있는 진지이며,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요새와 같이 영적 전쟁에서 마귀 자신이 보호받을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이 견고한 진이 무엇인지는 하나님을 만나 거듭남을 체험하게 되면 극명하게 알게 된다.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이 견고한 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을 견고한 진이라고 정의한다. 마귀의 견고한 진을 살펴보면, 우선 세상적인 학문에 의한 견고한 진이다. 세상의 학문을 가지고 하나님을 평가할 수 있다면 지렁이가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 분도 아니고 인간이 평가할 수도 없는 분이다. 인간의 교만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비판하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행동들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인간을 만나주시면 살려달라는 외마디 비명 외에는 나오는 것이 없다. 이 체험을 한 사람은 하나님을 말할 때 쉽게 말하지 못한다. 뭔가 겁에 질려 있고 예전에 시건방을 떨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현자賢者라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학위學位를 다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면 그 학문이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세상의 학문이 사탄이 가장 잘 숨을 수 있는 견고한 진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세상적인 신앙생활의 경험에 의한 견고한 진이다. 신앙은 하나님과 손잡고 동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주님과의 동행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서 그것이 신앙생활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이 아닌 생활을 신앙생활인 것과 같이 생각한 것들이 곧 견고한 진을 형성한 것이다. 지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거짓신앙 속에서 어쩌다가 한 번씩 하는 경험을 곧 신앙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관한 견고한 진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견고한 진에서 비롯되는 폐해를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고 참 신앙을 누리는 진짜 그리스도인을 잘못되었다고 호도하고 가짜로 매도한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죽음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망의 길을 간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경험이 견고한 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기록이 나의 삶과 일치하는가를 냉정히 보아야 한다. 만약, 성경의 기록과 나의 생활이 따로따로 논다면 그 경험이 곧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잘못된 교리에 의한 견고한 진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견고한 진이다. 우리는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목회자에 대한 신뢰나 소속된 교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은 결코 성경적이 아닐뿐더러 대단히 위험하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칭 정통이고 보수주의라고 말하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과 제3의 물결이나 오순절주의라고 부르는 은사주의자들의 대립이 곧 그것이다. 이러한 교단에 속한 사람들은 이 교단에서 주장하는 사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어떤 내용을 주장하는 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속한 교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조명에 의하여 성경의 다림줄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론적으로, 학문적인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성령님의 일하심을 소멸하는 세대주의자들이나, 오직 성령의 은사에만 치중하여 말씀을 무시하는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을 듣다 보면 신학적 편견이나 성경에 대한 잘못된 자의적 해석, 즉 잘못된 교리에 의한 견고한 진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분열된 이유는 정통으로 취급되었던 주류가 성경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적인 방법을 따르는 사람들을 세워서 진리를 고수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 진리를 고수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부흥하게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진리를 고수하는 자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또 나중에 이들이 변질되어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나면 하나님께서는 또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고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고 진리를 고수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역사 신학에서 볼 수 있는 기독교 분열의 역사이다. 기독교는 분열을 거듭하면서 진리를 수호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깊게 고려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 주위에서 많은 이단 시비가 일어나고 있고 교리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것을 예의주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와 비진리의 충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역사적으로 볼 때 분열의 시기에 드러나는 현상이다. 만약, 나 자신이 주류에 속해 있다고 한다면 율법주의나 인본주의, 기복신앙에 의해서 진리가 감추어지고 왜곡되지 않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율법주의나 인본주의, 기복신앙에 의해서 진리가 감추어지고 왜곡되었다면 잘못은 이미 시작되었고, 잘못된 교리에 의한 견고한 진은 이미 형성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교리에 의한 견고한 진이 형성되었다면 우리는 마귀의 계략에 빠진 것이고 진리를 대적하는 자리에 이미 서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지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인지 자각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견고한 진은 파하여야 한다.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견고한 진은 생각으로 지어진 진지이고 생각으로 지어진 요새이다. 때문에 세상적인 모든 생각을 파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 앞에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보면 무신론부터 시작하여 진화론,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 다른 신을 섬기는 종교적 이론과 경전들, 기독교의 의식이 본질을 대처하는 율법주의,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인본주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기복신앙까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방해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이론이 곧 견고한 진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도 역시 견고한 진이다.

 

이 견고한 진이 형성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거듭남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 견고한 진은 인간의 부패함과 무능력을 알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게 한다. 우리 속에 견고한 진은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게 한다. 그렇다면, 견고한 진이 형성되면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는가?

 

견고한 진이 형성된 결과 - 불순종

 

견고한 진이 형성되면 많은 불협화음을 낸다. 견고한 진이 형성되면 듣는 귀를 막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펴고 순종할 수 없게 된다. 즉, 견고한 진이 형성되면 순종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견고한 진의 형성은 세상적인 이론과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에 의존하는 생활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하는 생활이 주를 이루게 한다. 세상적인 지식에 의해서,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잘못된 배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인하기 전에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게 한다. 또한,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게 하고 불순종하게 한다. PartⅠ. 12-2. 의심의 영에서 상술하겠지만 사탄의 공격은 의심을 넣어주면서 시작한다. 따라서 믿음이 아닌 의심에 터 잡은 견고한 진이 형성되면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불순종의 행동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 견고한 진을 깨는 작업, 즉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유, 불리를 떠나서 따르겠다는 순종의 자세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견고한 진을 깨는 작업인 것이다.

 

온전한 순종은 완전한 인격에서 나온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인격을 이해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의 행함에 모든 것을 맡길 때 온전한 순종이 있게 된다. 나 자신의 판단으로 생각을 할 때에는 이미 순종의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명령은 인간의 상식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인간의 상식 범위에서 맞다, 틀리다를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100살에 얻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느냐?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인신제사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겠느냐? 그것은 사탄의 소리이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다.’는 등 옳다, 그르다를 논쟁하지 않았다.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고 안 되고를 따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음성임이 확인되었을 때에는 그냥 실천에 옮겼다. 바로 이것이 순종하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온전한 순종의 길을 막는 것이 곧 견고한 진이다. 의식 없이 생각하는 생활습관을 깨지 못하면, 그것이 조명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순종할 수 없다. 매사에, 모든 것에 항상 기도하듯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 모아야 한다. 모든 움직임에 하나님을 의식해야 한다. 생각의 견고한 진을 의식하지 못하면 순종의 길을 갈 수 없다.

 

하나님의 논리는 세상을 압도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을 능가한다. 위대하다고 호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 이외에는 없다. 찬양을 받으실 존재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것을 방해하는 것이 곧 견고한 진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는 것이 곧 견고한 진인 것이다. 인간을 지렁이라고 부르시는 하나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론짓는다. 지렁이의 기준과 지렁이의 판단을 가지고 하나님을 평가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곧 견고한 진이다. 하나님을 인간의 존재로 폄하시키는 것이 곧 견고한 진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견고한 진이다. 생각의 견고한 진의 무서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일을 나의 생각으로 할 때, 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할 때 이미 불순종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 믿는 자의 표적 中 일부 발췌 / 박찬빈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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