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2-23 12:48
존 웨슬리 신학의 교회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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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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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신학의 교회사적 의의

 

 

I. 들어가는 말
        
   존 웨슬리는 흔히 뜨거운 부흥운동을 일으켜서 산업혁명 이후의 혼탁했던 영국 사회를 복음으로 변화시켜 프랑스의 유혈혁명을 겪지 않게 한 열정적인 복음전도자라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웨슬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들에게 ‘웨슬리에게는 신학사상이 없는’ ‘실천적 조직가나 열광적 부흥사’일 뿐이다거나, 웨슬리에게 신학이 있다고 할지라도 ‘영국 국교회나 가톨릭 교회 혹은 루터, 칼빈의 개신교회 신학의 아류’라고 하기도 한다. 알버트 아우틀러(Albert Outler)는 “웨슬리는 역사신학자들에 의해 무시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그 이유가 부분적으로는 그가 신학적 대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어떤 단일 학파에 속하지도 않았고 또 학파를 세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1) 라고 한다. 
   아우틀러가 “웨슬리는 제대로 읽혀지기보다 숭배되기에 급급했으며, 바로 이해되기보다는 찬양받기에 더 바빴다.”2) 라고 한 말은 그 동안 한국에서의 웨슬리 신학에 대한 편파성의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웨슬리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 강조점을 달리 하였다. 19세기 초 영국과 북미의 감리교인들은 웨슬리의 가톨릭적인 측면을 끊고 개신교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1738년의 올더스게이트의 회심체험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였다.3) 어떤 신학자들은 웨슬리를 슐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적 경험 신학의 선구자로, 또 어떤 이들은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 입장에서 웨슬리를 해석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웨슬리를 영국 국교회적 입장이나 아니면 동방 정교회적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또한 웨슬리와 감리교인들을 경건주의나 청교도주의의 한 분파로 해석하기도 하였다.4) 이 모든 해석은 일리가 있으며, 웨슬리에게 보이는 중요한 요소들임은 틀림없다. 웨슬리의 사상적 영향은 크게 청교도주의, 영국 국교회주의, 루터란 경건주의, 로마 가톨릭주의, 동방 정교회 등의 전통에서 영향을 받아 웨슬리는 창조적이고 새로운 방법으로 그것을 종합하였다.5)
   나는 이러한 웨슬리 해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종합하면서 감리교 신학 그룹 안에서 해석하는 "해방과 성화"6)와 "은총과 책임"7) 그리고 "새 창조"8)의 빛에서 웨슬리 신학의 핵심을 찾고자 한다. 또한 이 글에서 웨슬리 신학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교회사 속에서,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 그리고 현대 신학의 입장에서 웨슬리 신학의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웨슬리의 통전적(holistic) 모습을 짧은 글에 담을 수도 없고 담을 능력도 없다. 그러나 웨슬리를 보는 해석학적 관점을 거시적으로 가져야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루돌프 불트만의 “전제 없는 주석이 가능한가?”라는 말은 어김없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나는 웨슬리를 현대 감리교 신학적 입장이나 흐름에 따라 해석할 것이고, 웨슬리와 그 시대적 삶의 자리의 시각에서 초기(1733-38), 중기(1738-65), 후기(1765-91)의 웨슬리 사상의 변화를 미시적으로 밝혀내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와 희망 사항으로 남겨 둔다.    

  

II . 몸 말

 

1. 웨슬리 신학의 특징

 

   1) 신학 서론
   웨슬리 신학의 신학적 출처는 성서, 전통, 이성, 경험의 4대 표준이다.9) 이것은 감리교 신학뿐만 아니라 다른 현대 신학에서도 신학의 원천자료로서 많이 사용된다.10) 성서, 전통, 그리고 이성은 영국 국교회의 교리/신학을 구성하는 세 가지 출처이다. 웨슬리는 근본적으로 영국 국교회가 제시한 교리/신학의 세 가지 출처를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웨슬리가 영국 국교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는 영국 국교회의 전통적인 삼위일체적 틀에다가 “경험”을 추가함으로써 “본질을 변화시킴이 없이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그 기준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웨슬리는 성서와 전통을 이성의 빛 아래 둠으로써 신앙을 대상화(fides quae creditur)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긴 영국 영국 국교회의 세 가지 출처에 경험을 추가함으로써 신앙을 주체적이고 생동적인(fides qua creditur) 것으로, 즉 기독교를 “머리의 종교인 규범적인 기독교 정통주의 대신에 ‘마음의 종교’로 주장”했다.11)

   미국 감리교의 1992년 장정에 의하면 “웨슬리는 기독교 신앙의 살아 있는 핵심은 성서 안에 계시되었고, 전통에 의해 조명되었고, 개인적 경험 속에서 생기를 얻었고, 이성에 의해 확고해졌다고 믿었다.”12)고 요약한다. 
     “저로 하여금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 되게 하소서.”13)

     “나의 근거는 성서이다. 그래, 나는 성서 고집쟁이이다. 나는 크든지 작든지 모든 면에서 성서를 따른다.”14)

   존 캅은 웨슬리가 네 가지 출처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성서라고 말한다. “웨슬리보다 더 성서적인 신학자와 설교가는 없었다. 그의 설교의 전형적인 한 문단은 성서의 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인용부호가 없는 내용조차 성서에서 나온 단어이고 문장이다. 웨슬리의 의도는 성서의 메시지를 설교하는 것이었다.”15)

   “한 책의 사람”이란 표현은 웨슬리가 성서 이외의 다른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웨슬리는 성서 이외의 분야에 있어서도 부단한 독서가요 연구가였다. 또한, “한 책의 사람”이란 표현은 감리교 교리/신학 형성에 있어서 오직 성서만을 그 유일한 출처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웨슬리에게 있어서는 전통, 이성, 경험이 성서와 더불어 교리/신학을 형성하는 출처였다. 성서는 기독교 교리를 위한 제일차적인 출처요 기준이다. 제일차적(primary)이라는 말은 성서만 읽는다는 말도 아니요, 성서만 출처로 삼는다는 말도 아니다. 제일차적이라는 말은 그의 교리/신학 형성에 있어 성서를 전통이나 이성이나 경험보다 우선하여 근원적인 출처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 경험, 이성은 성서를 해석하기 위한 이차적인 출처요, 성서는 그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출처이다. 
   웨슬리는 전통을 신학의 중요한 권위로 인정하기는 했지만, 모든 전통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대 교회와 영국 교회의 전통은 중요시 했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은 무시했다.16) 전통은 신약성서 시대와 현재 사이에 위치한다. 이 2000년의 기간에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진리를 각 시대를 위해 해석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러한 해석 전통의 연속선상에 서 있다.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는 책임적인 신학은 좋은 전통으로부터 꾸준히 배워서 대답하는 신학(answering theology)17)이 되어야 한다. 오늘 한국 그리스도인은 전통으로부터 배울 준비가 있어야 하고, 전통의 거부는 바로 자기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18) 
   웨슬리가 활동했던 18세기는 소위 이성의 시대였다.19) 정통주의는 대체로 이성을 거부했다. 이들에게 이성은 신앙의 적대자였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성을 신앙의 동반자로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우리는 참된 종교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건을 발굴하려 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유감없이 활용하라고 주장할 뿐 아니라 권고하는 바이다.”20) 
     “‘감리교회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감리교회의 기본 교리이다’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제 정신으로 하는 말입니까? 당신이 잠꼬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터무니없는 비진리를 발설할 수 있습니까? 이성을 포기하는 것은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요, 종교와 이성은 병행을 이루며, 모든 비이성적인 종교는 거짓 종교라는 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교리입니다.”21)

   경험22)은 웨슬리 신학의 가장 고유한 부분이다.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신학적 기초 위에 경험을 추가함으로써 영국 국교회의 부족한 측면을 보완하고자 했다. 존 캅에 의하면, “웨슬리에게 경험은 수미일관하게 성서의 궁극적 시험장이었다.”23)

   웨슬리는 관념이 태어나면서부터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서 획득된다고 믿었던 점에서 대륙의 합리론보다는 영국의, 특별히 로크의 경험론과 맥을 같이 했다. 존 캅은 “그의 믿음의 교리는 경험론에 대한 응답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24)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체험하는 것을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증거라는 것은 영혼 위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으로서 이로써 하나님의 영은 우리 영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직접으로 증거하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이로써 하나님의 영은 우리 영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므로 나의 모든 죄는 도말되고, 나, 아니 나같은 사람도 하나님께 화목되었노라고 증거하시는 것입니다.25)

   웨슬리는 교회 현장이나 교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떠난 사변적인 신학적 관심이 적었다. 그리스도인으로 형성되는 데, 즉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로서 성결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원리와 지침을 전달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이다.26) 웨슬리는 실천적인 봉사로 신학적인 성찰을 하였고, “신학은 설교되고, 찬송으로 불러지고, 삶으로 살아져야 할"27) 실천적 신학(practical divinity)의 문제였다. 웨슬리는 당시 유행했던 이신론(deism)과 같은 사변신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타락한 인간을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을까 하는 실천적 성결의 문제와 씨름하면서 기독교 복음을 "민중을 위하여 쉽게"(plain truth for plain people) 전달한 신학적 목회자 또는 목회적 신학자였다. 
   웨슬리 신학은 하나의 상아탑에서의 논리와 체계(system)로 머무는 학문이 아니라, 실제의 신앙 생활과 체험으로 실행되는 신학을 추구했다. 그렇게 함으로 웨슬리는 전통적으로 이어내려 온 신학과 교리에 피와 살을 붙여서 산 신학(living theology)을 만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존 웨슬리 신학의 매력이며, 그의 신학이 위대성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웨슬리 신학은 신학자들을 위한 신학자가 아니라, 민중을 위한 신학자(Folk-theologian)였다.28) 이는 한국 교회에 매우 필요한 유형이다. 왜냐 하면 한국 교회의 신학과 목회 현장의 괴리는 말할 것도 없고, 신학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2) 선행 은총29)

   선행 은총은 웨슬리 신학을 다른 개혁신학자들 특히 칼빈과 결정적으로 구분시켜 준다. 따라서 웨슬리 신학의 핵심인 구원론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다른 신학과 구별되게 하는 고유한 신학 개념이다.30) 웨슬리는 하나님 은총이 미치지 않는 인간과 세계는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의 영혼이 죄 안에서 자연적으로 죽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이것이 곧 핑계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단지 자연적인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령을 완전히 소멸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아 있는 사람 그 누구도 통속적으로 말하는 자연적 양심(natural conscience)을 전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더 적절히 말할 경우 선행 은총이다."31)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기반을 둔 선행 은총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우주적으로 또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져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웨슬리는 다른 종교개혁 신학자들과 달리 이와 같은 선행 은총의 가능성이 없이는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이 결코 자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웨슬리를 루터나 칼빈이 피할 수 없는 결정론(인간 편에서의 도덕적 책임을 제거함으로서 생기는 함정으로서의)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적인 당신의 주권 아래 베푸시는 선행 은총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의 자유의지가 초자연적으로 만인에게 이미 주어져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선행 은총의 교리 속에서 한편으로 재창조하는 성령의 활동에서 떠나 자신을 구원하는 타락한 인간의 불가능성을 분명히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기 위하여 인간의 상황에 간섭해 온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경향이 랜디 매닥스에 의해 “응답할 수 있는 은총”(responsible grace)라고 이름 지어졌는데, 신학적 입장에 있어서 인간의 응답성 또는 책임성을 긍정적으로 포함하는 역동적인 관점이다.32) 선행 은총이 칼빈의 예정론과 차별되며 또한 인간의 자유 의지를 너무 강조하는 입장과도 구별된다. 따라서 웨슬리의 선행 은총 이해는 칼빈주의의 약점을 극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승훈은 웨슬리의 선행 은총과 칼빈의 성령의 숨은 사역이 많은 공동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33)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사역에 있어서 펠라기우스는 하나님 50% 인간 50%를, 칼빈은 하나님 100% 인간 0%를 각각 강조한다고 할 때, 웨슬리는 구원의 전 과정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펼쳐지는 선물이라는 사실에서 '하나님 100%'와 인간의 책임적 결단과 참여34)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효화된다는 사실에서 '인간 100%'를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35)

   
   3) 구원론
     웨슬리 신학의 핵심은 구원론이다.36) 그의 신학적인 주요 관심은 온 인류의 구원에 있다. 웨슬리 신학의 종점은 구체적으로는 개체 그리스도인 속에 나타나는 구원의 과정(ordo salutis, 질서, 순서)을 밝히는 것이다.37) 따라서 구원의 과정이 중요하다. 
    웨슬리는 인류의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 곧 구속의 은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사람이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웨슬리가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치며 전도하게 됨에는 바로 이 구원의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확신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의 깊이를 깨달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뿐 아니라 새롭게 변화시킨다고 강조하였다. 즉 종교개혁자들이 의인화(justification)를 강조하였다면, 웨슬리는 성화(sanctification)를 더 강조하였다. 성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으며 종교개혁자들의 주요 교리인 “믿음만으로"(sola fidei)과 "거룩한 삶"의 두 주장을 균형 있게 통합한 성화의 신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웨슬리는 역사적, 전통적으로 간직해 내려온 “거룩의 개념"과 종교개혁자들의 "믿음만으로"라는 주장을 통합시킨 것이다. 즉 성화론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이 생활까지 미치는 깊이와, 동시에 거룩한 삶을 강조함으로 "믿음만으로"와 "거룩한 삶"의 두 면을 양극화시키지 않고, 은총의 역사의 테두리 안에서 종합시킨 것이다. 웨슬리는 믿는 자는 칭의를 받음과 동시에 거듭나는 것이며 이 거듭난 자는 성화의 생활을 시작한다고 가르친다. 웨슬리의 강조는 바로 이 중생으로 시작되는 성화의 삶에 있었다. 그에 있어서 구원은 실제적 변화를 의미한다. 웨슬리는 중생으로 시작된 성화는 성장해 나가 온전한 성화에 도달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온전한 성화는 곧 온전한 사랑의 삶(love in action)을 의미한다. 이 사랑은 모든 죄된 것을 마음에서 추방하며 또한 사람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즉, 구원의 시작은 믿음으로 되지만 마지막 구원 또는 온전한 구원은 선행, 곧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웨슬리에게 있어서 믿음의 생활은 곧 사랑의 생활이요, "그리스도를 닮아 살아가는 삶" 자체이다. 
   웨슬리 신학의 정점이요 가장 큰 공헌은 “기독교적 완전"에 대한 독특한 개념이다. 성화와 완전의 개념은 라틴 서방교회가 아니라 그리스 동방교회 전통에서 창조적 재해석을 하였다. 특히 마카리우스와 에프라임 시루스를 통해 배운 수도원적 금욕 영성은 구원의 완성을 완전하고 순결한 사랑, 즉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의식적인 사랑의 충만에서 찾았다.38)

   웨슬리는 “회개가 종교의 현관이라면 의인화는 종교의 문이며 성화는 종교 자체이다”39) 라고 하여 성화의 중요성을 말했다. 성화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본래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회복하는 과정이다.40) 인간의 내적 기질을 변혁시키는 성화의 과정은 하나님의 성화시키는 은총에 대한 인간의 동참으로 이루어진다. 즉 웨슬리 구원론은 신인협동적이다. 또한 성화는 동기와 사랑에서의 완전이다. 웨슬리는 신자가 온전한 성화의 단계에서 모든 내재적인 죄에서 씻음을 받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종사하기에 합당한 능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기대하는 것이 웨슬리의 경건에 있어 열쇠이며 구별되는 특징이다.41)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곧 의도의 순수성, 마음의 할례요, 이는 온전한 성별, 완전한 사랑이라고 했다. 성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전부는 바로 완전한 사랑, 곧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4) 사회윤리  
    사랑은 윤리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사랑으로 표현되는 성화 또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윤리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화는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다.       
     “웨슬리에게 신앙의 본질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이지만, 신앙의 증거는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이다. --- 기독교 공동체는 사회개혁에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42)
   사회적 성화는 곧 경제적 성화이다.43) 사회적 성화의 완성, 곧 희년사회는 경제적 성화운동에 집중되어 있다. 청지기 의식을 강조하였으며, 돈 사용의 3대 원리(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라,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주어라)를 통하여 탁월한 경제윤리를 보여주었다.44)
   웨슬리에 의하면 사랑의 행동은 곧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난 것이다. 웨슬리는 당시의 노예문제, 감옥의 상태 또는 산업에서 가진 자들의 착취행위에 대하여 항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45) 웨슬리는 감리교인은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성화의 누룩의 역할이 있다고 믿었다. 성화에 대한 웨슬리의 강조는 그의 복음전도와 사회참여를 통하여 18세기 영국 전역에 크나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 개혁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는 그의 구원론적 이미지와 유사한 사회적인 것이다.
   웨슬리의 사회윤리의 장점들을 마르쿠바르트는 믿음과 행위, 사랑과 이성, 개인과 사회, 실천과 이론 사이의 긴장을 잘 조화하고 결합하였다고 평가한다.46)
   
   5) 성령론
   아우틀러에 의하면 웨슬리의 성령론은 기독론, 구원론, 그리고 성령론을 확실하게 통합한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의미에 대한 깨달음과 더불어 시작한다. 즉 신론, 기독론, 성령론의 긴밀한 연결은 모든 선행 은총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성령을 언제나 “모든 은총을 주시는 분”으로 인식함으로써 결속되었다. 웨슬리의 성령론은 영성과 윤리 사이의 균형을 시도하였다. 그의 성령론은 존재의 거룩한 의미(coram Deo)에 의해 정해진 삶의 안정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역사하는 성령이 주는 감동을 추구하였다. 그의 성령론은 순간적인 희열의 패러독스와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과정(웨슬리가 “신앙의 충만”이라고 불렀던 것)을 허용하였다.47)
   올더스게이트 경험은 불신앙인이 신앙의 사람으로 (“불완전한 그리스도인”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었다. 올더스게이트 경험에 대한 전형적인 강조는 웨슬리의 “뜨거워진 마음”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고삐에 꽉 붙들린 듯한 자신의 기분을 분명히 깨닫고 중요한 부사를 덧붙였다. 즉 “이상하게(strangely) 뜨거워진” 마음이라고 말이다. 그의 글에서 능동적인 동사들(예를 들면 “나는 느꼈다”)은 수동태의 동사(예를 들면 “뜨거워졌다”)들이 보다 더 강조되지 않는다면 잘못 해석되어질 수 있다.48)
   웨슬리의 성령론적 강조는 그의 저술 전체에 일종의 주제와 변형으로 발전되어 있고,  구원의 질서를 설명할 때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1746-48년에 출판된 설교집에서 그는 명시적으로는 성령론적이고 묵시적으로는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그의 은총(모든 형태의 교리, 즉 회개, 의롭게 하는 믿음, 확신, 중생, 성화의 교리에 선행하는) 교리의 역동성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영혼에 내적으로 표를 남기는 성령의 증거, 이 증거로 하나님의 영은 직접적으로 “내영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한다(확신과 화해). 이 “영”은 우리 안에서 모든 선한 방식으로 일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역을 밝히시고 그가 일하고 계심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신다.” 
   웨슬리는 성령의 증거와 성령의 진정한 열매와의 상호관계를 “내적이고 외적인 성결함”이라고 한층 더 강조하였다. 물론 “성결”이란 웨슬리에게 있어서 “참된 신앙 ……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또 다른 용어이다. 그러므로 성령론은 윤리적 명령이 없는 단순한 영적인 것이 아니고 또 그 반대도 아니다. 개인적 성결과 사회적 성결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순서는 결코 뒤바뀌지 않는다.
     “어떤 이성적인 근거나 성서적인 근거도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령에다 모든 것을 돌리고 또 성령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는가! 이런 사람들은 중요한 일에서 뿐만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일들, 다시 말해서 삶의 가장 소소한 상황에서조차도 하나님으로 부터 “특별한 지시”를 받거나 받을 것으로 상상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이성을 주시어 인도하신다. 비록 하나님의 성령의 “은밀한 도움”을 결코 배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진정한 영성은 “순수하고 거룩한 신앙 안에서의 매일 매일의 성장”(A daily growth in pure and holy religion)이다.49) 웨슬리에게 있어서 참된 영성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영성이었다. 즉 신앙생활이 아니라 생활신앙이었다.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그의 자녀들이 이런 저런 특별한 행동을 하도록 인도하시는가? …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맹목적 충동”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가? 그 일을 하도록 움직여지면서도 당신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을 잡고 인도하시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우리의 “눈”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예를 들어보면 여기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한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성령에 의한” 인도를 받을 수 있는가? 첫째로는 내가 그를 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나로 하여금 “확신케 함”으로써, 두 번째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을 하나님께서 내 마음 속에 가득 채우심으로써 나의 행동을 인도한다. 이러한 실례는 일상적 생활 속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심을 분명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가 있는 이상 죽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있을 수도 없다…. 말로 표현되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고, 성령과 생명과 능력으로 가득 차 있다.“50)

     “성령은 모든 영적 생명을 나누어주시는 분이시다. 즉 우리가 본 따 만들어진 하나님       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기쁨의 삶으로서 성결과 행복의        삶을 주시는 분이시다….(항상 공동체적인 명령을 내포하고 있다.)51)

   삼위일체를 분리시킨 채 어느 하나의 위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기독교 진리의 독특성에 혼란을 초래한다. 성령론은 특별히 인간중심주의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다(주로 이런 저런 형태의 경솔한 믿음, 광신주의, 율법폐기론, 자기 의, 범신론, 미신과 같은 유혹들이다). 성서적 계시와 기독교 전통 속에는 하나님의 신비와 자기현현, 이 두 가지의 균형과 완전성을 보존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있다. 웨슬리는 그 시대와 환경 안에서 이러한 투쟁에 참여한 사람이었다.52)

  

2. 웨슬리 신학의 교회사적 의의

 

   1) 창조적 종합 또는 잡종의 신학   
   첫째, 교회사의 다양한 전통이 웨슬리 신학 안에서 창조적으로 종합되었다. 다양한 기독교 전통의 장점을 창조적으로 종합했으며 영국 국교회의 신학 원칙인 중도의 방법(via media)으로 잘 조화, 융합하여 중용의 신학을 형성했다. 청교도주의, 영국 국교회주의, 루터란 경건주의, 로마 가톨릭주의, 동방 정교회의 좋은 전통을 가져와서 새롭게 발전시켰다. 이중 동방 정교회와의 연관은 웨슬리 신학의 독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아우틀러에 의해 동방 교부들의 영향의 중요성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아우틀러에 의하면 웨슬리는 성화나 완전을 완성된 지위(pereetus)로서 보다는 과정(teleiosis)으로 이해하였다. 특히 성화의 과정을 하나님의 활력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의했던 마카리우스이다.53)
   두 전통을 절묘하게 결합한 대표적인 예가 웨슬리의 은총 개념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전적으로 베푸시는 초월적 선물로 보는 개신교적 은총 개념과 인간 편에서의 책임적 결단과 윤리적 동참을 요구하는 가톨릭적 은총 개념을 통전하여 “응답할 수 있는 은총”(responsible grace)54)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웨슬리에게 청교도주의는 경건주의의 반율법주의(율법무용론)적 뿌리를 뽑아 버리며, 동시에 신비주의자들의 잘못된 칭의 이해를 적절하게 대응하게 하였다.55)
   웨슬리는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을 분리시키지 않았다.56) 파편화되고 전문화되어 전공이라는 미명 아래 신학 분야간에 담을 쌓고 있는 현대 신학자들은 웨슬리의 통전적이고 종합적인 신학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둘째, 신학과 목회 현장의 양극을 특유의 실천신학으로 통전시켰다. 아우틀러는 1960년대 초만 해도 웨슬리 신학이 단지 강단 신학과는 궤를 달리하는 민중신학이라는 사실만 주장했는데, 80년대 중반부터는 웨슬리의 실천신학적 모델은 이미 그 자체로서 건전하며 창조적인 까닭에 오늘의 강단 신학 또는 루터, 칼빈 등 조직적인 책을 저술한 신학자와 부정적인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웨슬리는 머리와 가슴, 자연과 은총, 의인화와 성화, 믿음과 선행, 신학과 교회, 텍스트와 컨텍스트, 가톨릭주의와 개신교주의 등의 대립되는 요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57)이라는 주제로 종합하고 화해시켜서 새롭게 하였다.
   
   2) 하나님 은총의 낙관주의58)/ 인간의 책임성
   웨슬리 신학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며 끝 없는 성화와 자기변혁의 과정을 통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인의 완전에까지 이르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이 있다. 웨슬리는 은총의 낙관주의를 통하여 인간의 전적 타락을 인정하면서도 더 커다란 하나님의 은총을 통하여 인간의 책임성을 확보하였다. 칼빈주의와 펠라기우스주의의 중도를 은총의 낙관주의로 창조적으로 극복했으며, 이는 다른 개신교 신학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매튜 폭스59)에 의해 원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적 "창조의 축복(Original Blessing)"에 대해 의미부여를 해야 하는 시대에 선행 은총과 새 창조가 특징인 웨슬리 신학은 현대 신학에 주요한 신학 원천이 되리라 생각한다. 창조의 축복을 강조하는 것은 원죄를 부정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죄성을 강조하며 교회의 권위로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의 존엄과 창조의 선함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킨 교회사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것이다.

 

   3) 교회일치(ecumenical), 세계일치(ecumenic)를 지향하는 세계(οἰκουμένη) 신학60)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 안에서 ‘교회 안에서의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로 교회내 갱신운동을 하기 원했다. 웨슬리의 사상적 영향을 끼친 여러 다양한 전통은 진정한 에큐메니칼 신학으로 가능하게 한다. 웨슬리는 기독교의 교리에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았다.61) 그는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것을 고수했으나, 비본질적인 것, 곧 의견(opinion)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동의’하고 관용(똘레랑스)의 정신을 발휘했다. 즉 웨슬리는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자비를" 주장하면서 종교적 관용과 신학적 다원성을 적극 긍정하였다.62) 이는 진정한 에큐메니칼 신학으로서 필요한 정신이며, 특히 기독교 전통은 물론이고 타종교 전통에 배타성이 강한 한국 교회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63)
 

   4) 변두리(주변부)의 신학 : 3L(last, lost, least)의 신학을 지향하며  
   웨슬리는 가난한 자들과 당시에 약자 중의 약자인 여성64)의 대한 사역과 관심으로 해방신학의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과 프락시스의 실천을 하였다. 타메즈는 초기 감리교의 메시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포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 의하여 선포되었다고 한다.65)
   예정설이 칼빈과 웨슬리의 큰 차이점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다르지도 않다. 그러나 칼빈과 웨슬리의 시대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둘의 차이는 여성 문제이다. 여성 지도력의 수용이 웨슬리에 의해서 실천되었다. 참다운 여성의 종교개혁은 웨슬리로부터라고 볼 수도 있다.66) 웨슬리가 또한 성차별이 없는 언어의식을 가지고 미국에서 사용할 39개 종교강령을 편집하면서 “그리스도인 남자(Christian Men)"라는 말을 “그리스도인(Christian)"로 바꾸었다. 남자로 되어 있는 것은 양성 다 같이 바꾸었으며, ”아버지“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을 ”신적 부모님“, ”모든 선의 부모님“으로 바꾸어 기도하기도 하였다.67) 한국 교회는 아직도 여성 목사 안수에 대하여 많은 보수적인 교단들이 반대하고 있다.68) 이 부분에 있어서 한국 감리교는 물론이고, 한국 교회 전체가 웨슬리에게서 배워야 한다. 
   웨슬리는 편물 공장, 빈민 학교, 의료원, 빈민 은행, 고아원 등을 설치 운영하였다. 웨슬리는 정치적 면에도 관여하여서 당시의 노예문제, 감옥의 상태 또는 산업에서 가진 자들의 착취행위에 대하여 항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국가적인 선거에서의 부패를 지적하여 경고하며 공정한 선거를 호소하는 팜플렛을 발행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영국에서 시행되고 있었던 노예매매가 1897년에 폐지될 때까지의 웨슬리의 공헌은 컸다. 
  
   5) 구원론의 지평 확대 : 새 창조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신론과 기독론이 달라지고, 인간론과 윤리론도 크게 달라진다. 구원을 ‘죽어서 천국가는 것’ 또는 ‘죄를 대속 받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우리의 전통에 대하여 성서와 웨슬리는 단호히 반대한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종종 듣는대로 천국에 간다든가, 영원한 행복이라든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죽음 건너편,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        세계에서 누리는 축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현재의 것을 말합니다. 곧 값없이 주시       는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지금 가지고 있는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69)

     “믿음을 통하여 얻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무엇보다도 이는 현재의 구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것, 참으로 이 땅 위에서 이 신앙을 가진 자는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70)

   현대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 즉 하나님 나라를 오로지 천국이나 죽음 이후의 삶으로만 보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18세기에는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첫 열매들은 지금 현재 가능한 것이다.71) 현대인들에게 구원이 공허한 내용으로 전락된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인 신학이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비판받는 이유도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다'라는 구호에, 양적인 구원개념의 포로로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72)
   웨슬리 신학의 구원론의 의미는 현대 신학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웨슬리의 구원론의 목표는 완전, 곧 하나님에 의해 피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복은 죽기 전에 현재적 이 지상에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웨슬리 구원론의 특징이다.73) 감리교 신학자들은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라는 좁은 의미의 속죄론에서 과연 '예수가 주는 구원이 이 땅과 이 역사에 무엇이냐'라는 새 창조론으로 바꾸어서 구원론을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74)
   구원은 개인의 인격적 성장 속에서 세계와 역사 및 자연의 과정 속에서 완성될 그리스도의 미래다. 그러므로 구원의 총괄 개념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서의 새 창조이다.75)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단지 "우리의 죄 때문에 희생을 당한" 것은 아니다(롬4:25). 그가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킨다면, 그는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의, 새로운 생명,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한다. 죄인의 의인화는 죄의 용서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삶으로 인도한다. 히브리 성서는 창조와 구원을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처음 창조는 최초의 구원사건이며,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다시 오심을 통한 구원은 새 창조이자 창조의 완성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새로운 창조이다(골1:15-20).76)

   
   6) 실천신학   
   첫째, 웨슬리는 신학적인 목회자요, 목회적인 신학자이다. 신학과 목회를 잘 조화시켜 실천한 ‘주재하는 신학자’(resident theologian)로서 오늘 목회자들에게 모범적인 목회자의 역할을 하였다.77)

   둘째, 웨슬리는 현대 교회에서 유행하는 소그룹 운동의 선구자이다. 교회 안에 작은 교회로서의 소그룹을 활성화하고 조직했으며,78) 한국 교회의 약점인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게 하는 연대주의는 웨슬리 신학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통찰이다. 
   셋째, 평신도 신학이다. 웨슬리는 평신도 직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강조했다. 또한 평신도 설교자를 세워서 그의 운동을 전개했다. 안수받은 목회자 중심의 목회에서 평신도 지향의 목회를 선구적으로 감당했다.79)
   넷째, 예전학의 균형이다. 웨슬리는 예전 무시적인 경향의 개신교회와 예적적인 가톨릭교회의 절묘한 조화를 통하여 말씀 중심인 개신교의 약점인 성만찬을 회복하였다.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본다. 유달리 예전 부분에서는 한국 장로교회는 칼빈보다 츠빙글리의 지배아래 있다고 보여진다.    
   다섯째, 선교와 복음화의 대한 열정이다.  
        
Ⅲ. 나가는 말

   지금까지 웨슬리 신학의 특징과 교회사적 의의를 웨슬리 신학의 핵심인 선행 은총과 성화, 그리고 새 창조를 중심으로 교회사 속에서 차지하는 의의를 간단히 살펴 보았다.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웨슬리 신학도 한 마디로 말하기에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 웨슬리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전통의 권위에 대한 강조를 들고 싶다. 성서와 교부들의 문헌과 중세 신학, 종교개혁 신학 문헌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번역 그리고 주석 작업은 우리에게 너무나 부족하다. 웨슬리 신학의 4대 출처로부터 성서연구와 전통 즉 고전 문헌에 대한 연구는 우리 신학의 질적 발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웨슬리 신학이나 그의 방법들이 단순히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쉽게 데워서 즉시 먹을 수 있는 즉석 냉동식품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새로운 세계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갱신될 필요가 있다(핵심을 보전하는 배려, 매개체는 혁신하는 상상력). 웨슬리는 무익한 양극화를 피했으며, 따라서 만일 우리의 신학자들이 웨슬리처럼 성서 속에 깊이 들어가고(성서의 상상력과 신비 속에 둥지를 틀면), 과거의 기독교 지혜를 참으로 존중하고, 비판적 이성의 학문들에 대해 진지하게 마음을 열며, 성령의 불길에 대해 민감하게 순응한다면, 우리들도 또한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웨슬리의 복합적인 신학 방법은 다른 교리적 전통의 일부를 박탈하는 위협이 없이, 또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무시할 두려움이 없이 그들과 효과적인 연합을 이루는 에큐메니칼적인 장점을 가진다.”80)

   웨슬리 연구에 르네상스를 가져온 아우틀러의 말로서 글을 마친다. 
   ““복음적”과 “가톨릭적” 사이의 오랜 분열은 이제 더 이상 효과적인 양극이 아니며, 유일한 기독교의 미래는 참으로 가톨릭적이요, 참으로 복음적이며 참으로 개혁적인 교회를 향한 것이다. 가톨릭적인 정신을 소유한 복음주의자이며, 사랑 안에서 성숙된 신앙에 의해 창조되는 기독교적 삶이라는 영웅적 비전을 가진 개혁자요, 성서와 기독교 전통으로부터 사고하고 또 그 속에서 살았으며 경험과 이성이라는 법정에 그의 모든 판단을 맡겼던 신학자, 이 웨슬리가 미래의 교회에게 보물, 만일 그것을 무시하면 교회는 더 궁핍하게 되어 버리는 보물을 나눠주고 있다."81)
   “비판적인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웨슬리를 그 자신의 시대에 위치시키고 그 자신의 용어로 이해하려고 하라.”82)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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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 알버트 아우틀러, “기독교 전통에서의 웨슬리의 위치(1)”, 「세계의 신학」36(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1997 가을) 215. 
2) 같은 글, 213-4. 김흥규, “교회사에서의 존 웨슬리의 위치”(http://www.naeri.org)
3) 한국 교회 부흥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관점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4) 루터(프란츠 힐데브란트), 독일 경건주의(마르틴 슈미트, 클리포드 타울슨), 칼빈주의(조지 셀, 밀드레드 와인쿱), 고전적 구속 교리(캐논), 로마 가톨릭(맥시민 피에트), 청교도주의(호튼 데이비스, 존 뉴턴), 동방 교부(알버트 아우틀러)와 연관성과 바르트 신학(존 데쉬너), 전형적인 영국 국교회 목사(프랭크 베이커, 고든 럽, 폴 샌더스), 에큐메니칼 운동(콜린 윌리엄즈, 지오프리 웨인라이트), 은사주의 성령운동(로버트 터틀, 로렌스 우드), 해방신학(보니노, 제닝스), 사회경제윤리(더글라스 믹스, 마르크바르트)의 관점에서 연구되었다. 박창훈, “존 웨슬리와 “율법무용론자들””(호서대 연신원 학술발표문(2004. 10. **) 1. 테오도어 러년 편, 『웨슬리와 해방신학』, 변선환 옮김(서울: 전망사, 1987) 17-18. 알버트 아우틀러, “기독교 전통에서의 웨슬리의 위치(1)”, 「세계의 신학」36(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1997 가을) 213-4.  
5) 테오도어 러년, 『새로운 창조』, 김고광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9) 293. 
6) 테오도어 러년 편, 『웨슬리와 해방신학』, 변선환 옮김(서울: 전망사, 1987) 참조.
7) 랜디 매닥스 편, 『웨슬리 신학 다시 보기』, 이후정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2000), 존 캅, 『은총과 책임』, 심광섭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8) 참조. 
8) 테오도어 러년, 『새로운 창조』, 김고광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9) 참조.  
9) 미국 연합감리교회가 웨슬리의 정신에 따라 1972년 장정에서 감리교 신학을 구성하는 4가지 출처/기준을 명시하였다. 한인철, “사중표준”, 한국웨슬리신학회 편, 『웨슬리와 감리교신학』(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9) 28.
10) Hodgson, Peter C., Winds of the Spirit(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19-26을 참조. 하지슨은 장로교 신학자이다.(우리말로는 피터 하지슨,『기독교 구성신학』, 김영선․손원영․손호현 옮김(서울: 은성출판사, 2000)로 나와 있다.)
11) 한인철, “사중표준”, 한국웨슬리신학회 편, 『웨슬리와 감리교신학』(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9) 29.
12) 같은 책, 29.
13)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V, 3. 같은 책, 30.에서 재인용.
14) 버트너․차일즈, 『웨슬리 신학 개요』, 김운기 옮김(서울: 전망사, 1988) 14.
15) 존 캅, 『은총과 책임』, 심광섭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8) 230. 
16) 아우틀러에 의하면 웨슬리는 그리스 신학자들이 라틴계 신학자들 보다 복음을 더 깊고 치유적으로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한인철, “사중표준”, 한국웨슬리신학회 편, 『웨슬리와 감리교신학』(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9) 33.
17) Tillich, Paul, Systematic Theology, Vol.Ⅰ(Chicago: The Univ. of Chicago Press, 1951) 6.
18)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개신교, 아니 자기 교파의 전통이 아닌 것에는 무관심 또는 무지할 뿐만 아니라 이단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19) 일반적으로 3R (Reason, Revolution, Revival)의 시대라고 한다. 
20) 한인철, “사중표준”, 한국웨슬리신학회 편, 『웨슬리와 감리교신학』(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9) 34.에서 재인용.
21) 버트너․차일즈, 『웨슬리 신학 개요』, 김운기 옮김(서울: 전망사, 1988) 20.
22) 러년은 정통적 체험(orthopathy)라는 용어로 경험을 해석한다. 정통적 체험의 표시로 첫째, 하나님 안에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피할 수 없는 변혁이다. 셋째, 체험은 사회적이다. 넷째, 정통적 체험으로서의 신앙은 합리적이다. 다섯째, 성례전적이다. 여섯째, 목적론적이다. 테오도어 러년, 『새로운 창조』, 김고광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9) 225-33.  
23) 존 캅, 『은총과 책임』, 심광섭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8) 242.
24) 같은 책, 240.
25) 버트너․차일즈, 『웨슬리 신학 개요』, 김운기 옮김(서울: 전망사, 1988) 23-4. 
26) Langford, Thomas A. Practical Divinity: Theology in the Wesleyan Tradition(Nashville: Abingdon Press, 1983) 20.
27) 같은 책, 21.
28) 알버트 아우틀러, “기독교 전통에서의 웨슬리의 위치(1)”, 「세계의 신학」36(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1997 가을) 215. 
29) 토머스 랭포드는 웨슬리 신학의 중심 주제는 은총(성행, 의인화, 확증, 성화, 영화)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은총 안에 뿌리내리고 있고,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전통과 구별되는 웨슬리 전통의 독특한 것이 선행 은총이라고 본다. Langford, Thomas A. Practical Divinity: Theology in the Wesleyan Tradition( Nashville: Abingdon Press, 1983) 260.
30) 콜린 윌리엄즈, 하몬 스미스, 윌리엄 캐논, 스타키, 로버트 몽크, 크로우, 린드스트룀, 로버트 쿠쉬맨 등 웨슬리 신학의 권위자들이 선행 은총을 웨슬리 신학의 특이성이라고 증거한다. 변선환 아키브 편집, 『요한 웨슬리 신학과 선교』(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88) 17.
31) Outler, Sermons 85,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Works  3: 206-7. 테오도어 러년, 『새로운 창조』, 김고광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9) 38.에서 재인용. 
32) 이후정, “존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 한국웨슬리신학회 편, 『웨슬리와 감리교신학』(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9) 15. 
33) 정승훈은 웨슬리의 선행 은총과 칼빈의 성령의 숨은 사역이 많은 공동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305-6. 
34) 존 캅은 웨슬리에게 가장 중심적인 주제 중 하나가 은총에 대한 인간 책임의 관계라고 한다. 존 캅, 『은총과 책임』, 심광섭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8) 11.
35) 김홍기의 표현으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명
36) 송흥국, 『웨슬레 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5) 45, 김홍기, 『세계기독교의 역사이야기』(서울: 예루살렘, 1992) 171.
37) 변선환 아키브 편집, 『요한 웨슬리 신학과 선교』(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88) 27.
38) 이후정, “존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 한국웨슬리신학회 편, 『웨슬리와 감리교신학』(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9) 19. 
39) 김홍기,『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2000) 109.
40) 하나님의 형상과 새로운 창조에 대하여는 테오도어 러년, 『새로운 창조』, 김고광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9) 15-33.을 참조.
41) 테오도어 러년, 『새로운 창조』, 김고광 옮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1999) 137.
42) Outler, Albert C.  Evangelism In Wesleyan Sprit(Nashville: Tidings. 1971) 25. 김홍기, 『존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133.에서 재인용.
43) 김홍기,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 2000) 157- 165.  
44) 천박한 자본주의 경향이 농후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이 주어라가 실천되는 것은 아주 어려운 현실이다.
45) 김홍기, 『존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129-32.
46) 마르쿠바르트, 『존 웨슬리의 사회윤리』, 조경철 옮김(서울: 보문출판사, 1992) 235-240.을 참조.
47) 알버트 아우틀러, “존 웨슬리의 성령론과 영성 이해”, 「세계의 신학」30(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1996 봄) 216.
48) 같은 글, 2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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