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7-06 17:44
아브라함이 데라가 즉은 후(205세)에 하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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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676  

 

Question
  
사도행전 7장에서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진 스데반의 마지막 연설내용이 창세기의 내용과 맞질 않아서 문의드립니다. (행 7:4)에서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은 후에 그 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옮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은 아래의 창세기 구절과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창 11: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 11:32) 데라는 이백 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을 낳고,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의 나이가 75세였다면, 그때에 데라의 나이는 145세가 될 때입니다. 이때는 데라가 죽기 전 60년 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데라가 즉은 후(205세)에 하란을 떠났다고 말하고 있는 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Answer

  
이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입장을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자유주의 학자들의 입장 
그들은 스데반이 실수를 해서 사실을 잘못 인용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성경의 기록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불하기 때문에, 복음주의 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2. 복음주의 학자들의 입장 

1) 카일-델리취의 입장 
카일-델리치의 경우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사라와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난 때에 데라가 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후에 데라는 60년 정도 더 살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때가 70세이며, 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때는 데라의 나이 145세(아브라함의 나이 75세)였고, 그 후에 데라가 약 60년 정도 더 살다가 하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스데반이 말한 것("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다"는 말)과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카엘-델리취의 경우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는 데라가 죽었다는 말은 그가 육신적으로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데라가 죽었다는 말은 데라의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쇠하여 가족에 대한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 때에 이미 가족에 대한 데라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사실상 아브라함이 가족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데라로부터 불러내어서 인류 구원을 위한 새로운 지도자로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다는 말을 데라의 정신적 육체적 영향력이 모두 주도권을 상실한 후에 아브라함이 실제 가정의 계승자가 되어 새로운 사명을 띠고 하란으로 갔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 아처의 견해 
이 견해는 제가 이미 앞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는 하란을 아브라함의 형으로 보고 아브라함이 태어난 때를 보다 후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창 11:26)는 기록을 보고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때가 그의 나이 70세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처는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는 70세에 데라가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동시에 낳았을 가능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란이 데라의 장남이며, 따라서 데라가 70세에 낳은 사람은 장남인 하란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데라가 아브라함과 나홀을 낳은 것은 보다 후대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데라가 아브라함을 낳은 때는 그의 나이 130세였으며, 205살까지 살다가 하란에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으며 그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견해 역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란이 아브라함의 형이라는 말과, 아브라함을 130세에 낳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매우 설득력을 가진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행전의 증거> 
1) 성령과 지혜에 충만하여 설교한 스데반의 설교의 신뢰성 인정(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다는 증거) 

2) 성경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그의 증거가 틀렸다고 비난하지 않음. 

이러한 두 가지 증거는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스데반과 유대인들이 모두 알고 있는 아브라함에 대한 유대인의 전승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기록된 구약 성경과 구전으로 전해오는 여러 가지 전승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에 대한 스데반의 증거가 잘못되었다면, 율법에 능통한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 외의 증거> 
미드라쉬나 유대인의 역사 기록을 보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참고 자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드라쉬와 같은 책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 이야기나, 아버지 데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많은 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구전으로 전해오는 전승이기 때문에 성경만큼 신뢰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추측하는 일에 좋은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의 역사 기록을 보면 위의 문제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중에서 몇 가지 자료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요셉푸스는 가장 유명한 유대 역사학자 중에 하나입니다. 그가 쓴 유대 고대사나 유대 전쟁사는 유대 역사책의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가 쓴 유대교대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람에게는 두 형제 나홀과 하란이 있었다. 하란은 아들 롯과 두 딸 사래와 밀가를 낳고 우르라고 부르는 갈대아 도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이 곳에는 그의 기념비가 남아 있다. 이들은 조카들과 결혼했다. 나홀은 밀가와 결혼했고, 아브람은 사래와 결혼했다. 갈대아를 미워한 데라는 하란의 죽음을 슬퍼하여 가독들을 데리고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20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유대교대사 6장 5절)." 

이 기록을 보면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유가 나오고, 나홀과 아브람이 형의 딸, 즉 조카인 밀가와 사래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라와 아브라함의 나이는 10살 차이입니다. 이는 이삭을 낳았을 때에 아브라함 100세, 사라 나이 90세였던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하란의 딸인 사래가 아브라함과 불과 10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형인 하란이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조카인 롯과도 큰 나이 차이가 없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뒤에 요셉푸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형의 아들이요 아내 사래의 형제인 롯을 야자로 맞아들였고, 75세의 나이에 갈대아 땅을 떠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 곳에 거했으며, 가나안을 후손에게 물려주었다(유대교대사 7장 1절)." 
이 글을 보면 아브라함이 롯을 양자로 받아들인 이유가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아브람이 하란의 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을 보면 이 내용은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스대반의 설교 내용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아처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의 오류를 전제로 하는 자유주의 학자들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입장을 받아들이면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오류 투성이인 고대문서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이렇게 성경의 숫자와 연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논의하는 것은 성경 자체의 내용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개인적으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했던 스데반의 설교 내용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들이 스데반의 설교내용을 지적하지 않은 것도, 스데반의 설교 내용에 큰 하자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카일-델리취의 견해가 맞는지 아니면, 아처의 견해가 맞는 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을 받아들일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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