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2-23 12:22
로마서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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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4,834  

로마서 개론


 1. 표제
 바울이 이 편지서를 기록했을 때 원래는 아무런 표제가 붙지 않았던 것 같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보내는 단순한 한 통의 편지였다. 그러나 이윽고 이 서신은 초기의 사본들에게 붙여진 “로마인들에게”(헬, Pros Rhomaious)라는 표제로 알려지게 되었다. 후기의 사본들은 좀 더 확대된 표제 곧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한”이라는 표제를 갖게 되었으며 이 표제는 오늘날에도 몇개의 영역(英譯) 성경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2. 저자
 사도 바울이 이 편지서의 저자라는 사실이 심각하게 의심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로마로 보내진 원래의 편지에 로마서 제16장은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것은 아마도 바울이 한동안 일한 적이 있는 에베소(행 19장)에 보내진 별개의 편지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이론은 주로 16장에 열거된 사람들의 명단의 길이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또한 바울이 아직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도시인 로마에 그토록 많은 친구들을 알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는 추측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로 말하자면 제국의 각처에서 사람들이 로마로 자연스럽게 이주하던 때이므로 바울이 세계의 수도인 그 도시에 많은 친구들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 이 모든 초기의 사본들이 제16장을 그 편지서의 온전한 부분으로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보수적인 입장은 이 편지서 전체가 사도 바울의 로마의 신자들에게 쓴 것으로 믿고 있다.
 바울은 다소(Tarsus)에서 출생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바리새인의 위대한 교사인 가말리엘의 수제자로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다른 모든 유대인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하나의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피장”(천막 만드는 사람)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첫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그는 현장에 있었으며, 그 광경은 분명히 젊은 사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이 젊은 바리새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그의 기적적인 회심이 있은 다음에 그는 침례를 받고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는다. 그후 그는 아라비아로 물러나서 연구와 준비에 몰두하고 3년이란 세월을 보내었다.
 그는 그의 고향 다소에서 3년을, 안디옥에서 1년을 보낸 다음 성령의 지도를 받아 이방인들을 위한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다. 3차에 걸친 선교 여행을 통하여 그는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또 편지서들을 썼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과 헬라의 교육과 히브리의 종교를 한 몸에 종합한 매우 갖춰진 선교사로서 그의 위대한 사업을 위한 최고의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모든 인간적인 자질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은혜와 사도권만을 신뢰하며 복음 사업에 임하였다(롬 1:5).
희생과 고난으로 점철(點綴)된 여생을 다 보낸 다음에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이 전한 기별을 증거하였다. 네로 황제의 결정에 의하여 그는 참수형에 처해졌으며 지하 묘지(catacomb)에 장사되었다고 전해진다.

 3. 역사적 배경
 로마서는 제3차 선교 여행 동안에 바울이 석달 동안 체류한 고린도에서 기록된 것이 확실시된다(행 20:1-3 참조). 많은 학자들은 이 시기가 A.D. 57-58년의 겨울일 것으로 믿고 있으나 또 더러는 그보다 좀 이른 시기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 편지서가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가이오(롬 16:23; 고전 1:14)와 에라스도(롬 16:23; 딤후 4:20)에 대한 언급과 고린도의 동쪽 항구인 겐그레아의 교회에서 특별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바울이 묘사하는 뵈뵈에 대한 추천(롬 16:1)등으로 말미암아 증명되고 있다.
 이 편지서를 기록할 당시에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교회들로부터 거둔 의연금품을 가지고 팔레스타인으로 막 돌아가려는 참이었다(롬 15:25, 26; 행 19:21; 20:3; 24:17; 고전 16:1-5; 고후 8:1-4; 9:1, 2). 그 사명을 다한 후에 바울은 로마를 방문하여 그곳으로부터 계속해서 스페인으로 여행하고자 했다(행 19:21; 롬 15:24, 28). 바울은 로마 제국의 수도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가졌으나 아직 한번도 방문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롬 1:13; 15:22). 그러나 이제는 아시아와 헬라에서의 그의 선교 사업을 마쳤다고 생각해서(롬 15:19, 23), 그는 이탈리아의 사업을 강화하고 스페인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위해 서쪽으로 옮겨 가고자 애쓰고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의 축복과 협력을 받고자 희망하였다. 그리하여 불원간 그 도시를 방문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들에게 이 서한을 써 보내게 되었다. 이 편지를 통하여 바울은 매우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써 그의 복음의 위대한 원칙들을 개괄하고 있다(롬 1:15; 2:16).

 4. 주제
 이 편지서의 주제는 인간의 보편적인 죄악성과 죄인인 인간이 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완전하고 성결하게 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길”이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시고 영원히 살아 계셔서 인간을 회복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바울이 이 편지서를 기록할 때 그의 마음 속에는 유대화주의자들과의 논쟁 가운데서 야기된 여러가지 문제들이 꽉 차 있었다. 그는 그 문제들 중에서 기본적인 것들을 다루면서 죄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하여 광범한 예증들로써 대답하고 있다. 먼저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므로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스런 이상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롬 3:23). 이것에 대해서 어떠한 핑계도 댈 수 없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상당한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롬 1:20).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정죄아래 있는 것은 의당한 일이다. 게다가 죄된 인간은 이러한 곤경으로부터 자신을 건져낼 능력이 도무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의 타락한 형편하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롬 8:7).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려는 율법주의적인 시도들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연약성과 구주의 필요성을 인식하기를 거절하는 이른바 오만한 자기 의(義)에 빠지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제책을 강구하실 수 있으시다. 그분은 이것을 당신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마련하셨다.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 곧 그의 죗된 과거를 덮어주기 위해 이미 마련된 것을 받아들이는 믿음과 그로 하여금 의의 생애를 살도록 인도하시고자 제공된 능력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행사하는 것, 오직 그것 뿐이다.
 이것이 이 편지서의 첫 부분에 전개된 바울의 복음이다. 그 나머지 부분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그리스도 교회 신자들을 취급하는 문제들에이 복음을 실제적으로 적용시키는 면을 다루고 있다.
 5. 개요
Ⅰ. 서론 1:1-15
     1. 인사 1:1-7

     2. 개인적인 부언 1:8-15

Ⅱ. 교리적인 주석 1:16-11:36
     1.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 1:16-5:21
       (1)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 1:16, 17
       (2) 의에 대한 보편적인 필요 1:18-3:20
         ① 이방인들의 실패 1:18-32
         ② 유대인들의 실패 2:1-3:20
       (3) 그리스도 안에서 마련된 의 3:21-31
       (4) 구약의 교리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4:1-25
       (5) 칭의의 복스런 결과 5:1-11
       (6) 칭의의 효과와 아담의 타락의 결과의 대조 5:12-21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화의 교리 6:1-8:39
       (1) 죄에 대해 죽고, 새 생애로 부활함 6:1-11
       (2) 율법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남 6:12-23
       (3) 죄에 대한 율법의 관계 7:1-13
       (4) 육과 영 사이의 갈등 7:14-25
       (5) 성령 충만한 생애 8:1-39

     3. 이스라엘의 선택 9:1-11:36
       (1) 이스라엘의 거절에 대한 바울의 유감 9:1-5
       (2) 거절의 정당성 9:6-13
       (3) 하나님의 뜻은 의심할 수 없음 9:14-29
       (4) 거절의 원인이 된 이스라엘의 불신 9:30-10:21
       (5) 이스라엘의 궁극적 회복 11:1-36 

Ⅲ.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의 실제적 적용 12:1-15:13
     1. 그리스도인의 자아 희생 12:1, 2

     2.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그리스도인 12:3-8

     3.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계 12:9-21

     4.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계 13:1-7

     5.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빛-사랑 13:8-10

     6. 재림이 가까움 13:11-14

     7.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상호 관용이 필요 14:1-15:13

Ⅳ. 결론 15:14-16:27
     1. 개인적인 부언 15:14-33

     2.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인사 16:1-16

     3.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 16:17-20

     4. 바울의 동료들과 대필자의 인사 16:21-23

     5. 축도와 송영 16:24-27


 

로마서 개론

  

바울로의 서신 가운데 제일 긴 로마서는 신약 안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서신 가운데 으뜸을 차지한다. 순서상으로도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오랜 세기를 거쳐 그리스도교의 사상에 영향을 준 측면에서도 으뜸을 차지한다. 어거스틴, 마르틴 루터, 요한 칼뱅 그리고 죤 웨슬리 같은 탁월한 신학자들은 물론이요 그 외에 덜 알려진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이 이 서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 서신을 썼을 때 바울로는 아직 로마를 방문하지 못했다. 물론 그는 로마의 기독교 교회 구성원 가운데 많은 사람을 알고 있었다(16:1-15). 그가 어떤 상황에서 이 서신을 썼는가에 대한 단서가 1:15과 15:22-29에 기록되어 있다.

로마서는 바울로 신학의 완전한 전개를 위해 써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는 여기서 부활이나 성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서신, 특히 1-11장을 지나쳐 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독교 신앙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바울로의 권면, 특별히 12-15장에 있는 권면을 들어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는 흔히 로마서의 중심 주제로 여겨져 왔다. 아마도 좀 더 중심적인 주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하느님이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하여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는(3-4장) 부분일 것이다. 로마서는 하느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신실함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3:1-4)과, 세상 어떠한 것도 그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내지 못 한다는 것(8:38)을 확실히 선언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질문과 문제를 다루기 위해 기록된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로마서는 바울로 신학의 중요한 부분을 좀 더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로마서가 로마에 있는 교회의 문제점이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로마서는 믿음의 신학과 공로의 신학에 대한 바울로의 위대한 진술로 읽혀져 왔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 율법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학자들은 로마서를 바울로의 다른 서신과 같이 1세기 그리스도교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로마서가 시간을 초월하는 신학적 문서가 아님을 알게 된다. 로마서는 이방인을 향한 바울로의 선교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율법의 목적(7장)에 대해 질문이 제기되고, 특별히 하느님의 선민인 유대인들과의 언약을 지키심에 있어서 하느님의 성실하심과 의로우심에 대한 질문이 날카롭게 제기된다(3:1-9; 9:1-11:36).

기독교인들은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곧바로 로마서를 보려고 하지만, 바울로는 로마서 전체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시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의에 대해 중점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즉, 하느님은 비록 이방인이 하느님의 선민인 유대인에 속하지 않더라도(창 17:9-16) 당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이다. 바울로는 유대인을 향한 하느님의 언약이 파기되었는지(9:6) 또는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버리셨는지(11:1)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을 통해 복음은 특정 집단이 아닌 만민을 위한 기쁜 소식임을 확인하였다. 바울로가 자신의 가르침을 전개시켜 나갔던 사회적 상황은 교회의 중심이 이방세계로 옮겨지는 때였다. 그런데 이 부분은 교회의 역사에서 망각되곤 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는 개인적인 신앙체험과 구원에 국한되었다. 로마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연구해 보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에 들어 있는 사회적 차원이 쉽게 무시되었음이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차별이 없습니다(3:22; 10:12).”라는 문장에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심층적 배경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로마서의 메시지

바울로는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문안인사를 하고 그들을 위한 자신의 기도에 대해 말한 후 바로 로마서의 주제를 진술한다.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1:17)

그런 후에 바울로는 이 주제를 발전시켜간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아우르는 모든 인류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류 전체가 죄의 힘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다.

다음으로 바울로는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에서 시작되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새로운 삶을 서술한다. 신앙인은 하느님과 화평하게 되며 하느님의 영에 의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5-8장에서 바울로는 하느님의 율법이 지닌 목적과 신자들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영의 능력을 논한다. 그 후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떻게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경륜의 틀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씨름한다. 바울로는 마침내 유대인이 예수를 거부한 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혜의 영역으로 모든 인류를 끌어들이기 위한 하느님의 심오한 섭리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이 언제나 예수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마지막으로 바울로는 기독교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기술한다.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법과 국가에 대한 기독교인의 의무,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 및 양심의 문제 등의 주제를 다룬다. 그리고 개인적인 메시지와 하느님을 향한 찬양의 글로 편지를 맺는다.

 

내용 개요

1:1-17 서론과 주제

1:18-3:20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 구원을 필요로 함

3:21-4:25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 방법

5:1-8:39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9:1-11:36 하느님의 경륜 안에 있는 이스라엘

12:1-15:13 기독교인의 윤리

15:14-16:27 향후 계획과 인사

  

저자

16장은 본래 다른 도시(아마도 에페소)에 있는 기독교인에게 쓴 별개의 편지이고 나중에 추가 편집되었다는 증거가 많이 있다. 그러나 16장 전체가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로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기록 시기

로마서는 주후 56-57년 경 바울로의 선교여행 끝 무렵에 써졌다. 그의 선교여행은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15:19) 두루 다닌 것이었다. 그는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여 그곳을 전진기지로 삼아 스페인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번번이 막혔다(1:13-15; 15:22-24). 그는 우선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해 이방 교회에서 모은 연보(15:25-33; 갈 2:10; 고전 16:1-4; 고후 8-9장)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했다. 바울로에게 있어서 이 연보는 유대 기독교와 이방 기독교가 점차 별개의 집단으로 되어가던 때에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일치를 상징했다(15:27). 바울로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자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일치의 중요성을 이처럼 강하게 부각시킨 사람은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바울로는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해 모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로마와 스페인으로의 전도여행을 연기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로마서가 바울로의 친서 중 가장 마지막에 써진 것으로 생각한다.

  

기록 장소

로마서는 고린토에서 쓰인 것으로 보인다. 16:23의 가이오는 아마도 고린토전서 1:14에 언급된 가이오일 것이다. 겐크레아에 있는 교회(16:1)를 섬긴 페베(16:1)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편지를 전달하였을 것이다.

 

수신자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여러 가정교회에서 모임을 가졌다(16:5). 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었다. 때로 바울로는 이방인 기독교인들에 대해 말한다(1:13; 11:13). 어떤 때는 그가 자신의 주장을 유대인 기독교도들의 관심사로 돌리고 있는 듯하다(2:17; 3:9).

 

문화

초기교회는 이방인과 경건한 유대인들 사이의 문화충돌을 경험하였다. 예를 들어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음식은 제의적으로 정결치 못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모든 날을 같게 여기고 모든 음식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다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였다(14:2,14). 믿음이 강한 자(15:1)는 믿음이 약한 자(14:1)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바울로는 이 두 집단의 기독교인들에게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15:7)라고 촉구하였다. 또 바울로는 이방인 기독교도들에게 유대인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단순히 가지이며, 가지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보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1:18).

바울로는 이런 신학적 긴장 때문에 구원이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면, 왜 하느님께서 율법을 유대인에게 주셨는지를 설명해야 하였다(7장). 또 왜 하느님의 선민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이방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지를 설명해야 했다(9-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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