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1-20 10:22
[2]성령론요약강의
인쇄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588  
여기에서는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 말한다. '거룩'하다는 성경의 원뜻은 '구
별한다'는 것이다. 이 구별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에서의 구별이다. 종되었던
애굽에서 구원하여 거룩하게 하시는 것, 즉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한 것을 기념
하는 의미에서의 안식일의 개념이 여기서 나오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치 않아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안식에 관한 것
은 사람이 조건을 갖추어 들어오는 것이기 보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려고
하시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임을 말하여 주는 말이다. 안식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하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이다. 바로 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
는 조건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태초에 이미 이루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안식일을 지킴으로 일상의 규칙으로 증거하
고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거룩케 하는 하나님, 종 되었던 애굽에서 구해낸 하나
님인 것을 즐거워 하는 절기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일의 결
과를 감사하며, 즐기며 돌아보는 절기로 안식일이 있는 것이지 안식일을 지킴으
로 그것이 원인이 되어 어떤 결과를 얻는 절기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일 여호수아가 저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
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8-9)"

지금 이스라엘 백성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꺼내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는 것
으로, 즉 가나안 땅을 안식하는 장소로 하나님께서 일차적으로 설명하셨다. 그러
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전쟁이었다. 즉 이런 일들은 다 장래 일의 그림자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이다.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지금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으
로 들어가는 것이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화목케 된 것, 지금 우리는 일차적으
로 그 안식에 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그 구원을 얻고 완성된 안식은 영원한 나라
에 들어가서야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음에도 불
구하고 이 세상에는 안식을 누리기보다는 전쟁이 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가
나안에 들어가자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예수 그리
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과 결별하여 늘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한다. 우리도 늘
영원한 안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간 것에 있어서, 만약 지리
적으로, 사건적으로 가나안이 안식의 땅이었다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안식일을 계속 지킨 것을 보면
그곳이 목적한 땅이거나, 목적된 장소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은 상징일
뿐이다. 애굽이 아닌 곳, 종 되었던 곳이 아니라 자유민이 되는 것으로의 어떤
상징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정도이며, 그와 동행하
며, 그가 내 안에 와 계신 정도이며, 약속된 나라를 소유했고, 하나님의 자녀라
는 인침을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자 젖과 꿀이 흐르는
이야기는 없고 늘 싸우는 이야기 밖에 없다.

안식일을 지키라 명령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는
가? 우리에게준 약속을 절기화 하며, 의식화 규칙화 하신다. 안식일을 지키게 함
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 죄와 악과 더러움과 부패함에서 꺼내어 안
식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섭, 즉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이 일이 더욱 강조된 것이 희년이다.

희년과 오순절의 개념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안식일을 확대한 것이
안식년이다. 안식년을 더 확대한 절기가 희년이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번 반복
한 49년 다음 해인 50년째를 말한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
라 이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
족에게로 되돌아갈지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레 25:8-12)"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을 사고 팔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도 제비를 뽑아 전부 땅을 나누어 주었다. 설혹 땅을 팔았다 하더라도 희년에는
반드시 원주인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다. 땅이 있다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처소가 있다는 뜻이다. 다시 기업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외인
이되고 타락해서 이방인이 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 기업이 없고 소망없는 자
인데 영원한 처소를 다시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땅을 판자가 다시 돌려
받는데 있어서 댓가를 치루는 것이 아니라 희년에는 무조건 아무런 댓가없이 돌
려주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규례와 절기로 반드시 지키도록하셨
다. 규례를 지킴은 이미 있었던 것을 추억하게 하는 의식이지 그 규례를 지킴으
로 약속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도 규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앞에서 한 것들이 아직 상징이었지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우리를 영적으로 실제로 죄와 사망의 종되었던 곳에서 꺼내어 하나님의
자녀삼을 일이 상징화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다.

노예로 부렸어도 희년에는 놓아 주어야 한다. 만일 그가 속하여 돈을 내려면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희년까지를 계산하여야 한다. 희년은 종이 풀리는 때이고
기업을 회복하는 때이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고, 배반하고 죄 가운데
빠진 모두를 회복시키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 표현을 '종되었던 것'과 '종
에서 자유를 얻는 것'으로 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성령님이 오순절에 오시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어떻게
친히 죄와 사망의 종에서 꺼내셨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종
노릇 하던 곳에서부터 꺼냄을 받았다는 것이 어떻게 증명되는가? 그것은 하나님
으로부터 떠나있던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제 4 강 성령강림 그 자체가 갖는 메세지(요엘 2:28-32)

--------------------------------------------------------------------------

신약시대의 여러 특징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부어 주
신다고 하는 점이다. 신약시대와 구약시대는 약속된 것이 이루어진 것,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이루어진 것과 이
루어지지 않은 것을 분기점으로 나뉘어 진다. 하나님께서 안식일, 안식년, 희년,
맥추절, 칠칠절 등 절기로써도 요구하시고 강조하신 것과 같이, �그가 이루시려는
구원사역은 이제 오순절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일로 완성한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
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
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이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창 6:1-3)"

우리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영적으로 사망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신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내 신을
부어 주겠다'는 말씀은 이제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신이, 성령이 우리와 함께 거할 수 있는
존재들로 바뀌어졌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게 되
어 있었다. 하나님을 보면 죽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이 높아서 뿐만 아니
라 우리가 그를 뵐 거룩과 순결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를 볼 수 있
고 함께 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성령님이 오순절에 강림하셨다. 오순절이라는 절기를 주
어놓고 거기에 맞추어 성령님이 그날에 임하게 하시므로, 오순절이 갖는 의미와
동일한 성령의 임하심, 즉 구원의 사역이 하나님 쪽에서 전적으로 하신 일이요
우리 쪽의 일과 결과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신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의 이유
이다.

이번에는 성령이 이 땅에 오신것, 그 자체가 갖는 효과 즉 성령의 객관적 사역
에 대하여 살펴보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
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
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
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
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보지 못함이요
(요 16:7-11)"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사오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그가 오신 것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는 증거가 된다. 요
14:16의 표현의 초점은 성령께서 이 땅에 계시지 않다는 것의 증거가 된다. 그런
데 그것이 어떻게 세상을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는 증거가 되는가?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
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며(요 1:10-11)"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

세상이 예수님을 몰라보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다. 예수의 부활하심,
성령이 오심 그 자체가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일이 잘못임을 책망하
는 것이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
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요(요 16:8-10)"

신성 모독죄로 못박아 죽인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그가 말씀하신대로 성령이 임하셨다는 사실은 세상이 잘못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무슨 말인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
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이름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 2:9-10)"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면 돌을 버린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 종
교적인 죄목으로 그것도 신성모독죄를 걸어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받으셨다면
결국 세상이 틀렸다는 말이 된다.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
님께 가있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이 그 존귀와 영광의 보좌에 가셔서 성령을 보냈
셨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가?

우리가 죄인이었다는 사실,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 세상이 틀렸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령이 오셨으며, 실제로 그가 계신 것, 이런 것들을
볼 때 그분이 그의 약속에 따라 일을 하셨으며, 또 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기뻐해야 한다. 성령강림은 개인적 신자가 갖는 주관적 체험의 문제로써만 필요
한 것이 아니라 이 성령이 오신 그 일, 그 자체의 객관적 증거로도 우리에게 이
미 커다란 경계가 되며, 힘이 되며 각성해야 되는 표인 것이다.

제 5 강 성령이 주시는세례로써의 성령세례(고전 12:12-13)

---------------------------------------------------------------------------

신약시대와 구약시대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세례에 의하여 구분된다. 요한
복음 1:33을 보면 세례 요한까지는 어떤 의미에서는 구약시대이고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는 신약시대로 구분됨을 알리는 내용이 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
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에게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
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요 1:33)"

세례 요한에 의해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령의 세례를 주실
수 있는 분이다. 여기서 '성령 세례'라고 할 때에 그것은 우리를 성령이 붙잡아
서 어떤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이동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 성령세례가 우리가 성
령에게로 가는 세례라면 다른 분에 의해서 다른 장소에서 그분과 함께 성령에게
로 가는 세례라야 그 표현이 맞는다. 우리는 보통 성령세례라 할 때에 성령에게
로 가는 세례, 성령 속으로 들어가는 세례로 많이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성령세
례를 받았다고 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지배하시는 것, 우리가 성령님 안에 파
묻히는 것, 성령의 충만함이 흘러 넘치는 것으로 보통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성
령세례라 할 때에 예수님이 베푸시는 세례로써의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
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것 외에 성령께서 베푸시는 '성령
세례'가 있다고 한다. 성령이 세례를 베푸시는 자로서의 '성령 세례'가 분명히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2-13)"

신약의 내용을 보면 구원에 관한 이야기보다 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강조되
고 있다. 복음서가 구원에 대하여 쓰고 있다면 구원이 이루어진 이후 예수 그리
스도의 부활 후 곧 사도행전에서는 교회가 성립되며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면
할수록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다. 여기서 교회는
물론 무형의 교회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 하시는 일에 개개인을 불러 쓰시되
개인 개인을 불러 모아 하나의 몸으로, 신비로운 연합체로 만들어 쓰시는 그런
의미의 교회를 말한다.

구원이라는 작업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큰 일 중 하나가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
부터 불러 내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상
에서 죽이시는 것, 그것만이 아니라 이제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리스도
의 몸으로 모으는 일을 한다. '성령세례'라고 할 때에 성령께서 베푸시는 세례라
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구원받은 우리를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덧붙이
는 작업을 하신다. 이것이 성령이 베푸시는 세례이다. 구원이 취소될 수 없듯이,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대속 사역으로써 영원히 유효하듯이, 이 성
령이 주시는 세례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도 동일하게 단 한 번으로
영원히 유효하다. 사도행전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기초로해서 이미
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성령께서 이제 우리를 그리스
도의 몸으로 부르사 우리 모두 형제요 한 권속이요, 하나된 것을 증거하고 있으
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복음은 힘을 얻어 나가고, 구원으로 말미암아 부른 모든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몸, 그 안에서 완성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위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2-23)"

개신교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그의 몸으로 부름받은 신자들을
총칭할 때 쓰이는 말이다. 로마서 5장에서 우리가 아담 아래 있을 때에 죄와 사
망 아래 있었다고 말한다. 6장에서는 이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연합하여 한몸이 되었으므로 생명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 일이 성령의 사역, 우
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즉 그와 연합시키는 사역에 의해 가능해졌다고 한다.
성령이 주시는 성령 세례에 의하여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나와 예수 그리스도 안
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의 몸으로 부름받은 모든 신자들
에게 있어서 생명과 삶을 유지케 하시는 분이다. 사도행전에서 언제나 성령이 주
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며 성
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덧붙이신다. 이제 우리는 죄인이 아니고 하나
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에게 성령은 내주하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구원얻는 일에 대하여 우리의 의식이 없듯이,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
로 보내시는 일, 그의 몸에 덧붙이시는 일에도 우리의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불신자의 상태에서 신자로 들어오는 데에만 메세지의 내용이 있고
초점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들어온 다음에의 이야기도 너무나 많이 있다. 그 중
에 제일 많은 것이 교회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죄인되었던 자리에서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
것까지 밖에 모른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
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신 것'에 대하여는 잘 모른다.
신분적으로 거룩하게 된 것까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수준적으로 거룩에 대
하여는 너무나 모르고 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그
의 영광에 걸맞는 몸을 가져야 한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3,463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55 로마서 개론 웹섬김이 02-23 4834
2054 유아로 죽은 자는 천국에 가는가? 웹섬김이 02-20 3439
2053 귀신들린 자의 외적 분별 웹섬김이 02-20 4255
2052 교회에 잠입한 신oo 구별하기 웹섬김이 02-20 3181
2051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어떻게 다른가? 웹섬김이 02-20 6479
2050 학습 문답서 웹섬김이 02-20 4066
2049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3가지-인성 웹섬김이 02-02 3790
2048 강단의 위기는 어디서 오나 웹섬김이 02-02 3411
2047 기독교의 간추린 기본 교리 웹섬김이 01-27 3633
2046 영생이란 무엇인가? 웹섬김이 01-27 5103
2045 새신자가 알아야 할 성경상식 웹섬김이 01-27 4851
2044 신학(神學, Theology)의 종류 웹섬김이 01-27 5240
2043 [3]성령론요약강의 웹섬김이 01-20 3589
2042 [2]성령론요약강의 웹섬김이 01-20 3589
2041 [1]성령론요약강의 웹섬김이 01-20 4161
2040 성령세례의 증거 웹섬김이 01-20 4167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