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나타난 성령
1. 언어적 연구
구약성경에서 성령이란 명칭은 두 번밖에 나타나지 않는다(시 51:18, 사 63:10-11). 구약에서의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란 뜻으로 쓰인 ‘루아흐’(j'Wr, 루아흐가 하나님의 신이란 의미로 쓰인 횟수가 얼마인지에 대해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를 살펴보아야 한다. 루아흐는 바람, 호흡, 영(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란 의미로 쓰이는데 히브리어로 378회, 아랍어로 11번이다. 그런데 이 아랍어로는 다니엘에서만 나오는데 ‘바람’으로 2번, ‘마음’으로 4번, ‘영’으로 5번(단 4:5, 6,15, 5:11, 14)쓰였다. 히브리어로 루아흐가 쓰인 가운데 루아흐가 어떤 뜻으로 쓰이고 하나님의 신으로 쓰인 경우가 몇 번인가는 학자들에 따라 다르다. 루아흐가 여러 문맥에서 가질 수 있는 의미의 차가 최소한 33가지가 된다고 밝히기도 한다.
구약에서의 루아흐를 포괄적으로 분류하면 자연계에서 움직이는 기상학적 현상으로서의 루아흐, 사람 안에서 작용하는 루아흐, 하나님의 루아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나타난 루아흐 모두가 다 동인動因은 하나님으로 되어 있다.
1) 자연계의 루아흐(j'Wr) 바람
루아흐가 가벼운 산들바람, 서늘한 바람을 지칭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으나 창세기 3:8, 아가 2:17, 4:6 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창세기 3:8으 “날이 서늘할 때”와, 아가 2:17, 4:6의 “날이 가울고”는 히브리어의 원문대로 하면 ‘낮바람’ 혹은 ‘저녁바람’으로서 서늘한 바람을 뜻한다.
바람을 뜻하는 루아흐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것으로서 강한 힘을 동반한 강력한 바람을 뜻한다. 창세기 8:1의“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에서 보듯이 바닷물을 말리는 바람, 출애굽기 15:10의 “주께서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흉융한 물에 납같이 잠겼나이다”에서 보듯이 바다를 흉융케 하는 바람, 민수기 11:31의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친 곁………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에서 보듯이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에 떨어지게 한 바람, 열왕기 상 18:45의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에서 보듯이 먹구름을 몰고 와 폭우를 쏟아 놓는 바람. 이사야 40:7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그위에 붊이라”에서 보듯이 풀을 말리고 꽃을 시들게 하는 바람등이다. 이처럼 강한 바람을 뜻한다.
또한 여기의 루아흐는 방위方位를 표시하는 단어들과 결합하여 동풍,, 서풍, 북풍들의 방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움직이는 가운데 있고 힘을 지니며 다른 것을 움직이도록 하는데 이 루아흐를 자세히 꾸미는 말이 붙어서 방향을 가리키거나 바람이 불 때 일어나는 세찬 힘을 표현한다.
2) 사람 안에서 작용하는 루아흐(숨)
입이나 코로 들어마시고 내뿜는 ‘숨’이 루아흐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것의 징표 곧 생명의 상징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상을 조롱할 때 그 우상들 속에 루아흐가 없음을 지적한다(렘 10:14 – “그 속에 생기가없음이라”, 시 135:17 –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도 없나니”.). 피조물로서의 생명체는 이 루아흐를 받음으로 숨쉬는 생명체가 된다. 이런 종류의 루아흐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창조의 결과이다(슥 12:1, 욥 27:3, 사 42:5). 바싸르(rc;B;,육체)안에 있는 루아흐는 하나님께서 지어내셨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보살피시는 것이므로 루아흐는 곧 하나님의 루아흐로 파악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루아흐는 바싸르를 떠나버린다(시 104:29-30, 욥 17:1, 전 12:7, 시 31:5).
3) 하나님의 루아흐
(1) 몰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루아흐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자기에게까지 온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야웨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 삼으심을 알려 준 사무엘은 사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가지 악기를 앞세우고 예인하며 내려오는 한 무리의 예언자들을 만날 터인데 “그러면 너의 위에 야웨의 ‘루아흐’가 덮쳐서 네가 그들과 함께 예언하고 다른 사람으로 달라지리라”(삼상 10:10).
글의 흐름으로 보면 야웨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정하셨음에 이런 경험을 통해 확실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한편으로 야웨의 ‘루아흐’가 사울로 하여금 몰아경(황홀경恍惚境 , estasy)에 빠져 별난 행동을 하게 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나중에 사울에게서 달아난 다윗이 사무엘에게 가 있는 것을 사울이 알고서 다윗을 잡으러 군졸들을 보냈는데, 이들이 사무엘을 우두머리로 예언자들이 예언하는 것을 보자 그들 위에 하나님의 ‘루아흐’가 있게 되는 일이 벌어져서 그들도 예언하게 되었고(삼상 19:20), 같은 일이 두 번 더 일어난 다음(삼상19:21) 사울이 직접 갔을 때 사울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났다(삼상 19:23-24)는 구절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역시 영의 감화를 받아 입은 옷을 찢어 버리고 쓰러져서 하루 밤낮을 벌거벗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는 몰아경, 황홀경 속에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 것이다. 그의 뜻이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만나시기로 한다.
(2) 창조와 보존의 루아흐
창조의 영으로서의 루아흐는 구약성경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는 생명을 창조하시며 보존하시는 니쉬마(am;v]nI, 숨을 뚯함)와 함께 사용한다. 루아흐는 태초의 창조적 힘으로 그 때부터 벌써 작용하고 있었다.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루아흐, 엘로힘)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하는 창조하는 ‘말씀’과 나란히 평행구를 이루어 나타나는데서 창조와 관련된 루아흐의 기능을 볼 수 있다. 또한 시편 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에서 때로는 니쉬마(am;v]nI, 기운)와 평행구를 이루며 창조의 기능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피조물 전체가 혼돈되고 질서도 없고 생명도 없었으나 그의 루아흐의 동참으로 말미암아 움직임이 생겼고 질서와 생명이 생겼다. 생명이 없던 천지에 야웨 신의 입김이 때로는 바람으로, 때로는 공기로,때로는 입김으로 약동하심에 따라 생명이 생기고 운동이 생기에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계속적 창조(creation continue)는 유에서 유, 기존의 사태에 대하여 새로운 사태로 변하게 하거나 새로운 질서나 생물을 창조하신다는 것이다.
(3) 인간의 삶의 힘으로서의 루아흐
하나님의 루아흐는 모든 생명,인간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이 소생한 곳에는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언급한다. 하나님의 루아흐는 아주 명백하게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을 그의 생명 안에서 어떻게 체험하는가를 서술하고자 할 때 그는 ‘생명력’, ‘생명이 호흡’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하여 창세기 6:3이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영’에 대하여 6:17이 ‘생명의 영’에 대하여 말한다. 또한 창세기 7:22은 두 가지 표현을 종합하여 ‘생명의 영의 입김’이라고 말한다. 그 반면 2:7은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코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으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기에 생명은 결코 인간의 소유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소유 또는 하나님의 행위, 하나님의 활동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선물이며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은 이 생명을 주시는 분을 하나님의 루아흐라 한다.
(4) 말씀을 주시는 루아흐
하나님의 루아흐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고나 교훈을 강제로 말하도록 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발람이 발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부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은 하나님의 루아흐가 그에게 임하여 그것을 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다(민 24:2). 발람의 신탁내용(민 24:3-9)는 축복선포이다. 여기에는 무아지경의 황홀상태에서 옷을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눕는 흥분된 동작과는 대조가 되는 내용이 있다. 사무엘 하 23:2-7의 다윗의 마지막 말 역시 야웨의 루아흐가 다윗을 빙자하여 한 말이다. 아마새가 다윗에게 말할 때 그 말 역시루아흐가 삼십인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대상 12:18)하여서 말하게 한 것이다. 고대에는 이런 힘은 주로 예언자들에게 작용하였다(참고 슥 7:12, 느9:30).
(5) 각종 능력과 기술을 주는 루아흐
전술능력, 행정 및 경영상의 수완 등도 하나님의 루아흐와 관련되어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사들은 여호와의 루아흐를 받고 전쟁에 나가서 싸울 때 승리할 수 있었다. “여호와의 루아흐가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웃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삿 3:10, 이밖에도 6:34, 11:29, 13:25, 14:6, 19, 15:14참조) 왕에게로 이런 루아흐가 임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예를 볼 수 있다(삼상 11:6). 메시야에게 있을 각종 행정 및 경영상의 능력 역시 하나님의 루아흐로 주어진다(사 11:2).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기술과 재능 역시 하나님의 루아흐를 받은 결과로 얻게 되는 것이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보여 준 금은세공, 보석깍아 물리기,목각기술, 건축술, 가구제작술, 수예, 직조, 옷 만드는 기술, 각종 향기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모두 하나님의 루아흐를 통해서 충만하게 된 것이다(출 31:3, 35:31).
언어적 고찰에서 분명해졌듯이 루아흐는 본질적으로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자연계의 대기권 안에서 기압의 변화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인 바람, 사람에게 본래부터 주어진 생명력 및 각종 정서를 나타내는 자리, 그리고 하나님이 부리시는 루아흐 이상 셋이다.
“구약성경에서 루아흐 야웨는 분리되거나 구별된 실체(entity)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즉 하나님의 뜻 안에서 도덕적, 종교적 목적을 성취하는 인격적 활동이다. 하나님의 루아흐는 살아 있는 모든 육신적 생명의 근원(the source)이다.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물질 세계에 생명을 주는 활동적 본체이다(창 2:7). 또한 그것은 사사들이든지, 예언자이든지, 왕이든지 상관없이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세우는 종교적 제반 관심사의 근원이다. 루아흐 야웨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창조 행위를 말하는 용어로서 그것은 비록 논리적인 분석을 무시한다 할지라도 항상 하나님의 행위이다.”
2.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성령
루아흐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역사 초기와 포로 후 공동체의 기록인 느헤미야와 역대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사의 위기 순간에 야웨의 신의 활동이 두드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특별히 포로기를 전후로 하나님의 신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면서 하나님의 신에 대한 이해에 전환점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인간의 루아흐는 처음부터 대략적으로 인간의 네페쉬( , 영혼)였다(특별히 창 2:7). 최초에 하나님의 루아흐는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이해되었고, 능력적으로 이해되었다(삿 14:6, 19, 참조). 이스라엘이 부상하던 때에 나타났던 초기의 지도력은 루아흐, 곧 신비스러운 상태의 능력을 특별하게 나타내는데 있었다. 즉 사사들이 그러했고, 사무엘(삼상 9:9, 18:19, 19:20,24). 그리고 사울(삼상11:6, 참조 10:11-12, 19:24)이 그러했다.
이후 시기에 다양한 발전들이 나타나는데 루아흐와 네페쉬 사이의 구별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의 루아흐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연관을 보유하여 인간의 존재의 ‘보다 높은’, 또는 하나님을 지향하는 차원을 나타내는 반면에(예 겔 1:1, 5 시 51:12) 네페쉬는 점점 더 인간의식의 ‘보다 낮은’ 면들, 즉 사람에게 존재하는 인격적이지만 단순한 인간적 생명, 인간의 욕구와 정서와 열정의 소재지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바벨론 포로 전前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고대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영감을 하나님의 영에게 돌리기를 이상하게 주저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감을 묘사하는데 하나님의 말씀(특별히 암 3:8, 렘20:9)과 하나님의 손(사 8:11, 렘 15:17)에 대해 말하는 것을 택한다. 바벨론 포로시기와 그 이후 시기에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새롭게 두드러지게 되었다. 예언의 영감자로서의 신적 루아흐의 역할이 다시 주장되었다(잠 1:23, 참조,사 59:21= 영과 말씀이 함께 나옴, 겔 2:2, 3:1-4, 22-24=영, 말씀, 손이 함께 나옴). 그리고 다른 시기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영을 창조의 역사와 연관시키는 것이다(창 1:2, 욥 26:13, 시 33:6, 104:30). 시편 139:7에서 루아흐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임재를 나타낸다. 중요한 사항은 예언자 그룹에서 하나님의 루아흐를 종말론적 견지로, 즉 종말의 능력이며 새 시대의 보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증대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새로운 창조를 성취하실 것이다(사 32:15, 4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