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7-28 12:53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의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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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870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의 규명

 

 성경의 내용을 분석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고 그 능력을 잘못 사용하였을 때는 책임을 물으셨다. 만약 인간이 악을 분별하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악에서 돌이키라”, “거룩하게 살라” 등의 성경의 권고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천국의 상급은 인간이 절대선絶代善이신 하나님을 따른 것에 대한 보상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선善을 택했을 때, 즉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이 주어진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온 우주의 주인이시다. 아울러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관여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움직인다는 것이 예정론의 개략이다.

 

예정과 자유의지의 논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 논리적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닌가를 반문한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인간이 다른 선택을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인 예정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도 예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이상의 사건들에 대한 대응이 달라진다. 또한 삶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어느 하나는 배척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바울은 예정과 자유의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빌 2:12-13, 각주참조) 예정과 자유의지가 서로 조화를 이룬다면 그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을 정리하면 한 문장으로 예정은 창조 섭리라는 것이고 자유의지는 인간의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예정이 창조 섭리에서 드러나는 주제라는 것을 직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려고 계획을 하셨을 때 인간의 창조 계획이 예정되어 있었다면 예정이 창조 섭리 가운데서 드러나는 주제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예정을 논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성경이 예정에 기초하고 있는가의 사실 여부인데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예정의 전모全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 전능, 전지, 섭리, 시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의 주제들을 논해야 하지만 논점에서 일탈하지 않고 핵심을 추리기 위해서 이런 주제들은 관련 부분에서 논하기로 한다.

 

예정이 창조 섭리에서 드러나는 주제라면 자유의지는 인간의 구성요소에서 드러나는 주제이다. 자유의지의 핵심은 인간이 로봇이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스스로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면 인격적 존재가 아닌 기계, 즉 로봇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인간의 필수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6일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창 1:26, 外 각주참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과 같이 인격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이지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도 인간을 조종하거나 통제하거나 억압,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관계의 원리를 이해한다면(자세한 것은 회복시리즈 ⌜영의 원리⌟ 영의 원리 10. 관계의 원리를 참조하라.) 인간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위한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로봇과 인간의 차이는 인격의 유무에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로봇이 아니라는 것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인격의 핵심적 요소인 자유의지에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즉 선과 악을 분별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로봇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인간의 구성요소라는 것이 분명하다.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은 간단하게 규명할 수 있다.

 

예정은 창조 섭리에서, 자유의지는 인간의 구성요소에서 드러나는 주제라면 예정과 자유의지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만약 두 개념이 상충된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 속으로 들어간다. 창조 섭리 가운데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예정 가운데 자유의지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구성요소인 자유의지가 창조 섭리인 예정론과 서로 상충되고 대립된다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룰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간다는 것은 예정 가운데 결정된 어떤 일을 인간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이 땅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이루어 간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계획인 예정과 인간의 구성요소인 자유의지가 상충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예정을 이 땅에서 구현할 수 있겠는가? 예정과 자유의지는 상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었기를 바란다.

 

지금 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또 다른 하나는 구원의 대전제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인 예정을 이루어가는 인간의 구성요소로써의 그 기능이 있는데, 피조물의 구성요소를 창조 섭리에 올려놓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창조 섭리인 예정은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영역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예정하였을 때 인간은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예정의 영역에서는 고려하지 않았으며 개입시키지도 않았다. 즉, 예정에는 인간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정을 논할 때 인간의 구성요소인 자유의지는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에 예정과 자유의지를 평행선상에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정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자유의지는 인간의 영역이다. 이렇게 예정과 자유의지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서로 관점을 다르게 해서 본다면 예정과 자유의지는 전혀 상충되지 않는다.

 

바울은 예정도 인정하고 자유의지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예정과 자유의지가 서로 상충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율법을 놓고 생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망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과 같다. 율법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생명이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사망이다.(자세한 것은 회복시리즈 ⌜성경적 구원⌟ 03. 율법과 구원을 참조하라.) 이렇게 율법을 보는 관점에 따라 극과 극의 결론을 도출하듯이 예정과 자유의지도 하나님의 입장과 인간의 입장에서 관점을 달리해서 보아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서 예정과 자유의지의 논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자동차에 비유하여 설명하면 예정은 엔진Engine이고 자유의지는 트랜스미션Transmission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 즉 성령님의 인도인 것이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 엔진은 동력기관이고 트랜스미션은 동력을 전달하는 기관이다. 엔진의 동력을 바퀴에 전달하여 움직이게 하는 것이 트랜스미션이듯이 하나님의 섭리인 예정, 즉 엔진을 움직이게 하는 것, 예정을 이루는 것이 트랜스미션, 즉 자유의지인 셈이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서로 조화가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다. 서로 분리되면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정과 자유의지는 서로 필요를 채워주는 상호보완관계에 있는 개념들이지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창조 섭리인 예정과 인간의 구성요소인 자유의지의 성격이 규명되면 예정과 자유의지의 이해는 별 어려움이 없다. 만약 성경의 내용이 저들의 논리와 같이 난해하고 어렵다면 무식한 할머니들은 한 명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저들은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을 규명하지 못하고 논리의 도그마에 빠져 있다. 창조 섭리인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동일선상에서 관찰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예정과 자유의지는 관점이 다르고 그 주체가 다르다. 인간은 조물주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것이고 조물주의 의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 창조의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한다면 예정을 논하면서 자유의지를 동일선상에 놓고 논지를 펼치는 것은 주와 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자유의지의 기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의 규명은 신학의 난제를 푸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특히 구원의 실질을 밝히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건이다. 지금 칼빈주의의 문제는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 규명을 간과한 것에서 비롯된다. 칼빈주의의 실패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예정은 창조 섭리의 문제이고 자유의지는 인간의 구성요소라는 서로 다른 관점의 성격을 규명하지 못한 데서 논쟁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상호보완적 개념을 대립시켜서 묶어 놓고 전체를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개념들을 모두 분리시켜 놓고 하나하나 기능을 따졌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바보들의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 규명은 신학의 총론적인 부분에 해당한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논쟁은 총론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론을 논한 결과라는 것을 앞에서 설명하였다. 총론을 정리하지 못하고 각론을 연구한다는 것은 학습의 기술면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보니 가닥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신앙의 강요Ⅰ- 칼빈의 5대 교리 무엇이 문제인가 중에서... 브라이튼 박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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