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1-20 10:14
[1]성령론요약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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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4,161  
성령론요약강의


제 1 강 삼위일체란 무엇을 말하는가?(마 2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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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세 분이시다"라는 표현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이 숫자적 개념으로 강조되어서 실제적
으로 설명하려는 많은 부분들을 놓쳐 버렸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숫자적
으로 한 분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했을 때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늘에는 누가 계셨는가? 또 예수님께
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삼일 간 죽음 아래 계셨다. 그러면 그 삼일 간은
누가 천하 만물을 다스렸는가? 이렇게 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했을 때 수많은 문
제들이 발생한다. 성경에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은 오직 하나
님만이 참된 신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만이 唯一하신 신이라는 말이다. 다른
신은 없고 하나님만이 唯一하신 신이라는 뜻이지 숫자적으로 한 분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唯一神이지 單一神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숫자적으로 '한 분이시다'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과 성령의 신성, 즉
예수님과 성령이 하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게 된다. 이것은 단일신론이라
하여 역사 이래 계속 이단으로 정죄되어 왔다. 성경은 우상을 섬기는 것은 이단
으로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
님되심을 부인하는 것을 똑같이 이단으로 취급한다.

하나님이 숫자적으로 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여러가지 성경적 증거가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
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지금 구한 이
가 있고, 그것에 응답하신 이가 있고, 그리고 응답하시는 이가 보내시는 이가 있
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
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
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
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여기에서도 권세를 주시는 이와 받는 이가 각각 다른 존재로 묘사되고 있고, 세
례를 줄 때에도 아버지, 아들, 성령을 구분하여 언급하고 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
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
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6-7)"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를 구분하고 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
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
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고 예수님에게서도 보내심을 받는다. 결코 동일
인이 아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있는 가장 근접된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은 '3인격
체' 즉 '구별된 3위'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함께 호칭할 때에 "세
하나님"이나 "삼신"이라고 부르지 않고 삼위라 함이 적절하다. 그것은 또한 하나
이면서 셋이라는 숫자적 신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A.D 35년 니케아 회의에서 하나님은 숫자적으로 한 분이 아니라 '3 인격체'라
는 즉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는 공식적인 신조가 채택되었다. 이것이 3위
일체에 대한 최초의 정통적 신조이다. 또한 이 신조를 기초로 만들어진 찬송이 9
장 "거룩 거룩 거룩"이다.

이제 '하나'라는 개념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살펴보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요 10:30)"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만약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의미로 하셨다면 너희가
지금까지 믿었던 하나님이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셔야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라는 표현을 쓰셨다. 그러면 '하나'라는 말의 개념은 무엇인가? 영
광과, 존귀와 능력과 거룩과 의와 모든 신의 속성이 똑같다는 의미이다. 즉 본질
에 있어서 하나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로 '하나'라는 표현이 사용된 증거가 있
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
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7)"

우리가 왜 자꾸 '숫자적으로 하나이다'라고 고집하는가 하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
수님의 신성과 그 사역에 대한 보호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숫자적으로 한 분이라는 이론이 우리에게 단일신론이라는 형태로 나
타난다. 단일신론이라는 것은 숫자적으로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
것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단이다. 단일신론은 역사적으로 양자론과 양태론으로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양자론은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령을 보내
셨으므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같은 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
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원래 인간이셨는데 성부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인간 중에서 독특하게 불러내셔서 아들을 삼으신 자로서 인간이로되 인간을 초월
한 자"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신이 아니었고 인간이었는데 하나님
께 전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함으로 그의 영을 받아 우리가 앞으로 완성될 모습으
로 변한 신같은 인간이라고 한다. 이것은 성자 하나님을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것
이다. 그러나 성경은 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그가 사람으로 오신
것, 이 둘 중 하나라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고 말한다.

또 단일신론은 양태론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양태론이란 한 분 하나님이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으로, 신약시대에는 성자
예수님, 현 교회시대에는 성령 하나님으로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삼위일체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오해가 있다. 이것 역시
또 다른 양태론에 대한 설명이다. 태양은 하나이지만 빛이 있고, 열이있고, 태양
그 자체가 있듯이 삼위일체가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오해를
야기시킨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1/3이 되어 3분이 모두 모여야 하
나가 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득이다. 3위 하나님은 각각 홀로 완전하시며
부족함이 없으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동등하게 권위가 있으시며, 전능
하시며, 사랑이시고, 거룩하시다. 이것이 왜 이해가 안되는가하면 인간의 이해
와 깊이를 넘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3위 하나님이 각각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3위의 하나님은각기 구별된 존재이시며, 3위 하나님이 각각 동일한 경배의 대상
이시며, 동일한 찬송의 대상이시다. 성경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명령이 동등한 권위를 지니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의미로 3위일체란 3인격체이신데 그 본질에 있어서 우열의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부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은 없으되 가정을 남편이 대표하는
것처럼 질서상 1위, 2위, 3위가 있을 뿐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3위일체는 신비 중의 신비요 우리가 천국에 갈 때까지는 확실히 이해할 수 없
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가능한 근접된 설명을 시도하는 이유는 성령 하나님의
신성과 인격이 모호한 것이 그동안 성령운동에 나타난 시행착오들의 근본적 이유
였기 때문이다. 결국 삼위일체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모아야 할 신비는 숫자적으
로 어떻게 하나이면서 셋이냐?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독립된 개체인데 본질이 동
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숫자적으로 하나인 본질을 삼위가 공유하신다는 의
미가 아니라 구별된 삼위의 본질이 어떻게 차이가 없이 동일하냐의 신비인 것이
다.

제 2 강 성령과 불로써의 세례(롬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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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
령과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12)"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말씀하시므로 성령과 불
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자신을 말씀하고 있다.

세례란 과연 무엇인가? 세례란 동일화, 동질화(idenfication)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공생애를 세례받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 영광을 잠시 보류하시고 죄인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죄
는 없으신데 죄인인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죄인과 등등시 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원래 우리 인간이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것
을 스스로 인정케 하는 자리로 초대하는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요한의 물세
례를 받으심으로, 그 물세례 아래 친히 들어가심으로 자신도 죽어 마땅한 인간들
과 동등한 위치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표하여 그 죄를 한몸에 지고 돌아가셔야 우리 인류의 죄가
속죄되는 것이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지 않으시고 인간과
동등시 되지않는 상태에서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런 의미로 우리가 세
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바 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
았기 때문이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
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물어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
물로 받으리니(행 2:37,38)"

이 말씀은예수 그리스도가 요한의 물 세례에 동참하심으로 죄인과 동일시 되었
듯이,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그의 길에 '동참
한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
활하셨다.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그분과 동일시 됨으로써 우리
도 죽음을 이기고 역시 부활할 것이다. 이 시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세례란
우리를 누구와 연합시켜 어떤 자리로 통과시키는가의 방법이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
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
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
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0-21)"

물은 모든 육체를 그 아래 삼켜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배만은 유일하게 물이 없으면 뜨지 못한다. 이와같이 물은 어떤 것에는 사망을
초래하고 어떤 것에는 힘이 되기도 한다. 우리 자체로서는 물로 인해서는 그 아
래 삼켜져서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배 안에 있자 물 위로 뜨게
된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배 때문에 뜨게 되는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전 10:1-2)"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는 홍해가 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여기에서 모세는 유일하게 홍해를 건널 수 있는 인간
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스라엘 족속이 모세와 합하여 건너면 무사히 홍해를 건널
수 있다. 이제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이란 물과 대조를 이루는 말씀이다. 불은 우리 모두를 심판 아래, 사망과 멸망
아래 가두게 하는 역할을 한다. 불은 태우는 것, 즉 가치없는 것을 태우고 생명
아닌 것을 소멸시키는 심판을 말한다. 불이 심판을 의미하는 것은 물이 물 위에
뜰 수 없는 것을 그 아래 삼켜 가두는 것과 같은 부분을 설명한다. 물은 뜰 수
없는 것을 가두는 것 외에 다른 한편 배를 띄운다. 물이 가두면서 또 배를 띄우
듯이 동일한 역할을 성령이 감당하신다. 세례를 줌으로써 우리가 나 자신은 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을 자, 심판을 받을 자들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방주 안에
들어감으로써 물로 말미암아 그것 위에 뜰 것을,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것을, 분
리된 자들인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주시
는 '성령과 불' 세례는 불에 타버릴 것들로 불로 태워 없이 하고 성령 안에 들어
가 하나님과 같이 있는 자로서의 그 일이 신앙고백적으로 동참하는 자임을 하나
님께서 인치시며 또 우리에게 신앙고백으로 요구하시는 세례인 것이다.

그러면 성령은 물이 방주를 띄운 것과 같은 그런 역할을 어떻게 요구하는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
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
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롬 8:9-10)"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성령이 계신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둘이 연
합이 되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성령과 우리가 연합하면 나는 혹시 죄, 저주,
사망 아래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성령은 절대로 그러실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
은 우리를 죄와 사망과 저주로부터 꺼내실 보증으로 와 계신 것이다. 내 안에 성
령이 계시는 것이 밖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오직 내가 예수를 믿으며 주
라 시인하여 그 앞에 무릎 꿇는 것으로 밖에 확인이 안되는 이런 의미의 성령의
내주가 바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
고 할 때의 바로 그 성령세례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성령을 죄와 사망으로 묶을 수 없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면 그와 동일시 된
우리 역시 죄와 사망으로 묶을 방법이 없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러 오셨고 또
그 일을 이루셔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셨으므로 가능케 되었다. 우리가 마
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면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신다. 우
리가 죄범한 연약한 존재, 죽을 육체로되 우리 안에 계신 그 영으로 말미암아 예
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도 또한 살리실 것이다. 이것
을 가리켜 일차적인 성령세례라 한다.


제 3 강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미(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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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
시더라(요 7:39)"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위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아직 저희에게 성령이 계시
지 않는다고 했고, 수난 당하시고 부활하신 이후에야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신다. 그러나 실제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것이 외적
으로 드러나는 것은 오순절에 이르러서이다.

성령께서 공식적으로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며 신자들에게 임하신 것이 하필
이면 오순절이었을까? 오늘은 오순절의 의미와 그날에 성령강림의 의미를 살펴보
자. 오순절은 성경에 의하면 '칠칠절' 또는 '맥추절'이라고 한다. 칠칠절이라고
하는 이유는 유월절부터 일곱 안식일을 지나기 때문이다. 맥추절이라고 하는 것
은 그때가 보리 추수기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쓰는 달력에 의하면 정
월이 우리의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이다. 이달을 아빕월이라고 한다. 유월절
은 4월 첫주쯤이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5월 말이 된다. 오순절이라는 것은 안식
일에서 그 개념이 나온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출 34:22)"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하여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 23:16)"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
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
와께 드리되(레 23:15,16)"

우리나라에서 "순"은 열흘의 개념이다. 그래서 오순절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사실 성경은 오십일 보다는 칠칠절, 일곱 안식일. 안식일 자체가 7일이므로 그것
을 일곱번 합하여 칠칠절, 이것에 훨씬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안식일을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온
천하 만물을 만드신 날 수를 기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쉰다는 것,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레 되는 날 쉼으로써 앞의 엿새 동안에 하나님께서
일을 하셔서 온 천하만물을 만들었다는 신앙고백을 형식화 하는 것이다. 예를 들
면 이런 것이다. 부부 중에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고, 아내는 신자의
상징이 된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
의 문제이다. 구약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그 다음
에 여자를 지으셨다는 순서상의 질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성경의 질서를 지킴
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만든 창조주라는 신앙의 고백을 형식화하는 것이다.

안식일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
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 같이 안식하게 할
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럼으로 너의 하나님 여
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2-15)"

여기 안식일의 개념 속에는 우리를 종되었던 곳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념하
는 것이 첨가되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너와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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