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5-27 20:14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든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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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1,194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든 교회(2)

정직하지 못한 경제활동에서 파생 되어진 천박한 자본주의는 유대인들의 탐욕에서 나온 이윤 창출을 비난하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정직한 이윤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나 구조 속에서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는 착취와 수탈이라고 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시장을 확장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시장의 환경 속에서 유대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천박한 자본주의라고 하는 용어의 의미이다.

세상의 가치관은 이미 이러한 천박한 자본주의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인간들은 이것을 항상 동경하고 추구한다. 의사와 병원 그리고 사립학교와 복지재단, 아니면 시민단체와 NGO 일부 단체들은 이미 천박한 자본주의처럼 그런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이윤이 나올 수 없는 그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통장에 계속 돈을 쌓고 있다.

그런데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가 언급한 단체들은 시민들을 아니면 교인들을 위해 섬기는 봉사 단체의 성격을 가진다. 특히 교회는 천박한 자본주의처럼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 더더욱 아니다. 교인들의 헌금이 많으면 큰 교회, 성공한 교회, 목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목사들은 천박한 자본주의처럼 큰 돈을 원하고 있다.
 

교회는 돈을 모으고 쌓아두는 곳이 아니다. 쉬운 말로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 절대 아니다. 또한 목사도 돈을 목적으로 임직을 받지 않는다. 목사가 돈을 위해 산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목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일반 세상에서 얼마든지 돈을 벌고 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은퇴가 다가오면 천박한 자본주의가 가진 모습처럼 목돈을 추구하고 요구한다. 교회의 목회를 통해 절대로 이윤을 창출할 수 없는 그런 부르심인데도 말이다.

현대 교회의 목회 특징이 바로 천박한 자본주의처럼 그런 이윤 창출이 되고 있다. 신학교에 부르심을 받고 열심히 신학하고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의해 살겠다고 다짐한 그런 헌신은 단지 신학교 3년 동안만 있는 결기(決起)인 것인가?

목사가 되고 대형교회 목사를 꿈꾸고 학위를 받고 계속 대형교회 청빙 목사로 지원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시골교회나 작은 교회에 대한 기도는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나이가 차고 갈 곳이 없으면 가는 곳이 결국 시골이며 작은 교회가 되었다. 이런 곳에서는 천박한 자본주의처럼 큰 이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리 재고 저리 잰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특징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부를 계속 축적하는 것이다. 부의 축적은 분배의 불균등을 초래하고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을 계속 착쥐 한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 모습을 교회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는가? 교회의 참된 모습 가운데 하나는 가난한 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전4장에 가진자들이 자신들의 것을 팔아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회는 부자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거짓 목사들은 성도들에게 부자가 되는 법을 기복주의 설교로 가르치고 있다.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은 이미 큰 부자들이 되고 가고 있고 계속 부를 추구하고 있다. 여전히 가난한 성도들은 자신의 작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것밖에 드릴 것이 없다고 하면서 기꺼이 드리고 있다. 마치 두렙돈을 드리는 과부의 헌금처럼 말이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록펠러가 아닌가?. 한국교회 안에서 최고의 십일조 신앙으로 추앙받고 있는 록펠러를 지금 필자는 비난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모습이 이 사람에게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는 범죄자로 그리고 살인자로 정죄된 이 사람이 어떻게 한국교회 안에서 최고의 신앙인이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천박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일부 부흥사 목사들의 탐욕이 만들어 놓은 괴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막스 베버가 더러운 이윤만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사용한 이 용어를 사랑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많은 돈을 추구하고 사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려서, 다수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이제는 목사도 괜찮은 것인가?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산다. 특히 목사는 복음만을 먹고 사는 그런 존재이다. 목사의 입에서 복음이 사라지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목사를 그만두고 세상에서 먹고 사는 일을 찾아야 한다. 복음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정직하지 못하게 목회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고 죄를 짓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는 정직하지 않은 것이다. 거짓증언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강단을 차지하는 자는 도적이고 삯꾼이다.
 

-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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