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7-21 19:34
유신진화론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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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섬김이
조회 : 678  

유신진화론의 위험성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Perils of Theistic Evolution)

저자: Philip Bell

수년 동안 나는 성경의 권위와 진리에 대해서 말해야하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절실하게 느껴왔다. 어디에도 유신진화론자(theistic evolutionists, TEs)과의 논쟁보다 더 격렬한 의견 대립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생물들이 존재하게 하셨다고 주장한다.[2] 그래서 진화론과 하나님을 같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자인 데니스 알렉산더(Denis Alxander)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창조론자’들은 ”복음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피해를 주며”, ”불화를 일으키고”, ”진화론을 거부하자는 캠페인은 성도들의 주의를 딴 데로 쏠리게 한다”는 것이다.[3] 그러나 그의 주장과는 반대로, 창조론자들이 지속적으로 진화론에 의문을 제기해왔던 캠페인은 힘을 얻어 왔으며, 분명 무시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한다.

타협의 위험성 대학에 있을 때 잠시 몇 년 동안, 나 자신도 성경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유신진화론에 동조했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나의 신앙에 위기를 초래했다고 증언할 수 있다. 나는 진화론이 틀렸던 지, 아니면 창조/타락/홍수/바벨탑에 대한 창세기 기록이 틀렸던 지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직면했었다. 만약 창세기를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면, 기독교 신앙을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믿음은 영적인 난파선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원에 대한 나의 싸움(고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세속적 철학(진화론)을 수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는 것을 더욱더 확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시켜준다고 말하면서, 성경의 분명한 의미와 모순되게 말하는, 자칭 똑똑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위험한 것이다. 복음주의적 교회가 진화론과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되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몇 가지만을 다루고자 한다.

1. 유신진화론은 성경을 세속적 이론에 굴복하도록 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은 의심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심지어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읽는 것과 불일치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예로서, 유신진화론자인 데니스 알렉산더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타락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고 적고 있었다.[4]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이론이 성경의 진리보다 앞서는 것이다! 일부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내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그들은 성경보다 그들의 이론을 우위에 두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성경은 완전하며 불변한다.(시 119:89, 잠 30:5,6). 진리는 결코 타협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의 권위는 진화론적 해석에 굴복되지 말아야한다. 유신진화론은 사상적으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5] 그리고 유신진화론을 허용할 때마다, 피할 수 없는 결과는 (그 결과가 좀 늦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성경의 핵심적 가르침을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see here).

2. 유신진화론은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읽는 것을 부정하게 만든다. 유신진화론은 ‘성경의 명료성(the perspicuity of scripture)’으로 알려진 것을 부인하게 만든다.[6] 유신진화론은 우리의 성경을 읽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창세기 1~11장의 기록을 역사적인 설명이 아니라, 신화, 우화, 시, 비유로 격하시킨다. 그리고 다윈 시기 이전의 크리스천들과 위대한 신앙인들 모두가 창세기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었다는 참으로 뻔뻔하고 대담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 세기에 걸쳐 성경적 창조론을 옹호했던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화를 일으키는 자들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명료성과 성경의 분명한 뜻은 진화론과 어긋날 때마다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예로서, 유신진화론자인 샘 베리(R. J. Sam Berry)는 그의 책 ‘하나님과 생물학자’에서[7], ”만약 하나님이 정말로 전지전능하다면, 분명히 그 분은 아담의 갈비뼈 하나로부터 하와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남자는 여성과 같은 수의 갈비뼈를 가지고 있다”라고 원본에 강조하면서 적고 있었다.

기초적인 번식 생물학적 지식에 반하여, 잃어버린 갈비뼈가 어떻게든 아담의 후손에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터무니없는 조롱을 하고 있는 것이다.[8] 갈비뼈는 아담 한 명에서만 부족하면 된다. 더군다나 갈비뼈는 재생될 수 있다!(see here). 샘 베리의 주장은 창세기 2:22절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라는 기록을 무시하고, 그의 뻔뻔한 주장을 의도적으로 숨기기 위한 연막전술인 것이다. 만약 그 구절이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이고,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어떠한 구절도 그 의미를 확신할 수 없게 될 것이다.

3. 성경적 창조주 대 ‘진화를 사용하는 신’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마 5:48), 거룩하시고(사 6:3), 전지 전능하시고(렘 32:17), 생명이시고(요 1:4), 빛이시고(요일 1:5), 사랑이시다(요일 4:16). 그리고 그 분의 속성들은 ”분명하게 보여 알 수 있다”(롬 1:20).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 지식, 사랑이 유신진화론적 방식에서 분명하게 들어날까? 진화를 사용하는 신은 (제한된 지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물들을 신속하게 창조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제한된 능력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수억 수천만 년에 걸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과정으로 생물들을 창조하셨다면, 그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죽음들과 고통들은 어찌된 것인가? 그 잔인하고 처절한 과정들은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창 1:31). 간단히 말해서, 유신진화론은 예수 그리스도(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의 영광을 훼손하고, 찬탈하는 행위인 것이다.

4. 유신진화론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증언을 무시하는 것이다.

만일 유신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창세기의 기록뿐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신약성경의 기록자들도 잘못 말씀하시고, 잘못 기록한 것이 될 것이다. 신약성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살펴보라.

(1)태초부터 사람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눅 11:50),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막 10:6),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행 3:21),

(2)땅은 물에서 나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벧후 3:5),

(3)노아의 홍수가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마 24:37~38),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벧후 3:6),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히 11:7),

(4)사람은 동물과 구별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고전 15:39),

(5)아담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다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롬 5:12~14, 고전 15:45-49),

(6)아담에서 하와가 창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 2:13~14),

(7)뱀에 의해서 하와가 문자 그대로의 유혹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고후 11:3)

창세기가 신화나 비유라면, 이와 같은 창세기를 인용하고 있는 신약성경의 기록들도 모두 틀렸다는 말인가? 이 무슨 참람한 주장인가!

5. 진화론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의 인간성을 말살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창 1:26,27)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켜버렸다. 진화론적 사상에 세뇌되어 고통당해온 이 사회의 끔찍한 유산들과 악들은(탐욕, 권력 욕심, 이기심, 무관심, 부정직, 인종차별, 장애자나 약자의 억압…) 도처에서 (오늘날 조금 적어졌지만) 목격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진화론의 ‘적자생존’과 생존경쟁이라는 사상이 만들어낸 논리적 결과인 것이다. ”진화론은 인간을 기껏해야 자신의 욕망과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동물과 다름없는 수준으로 그 지위를 떨어뜨렸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서 이러한 주요한 점들을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경시하고 있다.”

1996년 9월에 유신진화론자인 샘 베리 교수가 했던 인터뷰를 살펴보자. ”… 나는 원숭이(an ape)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된 원숭이입니다. 나는 이것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 쪽을 낮게 평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반쪽짜리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냐 과학(진화론)이냐, 둘 증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과 과학을 같이 가질 수 있습니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고전 15:39, 15:45). 그리고 성경의 여러 말씀과도 틀리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편 8:4,5…등). 전형적인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베리는 사람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두어, 그의 말이 신성모독에 가깝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유신진화론자의 강령은 전통적인 말씀도 아니고, 과학적으로도 일관성이 없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성경을 반만 믿으면서 진화론자로 남아 있으려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로부터도 노여움을 사고 있다).

더욱이, 인간의 죄성은 아담과 하와의 역사적 타락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속임, 시기심, 도둑질, 욕망, 살인… 등은 진화론적 세계관에서는 지속되어왔던 ‘열매’들이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진화적 과정을 성경에 도입하기 위해서, 그러한 악한 열매들과의 관련성을 방치하고 있다. 20세기 초 레오폴드 클락(C Leopold Clarke)의 통찰력이 있는 관찰을 생각해보자[10] :

”실제로, 진화론이 인간의 도덕성과 사회생활에 적용됐을 때, 극도의 이기심과 탐욕과 탐심과 약자에 대한 무관심 등이 팽배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열매들은 진화론이 채택되고 적용됐을 때에, 어느 곳에서나 나타났다… 진화는 매일 매일 삶의 원형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거기에는 약자와 방어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권력과 소유를 위한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점증하는 인간의 불신을 어떤 식이라도 설명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파산되고 말 것이다.”

6. 유신진화론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고 있다. 유신진화론의 강령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태초의 세상에 있었던 완전함, 타락, 죄, 죽음과 고통… 이 모든 것들은 성경의 기록과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거나 재해석되어야만 할 것이다. 예로써, 사람이 진화로 출현했다는 것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진실된 성경적 의미의 죄를 거부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하시는 일과는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롬 7:13, 7:18-19). 오늘날 자칭 복음주의자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중요한 성경적 교리를 재해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는 구절들도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예로써, 창세기 1:29-30절 말씀에 의하면, 타락 이전의 세계에는 육식동물이 없었음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9~30).

그러나 유신진화론자인 데니스 알렉산더는 ”이 구절은 채식을 언급하는 것 같지 않다. 그것은 범죄한 사람을 위해서 동물의 희생이 필요했다는 신학적 요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11] 하지만 그 반대로, 강조하고 있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확실한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궁극적으로 성령은) 사람과 동물이 채식을 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see also this article). 창세기 1장에는 동물의 희생을 통한 속죄함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다. 오로지 태초의 창조된 원래 세계는 도덕적으로 물리적으로 완벽했고, 이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는 하나님 자신의 선언으로 확증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여러 유신진화론자들은 첫 번째 사람으로서 아담을 거부하며, 우리의 죄성, 육체적 죽음(단순히 영적 죽음이 아닌)이 ‘첫째 사람 아담’으로부터 상속됐다는 것을 거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창세기 3장과 복음서(로마서 5장, 고린도전서 15장) 간의 사도바울의 연결은 유신진화론에 의해서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의의 선물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복음의 기초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와 타락을 거부하는 유신진화론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대속의 사건은 신화로 만들어버리는 실로 매우 위험한 주장인 것이다. 실제로, 유신진화론자들의 논리적 결론을 따른다면, 우리의 종말론 또한 바뀌어야만 한다.[12] 만약 에덴동산에 실제로 고통, 고난, 동물, 하등한 인간의 죽음들이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면, 성경에는 왜 죽음이 ”멸망 받을 원수”로서 묘사되어 있는 것일까?(고전 15:26). 그리고 만약 육식, 고통, 죽음 등이 실제로 아담 이전에 수억 수천만 년 동안 내려왔던 것이었다면, 왜 이 세상의 회복 시에, 즉 요한계시록 22:3절의 가르침대로 저주가 제거될 때,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오히려, 미래의 영원한 곳에서는 사망, 애통, 눈물, 아픈 것들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계 21:4). 정말로 크리스천들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심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벧전 1:4) 만약 유신진화론들의 강령이 적용된다면, 그러한 확신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유신진화론에 대한 추가적 고찰 유신진화론의 교리는 지난 1800여 년 동안 위대했던 크리스천들이 성경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책인 창세기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을 수용하도록 요구한다! 다윈의 시대 이전의 무수한 믿음의 선진들이 모두 성경을 잘못 읽고 있었단 말인가? 이 무슨 오만한 주장인가? 유신진화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진화로 창조하셨다고 말함으로서,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떠나서 자연신론자(deist)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윈(진화론의 주요 건축가)도 진화과정에서 선하신 하나님이 개입될 수 없었음을 고통스럽게 고백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유신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이 진화 과정을 사용하셔서 생물들을 만드셨다고 너무도 쉽게 주장하고 있다.

.다윈도 유신진화론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다윈이 발간했던 책, 특히 그의 개인 서신과 자서전을 읽었던 정직한 독자라면 누구나, 다윈은 유신진화론을 명백하게 반대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다윈은 미국 친구인 아사 그레이(Asa Gray)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었다 : ”나는 무신론적으로 책을 쓸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명백하게 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나도 보기를 원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설계와 자비의 증거를 찾아볼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고통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네. 자비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있는 유충에 기생하는 맵시벌(Ichneumonidae)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것을 나 자신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네… 나는 눈(eye)이 특별하게 설계됐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네”[13]. 다윈은 설계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옹호하고 있는 진화적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거부했던 것이다. 이것은 사실 논리적으로는 맞는 입장이다.

.유신진화론은 복음주의의 정통성을 전복시킨다. 오늘날 일부 유신진화론자들은 그들의 복음적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적 가르침을 훼손하거나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범사에 헤아려(test everything) 좋은 것을 취하고”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21절의 말씀에 따라, 그들의 주장이 성경과 일치하는지 반하는지를 시험해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레오폴드 클락(C. Leopold Clarke)이 지적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사람들로부터(무신론자)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지만, 말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유신진화론자) 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다[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면 (조롱을 당하고 비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지켜야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도, 우리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바로 그 복음에 실제로 피해를 줄 수가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때문에 이 말씀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하나님의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경고인 것이다. 이 글의 처음 단락에서 인용했던, 창조론자들에 대한 유신진화론자들의 비난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여기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유신진화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사야 5:20,2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21)

결론 :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안전한 길이다 물론, 진화론의 허구성을 가리키는 수많은 강력한 과학적 증거들이 있다. (진화론은 붕괴 직전에 있다. 무너져가고 있는 진화론과 타협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무신론자이든 유신론자이든 창조과학 단체들의(CMI를 포함하여) 웹 사이트 글들, 책들, DVD, 잡지 등을 읽어보기 바란다. 정말로 기독교의 진리와 과학적 완전성을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전서 5:21절의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진화론의 의심스러운 점들을 계속 헤아려 보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세속적 진화론자들과 유신진화론자들에게 진화론의 문제점들을 계속 제시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에 대해 답변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화론자들의 비난은 일단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을 수용하는 것은 결국 나쁜 과학과 나쁜 신학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신진화론은 결국 모순투성이고[1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해롭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기도하는 것은, 유신진화론자인 나의 동료 크리스천들이 이 글을 읽고, 진지하게 한번 멈추어 서서 생각해보길 바라는 것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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