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4-03 06:11
[3]목사의 금기사항 2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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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3,386  

18.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말라.(2)

"(시115: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일 가운데 이런 일들도 있다. 내가 안수를 해서 장로나 안수 집사나 권사로 세운 사람, 결혼 주례를 해서 부부가 되게 한 사람, 개업식에 참석해서 축복 기도를 해 주었더니 장사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경우, 장례식을 해 주어 그 집안에 잊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경우, 내가 세례를 베푼 사람 등등--- 목사의 매사에는 "내게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스스로 '은인 의식'이 깔려 있다.


많은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견딜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이런 '은인 의식' 때문일 수가 많다. 다시 말하면 이런 '은인 의식'이 없으면 전혀 고통을 당하지 않을 일도 이 의식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는 말이다. 이런 '은인 의식'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철저한 종의 의식을 망각한 때문에 생긴다.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이나 내 경우에 흔히 "내가 장로로 세웠는데, 그 놈이 나를 배신해????"라는 말을 듣는다. 어떻게 목사가 성도를 장로로 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장로는 성도들이 투표를 하고 절차에 따라 인수를 해서 장로가 되게 하는 것이며 이 일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알아 하시는 일인데 목사 자기가 장로를 세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혼 주례도 마찬가지며 장례식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되면 목사들은 흔히 "내 설교에 은혜를 받고 변화가 되었으니 나는 그 성도의 영적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내가 그 기도원에 데려다 주었으니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변화되니 성도의 대부 정도로 스스로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성도들에게 무례한 생각을 하게 되고 자기를 그 성도의 지배자 내지 평생 나에게 은혜 갚아야 하는 사람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은혜 받은 성도가 자기와 상관이 없는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신앙 행위를 하게 되면 큰 배신감을 느끼고 고통을 당한다.


친구 목사가 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내가 그 사람을 장로로 세웠는데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그 사람을 주례해서 결혼시켰는데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그 아버지 죽었을 때 어떻게 했는데 정말 사람으로서는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내게 세례를 받은 사람인데-----]


이런 말들을 흔히 들었다.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는 도적들이나 하는 말을 목사들은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이 지껄이는 것이다. 그런 사고 방식과 행동을 하고 있으니 교회에서 쫓겨 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라. 한가지도 목사가 한 일은 없다. 설혹 무엇을 했다고 해도 그 일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모든 일에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그 일부분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종으로 심부름을 한 것이지 목사가 한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빌딩을 건축하는데 삽질을 하며 일군이 되어 일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 빌딩은 내가 지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실없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장구한 섭리와 역사 하심의 극히 일부분에 잠깐 무엇인가를 해 놓고 마치 자기가 그 성도의 모든 것을 해 준 것인양 은혜 운운하며 그 하잘 것없는 일로 인해 그 성도가 평생 자기의 신복이나 되는양 생각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미련한 착각인가를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목사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들인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착각이요 정신 이상이 아닐 수가 없다.


[내가 기도해서 그 사람의 병이 고쳐졌는데 그럴 수가 있는가?] 
[그렇게 사랑을 해 주었는데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자식 같고 누이 같고 친구 같았는데-------] 
[평생 그렇게 기도를 해 주었는데 그럴 수가 있는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도적 목사들이 받아야 마땅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벌을 너무 많이 받았다.


▲ 목사의 금기 사항


19. 어떤 경우에도 돈 이야기하지 말라.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 
"(막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오늘의 모든 사람들은 돈에 대하여 예민하고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목사가 성도들에게 돈에 대한 말씀 즉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가르쳐 바르게 순종할 수 있도록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한 설교나 가르침은 대단히 신중하게 해야 한다.


우선 성도들에게 돈 이야기를 하지 말라. 11조도 말하지 말고,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대해서도 특별히 힘을 주어 광고를 하지 말고 아무리 굶어 죽게 생겼어도 성도들에게 돈을 꾸어서는 안된다. 여하튼 돈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는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백배 더 낫다. 특히 교회 재정이 건축이나 다른 일로 어려울 때 돈을 빌려 달라고 직접 말하지 말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목사의 목회 생명을 스스로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11조는 교회 생활을 몇 달만 해도 잘 알게 된다. 특별히 광고를 하고 설교를 하지 않아도 매 주일 드려지는 11조에 대한 기도로 인해 아주 쉽게 알려진다. 성도가 11조를 하게 하기 위해서는 말 보다 11조를 할 수 있는 믿음을 그에게 주십사 하는 목사의 기도가 우선이다. 기도만 하고 기다려야 한다. 11조, 기도, 전도, 교회 섬김의 기초적인 교회 생활을 강조했을 때 시험을 당하는 사람은 그런 일들이나 다른 성도의 의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1조를 말했을 때 시험을 받는 사람은 11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11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럼으로 그가 그런 기초적인 의무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목사는 기도를 해 주며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말하고 가르치려면 같은 입장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가르치게 하라. 11조를 드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고 기도나 전도를 해서 받은 바 은혜를 간증하게 하라. 그리고 동행하게 해서 가르치는 것이 좋다. 
나는 성질이 급하고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원색적이여서 돈 이야기가 성도들에게 해롭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흔히 강단에서 11조나 기도에 대하여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곤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기대와 정 반대였다. 성도들, 특히 그런 하나님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는 어린 성도들은 모두 시험을 당하여 교회를 나오면서도 죄인 인양 얼굴을 들지 못하고 결국 교회를 떠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고도의 지혜를 가져야 한다. 죽을 먹고 우유를 먹어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맛이 있다고 오징어를 먹이고 불고기를 먹이면 탈이 나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롬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라고 하셨고 "(고전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라고 하셨다.  

성도들의 경조사에 대해서도 지나친 광고와 강요는 절대 금물이다. 성도들은 자기와 경조 사를 당한 성도와의 개인적 관계에 따라 경조사에 참예를 한다. 그런데 목사가 자기를 표준하여 경조사 참여와 도움을 강요한다면 성도들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목사가 그렇게 강요하지 않아도 개인간의 관계에 따라 더욱 잘하는 사람도 있고 무심한 사람도 있다. 
목사는 성도들에게 돈 이야기를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교회를 개척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많았다. 교회가 어떤 일로 긴급한 자금이 필요한데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돈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래서 광고 시간에도 돈 이야기를 하고 개인에게도 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목사에게 돈 이야기를 듣는 성도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집에 돈이 있는 사람은 자기 집에 있는 돈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것을 안 내 놓을 수도 없고 내 놓을 수도 없는 갈등을 겪게 된다. 그리고 혹시 하나님의 일을 돕기 위해 돈을 교회에 꾸어 줄 경우에 이자를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자니 아깝고------ 더 나아가서는 그 돈을 회수하자니 죄 짓는 것같고 헌금을 하자니 헌금하기는 너무 힘이 들고----- 그래서 시험에 든다.


우리 교회가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울 때 목사의 광고를 듣고 사업 자금을 급히 돌려 가져 온 집사가 있었다. 그것도 그 집사의 아내가 남편에게 강요해서 가져 온 돈이 였다. 그렇게 해 좋고 그 돈을 메꾸기 위해 남편은 상당히 고생을 했다. 나는 그들 부부 사이에 이 돈 문제로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얼마 후 그 돈을 상환하려 했을 때 남편은 이자 없이 원금만 달라고 했는데 아내는 그 돈을 헌금하겠다고 했다. 이 일로 그 부부는 대판 싸움을 벌렸고 나는 그 돈을 돌려주기는 했지만 정말 미안하고 괴로웠으며 그 착한 부부와의 사이에 영 아물지 않는 상처가 생겨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들에게 돈 이야기를 부탁하지 못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지만 결국 그들은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 버렸다.


목사가 만부득이 성도들의 돈이나 성도들이 보증을 선 돈을 쓸 경우에는 반드시 그 성도가 교회에 꾸어 준 돈 때문에 근심하지 않도록 미리 미리 은행의 이자 보다 더 좋은 이자를 지불하고 약속한 날짜와 기한 내에 반드시 상환해야 한다. 그럴지라도 아에 말하지 않고 꾸어 쓰지 않는 것만 못하다. 나는 교회에 돈을 꾸어 주고 시험을 받지 아니하는 성도를 거의 보지 못했다.


성도들에게 돈을 꾸어 하나님의 일을 할 바에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셔서 하도록 하실 때까지 기다리라. 아니면 우리 교회 성도가 아닌 사람에게 돈을 꾸어 쓰도록 하라. 만일 기한 내에 못 갚아 욕을 얻어먹는 일이 있어도 교회는 지장이 없다. 목사 개인이 욕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20. 목사인 자기와 같이 되라는 요구를 하지 말라.

"(빌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눈 높이 교육이라는 것이 있다. 대단히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자기 자세를 어린아이만큼 낮추어야 교육적인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말이다. 내가 대학원에서 설교학을 배울 때 설교학을 가르치는 목사님이 설교의 수준을 초등 학교 4학년 정도로 낮추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무식한 할머니 권사가 설교를 듣고 이해하는 수준의 설교가 아니면 그 설교는 실패한 것이라고도 했다. 설교 뿐 아니다. 목사의 모든 목회 사역들이 교회 안에 가장 어린 성도들의 수준에 맞도록 자세를 낮추는 지혜와 슬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정말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자세를 낮추지 아니하면 절대 목회에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이 점에 있어서도 남 못지 않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조언이나 충고를 듣지 못했다. 목회가 어려울 때마다 그 원인을 분석하고 찾아보았지만 마치 미궁을 헤메이는 것같아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이제사 지세를 낮추지 못한 것이 목회의 어려움을 가져 온 하나의 중요한 이유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알아 얼마나 목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 거의 일손을 놓고 있는 것을-------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11조만큼 또는 그 보다 더 많은 헌신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것은 레27:2-8에 말씀하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너의 정한 값은 이십 세로 육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 오 세로 이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십 세겔로 하며 일 개월로 오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은 오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은 삼 세겔로 하며 육십 세 이상은 남자이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 하고 여자는 십 세겔로 하라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라는 말씀에 따라 정성을 다한 서원 예물이 였으며 아이들을 위한 날마다의 기도와 모든 예배 참석시키기 등 온갖 정성을 다해 믿음으로 양육하고 키웠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여서 과히 이를 말이 아니였다. 이런 자식들이 축복을 받는 일에 대한 비결(?)을 우리 성도들이 듣고자 했다. 특히 과외도 한 번 시키지 않았는데 어떻게 대학에 들어갔는가를 궁금해 했다. 그래서 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이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기르는 방법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여 설명했는데 이를 듣다 못한 한 집사가 내게 [목사님 그런 이야기 그만 하십시오. 목사님은 하셨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아주 기분 나쁘게 말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의 자녀들이 공부 잘해서 대학 들어가는데 근심이 없으라고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했던 것인데 그런 소리를 듣자 몹시 기분이 나빴다.  

그 말에 대하여 서운해하는 나를 본 다른 집사가 [목사님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목사님의 말씀이 다 바른 말씀 인줄을 알지만 그렇게 못하는 성도들은 하기 싫다기 보다는 할 수가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십시오.] 내가 어리석었다. 집사들만도 못했다. 감당하지 못할 요구를 계속 강조하니 듣는 성도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지만 하지 못해 시험에 들고 믿어지지 않으니 자기 믿음 없음에 낙심한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목사가 아닐 수 없다. 자기 교회 성도들의 신앙 수준을 그렇게 몰라서 어떻게 성도들을 양육하며 성장시킬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만일 주님께서 당신의 입장과 수준에서 우리들을 보셨더라면 인간은 한 사람도 구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수 백번 설교하고 그 은혜에 감격해 하면서도 목사라는 인간이 자기를 낮출 줄 모르고 모든 성도들에게 자기 수준이 되어야 성도가 되는 것처럼 자기를 표준 해서 그렇게 되기를 강요했으니 그 말과 그 가르침을 듣는 성도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을 모르고 양을 치는 목자 ― 양들에게 사람이 되라고 한다. 
고기를 모르고 고기를 잡는 어부 ― 고기들을 보고 그물을 찾아 들어오라고 한다. 
성도를 모르는 목사 ― 목사인 자기와 같은 성도가 되라고 강요한다.


기도도 나와 같이 하고 헌금도 나와 같이 드리고 예배도 나와 같이 드리고 전도도, 헌신도 내가 하듯이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성도들은 얼마나 신앙적 좌괴감과 좌절을 받았으며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아니면 목사님은 목사님이니까 의례하는 말씀이고 우리는 우리들대로 신앙 생활한다는 겉돌기식 말씀 듣기를 했을까? 그러면서도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는 처음 주님을 영접했을 때 11조를 드렸던가? 주님을 영접한 후 3년만에 새벽 기도를 나가기 시작을 했고 5년만에 11조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전도는 평생 부담스럽고 하기 싫은 일이 였다. 그런 인간이 이제 겨우 신앙 생활 한지 1년도 안된 성도들을 불어 모아 전도를 시키고 헌금을 하라 하고 기도를 나오지 않는다고 질책하고 예배에 빠진다고 책망한다. 마치 그들이 아주 큰 죄를 지은 죄인인양 몰아 세우는 것이다.


그럴 일이 아니다. 어린아이를 기르듯, 어린양을 돌보며 키우듯 사랑해 주고 아껴 주며 위해 기도해 주며 가르쳐 은혜를 받도록 해야 한다. 자라서 어른이 되면 사랑할 줄도 알고 섬길 줄도 알며 하지 말라고 말려도 11조도하고 기쁨으로 전도도 잘한다. 성도들이 성장해서 성전 건축을 감당할 수 있으면 스스로 알아 성전 건축을 하자고 하고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것이다. 이와 같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심고 가꾸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간과하고 속성으로 양육하여 슈퍼 성도를 만든 후에 일을 시키려고 하면 그 양이 죽어 버린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성도는 그렇지 않다. 
목사는 세상에 다른 직업이 없는 전문직이지만 성도들은 그렇지 않다. 
목사는 목회가 생업이요 교회가 삶의 터전이지만 성도는 그렇지 않다. 
목사는 성경의 지식이 많고 하나님의 일에 많은 생각을 하지만 성도는 그렇지 않다. 
목사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사역적 소명)을 받은 사람이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목사는 교회를 자기 집으로 생각하지만 성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집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어느 교회든 목사 보다 더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 드물다. 목사는 특별한 경우의 성도가 아닌 일반적인 성도들보다 훨씬 더 많은 헌금을 드리면서 자기 수준의 헌금을 하도록 성도들에게 말하고 요구한다. 목사가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은 교회가 바로 자기 생명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다. 특별히 목사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 그 교회에 가지는 애착은 절대적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교회가 있어도 자기 교회 이외의 교회에 대해서는 한눈을 팔지 않는다. 즉 자기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다닐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목사가 자기 교회 사랑하고 잘되기를 위해 기우리는 노력과 정성은 가히 필사적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헌금도 하기 때문에 목사는 전 재산이나 모든 소득을 아낌없이 하나님의 교회 즉 자기 교회에 바치지만 성도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도들은 목사와 같이 교회를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교회는 자기들의 신앙적인 터전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다니던 교회가 마땅치 아니하던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다른 교회를 선택해서 신앙 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목사가 이 점을 몰라서 모든 성도들이 자기와 같은 정도의 신앙 생활을 요구하고 헌신을 요구한다면 성도들은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자기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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